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 아이는 왜 공부를 싫어할까?
만일 부모가 모두 서울대 출신이라면? 부모가 모두 의사나 변호사라면? 그 부모의 자녀들은 과연 행복할까? 이미 기득권의 힘을 맛본 부모들은 자녀도 똑같은 삶을 살아가기를 바란다. 심지어 자신과 자녀의 능력을 동일시하며 같은 결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콩 심은 데서 콩 나고, 팥 심은 데서 팥 나는 법이란 결코 없기 때문이다.
외고에서 근무하면서 이런 사례를 많이 보곤 한다. 부모님이 명문대를 나왔기에 자녀도 당연히 명문대에 진학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서울대가 아니면 대학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부모도 봤다. 한 학생은 실제 부모가 모두 서울대를 졸업한 엘리트였다. 그래서 아이를 외고에 진학시켰고, 기대하는 바가 컸다. 하지만 1학년 1학기 첫 성적을 받고 나서 크게 실망했다. 어찌 보면 1등급은커녕 성적이 뒤에서부터 세야 하니 실망이라기보다는 충격이 더 컸다.
중학교 때까지는 여차 저차 해서 상위권을 유지했다. 그런데 공부로 날고 긴다는 아이들이 모인 외고에서는 맥을 못 춘 것이다. 그리고 부모는 항상 아이에게 무조건 서울대를 목표로 해야 한다고 귀가 닳도록 이야기해왔다. 서울대 못 갈 거면 공부는 때려치우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말은 현실로 이루어진다고 하지 않는가? 실제 이 학생은 중학교 때는 모범생이자 우등생에서 고등학교에서는 끝없이 방황하는 비행자가 되었다.
학교에 나오기는 하지만, 등교 시간이 일정하지 않았다. 심지어 지필 평가를 보는 시기에도 지각해서 뭇매를 맞았다. 복장도 학생인지 노량진에서 시험 준비하는 고시생인지 어디서 좀 논다는 학생인지 중구난방이었다. 가끔 지나가다 대화할 때면, 전날 밤에 술을 마셨는지 얼굴이 새빨갛고 정신 못 차리는 날도 있었고, 담배 냄새가 코를 찡긋거리게 만들기도 했다.
수업 시간에는 항상 잠들어 있거나 멍하고 있는 모습을 보였다. 수업 시간이 아닌 나머지 시간에는 누구랑 통화하는지 몰라도 휴대폰을 붙잡고 학교 곳곳을 돌아다니며 서성거렸다. 그러다 수업 시간을 놓쳐서 늦게 들어가다가 선생님들한테 발견되어 혼나기 일쑤였다. 불행 중 다행인 건 그래도 밝은 성격 탓인지 선생님들과 유대감은 항상 유지하며 계속 학교에 다녔다.
그런데 과연 그 아이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이었을까? 중학교 때 우등생이었다가 특목고에 진학해서 갑자기 성적 열등생으로 바뀌면서 공부를 놓는 정도로 방황하는 학생들은 많이 봤지만, 이 학생의 상황은 다른 사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매우 심각했다. 그리고 아무리 주변 몇몇 선생님들이 노력해도 되돌릴 수 없을 만큼 공부에 대한 마음은 멀리 떠나 있었다. 더 심한 경우라면 학교 폭력을 일으키거나, 학교 밖에서 문제를 일으켜서 학교를 그만둘 수도 있었겠지만, 다행히도 그건 아니었다. 하지만 안타까운 마음은 감출 수 없었다.
다음 사례는 강도는 좀 약하지만, 공부를 꽤 잘했던 학생이 공부로 방황하는 고3 생활을 보냈던 이야기다. 내가 고3 담임은 하던 한 해에는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학교생활을 하는 학생이 있었다. 내신 성적도 상위권이라서 서울대는 좀 아쉽게도 지원하기가 어려워도 나머지 명문대라고 불리는 학교에는 충분히 진학할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의욕 상실의 모습을 보였다. 상담을 해보니 이유는 분명히 있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부모님이 이유였다. 두 분 모두 그런 건 아니고, 아버지가 말씀하시길 서울대 못 가면 대학 등록금을 지원해주지 않겠다고 했단다. 현실적으로 자기 성적으로는 서울대는 못 갈 것이 뻔했기에 공부할 이유가 없어졌다고 고백했다. 그러더니 수업도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수시 전형으로 가기 위한 노력도 하지 않으려 했다. 정말 다행히도 3월 상담 때 이 학생의 마음 상태를 알아냈고,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
비록 아버지는 서울대가 아니면 대학 갈 생각하지 말라고 했지만, 어머니는 생각이 달랐다. 그래서 어머니와 공조하고, 이 학생과 가장 친한 학생과 협동해서 나머지 고3 생활을 잘 보낼 수 있게 도왔다. 만일 부모님이 대학 등록금을 지원해주지 않아도 학자금 대출이라는 방법도 있고, 어머니는 어느 대학에 진학하더라도 적극적으로 지원하실 마음이 있으니 마음을 돌리라고 설득했다.
처음에는 잘 안 넘어왔다. 시큰둥한 태도로 상담했다. 그런데 몇 년 동안 고3 담임교사로서 입시를 지도한 나로서는 내신 성적이 너무 아까울 정도로 좋은데 왜 포기하냐고 계속 설득했다. 밑져야 본전이니 일단 선생님이 안내하는 대로 따라와 달라고 부탁했다. 게다가 도와주기로 한 이 학생의 친구도 옆에서 같이 거들어서 같이 공부하자고 달랬다. 진심이라 통했을까? 반신반의의 태도였지만, 서서히 나아지는 모습을 보였다.
평소에는 책만 주야장천 읽었지만, 시험 기간이 다가오니 친한 친구와 같이 내신 공부를 했다. 그리고 틈틈이 내가 내준 미션을 수행하며 생활기록부에 활동 기록이 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1학기가 지나고 보니 다행히 내신 성적도 유지할 수 있었고, 자신이 원하는 학과와 관련된 활동을 채워나가서 생활기록부 내용도 내실 있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대학 수시 지원을 앞두고 부모님과 삼자대면의 시간이 왔다.
아버님이 워낙 완강하신 걸 알고 있기에 조금 긴장됐다. 혹시나는 역시나였다. 밑도 끝도 없이 바로 서울대는 못 가냐고 물으셨다. 당연히 나는 지원해볼 수는 있으나 합격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러니 한숨을 쉬면서 그러면 최대 어디까지 갈 수 있겠냐고 물으셨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지난 졸업생들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볼 때 서울대는 아니라도 SKY에 해당하는 대학 중 한 군데는 갈 가능성이 크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어떻게 이 성적으로 그 대학을 갈 수 있냐고 하면서 그 아래 대학의 특정 학과를 지목하며 거기는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스스로 결론을 내렸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물으니 지인이 그 학교에서 근무하는데 충분히 올 수 있을 거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너무나 안타까웠다. 생활기록부의 전공 적합성도 확인해보지 않은 제삼자가 어떻게 그것을 판단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나중에 뒤돌아 생각해보니 학생이 진학하고 싶은 사회학과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경제학과에 지원하라고 그렇게 강조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 아버지의 의견을 보태서 무조건 합격할 수 있다고 말한 그 학교의 학과 1개를 포함하여 나머지 5개 학과는 학생이 원하는 학과 위주로 지원했다. 과연 결과는 어땠을까?
다행히도 내가 원했던 최상의 시나리오를 받아볼 수 있었다. 물론 쉽사리 된 건 아니었다. 아이가 수능을 보고 나서 많이 좌절했다. 가채점을 해보니 수능 최저를 맞출 수 없어서 가장 좋은 학교에는 합격할 수 없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나는 과거의 경험을 반추하여 혹시라도 가채점 결과가 다를 수 있으니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면접에 임하라고 했다.
정말 다행히도 그해에 수능이 어렵게 나와서 등급 컷 점수가 달라져서 수능 최저를 맞출 수 있었다. 그리고 평소 책을 많이 읽었던 학생이라 면접에서도 미끄러지지 않고 다행히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졸업 후에 연락이 뜸하다가 갑자기 학교에 인사하러 온 학생이 생각난다. 얌전했던 학생은 노랗게 머리를 물들이고, 신나게 연애도 하고, 자신이 원하는 학과에서 재미있게 학업에 매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만일 이 학생이 아버지 말대로 서울대가 아니면 대학에 가는 게 의미 없다고 생각하고 계속 그렇게 의욕 없이 살았다면 어땠을까? 몇 번이고 곱씹어 보게 된다. 우리는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충분한 능력과 자격이 있는 아이에게 부모로서 어떻게 공부 감정을 기르게 하고 있는지 되돌아보는 사례들이라 생각한다. 고래로 자랄 아이를 자꾸만 고등어가 되라고 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볼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