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인 이유로 진로를 선택할 경우
‘돈은 있다가도 없어지고 없다가도 생기는 법이라’라는 속담이 있다. 이 말은 항상 자라면서 어머니께 들었던 말씀이기도 하다. 돈에 너무 집착하거나, 돈을 목표로 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큰 역할을 한다. 사고 싶은 물건이 있어도 돈이 있어야 사고, 먹고 싶은 음식도 돈이 있어야 사 먹을 수 있다. 자급자족 사회가 아니기에 이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돈이 없으면 안 된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이 자신의 인생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였을 때 경제적인 이유로 최종적인 결정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한 예로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수험생으로서도 자신의 진로를 선택할 때 경제적인 이유가 결정적으로 작용할 때도 있다. 사실 진로를 결정할 때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나, 잘할 수 있는 일과 같이 자신의 ‘적성’과 맞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집안이 어렵다는 이유로 자신의 적성과는 상관없이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40년 전 우리 아버지 세대도 진로를 선택할 때도 그랬고, 20년 전 내가 진로를 선택할 때고 그랬고, 심지어 현재 고3 수험생들도 똑같이 경제적인 이유로 진로를 정한다.
반세기가 지나도록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인 요인이 진로 선택에 영향을 주고 있는 현실이 매우 안타깝다. 우선 40년 전 사연을 공유하고자 한다. 강원도에 공부를 잘하는 형제가 셋이 부모와 살고 있었다. 삼형제의 아버지는 6.25 참전용사로 전역하지 않고 직업군인이 되어 간부로 계속 근무하다가 전역했다. 군대보다는 사회에 나와서 사업을 하면 더 좋을 거 같다는 생각에 전역을 결정했는데, 사회는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다. 퇴직금으로 여러 사업을 했지만, 계속 실패했고 집안은 경제적으로 많이 기울었다.
집안은 어려웠지만, 삼형제는 학생 신분으로 자신의 본문에 최선을 다했다. 세 명 모두 그 지역에서 엘리트 코스라고 알려진 중학교에 시험 봐서 합격했고, 게다가 명문고등학교에도 다 같이 진학했다. 그 동네에서는 공군집(공군 간부 출신 집) 엘리트 삼형제라고 불렸다. 하지만, 고3 때 대학 진학을 앞두고 삼형제는 모두 고민에 빠졌다. 성적이 되어 갈 수 있어도 사립대학은 등록금이 비싸서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공부도 잘했지만, 심성도 착했던 삼형제는 각자 나름의 이유로 진로를 선택했다.
우선 첫째는 장남이라 그런지 집안에 대한 책임감을 더 많이 느꼈다. 그래서 자신의 적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등록금도 거의 안 들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하기로 했다. 1970년대 배를 타고 해외에 나가서 외화를 버는 일이 국가에서도 애국이라고 했고, 돈도 많이 벌 수 있었다. 그래서 관련된 학과가 있는 지방의 국립대학교에 진학했다. 대학에 가보니 해군 ROTC 과정이 있었다. 배를 타는 학과다 보니 해군 ROTC 과정을 거쳐 장교가 되면 기관사로 군 복무를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월급까지 많이 준다고 하니 일석이조(一石二鳥)였다. 군 복무를 하며 돈도 더 많이 벌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으랴.
하지만, 현실은 혹독했다. 돈을 왜 그만큼 많이 주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육지에 있는 시간보다 바다 위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았고, 매번 출렁이는 파도에 멀미가 계속 나서 죽을 지경이었다. 군 복무가 끝나도 기관사로 계속 일을 할 생각 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돈은 많이 벌어서 집에 보탬이 되었고, 아버지께서 사업한다고 지신 빚도 많이 갚을 수 있었다. 일단 빚이라도 다 갚자는 심정으로 버티고 버텼다. 집안의 빚을 거의 다 갚아갈 무렵 첫째는 배를 타는 생활에 지쳐있었다. 죽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진심으로 그만두고 싶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옥처럼 느껴졌다.
결국, 첫째는 군 복무 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백기를 들었다. 오랜 기간 외국을 돌아다니며 생활하다가 한국에 돌아왔을 때 배를 타고 외화를 벌어오는 형태의 군 복무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다시 다른 방법으로 군 복무 기간을 채워야 한다는 안내를 받았지만, 그래도 그 마음은 바뀌지 않았다. 스무 살 대학에 입학해서 거의 서른 살이 될 때까지 그는 마린보이로 살아왔다. 한순간의 선택이 만든 결과였다. 집안의 경제적인 어려움을 이겨보겠다고 자신이 희생하며 선택한 진로는 실패로 끝났다.
그는 스물아홉에 결혼했고, 서른 살에 아내가 자식을 낳았지만, 다시 남은 병역의 의무를 다하러 군대에 갔다. 심지어 장교가 아닌 일반 병사로 복무했다. 열 살 가까이 어린 선임들한테 가혹행위와 폭력을 당하면서까지 군 생활하는 게 정말 힘들었지만, 배를 타는 일보다는 낫다고 생각하고 꾹 참았다. 전역 후에 서른 살 초반이라는 늦은 나이였지만, 또 다른 책임질 가족이 생겼으니 취업해야 했다. 자신의 전공과는 다른 일을 해야 해서 쉽지 않았지만, 배 타는 일을 제외하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각오로 각종 공채시험을 준비했다.
늦은 나이에 준비했지만, 다행히 결과는 좋았다. 아마도 자신이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일이 공부였기 때문이었다. 여러 시험에 합격했는데, 그중에는 전국에서 2등이라는 높은 순위로 합격한 시험도 있었다. 만일 첫째가 10년 전 대학 가는 시점으로 돌아간다면, 과연 어떤 선택하는 게 옳았을까?
삼형제 중에 둘째와 셋째 이야기도 짧지만 비슷하게 흘러간다. 둘째는 공대를 졸업해서 대기업에 취업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공대로 유명한 사립대학교에 진학했다. 돈이 부족해서 아르바이트를 구하려고, 중국집에 고아라고 속이기까지 하며 취업했다. 그렇게 일하면서 간신히 등록금을 벌어가며 대학을 졸업했다. 다행히 바라던 대기업에 취직했다. 그 당시 공무원 월급이 10만 원이었는데, 대기업은 40만 원이었으니 경제적인 성공을 거뒀다고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기업에서 일하는 게 즐겁지 않았다. 매일 야근에 주말도 쉬지 못하니 자신의 생활이 없었다. 또한, 진급 경쟁에 대한 스트레스도 컸다. 돈은 남들보다 많이 벌었지만, 그곳에서 자신만을 위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했다. 둘째도 결국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을 그만두고 새로운 진로를 찾아 나섰다.
마지막으로 막내인 셋째도 형들 따라서 집에 경제적인 부담을 주기 싫었다. 학비가 무료인 교대에 진학했다. 과거에는 교대는 학비가 무료였다. 형들의 상황을 지켜보며 나름의 합의점을 찾은 것이었다. 우선 학비가 무료니까 경제적인 부담이 없으니 여유 있게 남은 인생에 대한 진로 탐색할 시간이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또한, 교대를 나와서 초등학교 교사가 되면 다양한 과목을 가르치는데 그만큼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으니 일을 하면서 더욱 깊은 진로 탐색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첫째와 둘째의 실패한 진로 탐색 과정을 보며 배운 게 있었기 때문에, 실패하지 않으려 더욱 노력했다. 게다가 돈을 엄청 많이 버는 건 아니지만 경제적으로 오랜 기간 안정적인 직업군이라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은 이상 직업을 바꿀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이것도 역시 경제적인 이유를 기반으로 한 진로 선택이었다.
지금까지 언급한 이야기는 사실 나의 아버지 삼형제의 진로 선택에 관한 이야기다. 첫째였던 아버지께서 늦게 다시 군대에 입대하고, 서른이 넘은 나이에 취업하면서 나의 어린 시절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었다. 동네 어느 아이가 과자를 먹다가 바닥에 흘렸는데, 과자라는 걸 구경도 못 했던 나는 그 과자를 주워 먹었다고 했다. 그래서 부모님은 마음이 아팠다고 하셨다. 아버지께서 늦게 자수성가(自手成家)했으니 항상 우리 집은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다. 근데 부모님께서는 티를 많이 내시지 않았다. 우리가 원하는 걸 최대한 해주시려고 노력했다. 나는 자라면서 우리 집이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중학교 3학년 때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진지하게 결정을 할 일이 있었다. 사실 나는 외국어에 관심이 많아서 ‘외고’에 진학하고 싶었다. 실제 지금 근무하는 학교에 지원하려고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공립학교와 특목고는 학비가 두 배가 차이가 났다. 그래서 그때 처음으로 어머니께서 집안 사정을 말씀해주셨다. 우리 집 형편에 학비를 두 배나 내고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건 어렵다고 하셨다. 그때 내가 현재 근무하는 ‘외고’는 신생학교라 입학 내신 커트 점수도 높지 않아서 담임 선생님께서도 경제적인 이유를 불문하고 반대하셨다. 그래서 나는 공립학교지만 명문고에 진학했다. 만일 경제적인 이유를 고려하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외국어 교육과정이 있는 외고에 진학했으면 나의 대학입시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하다.
그리고 두 번째로 경제적인 이유로 진로를 고민한 적이 있었다. 고3 때 첫 모의고사를 치르고 SKY에는 가기가 많이 힘들 거라 판단했다. 하지만, 모의고사 점수가 나쁘지는 않아서 일본 대학에 학교 추천을 받아 갈 수 있었다. 혹시나 해서 부모님께 의사를 여쭈었지만 역시나 돌아오는 대답은 부정적이었다. 학비는 장학금을 받아서 어떻게 한다고 해도 생활비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 하셨다. 그래서 빨리 포기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생각해낸 게 4년 동안 전액 학비가 무료인 사관학교에 지원하는 거였다. 경제적인 이유로 도전했으니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국가의 안보를 책임지기 위해 투철한 군인 정신을 미리 무장한 순수한 동기를 가진 지원자들한테 이길 수가 없었다. 만일 시험에 통과했어도 불순한 의도로 진로를 선택했으니 잘못된 선택이 되었으리라 믿는다. 나중에 군대 다녀와서 느꼈지만, 사관학교에 합격하지 않은 게 한편으로는 국가에도 나에게도 모두 잘된 일이었다. 나는 군인 체질은 아니기 때문이다.
끝으로, 고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면서 경제적인 이유로 사관학교나 경찰대학 진학을 생각하는 학생을 종종 본다. 근데 동기가 불순하니 합격하고서도 입학 전에 하는 집합 기간에 견디지 못하고 포기하는 학생을 많이 봐왔다. 그래서 예비 번호지만 전화기를 잘 붙들고 있으면 추가합격의 영광을 얻기도 한다. 하지만, 사관학교나 경찰대를 희망한다면 투철한 직업의식을 가졌으면 한다. 경찰대 같은 경우에는 등록금 면제 제도도 폐지되었다. 따라서 경제적인 이유로 지원하려는 동기라면 그만두는 게 좋다. 또한, 순수한 동기가 없으면 합격해서도 다시 진로를 선택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기 때문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학 졸업자의 경우 50%가 전공과는 다른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3명이 전공을 바꾸고 싶어 한다고 했다. 그만큼 우리는 경제적인 이유로 진로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