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공부 감정’에도 준비 운동이 필요하다
민혜영 작가가 쓴 《내 아이를 바꾸는 위대한 질문 하브루타》 책을 살펴보면 진정한 하브루타는 자녀가 사춘기가 되었을 때도 편한 친구 사이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라 한다. 다른 내용도 좋았지만,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가장 좋았다. 실제 학교에서 여러 아이를 상담하면서 많이 느꼈기 때문이다. 부모와 관계가 좋은 아이는 심리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은 진리다. 인간으로서 개인의 감정에 영향을 받는 건 당연하거니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로부터 생기는 여러 감정은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끼친다. 특히 삶의 시작이 되는 집에서부터 가족 구성원과 관계를 잘 맺지 못하면 밖에 나와서도 문제가 생긴다. 특히 요새 더 그런 것 같다.
2020년 시작된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아이들이 집에서 밖으로 나올 일이 거의 없었다. 온라인으로 수업 듣고, 사람들과 만날 기회가 많지 않았다. 인간관계로 부딪히는 일은 거의 가족 안에서만 생겼다. 만일 부모와 어릴 때부터 좋은 관계를 형성한 경우라면 큰 스트레스 없이 이 시기를 보냈을 것이다. 반면 관계가 좋지 못한 경우는 아이들이 감정적으로 더 무너져내려 공부하는 데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누구나 혹시 이런 경험이 있지 않은가? 공부하기 전에 잠깐 스마트폰으로 정보를 검색하고 있는데 부모님이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온다. 정말 바로 공부를 시작하려고 했는데, 오해받고 잔소리를 듣는다. 그러면 감정이 상해서 하려고 하던 공부가 하기 싫어진다. 이런 일이 반복해서 일어나면 결국 아이는 공부를 포기하거나 방황의 시간을 보낸다. 남의 집 일인 것 같지만, 생각보다 이런 사례는 무궁무진하다.
한 사례에 불과하지만, 집에서 부모와 아이가 어떤 관계를 맺어가느냐에 따라 아이의 공부 감정이 다르게 자랄 수 있다는 걸 꼬집는 것이다. 같은 상황이었더라도 부모가 아이를 믿고 기다려주었다면 어땠을까? 물론 잠깐 딴짓하더라도 잠시 후에는 공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부모의 기대만큼은 아니더라도 아이 스스로 공부한다고 생각하면 더 낫지 않은가?
학교 폭력 가해자가 된 한 아이는 중학교 때까지는 부모와 관계가 좋았다고 한다. 덕분에 공부도 곧 잘했는데, 특목고 입학 후 상황이 달라졌다. 아이는 공부를 해도 성적이 안 나오니 방황하기 시작했다. 부모는 조급하니 아이를 다그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이는 조금씩 삐뚤어졌다. 공부는커녕 학교생활에 전혀 충실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는 일에 더 관심이 생겼다.
주먹을 휘두르거나 그러지는 않았지만, 몰래 친구의 물건을 숨겨둔다든지 혹은 심한 말을 한다든지 다른 사람의 감정을 헤치는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결국 학교 폭력 위원회가 열려 학부모와 학생 모두 상담하는 과정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부모는 중학교 때까지 아이와 관계가 좋았기 때문에 별걱정 없이 지냈다고 한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부터는 아이와 자주 말다툼했고, 이제는 포기한 상태라고 했다. 아이는 그동안 자기를 믿어주던 부모가 갑자기 태도를 바꿔서 혼란스러웠다고 했다. 자기한테 잘되라고 하는 말이라지만 합리화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잔소리만 하는 부모는 더 이상 내 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중에는 자기를 포기하는 모습을 보이니 더 이상 공부할 이유도 없고, 착한 아이로 살아가야 할 이유도 없다고 말했다.
1장. <서울대 못 갈 거면 공부 때려치워!> 꼭지 사례에서 말했던 부모가 모두 서울대 출신인 아이 사례도 어찌 보면 이런 상황이 반복되었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놀라운 것은 어릴 때 아무리 부모와 좋은 관계를 형성해도 나중에 부모의 태도나 입장이 돌변하면 좋은 관계도 틀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끝까지 일관된 모습을 보인다면 관계도 계속 유지될 수 있다.
유튜브 채널 <조작가의 스몰빅 클래스>에 출연하여 ‘엄친아, 엄친딸 부모님이 상담할 때 보이는 놀라운 공통점’이라는 제목으로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이 영상은 50만에 가까운 조회 수를 기록했다. 주변 사람들은 거의 이 영상을 다 봤을 정도다. 미디어를 잘 보지 않는 일본에서 유학 중인 인터뷰 속 주인공 졸업생에게 연락이 올 정도였으니 대박 난 영상이라 할 수 있다.
<조작가의 스몰빅 클래스 영상 링크 주소>
https://www.youtube.com/watch?v=3_CpGEwmPwQ&t=3s
무엇보다 이 영상을 보고 나면, 부모와 아이가 관계가 좋을 때 왜 공부에 시너지 효과가 나타나는지 알 수 있다. 부모의 가치관이나 삶의 태도를 그대로 물려받은 아이는 부모와의 관계, 형제와의 관계, 교사와의 관계, 친구와의 관계 어디에서든 항상 좋은 모습을 보였다. 살아가면서 ‘관계’에 문제가 전혀 없으니 공부할 때 큰 방해 요소가 사라진 것이다.
이 학부모님은 아이에 대한 자기 객관화가 분명한 사람이었다. 아이가 무엇을 잘하는지 혹은 무엇이 부족한지 분명히 구분하여 설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이의 결정을 존중하고, 스스로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강했다. 행여나 부족함이 있으면 이성적으로 조언을 통해 방향을 제시하고, 구체적인 도움이 필요하면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또한 단순히 명문대 진학, 대기업 취업 등 그런 사소한 목표가 삶의 목표가 되어야 하는 게 아니라 인생을 크게 보고 본질적인 물음을 많이 하도록 대화했다고 한다.
그런 이유인지 몰라도 학업 능력, 인성, 인간관계, 삶을 대하는 태도, 위기 극복 능력 등 다양한 부분에서 우수한 모습을 보였다. 다른 반 담임교사가 이 학생의 부모님을 한번 만나서 대화하고 싶다고 할 정도로 정말 엄친아, 엄친딸이라 불려도 충분했다. 사실 이 아이의 언니도 우리 학교 학생이었는데 둘의 모습은 다르지 않았다. 실제 대학입시 결과도 같았다.
일명 SKY라고 불리는 명문대에 지원하여 모두 합격하였고, 일본 문무성 장학금을 받는 전형에도 합격했다. 그리고 둘 다 대한민국 최고 대학 서울대를 뿌리치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이유는 직접 들을 수 없었지만, 더 넓은 세상에서 배움을 실천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최근에 우리 반이었던 아이와 재회하여 대화할 일이 있었다. 일본에서 장학금 받는 사람 중에서 1년 교육과정에서 1등을 해서 결국 동경대에 입학했고, 계속해서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성적도 우수하다고 했다. 그런데 처음으로 실패라는 걸 경험하면서 감정적으로 힘들었다고 했다. 3학년이 되어 취업을 준비하면서 높은 벽을 경험한 것이다. 그래서 조급한 마음이 들 때 부모님과 대화했는데 큰 교훈을 얻었다고 했다.
부모님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동안 너는 단 한 번도 실패해보지 않아서 행여나 실패를 경험하면 많이 힘들까 봐 걱정했단다. 하지만 다행히도 20대 초반에 이렇게 실패를 경험했으니 앞으로 남은 인생에 큰 거름이 될 거야. 앞으로 더 많은 실패와 시련이 있을 텐데 이번 기회에 실패를 경험해도 다시 일어서는 방법을 배워보렴.”
덧붙여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사람은 땅에 발을 딛고 걷는 존재란다. 하지만 우리는 높은 하늘만 바라보며 손을 뻗으려고만 하는 것 같아.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하늘에 닿을 수는 없지. 가끔 하늘을 보며 꿈꾸는 것은 좋지만, 넘어지지 않게 땅을 잘 보고 발을 잘 딛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이런 마인드를 가지고 때로는 따뜻한 위로를, 때로는 차갑지만 현실적인 조언을 편하게 할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이런 부모와 아이 관계라면 위 사례처럼 훌륭한 자녀로 자라는 건 당연지사다. 하지만 우리는 자꾸만 공부 때문에 아이와의 관계를 망치는 경우가 많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구분이 안 된다고 하지만, 분명한 건 부모와 아이의 좋은 관계는 공부 감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