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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영환 Sep 04. 2020

<11> 우리는 왜 현실을 부정할까?

현실을 받아들이고 다시 일어서는 방법

손에 상처가 나면 다시 회복되고 새 살이 나기까지 한 달 정도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그 작은 상처도 아물려면 한 달이라는 시간이 걸리는데, 우리 마음에 난 상처를 치유하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 속설에 따르면 이별한 사람이 아픔을 치유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연애한 기간의 3배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사실 사람마다 몸에 난 상처든, 마음의 상처든 치유하는 시간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상처가 나면 쉽게 아물지 않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대학입시를 두 번이나 실패하면서 낮아진 자존감과 마음에 난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다. 무엇보다 같은 고등학교를 나온 친구들의 행보를 지켜보며 더 마음이 쓰렸다. 친구들 대부분 명문대생이었고, 아니면 의대나 치의대를 다녔다. 심지어 어느 한 친구는 22세라는 나이에 행정고시에 합격해서 주변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한편으론 다들 워낙 수재였으니 그런 결과를 내는 것이 크게 놀랍지도 않았다.          


한의대를 가겠다며 재수하면서 이과로 전과해서 두 번째 대학입시도 크게 실패한 나는 사실 죽음까지 생각했었다. 3일간 굶어가며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대학이 정말 인생의 전부인가 의문이 들었다. 만일 대학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면, 나는 앞으로 살아간다면 무엇을 추구해야 할지 생각했다. 일단 한번 살아보자 생각했고, 이왕 이렇게 된 거 조금이라도 의미가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고민은 지난 고등학교 3년 동안 해야 했던 고민인데 대학만 쫓다가 결국 많이 늦었다. 자신의 삶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하기보다 겉보기에 좋아 보이는 허상만 찾던 결과였다. 물론 진로를 결정하는 일은 쉽지 않다. 나중에 대학원을 졸업해서도 진로를 계속 고민했던 것을 떠올려보면 더욱 그랬던 것 같다. 그래도 적어도 방향성은 미리 정하면 좋지 않았나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서 바닥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처음으로 고민했었던 것 같다. 계속 꿈꾸기만 했던 대학을 잠시 옆으로 치워두고,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외국어를 좋아했다. 제2외국어를 중국어로 선택했고, 심지어 일본어에도 관심이 있어서 방과 후 수업으로 듣기도 했다. 영어도, 중국어도, 일본어도 외국어가 우리말과는 달라 신기하고 배우는 재미도 있었다. 그리고 나는 무언가를 연구해서 남을 알려주는 일에 보람을 느꼈다. 다른 친구들이 모르는 게 있다고 하면 자세히 조사해서 다음 날 알려주곤 했는데 그런 일이 즐거웠다. 이렇게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확인해보니 무엇을 해야 할지 조금씩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외국어를 사용해서 누군가에게 알려주는 일. 즉, 외국어를 가르치는 교사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아가 나처럼 공부로 인해 힘들어하는 학생들이 있다면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타산지석(他山之石) 삼아 실패를 줄이고 조금은 나은 삶을 살게 해 주면 어떨까 생각했다. 고등학교 3년간 계속 고민해야 할 일을 그렇게 3일간 몰입해보니 답이 나왔다. 《몰입》의 저자 황농문 교수님이 말한 것처럼,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종일 또는 심지어 며칠간 그렇게 집중해서 하나의 주제만 생각하니 해답을 찾은 것 같았다.       

    

목표가 분명하게 정해지니 현실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찾아야 했다. 아버지의 조언으로 외국어는 영어로 선택하여 영어교사가 되려고 결심했다. 근데 우선 가장 큰 문제는 두 번째로 치른 수능 시험은 이과로 봤기 때문에 이과에서 문과로 바꿔서 교차로 지원할 수 있는가였다. 하늘도 무심하지 작년까지 가능했던 교차지원이 많이 축소된 상태였다. 턱없이 낮았던 성적도 문제였지만, 내 이과 성적표로는 아무리 찾고 찾아봐도 영어교육학과를 갈 수 있는 학교가 없었다.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나와 잠시 희망의 빛을 보았지만, 다시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절망도 잠시 이미 죽음까지 생각했던 터라 이 정도 좌절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영어교사가 되는 방법은 영어교육학과에 진학하는 길밖에 없을까 하는 의문으로 연구를 시작했다. 인터넷으로 자료를 조사해보니 다행히도 교사가 되는 방법은 한 가지만은 아니었다. 물론 교대에 진학해서 초등교사가 되는 방법이 아닌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근무하는 중등교사가 되는 방법이다.          


우선 교사가 되려면 교원자격증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국가에서 시행하는 임용고시(임용고사가 맞는 명칭이지만 얼마나 어려우면 고시라고들 부를까)를 봐서 공립학교에 공무원 교사로 들어가거나, 사립학교 자체적으로 시행하는 시험에 합격해서 사립학교 교원이 되는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교원자격증을 받는 방법은 3가지가 있다. 첫째, 해당 교육학과를 졸업해서 교원자격증을 받는 방법. 둘째, 교직 이수를 하는 방법. 셋째, 교육대학원에 진학하는 방법이다. 일단 나는 첫 번째 방법은 물 건너갔으니 두 번째 방법이나 세 번째 방법을 택해야 했다. 이왕이면 더 빠른 두 번째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다행스럽게도 많은 대학에서 교직 이수를 허용했다. 안타까운 점은 수능 성적이 낮기도 하고, 교차지원이 안 되었기 때문에 수도권 대학에만 진학 가능했다.           


수도권 대학이라니 눈앞이 깜깜했다.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항상 꿈꿔왔던 곳은 최상위 명문 대학들이었고, 그 학교들이 아니면 서울의 일부 주요 대학에 진학하는 일도 부끄럽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살면서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수도권 대학에 진학해야 한다고 하니 마음의 상처가 다시 벌어졌다. 현실을 마주하는 순간의 고통은 너무 컸다. 어쩌면 이 아픔과 고통이 두려워서 그동안 헛된 꿈만 꾸면서 현실을 부정하고 피하려 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인도 출신의 의사이자 과학자인 아지트 바르키와 미국의 생물학자이자 유전학자인 대니 브라워가 쓴 책 《부정 본능》에서 말하는 부정은 ‘의식하게 되면 참을 수 없는 사고, 감정, 또는 사실들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불안을 누그려 뜨리려는 무의식적인 방어기제’라고 했다. 그동안은 이 방어기제 때문에 현실을 부정했었다. 하지만 이젠 더는 현실을 부정하면 내 존재를 부정하는 상황이 되었기에 그럴 수 없었다.          


현실을 마주하려니 그동안 지켜왔던 쓸데없는 자존심을 버려야 했다. 고대 그리스의 한 전쟁이 그 잘난 자존심으로 일어난 적도 있으니, 자존심을 버리게 되면 전쟁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나는 모든 자존심을 버리고 현재 나의 상태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다시 살아가려면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었다. 위대한 성공을 이뤘다가 무너진 유명인사들도 성공의 길을 가다가 넘어져 쓰러졌을 때 그동안 자신이 쌓아왔던 명성과 모든 자존심을 내려놓고 다시 일어서는 용기를 보여준 것처럼 나도 그 용기를 내야 했다.        

  

1978년 대성공을 이룬 영화 《슈퍼맨》의 주인공 역을 맡았던 할리우드 배우 크리스토퍼 리브는 승마 훈련을 하다가 낙마 사고로 거의 목숨을 잃을 뻔했다. 척추 손상을 입은 그는 남은 생애 동안 자신의 힘으로는 움직일 수도 숨을 쉴 수도 없게 되었다. 그는 이렇게 살 거라면,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내의 노력으로 그는 마음을 바꿨다. 아내는 슈퍼맨인 남편을 사랑한 게 아니라 크리스토퍼 리브라는 사람 자체를 사랑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아내의 사랑으로 다시 용기를 얻은 그는 슈퍼맨이었던 자신이 약한 모습을 솔직하게 드러낼 때 타인도 용기를 가지고 도전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모든 자존심을 버리고 솔직함을 보여주는 용기가 더 강한 것임을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서른아홉 살에 소아마비에 걸려서 다리가 마비된 미국의 32대 대통령인 프랭클린 루스벨트도 당연히 처음엔 많이 좌절하고 힘들었다. 그러나 자신이 처한 현실을 인정하고서 자신이 여전히 해야 할 일을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 밖에도 수많은 사람이 실패하고 좌절했어도 현실을 마주하면서 다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때는 이런 사실을 알지 못했지만, 나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현실을 받아들여야 그다음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고등학교 친구들과 비교되는 가슴 아픈 현실이라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이제는 명문고 출신 친구들과 동급이 아닌 원래부터 그냥 평범했던 나라고 생각하고 스스로를 바라봤다. 사실 현실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나는 영어영문학과에 진학했지만,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보통의 평범한 대학생이었기 때문이다. 교수님 중에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영문과에 영문도 모르고 입학했을지라도 영문도 모른 채 졸업하지는 말라.”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은 마치 나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고등학교 입학할 때부터 토익을 만점 받던 친구만큼 영어를 잘했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계속 영어 분야에 흥미가 있어서 공부했던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해외에 오래 살다 온 영어를 잘하는 동기들을 보며 세상에는 나보다 더 잘난 사람이 많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래서 대학이 전부가 아니라 진짜 실력을 갖춘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본의 인권 변호사인 오히라 미쓰요는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라는 책을 통해 자신의 경험을 공유했다. 학창 시절 왕따를 당했던 그녀는 할복자살을 기도했지만 실패하고 어린 나이에 야쿠자 보스와 결혼하고, 이혼 후 밑바닥 인생을 살았다. 하지만 다른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 인권 변호사로서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특히 학교 폭력으로 고통받는 학생들을 위해서 더 힘쓰고 있다. 만일 그녀가 가장 힘들 때 자신의 상황을 부정했다면 자신의 삶을 회복할 수 있었을까? 아니다. 현실 부정이 아닌 현실 그대로를 인정하고 다시 시작했기에 모든 일은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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