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를 선택하면 얻는 것도 잃는 것도 있다.
우리가 상처로부터 회복하려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시간과 노력은 경제적으로는 비용이 든다고 말한다. 운동선수가 경기 중에 다쳐서 몸을 회복할 때까지 많은 비용이 든다. 원래 자신의 몸 상태를 만들기 위해서는 경기에 출전할 수 없다. 대신 천천히 상처를 치료하고 재활하며 재기를 꿈꾼다. 회복하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경기에 나갈 수 없으니 ‘기회비용’이 발생한다. 하지만 그 ‘기회비용’을 들여서라도 회복이 우선이 되어야 다시 경기에 출전할 수 있기에 회복에 더 큰 힘을 쏟는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육상 선수 우사인 볼트는 2017년 세계육상 선수권대회 남자 400m 계주 결승에서 자메이카 마지막 주자로 나섰다. 하지만 달리는 도중 왼 다리를 절뚝였고 트랙 위에 넘어져 결승선을 통과하지 못했다. 이 부상으로 볼트는 3개월간의 회복 기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블루드래곤이라는 별명을 가진 우리나라 국가대표 축구선수 이청용은 지난 2009년 볼튼 원더러스 소속으로 뛰어난 기량을 펼쳐왔다. 그러나 2011년 뉴포트카운티(5부 리그)와의 친선 경기 도중 부상을 당했다. 상대편 선수의 거친 태클로 오른쪽 정강이뼈 골절상을 입었다. 곧바로 수술실로 직행해 수술을 받았지만 결국 9개월 진단을 받고 시즌 아웃됐다. 이 사례들을 통해 두 선수 모두 회복을 위해 경기에 나갈 수 없었기에 ‘기회비용’이 매우 컸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항상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여러 선택권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면, 결국 나머지 선택권은 포기하게 되고 그러면 항상 기회비용이 발생한다. ‘기회비용’이란 어떤 선택으로 어느 하나를 포기할 경우, 포기하지 않았다면 얻을 수 있는 이익 중 가장 많은 가치를 지닌 것을 말한다. 참고로 이 용어는 1914년 오스트리아 경제학자인 프리드리히 폰 비저가 《사회경제이론》에서 처음으로 사용했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나머지를 포기했기 때문에 하나를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 우리는 이렇게 매일 포기를 통해 다른 무언가를 얻는다.
기회비용을 경제적인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어렵지만, 이솝 우화의 내용을 빗대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에서 각 주인공이 다른 선택을 통해 서로 얻는 게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개미는 겨울에 먹을 음식을 저장하기 위해 부지런히 일했고, 베짱이는 화창한 날에 기타 치고 노래하며 여유를 즐겼다. 개미는 비록 ‘일’을 선택함으로써 ‘여유’를 잃었지만, 겨울에 먹을 음식을 저장할 수 있었으니 남는 게 있다. 베짱이는 비록 먹이를 모으지는 못했지만, 그 순간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풍류를 즐겼다.
이 이야기는 보통 미래를 대비하며 살라는 교훈을 준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기회비용이 발생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개미의 경우에는 일함으로써 잃게 된 삶의 ‘여유’가 기회비용이고, 베짱이는 겨울에 먹을 ‘식량’이 기회비용이다. 하지만, 서로가 삶에서 추구하는 가치가 달랐기 때문에 누가 더 잘했고, 잘못했다고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대학입시에 두 번이나 실패했던 나로서는 나의 지금 상태를 좀 더 나은 상태로 만들기 위해 ‘회복’의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생각하는 ‘회복’이란 삶에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노력을 통해 성공 혹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일이었다. 영어교사가 되는 것이 목표였으니 그 목표를 위해 ‘회복’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기회비용’도 발생했다.
어느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면, 대학에 가서 고등학교 때처럼 공부하면 장학금 받고 다닐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대학에 입학해서 교직 이수를 하기 위해서는 80명 중 4등 안에 들어야 했기에 고등학교 때처럼 공부하겠다고 다짐했다. 많은 대학생이 시간표를 짤 때 일주일 중에 하루는 학교에 오지 않으려고 한다. 평일 5일 중 4일만 학교에 나오니 일명 ‘주 4파’라고 불린다. 하지만, 나는 일부러 주 5일 모두 학교에 나오도록 시간표를 짰고, 수업이 없는 공강 시간에는 고등학생처럼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했다.
물론 대학생이기 때문에 학기 초에는 학과에서 진행하는 행사에 모두 참여했다. 심지어 과대표로 선출되어 학과 일을 도맡아 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도 학생회 활동과 같이 틈틈이 학교의 일을 하는 것과 같았다. 대신 나머지 시간에는 도서관에서 쉬지 않고 공부했다. 심지어 고등학교 때처럼 주말에도 학교 도서관에 나와서 공부했다. 비록 용의 꼬리는 되지 못할지라도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뱀의 머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나의 현재 상황을 극복하고 내 삶을 회복하는 길이라 믿었다.
한 번은 날씨가 화창한 주말 아침에 학교 도서관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도서관 근처 사거리쯤 갔을 때, 한 여학생이 언덕에서 뛰어 내려와 남학생한테 폭 안기는 장면을 목격했다. 잠시 뒤에 알아차렸지만, 남학생은 내가 다니는 학과 선배였고 다른 여학생은 나랑 동갑내기 친구였다. 그래서 서로 알아보고 인사를 나누고 각자 갈 길을 갔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만감이 교차했다.
영어교사가 되기 위해 나는 어떻게 해서든 교직 이수를 해야 했고, 그러려면 열심히 공부해야 했다. 20대 창창한 나이에 나는 ‘연애’보다는 ‘공부’를 선택했다. 반면에 그 선배와 친구는 꽃다운 나이에 맞게 ‘연애’에 더 가치를 두고, 그들만의 화창한 봄날을 즐겼다.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에서 언급했던 ‘기회비용’이 각자에게 발생했지만, 누가 더 손해를 봤는지 따져볼 수는 없다. 서로가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분명한 건 하나를 선택함으로써 얻는 것과 잃는 것이 분명히 있다는 점이다.
나는 20대 가장 많이 하는 ‘연애’를 포기함으로써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었지만, ‘기회비용’의 발생은 막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포기가 있었기에 교직 이수를 할 수 있었고, 나중에 목표로 했던 영어교사가 될 수 있었다. 그때 만일 ‘연애’를 포기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결과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물론 계속 그런 생활을 하다 보니 29세가 될 때까지 제대로 된 연애를 못 한 것은 또 다른 ‘기회비용’이라고 할 수 있다.
나뿐만 아니라 같은 과에 다니는 다른 친구들도 자신의 상태에 만족하지 못하고, 일명 신분 상승을 꿈꾸며 여러 방법으로 시도하는 모습을 보았다. 수도권 대학에 다니고 있는 자신이 취업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많았다. 그래서 다들 입학하자마자 편입 준비나 대학원 준비를 하는 모습이었다. 어떤 친구는 대학에 다니면서도 수능을 다시 보기 위해 일과 후에는 수능 과목을 공부했다. 그렇게 다들 각자 자신을 ‘회복’시키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노력했다.
성공한 에세이 작가이자 스타 토익 강사로 유명한 유수연 작가의 《20대, 나만의 무대를 세워라》라는 책에서 그녀도 이와 비슷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수도권의 한 대학을 나와서 취업이나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되어 자퇴하고 호주로 유학을 떠났다. 여러 어려운 상황이 있었지만 꿋꿋하게 이겨내고 영국의 대학원에 진학하게 된다. 비록 고등학교 때는 대학입시에 충실하지 못해서 실패했지만, 자신의 상황을 개선하고자 피와 땀을 흘리며 노력했다.
미국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우도 인간만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존중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더욱 많은 사람이 사회에서 인정받고 존중받기를 바란다. 대학 이름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지만, 명문대에 다니면 아무래도 좋은 평가를 받기에 다들 그렇게 노력하는 게 아닐까 싶다. 물론 대학입시를 충실히 준비하며 노력한 대가라고도 볼 수 있다. 남들은 놀거나, 혹은 방황하거나 하며 시간을 아깝게 보내고 있을 때 대학입시에 성공한 사람들은 피나는 노력을 했으니 말이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대학입시에 실패한 사람들은 이제라도 정신을 차리고 사회로 나갈 준비를 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동안 발생한 ‘기회비용’을 메꾸기 위해서 더 큰 노력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대학 생활을 하며 흥청망청 시간을 아깝게 보내는 게 아니라, 자신의 성장을 위해 더 큰 힘을 쏟는 것이다. 대학입시에 실패했다고 사회 진출에서도 실패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렇게 다들 ‘회복’에 공을 들인다.
만일 운동선수가 부상을 당했다고 그냥 그대로 포기하고 재활을 하지 않는다면 다시 경기에 출전할 수 없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대학입시에 실패했다고, 아무 생각 없이 상처만 안고 살아간다면 재기할 수 없다. 그래서 정신적인 ‘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정신적인 회복은 결국 내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에 내 상황을 개선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내가 선택한 길은 영어교사가 되기 위해 교직 이수를 하는 것이었고, 다른 친구가 선택한 길은 편입하는 것이었다. 혹은 학점 은행제를 활용하여 학사편입을 하기도 했고, 졸업 후에 대학원에 진학하여 대학 이름을 바꾸고자 했다.
만일 내가 중학교 때는 공부를 잘했는데,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다면 잘 생각해봐야 한다. 지금 이대로 그냥 내 상태를 둘 것인가, 아니면 다시 하나씩 노력해서 변화를 줄 것인가 말이다. 고정과 변화라는 선택의 길 앞에 놓은 우리는 결단을 해야 한다. 마음의 상처가 있다고 그대로 두면 곪아 썩어 문드러질 것이고, 상처를 치료하면서 서서히 회복하려고 노력하면 다시 달리고 있는 내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공부를 선택하면 노는 시간을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기회비용은 언제나 발생하기 때문이다.
1999년 개봉된 영화 《매트릭스》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주인공인 네오(Neo)는 파란 알약과 빨간 알약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파란 알약을 먹으면 지금처럼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으면서 살게 될 것이고, 빨간 알약을 먹으면 감당하기 힘들어도 진실을 알게 된다. 우리가 회복을 위해 선택한 길이 쉽지는 않더라도, 그로 인해 큰 기회비용이 발생하더라도 후회 없이 앞으로 나아간다면 언젠가는 그 노력이 보상으로 돌아오리라 믿는다. 내가 경험했던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