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공부 감정’에도 준비 운동이 필요하다
기린은 태어나자마자 걸음마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사람은 1년 정도는 되어야 걸을 수 있지요. 기린은 15개월이면 완전히 독립합니다. 반면에 사람은 20살이 넘어도 독립하는 경우가 드물죠. 인간은 수명이 긴 만큼 성숙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의미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어린 시절 아이들은 부모의 도움을 받는 시간이 더 길게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물론 적절한 관심과 사랑을 기반으로 한 도움을 말하는 것입니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처럼, 너무 지나쳐도 너무 부족해도 좋지 않습니다. 제가 만난 우등생들을 보면 그 뒤에는 항상 부모의 도움이 밑바탕에 깔려있었답니다. 맞벌이 생활을 하더라도 주말에는 꼭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했습니다. 아무리 평일에 조부모님이 보살펴도 부모의 영향만큼 좋지는 않았습니다.
한 예로 지인 중에 맞벌이로 바쁜 나머지 평일에는 아이를 조부모님께 맡겼습니다. 그런데 3살이 되어서도 아이가 말을 잘하지 못해 검사해보니 언어 발달 장애가 온 것이죠. 조부모님이 아무리 보살펴도 아이는 부모로부터 받는 관심과 사랑에 대한 결핍이 있었죠. 아차 싶었던 아이 엄마는 바로 육아 휴직을 냈답니다.
휴직 기간에 종일 아이와 좋은 시간을 보내려 노력했어요. 무엇보다 언어 치료에 집중했죠. 그런데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발음을 잘할 수 있도록 치료받는 것도 중요했지만, 부모와 함께 정서적 교감을 많이 할 수 있도록 신경 썼어요. 말을 제대로 못 하는데 감정표현이 서툴러서 짜증을 내거나 우는 상황이 많이 생겼기 때문이었죠.
상황에 따라 어떤 감정인지 알려주었고, 올바른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도와주었어요. 다만 혼내거나 화를 내면 아이가 상처받고 더 마음을 닫을까 걱정이었다고 해요. 무조건 감싸주고 아이에게 사랑을 듬뿍 주었죠. 그렇게 6개월을 보내니 드디어 또박또박 발음하며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누구보다 부모는 여러 감정이 들어 눈물을 흘렸죠.
그 후 6개월이 지나 복직하게 되었을 때는 또래 아이들만큼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회사에서 배려해준 덕분에 육아시간을 쓰고 1시간씩 일찍 퇴근해서 아이를 계속 돌봤다고 해요. 덕분에 초등학생이 되어서는 걱정 없이도 잘 지내는 아이로 성장해 있었습니다.
만일 언어 발달 장애를 발견했을 당시 휴직 결심을 하지 않았더라면 어떤 결과가 있었을까요? 아무도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렇게까지 정상적으로 되돌리기까지 더 힘든 시간이 있었으리라 생각해봅니다. 이 아이는 부모의 결단이 살린 결과가 아닌가 싶습니다.
아이들은 하나씩 스스로 해내는 힘을 기릅니다. 그런데 기린처럼 태어나자마자 단번에 걸음마를 할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지는 않죠. 차근차근 하나씩 배우며 자랍니다. 아기 때는 모유나 분유를 먹여야 하고, 기저귀도 갈아줘야 하고, 이유식도 줘야 하고, 어쨌든 부모가 다 해줘야 합니다. 귀찮고 힘들겠지만, 그렇게 보호를 받고 자란 아이는 건강하게 잘 자랄 수 있죠.
문제는 그 이후인 것 같습니다. 아이가 몸이 크고 행동도 하나씩 할 줄 아니까 다 큰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아직도 아이인데도 말이죠. 하지만 부모는 아이가 큰 줄 착각하고 기대가 큽니다. 기대한 만큼 해 주지 못하니 실망스럽고, 좋지 못한 감정을 말로 표현하게 되죠. 그 속에서 아이와의 관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공부 감정’에 악영향을 주는 고리를 만드는 일이죠.
고등학교에 근무하면서 보면 덩치는 어른인데 생각하는 건 여전히 아이라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언제부턴가 부모와 관계가 틀어져 감정이 불안정한 아이들도 있고요. 반대로 성숙한 모습을 보이고, 부모와도 관계를 잘 유지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자랐나 기특합니다.
알고 보면 모든 우등생이 있기까지 부모의 역할이 중요했습니다. 아이의 성장 속도에 맞게 조력자로서 아이가 성숙해질 수 있도록 적당한 수준에서 관심을 가지고 도우면 좋은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반면 아무런 도움 없이 방치하거나 너무 지나치게 간섭한 경우에는 오히려 미성숙하거나 의존적인 아이로 자라는 것 같았습니다. 도움은 꼭 필요한 것이지만, 적정한 수준을 맞추는 게 관건이지요.
그런 면에서 섬세함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아이가 기저귀를 더는 차지 않아도 화장실에 갔을 때 도와줄 일이 있다는 걸 섬세하게 알아차리는 것처럼 말이죠. 공부 감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가 공부 감정을 하나씩 배워나갈 때 제대로 배울 수 있도록 옆에서 조력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회복탄력성을 가질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도와야 할까요? 아이가 무언가에 도전해서 실패해도 뭐라고 하는 게 아니라 다시 해보자고 용기를 북돋아 줘야 하죠. 여러 번 실패해도 단지 하나의 과정일 뿐이라 알려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죠. 그런데 종종 부모는 아이가 못하면 혼내고, 탓하고, 실망하면서 회복탄력성을 배울 기회를 잃게 하는 것 같습니다.
다른 공부 감정도 똑같습니다. 적시적소에 맞게 부모가 도와야 아이가 올바르게 공부 감정을 형성하며 성장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아이는 스스로 자란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부모 도움 없이는 아이는 힘들게 자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부모가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한다면 아이에게는 좋은 영향을 줄 것이니 꼭 이 점을 명심하고 더욱 신경 썼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