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 아이는 왜 공부를 싫어할까?
과연 세상에는 공부를 순수하게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진정으로 공부의 맛을 느껴보지 않은 이상 공부가 좋은 사람은 없을 것이라 본다. 혹은 결과를 내는 공부가 아니라면 그래도 조금이라도 공부를 즐기면서 할 수 있지 않을까? 안타깝게도 우리 아이들은 국가에서 정해 놓은 교육과정 아래 필수로 배워야 하는 과목이 정해져 있다. 이 말은 곧 하고 싶지 않은 공부도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성적이 잘 나오는 우등생들도 공부가 좋아서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가 된다.
실제 우등생들과 상담하고 인터뷰하면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도 공부가 어렵고 힘들다고 느낀다는 점이다. 국어를 잘하지만, 수학이 어려운 아이. 수학은 잘하지만, 영어가 어려운 아이. 정말 다양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일반적인 아이들과 우등생들의 차이점은 분명히 있었다. 싫지만 목표를 분명히 세우고, 문제를 하나씩 해결하려는 자세를 보였다는 점이다.
그런데 사람은 마음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입시의 끝에는 균형이 어느 정도 맞혀지지만, 누구나 시작 단계에서 그리고 중간 과정에서는 불균형한 상태를 보인다. 국어와 영어처럼 언어를 좋아했던 한 학생은 내신 성적에서도 수능 모의고사 시험에서도 모두 1, 2등급을 받았지만, 딱 하나 수학만 계속 4, 5등급을 받았다. 고3이 될 때까지 이 불균형은 계속 유지되었고, 막판에 가서야 조금이나마 만회할 수 있었다.
이 학생의 평균 내신을 보면, 분명히 명문대 진학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 학생의 수학 점수를 알고 있는 모든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명문대 불합격을 예측했다. 명문대에서는 학업 역량을 가장 중요시하기에 균형 잡히지 않은 내신 성적을 좋게 평가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정말 놀랍게도 수능 최저와 면접이 있는 전형을 제외하고는 다른 명문대에 지원 결과는 처참하게도 모두 불합격이었다.
수능 2주를 남기고,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으로 수학 점수를 올려야 했다. 수능 수학 5등급은 원점수로 대략 50~60점대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수능 최저를 맞추려면 적어도 3등급은 나와야 했다. 80점 가까이 나와야 하는 점수였다. 남들이 보면 20~30점 정도는 금방 올릴 수 있지 않을까 싶지만, 원래 점수를 더 높이 올라갈수록 받기가 힘들기에 쉬운 도전은 아니었다.
이 학생이 2주 동안 수학 공부에 매진하면서 매일 드는 마음이 있었다. 그것은 ‘그동안 왜 수학 공부를 소홀히 했을까? 너무 후회된다.’였다. 언어학은 많이 좋아하는 분야라서 대학 교재를 펼쳐놓고 공부할 정도로 깊게 공부했지만, 수학은 구미가 당기지 않아 계속 손을 놓고 있었던 거였다. 평균 내신 1, 2등급을 받는 우등생도 하기 싫은 공부는 어렵고 힘들었다는 말이다.
2주간의 몰입 끝에 구사일생으로 수능 최저를 맞출 수 있었고, 덕분에 명문대에 진학했다. 하지만 수학 때문에 매일 식은땀을 흘린 기억은 영원히 지울 수 없었다. 아무리 하기 싫더라도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성적이 너무 불균형이 되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교훈을 분명히 얻었다.
해피 엔딩으로 끝난 이야기지만, 여기서 생각해볼 부분이 있다. 우등생도 이렇게 특정 과목에 관해서는 공부가 힘들다고 호소한다. 그런데 일반 학생들은 어떨까 싶다. 성적이 잘 안 나오는데, 하기 싫은 공부는 계속해야 한다고 하니 얼마나 가슴이 답답하고 힘들까? 그런데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는 힘들어도 참고 견디는 힘도 있어야만 한다. 이것도 공부 감정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진정한 공부는 모르는 것을 혹은 부족한 것을 채우는 게 공부라는 점이다. 많은 사람이 공부를 잘하는 것에만 초점을 두는데, 사실 그것은 자신의 구멍을 잘 메우는 게 진정한 공부라는 말이다. 이미 잘 알고 있고, 잘하는데 굳이 공부가 필요할까? 비록 힘들지만, 구멍을 잘 메워서 완벽해지려고 하는 게 공부라는 말이다.
사실 어린 시절부터 공부를 대하는 자세에 따라 어려움을 해결하는 방법을 달리할 수 있다. 부모가 어떻게 아이에게 공부 감정을 갖게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말이다. 단편적인 예가 될 수는 있지만, 우리 집 첫째 아이의 이야기가 적절한 사례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공유해본다.
영어가 전공인 나는 내 아이의 영어는 내가 책임지고 싶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첫째를 키울 때 모든 게 새롭고 적응이 안 되어 아이가 두 살이 될 때까지 육아로 허덕였다. 그래서 영어 공부를 할 겨를이 없었다. 그러다 조금 여유가 생겨 정신 차리고 아이에게 영어 영상을 노출시키려고 했는데, 영어 거부가 너무 심해서 안타까움에 눈물을 훔쳐야 했다. 아빠가 명색이 외고 영어교사인데 아이는 영어를 싫다고 하니 너무 당황스러웠다.
다행스러운 건 교육학적 지식과 여러 교육 경험이 어우러져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은 알고 있었다. 공부에 대해 거부감이 있을 때는 부담을 주거나 강요하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천천히 영어에 대한 흥미가 생길 때까지 막연히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둘째가 태어났다. 첫째 대 이루지 못한 계획을 이루고자 둘째가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영어 소리를 노출시켰다.
신생아 때는 재울 때 일부러 영어로 말을 걸기도 하고, 어느 정도 영상 노출이 가능한 시기에는 일부러 영어로 된 영상만 보여줬다. 노력 덕분에 둘째는 다른 건 몰라도 ‘색깔’을 표현하는 단어를 우리말보다 영어로 더 먼저 익혔다. 영어에 대한 거부감도 없고, 오히려 영어로 된 영상을 더 찾았다. 영어 실력을 높은 수준까지 끌어올린 건 아니지만, 적어도 영어를 좋아하는 감정을 만들 것으로 만족했다. 그리고 영어로 잘 말하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런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첫째가 갑자기 영어가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드디어 때가 왔구나!’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영어에 거부감을 버리고, 영어에 대한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고 생각하고 둘째와 같이 영어 노출을 시켰다. 의지가 생기니 금방 둘째만큼 영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원어민처럼 엄청나게 잘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필요한 영어 단어를 이해하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했다.
만일 조급한 마음에 영어 거부감이 왔을 때, 더 영어를 시켜보려고 했다면 결과는 어땠을까? 생각만 해봐도 끔찍하다. 필요성을 느껴도 영어에 대한 감정이 많이 상해서 평생 영어를 배우려고 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분야를 공부할 때도 아이가 흥미를 갖기 시작할 때까지 기다렸다.
이미 첫째 또래 다른 친구들은 한글을 다 알고, 숫자도 잘 세고, 시계까지 잘 본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아이가 흥미를 갖도록 환경만 조성하고, 관심을 보이기 시작할 때부터 본격적으로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숫자를 1부터 10까지 세면서 하나를 빼먹어도 혼내지 않고, 완성할 때까지 기다리며 계속 반복 학습을 시켰다. 그랬더니 나중에는 문제없이 숫자를 세고, 십 단위로 넘어가서도 빠른 학습력을 보였다.
요새는 많이 부족하지만, 한글을 열심히 배우려고 한다. 특히 친구나 가족들 이름을 쓰면서 한글 공부하는 걸 좋아한다. 비록 서툴고 느리지만, 언젠가는 한글도 다 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다. 남들보다 똑똑하고 속도도 빠른 우등생들도 어려운 공부를 평범한 아이가 잘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은 우리 아이 속도에 맞게 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게 정답이 아닐까 싶다.
《메타인지 학습법》의 저자 리사 손 교수도, 《나는 천천히 아빠가 되었다》의 저자 이규천 작가도 모두 아이가 하려는 마음을 가질 때까지 기다려주었다고 한다. 그랬더니 아이는 스스로 공부하는 힘을 기르고, 문제 해결 능력도 더욱 성장시키는 모습을 보였다고 했다. 사실 이게 부모로서 실천하기가 어려운 일이지만, 정답을 알았으니 노력해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