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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영환 Aug 27. 2020

<10> 숨 막히는 시간에 쫓기는 삶

시간은 우리에게 매일 공평하게 주어지는 금이다.

수험생이 성공적으로 입시를 마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스스로 공부하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즉, 자기 주도 학습 시간을 확보하는 게 관건이다. 요새 말로 ‘순공 시간(순수하게 공부하는 시간)’을 얼마나 보내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학교에 다니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래서 시간에 쫓기고, 여러 일에 치여서 허덕이다 보면 스스로 공부하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이런 삶이 반복되니 ‘시간 부족’ 현상이 악순환되어 수험생에게 스트레스만 더 줄 뿐이다.           


학교에서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바빠 죽겠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학생들이 있다. 수업, 과제, 수행평가, 동아리, 학원 등 학생 신분으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수행평가 ‘시즌’이 오면 평가를 준비하느라 밤새는 일은 부기 지수다. 매일 그렇게 쉼 없이 계속 무언가를 하고 있지만 왜 시간은 부족한지 모른다. 시간은 유한한데 할 것은 태산이고, 내 몸은 하나이니 미칠 지경이다.           


또한, 요즘 학생들은 사교육에 많이 의존하는 경향을 보인다. 물론 자신이 부족한 점이 있으면 배우는 일은 잘하는 일이다. 하지만, 스스로 복습을 통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 된다. 근데 대부분 학생은 수업을 듣는 것 자체가 공부라 착각한다. 그렇게 자기 주도적인 학습이 아닌 항상 무언가를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니 시간에 쫓길 수밖에 없다.           


고등학교 때 나의 학교생활을 회상해봐도 대부분 시간에 쫓기며 살아갔던 것 같다. 한편으론 그만큼 매일 성실하게 살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수업을 정말 열심히 들었고, 항상 공부만 하고 있었기 때문에 친구들마저도 내 성적이 잘 나올 거라고 예상했다. 심지어 내가 필기한 노트를 빌려 갈 정도로 나의 이미지는 공부를 잘할 것 같은 학생이었다. 하지만, 성적은 생각만큼 잘 나오지 않았다.          


착각은 자유라고 했던가. 나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고 나는 항상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착각이었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일을 처리하느라 급급했다. 심지어 제대로 완수하지 못하는 일도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계속 무언가를 하고 있으니 성실해 보였다. 이는 마치 쉬지 않고 계속해서 독에 물을 붓는 것과 같았다. 그러나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격이었다.           


한 예로, 조별로 한국사 보고서를 작성하는 수행평가가 있었다. 나는 그때 조장을 맡았다. 일단 처음에는 다 같이 모여서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역할을 분담했지만, 자료 정리, 편집, 출력 등의 사소한 일은 조장이 맡아서 해야 했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때에는 컴퓨터로 무언가를 하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시간이 꽤 걸렸다. 그리고 성격상 깔끔하게 그림과 글을 정리하고 싶어서 마감 하루 전 늦은 새벽까지 편집했던 기억이 난다.           


설상가상으로 출력하는 도중에 프린터가 고장 나서 다음 날 학교에 가서 외출증을 끊어 피시방에서 돈도 들여가며 출력해서 제출했다. 덕분에 수업에도 조금 늦었다. 물론 조원들을 위해 희생한 점은 잘한 일이었다. 그러나 치열한 입시 경쟁 소굴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런 행동은 미련해 보일 수도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거지만, 그 수행평가 점수는 100점 만점에 5점이었고, 기준에 미달되지만 않으면 다 만점을 주는 거였다. 시간을 조금만 들여서 했어도 충분히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건데, 괜한 시간 낭비만 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늦지 않게 미리 했다면 그렇게 수업까지 빠져가면서 할 필요도 없었다.           


매일 그렇게 생각 없이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는데도 돌아오는 건 씁쓸한 성적이었다. 차라리 그 시간에 시험공부를 더 했다면 더 나은 성적을 받지 않았을까 후회도 된다. 지금에서야 느끼는 거지만, 나는 그때 시간 관리를 잘하지 못했던 것 같다. 무언가를 바쁘게 항상 하고 있었지만, 언제나 좋은 결과 없이 시간에 쫓기며 살았다.

           

나도 그랬고, 지금의 학생들을 봐도 시간에 쫓기는 삶을 살다 보면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권을 잃는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보다는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일에 더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기력증이 오고, 점점 삶이 무너져 간다.《워싱턴포스트》의 유능한 기자이자 퓰리처상을 수상한 미국 언론인 브리짓 슐트의 《타임 푸어》에 따르면 자신의 시간에 대한 통제권이 없고 일정이 예측 불가능하면 마음이 불안해지고, 그렇게 시간에 쫓기는 삶은 통제권 결여를 낳는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상당수가 무기력증, 번아웃 증후군, 우울증 등에 시달린다고 했다.     


게다가 뇌신경과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매일 반복적으로 시간에 쫓기는 사람은 우리의 사고와 판단을 책임지는 전전두엽 영역이 눈에 띄게 쪼그라들게 된다고 했다. 결국 ‘시간 압박’은 건강과 뇌에 치명적이다. 쉬지 않고 그렇게 계속 무언가를 하고 있으니 오히려 능률이 떨어지게 된다.           


운동선수도 심한 운동 후에 휴식이 필요한 것처럼, 우리의 뇌가 다시 기능하기 위해서는 휴식이 필요하다. 하버드 대학 신경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하루 27분만 걱정, 불평, 비판, 해야 할 일에 대해 생각을 비우고 고요한 시간을 보내면 뇌를 회복할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압박에서 벗어나면 두뇌 영역이 휴식을 취하고 다시 활성화될 수 있다.       


매일 시간이 없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살펴보면, 진득하게 한 가지에 몰두하는 법이 없다. 갑자기 생겨나는 일에 따라서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며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려고 애쓴다. 일명 멀티태스킹을 하게 된다.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다.       


스웨덴의 인지 신경과학자 토르켈 클링베르그는 《넘치는 뇌》에서 인간은 유전적으로 멀티태스킹에 특화된 두뇌 구조를 타고나지 않았다고 했다. 또한, 그는 여러 실험을 통해 인간은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하면 오히려 저조한 성과를 내기 쉽다고 했다.           


왜 우리는 이렇게 시간에 쫓기며 살아갈까? 학교에서 살펴보면 두 가지 이유가 가장 크다. 첫째는 과도하게 욕심을 부리고, 완벽하게 일을 하려는 성격으로 인해 문제가 발생한다. 일명 완벽주의자적인 성향이라고 할 수 있다. 완벽주의에 대한 정의는 연구자마다 달라서 명확한 정의는 없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일을 높은 성취도로 해내려고 하는 성향이다. 그렇기에 사소한 일이라도 모두 완벽히 하려고 하니 시간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두 번째는 무계획적 성향인 경우다. 매일 자신이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지 모르고, 그냥 상황에 따라 해야 할 일만 하다 보니 시간에 쫓기는 경우다. 이런 경우는 허둥지둥 하루를 보내다 보면 특별히 한 것이 없이 하루가 다 지나간 것처럼 느껴진다. 분명 바쁘게 살았는데, 남는 게 없는 것 같은 공허한 마음이다. 

          

이 두 가지 경우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우선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한 우선순위가 없다. 무엇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지를 구분하지 않아서 주어진 시간이 부족하다. 시간은 돈과 같아서 유한하다. 사람들이 소비 전략이 있는 것처럼, 시간을 사용하는 데도 전략을 짤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전략을 짜기 위해서는 기록을 통해 항상 확인하는 습관이 따라와야 한다.   

        

물론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전자의 경우에는 분명히 해야 할 일을 다 적어둘 것이다. 근데 순서 없이 적힌 그대로 모든 것을 처리하려고 하다 보니 시간 부족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반면, 무계획적인 후자의 경우에는 할 일에 대해 기록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날 자신이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무엇을 했는지 알 수가 없다. 

  

독일의 시간 관리 전문가로 유명한 로타르 J. 자이베르트 박사는 인생에서 중요한 일에 집중한다면, 많은 문제는 사라지고 시간도 충분히 확보된다고 했다. 즉,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시간 활용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근데 생각만 하고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할 수 없으니 손으로 꼭 기록하며 우선순위를 확인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유근용 작가의 저서 《메모의 힘》을 통해 인간은 기억력에 한계가 있어서 메모가 꼭 필요하다고 했고, 남들보다 앞서 나가는 사람은 머리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 메모를 잘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또한, 모든 약속과 일정들을 다이어리에 기록하는 습관을 들여 제대로 활용한다면 자신에게 주어진 소중한 기회와 시간을 놓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옛 속담에 ‘시간은 금’이라는 말이 있다. 그리고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3단 논법에 따르면 매일 우리는 공평하게 ‘금’을 선물 받는다. 어떤 사람은 그 가치를 생각해서 소중하게 시간을 쓰고, 다른 사람은 매일 주어지는 시간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무분별하게 낭비하고 있다. 내가 지금 시간에 쫓겨 허둥지둥 살아가고 있다면 잘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지금 나는 ‘금’을 무분별하게 버리고 있는 건 아닌지 말이다.          


지금의 나는 매일 아침 남들보다 일찍 출근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있다. 우선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의 목록을 적는다. 그리고 오늘 꼭 끝내야 할 일과 아닌 일을 구분 짓고, 우선순위를 정하여 일을 수행한다. 그렇게 하나씩 일을 하고 나면 목록에서 지운다. 꼭 해야 할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해내기 위해 더 집중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하루의 시간을 허투루 쓰는 일은 없다. 시간에 쫓길 필요도 없고, 목표로 하는 일을 다 이뤄낸다. 근데 왜 수험생 때는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시간 관리를 지금처럼만 했어도 대학입시를 두 번이나 실패하지 않았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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