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신 건강의 중요성을 알아야 한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라는 말이 있다. 예전에는 건강이라고 하면 몸이 어딘가 아프거나 할 때 건강이 안 좋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는 정신적인 건강에 대한 위협도 있다. 그리고 정신 건강이 무너지면 몸에 이상 증상이 오기도 한다. 그렇게 육체적 건강과 정신적 건강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또한 ‘스트레스는 만병의 원인이다.’라는 말처럼 그만큼 현대사회에서는 스트레스가 우리에게 큰 위협을 주는 존재다. 학업으로 인한 스트레스, 복잡한 인간관계, 시간에 쫓기는 업무, 열악한 작업환경 등 모두 스트레스의 원인이다.
특히 고3 수험생들은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다. 한국 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실시한 4개국(한국, 중국, 일본, 미국) 청소년 건강실태 비교 조사에 따르면 한국 학생들의 학업 스트레스가 가장 높다. 심지어 고3 수험생들이 받는 스트레스 지수가 배우자가 사망했을 때 느끼는 스트레스 지수보다 높다고 하니 수험생 스트레스가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다. 게다가 OECD 국가 중 한국 청소년 행복지수가 최하위이다. 한국은 10점 만점에서 6.6점에 그쳐 OECD 평균(7.6점)에 이어 미국(7.5점), 프랑스(7.5점), 캐나다(7.4점) 등 주요국과 비교해도 훨씬 낮다. 행복하지 않은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시험 스트레스를 넘어서 우울증 증상에 시달리기도 한다.
통계청과 여성가족부에서 조사한 ‘2020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청소년 3명 중 1명은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의 슬픔이나 절망감을 느낀 것으로 나타났다. 다시 말해서 3명 중 1명은 우울감을 경험하고 있다. 8년째 청소년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일 정도로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말할 것도 없다. 자살을 생각하게 되는 이유로는 학교 성적이 40.7%로 1위로 나타났다. 결국,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로 수험생들은 건강에 대한 위기를 맞는다는 뜻으로 봐도 되지 않을까?
학교에서 근무하면서 건강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한 경우를 많이 봤다. 일시적인 경우도 있었고, 1년 내내 이유 없는 증상이 나타나서 건강에 대한 위협을 느낀 학생도 있었다. 만일 건강을 계속 유지했다면, 그들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계획을 실천하면서 결과를 이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부분 건강으로 인해 많은 것을 놓쳤다. 내가 겪은 이야기들을 공유함으로써 건강의 중요성에 대해서 더 강조하고자 한다.
보통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3~5년 정도 같은 일을 반복하면 슬럼프가 오거나 매너리즘에 빠진다고 한다. 나도 교사가 되고 5년쯤 되었을 무렵 담임교사를 한번 못하고 비담임으로 계속 행정 업무만 하면서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었다. 학생들과 소통하며 지내는 교사고 싶었지만, 행정 업무에 치여 살다 보니 내가 교사인지 행정직원인지 혼란스러웠다. 좋게 말하면 안정적인 상황에 놓인 거지만, 변화 없는 삶은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다행스럽게도 다음 해에 담임교사로 가면서 다시 교사로서의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었다. 근데 교사를 그만둘 수 있을 정도로 잊지 못할 일이 생겼다. 만일 안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면, 정말 교직 생활을 그만둘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직도 그때를 떠올리면 심장이 두근거린다. 사람의 생사를 결정하는 일은 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누군가를 위해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일도 생길 수 있다.
쉬는 시간 교무실로 한 학생이 다급히 뛰어 들어왔다. 누군가 옥상에 쓰러져 있으니 같이 가 달라는 거였다. 문 쪽에 앉아 있던 나는 그 말을 듣고 급히 뛰어 올라갔다. 2층 교무실에서 5층 건물의 옥상으로 뛰어 올라가는 시간은 길게만 느껴졌다. 쓰러진 학생은 아직 괜찮을지 걱정이 앞섰다. 올라가 보니 한 학생이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상태를 확인해보니 눈동자도 풀리고 혀도 풀리고 몸도 다 풀려 있어서 축 늘어져 있었다. 이름을 불러도 알아듣지 못했다. 응급상황이었다. 주변에 있는 학생에게 119 신고를 부탁했다. 다행히 호흡은 있는 거 같아서 평평한 곳에 눕히고 그동안 연수로만 배웠던 CPR(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그동안 배운 대로 명치로부터 손가락 두 마디 떨어진 흉부에 압박을 가했다. 실제 내가 CPR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119가 올 때까지 계속 흉부 압박 그리고 호흡 확인을 반복했다. 온몸에 땀이 흥건할 정도로 힘들었다. 그래도 멈출 수 없었다. 세 번째로 흉부 압박할 때 학생 의식이 조금 돌아왔다. 축 늘어졌던 몸이 약간 긴장했다. 그리고 신음을 내며 많이 괴로워했다. 잠시 멈추고 상태를 지켜봤다. 잠시 후 119 대원들이 도착했다. 환자가 의식이 있으니 상태만 확인하고 들것에 옮겨 1층으로 내려갔다. 나도 들것 한쪽을 붙잡고 있었는데, 계단을 내려가는 도중 학생이 눈을 뜨고 우리를 알아봤다.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온 이 학생은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한 과호흡증을 겪고 있었다. 고2 때까지는 정말 멀쩡했는데, 고3이 되고 조금씩 과호흡증 증상이 와서 호흡곤란을 겪었다고 했다. 피검사 등 다양한 검사를 했는데도 특별한 병명을 알 수는 없었고, 스트레스로 인한 과호흡증 증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본다고 했다. 내신 성적도 나름 괜찮은 편이어서 대학 진학을 잘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고3 때 갑자기 몸에 이상 증상이 나타나니 걱정이 더 생긴 것이다. 면접을 보다가 갑자기 증상이 나타나면 어떻게 해야 할지, 수능 시험 보는 날 증상이 나타나면 더욱 큰 문제였다. 그래서 매일 걱정하다 보니 더 증상이 안 좋아졌다. 그렇게 1년 내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갑작스러운 증상이 나타나서 고통스러웠다.
그 학생은 어떻게 되었을까? 수능 응시하는 건 어렵다고 판단해서 포기했다. 대신 자신이 할 수 있는 수시 전형으로 지원했다. 근데 여기서도 문제가 있었다. 면접을 보다가 갑자기 증상이 나타나면 통제 불가능한 상태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다행인 건 면접 볼 때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딱 한 군데 합격할 수 있었다. 자신은 그 학교만으로도 만족한다고 했지만, 담임교사는 그 학생이 건강했다면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고 말했다.
나도 아쉬운 마음도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죽지 않고 살아줘서 고마웠다. 만일 그때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다면, 나는 극심한 트라우마에 빠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어떤 교사들은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이 스트레스나 우울증으로 인해 자살하면, 트라우마가 생겨서 교직을 그만두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이 학생이 대학입시는 조금 아쉬웠더라도, 다시 건강해지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날을 더 건강하게 살도록 노력하는 게 우선이라 믿는다.
지금까지 한 이야기가 정신적 건강이 육체적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것이었다면, 반대의 경우도 있다. 육체적 건강을 잃으면 정신적으로도 안 좋아질 수 있다. 한 예로 어떤 학생은 자신의 내신 성적을 극복하고 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잠을 줄이기로 했다. 새벽에 하루에 1~2시간만 자고 나머지 시간은 공부에 ‘올인’했다. 학기 초에는 그 학생을 보면 쉬지 않고 공부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말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었기에 말릴 수 없었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흘러가면서 학교에서 졸고 있거나 잠들어 있는 모습을 더 자주 보게 되었다. 결과적으로는 부족한 잠을 채우느라 제대로 공부를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몸이 약해지니 위염증세와 우울감을 자주 보였다.
가톨릭대병원 신경과 김지언 교수는 “잠은 빚쟁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잠자는 시간은 인위적으로 줄이기 힘들다는 뜻이다. 의사들은 ‘줄인 잠’은 언젠가 다시 보충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하루 평균 7~8시간의 수면이 가장 적당하다고 한다. 물론 4~5시간만 자고도 다음날 졸리지 않고 활동에 제약이 없으면 그것이 가장 적당한 수면시간이다. 하지만 인위적으로 수면시간을 줄이는 것은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언젠가는 부족한 잠을 더 자게 된다고 했다.
사실 수면의 효능은 매우 풍요롭다. 잠자는 동안 근육과 혈관은 긴장에서 벗어나 이완된다. 낮 동안 진행된 신진대사로 손상된 세포들이 회복된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기억이 형성되고, 뇌에 축적된 부산물도 제거된다. 만일 수면이 계속 부족할 경우 고혈압, 심혈관 질환, 당뇨, 비만 등 질병이 생길 수도 있고 심지어 정신적 피로 누적으로 우울증까지 생길 수 있다. 무리해서 잠을 줄이는 것은 오히려 심신에 불리한 여건을 조성할 뿐이다. 잠이 부족하면 낮에 미세 수면이 발생해 꾸벅꾸벅 졸게 된다. 그 순간 학습정보의 입력이 차단된다. 따라서 저녁까지 공부한 것을 장기기억으로 보관하기 위해서는 덜 자고 더 많이 공부하기보다 오히려 충분한 잠을 자는 것이 좋다.
이 학생 말고도 우울증을 겪고 있거나 몸이 안 좋아서 치료를 받으며 어렵게 수험생활을 하는 학생이 많이 있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자주 사람들한테 나타나는 증상이다. 우울증의 발생 원인은 다양한 요인으로 본다. 우리 몸속의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등이 화학적 불균형이 일어나 생물학적, 심리학적, 사회학적, 병리학적 등 다양한 요인이 우울증을 만들어낸다. 이처럼 불균형이 일어나면 정신 건강에 문제가 생기고, 이어서 육체적 건강에도 적신호가 발생한다. 우리 몸은 항상성을 유지하도록 설계가 되어 있는데, 그 항상성이 유지가 안 되니까 건강을 잃게 되는 것이다.
20년 전 내 모습도 이와 비슷했던 것 같다.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 대학입시에 대한 스트레스가 극심해서 우울한 삶을 살았다. 마음이 우울하니 밤에는 불면증에 시달렸다.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자니 낮에 꾸벅꾸벅 졸기도 했다. 그게 반복되었고, 학습 능률도 떨어졌다. 그렇게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하니 여름에는 면역력이 약해져서 음식을 먹고 배탈도 자주 났다. 한 번은 장염에 걸려서 2주 동안 설사하느라 공부에 집중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리듬이 끊기면 다시 돌아오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대학입시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수험생들에게 항상 여름이 다가오면 생기는 건강 적신호는 심신 모두에 해당한다. 의사들이 적절한 수면시간과 꾸준한 운동을 하라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간혹 이 말을 오해하고, 지나치게 잠을 많이 자거나 운동을 심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 잠을 많이 자면 더 자고 싶고, 운동을 심하게 하면 젖산 분비가 많이 되기 때문에 피로가 더 쌓인다. 정도가 지나친 것은 우리에게 득이 될 수 없다. 잠도 적당히, 운동도 적당히 하는 것이야말로 건강한 심신을 만들기 위한 초석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