1. 우리 아이는 왜 공부를 싫어할까?
공부에 관한 정의는 다양할 수 있다. 하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우리가 궁금한 점을 해결하기 위해 연구하는 게 공부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시험은 그렇게 공부한 내용을 얼마나 이해하고 기억하는지 확인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그런데 대학입시 혹은 자격증 시험의 경우에는 목적 전도 현상이 나타난다. 더 이상 자가 진단을 위한 시험이 아니다. 오히려 그 시험을 위해 공부하는 상황으로 바뀐다.
현실을 되돌아보면 쉽게 이런 현상을 살필 수 있다. 어린 시절 순수하게 ‘호기심’으로 공부를 시작한다. 그렇지만 상급 학교로 진학하면서 점점 입시 위주의 공부로 바뀐다. 어쩔 수 없다. 자신이 원하는 고등학교 혹은 대학교에 진학하려면 입시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특목고나 자사고 시험 혹은 대학 수학능력시험을 준비는 정해진 규칙을 따른다. 내가 원하지 않더라도 필수로 시험 봐야 할 과목을 공부해야 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한 고등학생이 언어(국어, 영어)는 좋아하는데, 수학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수능시험에서는 수학 과목도 있고, 심지어 탐구 과목, 제2외국어 과목도 있다. 다른 과목도 공부하지 않으면 원하는 대학교에 진학할 수 없다.
안 그래도 공부가 어렵고 힘든데, 하기 싫은 과목까지 하려니 더 싫어지는 것이다. 하기 싫을 걸 떠나서 자기 삶에 이 과목이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 실제 나도 수학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재수할 때 무턱대고 한의대에 가고 싶다고 도전했지만, 결국 수학이 발목 잡으면서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아무리 열심히 하고 싶어도 어려우니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았고, 그래서 하기 싫으니 시간을 별로 투자하지 않게 되었다. 계속 그렇게 반복되니 악순환되어 오히려 수포자(수학 포기자)가 되었다.
그런데 너무 신기하게도 어른이 되어 재테크를 공부하다가 원금과 이자를 계산하며 등차수열과 등비수열을 나도 모르게 찾아가며 공부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분명 고등학교 때는 별로 필요 없다고 생각했던 수학 공식도 실제 삶에서 쓸 일이 있게 된 것이다. 시험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필요에 의한 공부가 되니 자연스럽게 공식을 찾고 대입하며 원하는 값을 찾게 되었다.
진작 이 공식이 삶에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하지만 그때는 대학 진학이 가장 최우선 목표였고, 그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수학 공부를 해야만 했다. 결과적으로는 동기부여가 약하니 수학 공부가 싫어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수학을 잘해야만 한의대에 합격할 기회가 더 높아질 텐데 어렵고 힘드니까 금방 포기했던 게 아닌가 싶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살펴보면, 이와 비슷한 상황을 많이 겪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진로 진학 상담을 하면서 특정 과목에서는 우수함을 보이지만, 다른 과목에서는 약점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물론 우등생의 경우에는 두루 좋은 성적을 얻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내가 겪은 것을 그대로 경험한다.
하지만 생각만큼 이를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 사람 심리가 잘하고 싶은 것만 계속 잘하고 싶다. 반면 못하는 걸 굳이 힘들여서 하기는 싫다. 노력해도 금방 성과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악순환이 되고 수험생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고3이 되어서도 중학교 수준의 기초적인 영어 단어나 수학 공식을 알지 못한 채 어려운 수능 공부를 하는 학생도 많이 볼 수 있다. 집을 지을 때 기둥을 제대로 세워두지도 않고 지붕 공사를 마무리하려니 당연히 부실 공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만일 정해진 시간 안에 끝내야 하는 입시 시험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마음이 급하지 않으니 영어든 수학이든 천천히 기초부터 조금씩 모르는 걸 알아가며 실력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실제 그런 사례가 있다. 마음을 급히 먹지 않고, 천천히 다시 기초부터 접근하는 학생들이 간혹 있다. 비록 고3 때는 자기가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더라도 재수를 하면서 그때 쌓은 기초 실력을 바탕으로 한 단계 도약하는 모습을 보인다. 일명 ‘자기 객관화’를 분명히 한 것이다. (이 공부 감정에 대해서는 추후 3장에서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이처럼 우리가 조금만 관점을 바꿔서 생각하면, 시험공부를 하더라도 좋은 결과로 이어지도록 할 수 있다. 물론 그 바탕에는 기본적으로 공부를 좋아하는 마음이 들도록 어린 시절부터 노력이 필요하다. 시험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공부 자체를 목적으로 두어야지 공부 동기와 흥미를 모두 잃지 않는다.
부모는 아이가 특정 과목을 못 하면 학원부터 보내거나 과외 선생님을 구하곤 한다. 부족하니까 성적을 끌어올리기 위해 뭐라고 해보려고 노력한다. 이게 효과가 있으면 다행이지만, 잘못되면 약점을 잡으려다가 원래 가지고 있던 공부에 대한 흥미마저 잃게 할 수 있다. 벼룩 없애려다 초가삼간 다 태울 수도 있다는 말이다. 오히려 벼룩은 좀 있더라도 남아 있는 집을 더 튼튼하게 보수하고, 여유가 되면 거슬리는 벼룩을 잡는 방법을 활용해보면 어떨까 싶다.
《놓아주는 어마 주도하는 아이》에서 우리 아이들은 각자 다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말한다. 그런데 획일화된 대학 입학시험 시스템에 각자 능력이 다른 아이들을 맞춤형으로 교육하고 시험을 잘 보면 성공, 못 보면 실패로 간주하는 것을 옳지 않다고 말한다.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 등 크게 성공한 사람을 보면 오히려 학교 중퇴자가 많다. 입시에서 말하는 약점보다는 자기가 관심을 가진 분야의 강점을 더 기르고 몰입해서 결과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나도 크게 느끼는 바가 있다. 시험은 말 그대로 시험이다. 정해진 형식이 있고, 각 형식에 맞게 문제를 푸는 방식도 있다. 관련 지식도 쌓아야 하지만, 시험에 맞게 공부하고 준비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외국에 다녀온 나는 당연히 토익 고득점이 나올 줄 알았지만, 토익 시험 문제 유형을 모르니 그렇지 않았었다. 하지만 시험 유형에 맞게 공부하고, 시간을 맞춰가며 훈련하니 금방 고득점이 나왔다.
그렇다. 시험공부는 순수한 공부가 아니라 따로 전략을 세워서 해야 하는 공부다. 그렇기에 준비가 더 된 자만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순수하게 공부만 한 아이들은 입시 공부를 준비하지 않으면 아무리 공부 감정이 탄탄해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말이다.
실제 수업 시간에 집중해서 듣고, 필기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성적은 잘 안 나오는 학생들이 더러 있다. 그 학생들의 공통점은 학기 초에는 최선을 다하지만, 점점 성적이 안 나오니 자신감을 잃고 나중에는 공부하는 것에 회의를 느낀다. 만일 이들이 시험을 보지 않고 그냥 공부하게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물론 나도 그랬던 학생이었기에 더욱 그렇게 생각한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 질문에 잘 대답하고, 수업 듣는 태도만 보면 나는 우등생 저리 가라였다. 심지어 반 1등 하던 친구도 내가 필기한 노트를 빌려 가기도 했다. 그리고 친구들이 이번 시험은 왠지 잘 봤을 것 같다며 기대도 했다. 하지만 생각만큼 성적은 잘 나오지 않았다. 무엇이 시험에 나오는지 요령껏 공부하지 않고, 정말 순수하게 새로운 것을 배우고 알아가는 걸 좋아했기 때문이다.
하루는 시험 당일 아침에 나한테 중국어 과목을 30분 동안 핵심 내용을 들으며 공부한 친구랑 같은 점수가 나왔을 때는 당황스러웠다. 물론 그 친구는 그 이후에 그 공부 내용을 기억하지 못할 테지만, 결과적으로는 같은 점수였기 때문이다. 이러니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까?
비록 대학입시에 맞는 공부를 끝까지 버티고 하지는 못했지만, 다행히도 순수하게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공부에 대한 감정은 살아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대학교에서 혹은 대학원에서는 내가 원하는 분야를 공부하면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실제 특목고에서 수업 태도가 좋았던 학생들은 내신이나 수능 성적이 잘 나오지는 않았지만, 대학 진학 후에 우수함을 보인다.
명문대 진학이 정답이라고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평생 살아가면서 잃지 말아야 할 공부 감정을 지킬 방법은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결과보다는 공부 과정 자체를 즐길 수 있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친척 중에 어린 시절 자연을 관찰하고, 곤충을 채집하며 공부를 즐기던 한 소년이 있었다. 비록 명문대 진학은 할 수 없었지만, 지질학 분야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다. 덕분에 남극에 가서 탐사하고, 서울대학교에서 석사 하고, 파리대학교에서 박사를 마치고 대학교수로 임용되었다. 이 친구를 비롯해 우리 주변에서 비슷한 사례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반대로 대학 진학을 잘했지만, 변변치 않은 인생을 살아가는 친구들도 있다. 아마도 명문대 진학이 인생에서 해야 할 공부의 마지막 목표였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명문대에 진학해서도 잘하는 학생들은 공부 감정이 잘 잡힌 학생들일 것이다. 그러면 금상첨화지만, 혹시라도 당장 성적이 안 나온다고 해서 좌절하지 말자는 게 요지다. 이 점을 잊지 않고, 꾸준하게 노력하면 분명 언젠가는 빛날 날이 올 테니 올바른 공부 감정을 기르도록 노력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