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효능감: 내가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스위스의 프로테스탄트 신학자인 카를 바르트가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새롭게 바꿀 수 있다.”라고 말했다. 나도 그동안 지나온 실패한 과거를 바꿀 수는 없어도 앞으로 내게 다가올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기로 했다. 그래서 대학교 입학 후 나는 더는 실패하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나 자신을 믿고 다시 걷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실패한 후에 다시 일어서서 걷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했다. 넘어졌을 때 아픔과 고통이 너무 크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시 걷다가 넘어질 수 있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앞선다. 그래서 용기를 내기가 어렵다. 그래도 나는 미래를 바꾸기 위해 용기를 내기로 했다. 하기 싫거나, 꺼려지거나, 부끄럽거나, 망설여지는 일을 자신 있게 시도하려는 의지가 바로 ‘용기’라고 누군가를 그랬으니 말이다.
다행히도 용기를 가지고 다시 일어서서 걷고 있으니 이제는 명확한 목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다시 걸을 수 있게 되었으니 어디로 갈지 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근데 ‘사람마다 인생을 걷는 속도가 다른 것처럼, 다쳤을 때 회복하는 속도도 다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내가 걷는 속도를 파악하고 그 속도 맞춰서 나만의 목표를 세우고 미래를 계획하기로 했다.
사실 나는 고등학교 때 너무나도 잘나고 멋진 다른 친구들과 나를 비교하며 자괴감에 빠졌다. 하지만 과거와는 다른 나를 만들기 위해서 달라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니 남들과 비교하며 자신의 상황을 볼 필요는 없었다. 나에게 주어진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최고의 방법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다 보면 더 잘할 수 있는 일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의 임상심리학자인 로버트 마우어가 쓴 《아주 작은 반복의 힘》이라는 책에서도 변화를 주려면 아주 작은 일부터 시작하라고 했다. 한 예로, 심한 비만으로 고통받고 있는 환자가 운동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우선 1분이라도 서 있는 습관을 들이라는 대목을 들 수 있다. 그렇게 그 환자는 처음에는 가만히 서 있었지만, 다음에는 조금씩 걷게 되었고, 나중에는 뛰게 되었다. 그만큼 시작이 작더라도 크게 변화할 수 있다는 말이다.
또한, 변화를 위해서는 분명한 동기가 필요했다. 동기는 곧 목표이기 때문에 결승점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결승선을 통과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없다면, 아무리 목표가 있고, 동기가 강해도 중간에 멈추게 된다. 따라서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내가 해낼 수 있다는 자신에 대한 믿음이었다. 그때는 잘 몰라서 ‘자신감’을 회복하는 일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자신감이 생기면 급격히 성장하고 발전하는 경험을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내게 인생에서 가장 ‘리즈’ 시절이 언제였나 물어보면, 중학교 3학년 때라고 말하고 싶다. 그때 나는 ‘자신감’은 하늘을 찌르고도 남았다. 학생회 전교 부회장으로 활동하면서 명예도 얻고, 반에서 1등을 하면서 공부에 대한 자신감도 있었다. 학창 시절에는 특히 남학생의 경우에는 공부 잘하고 운동 잘하면 거의 다 가졌다고 할 수 있는데, 나는 그때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그리고 무엇이든 새롭게 시작하더라도 다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 글쓰기, 그림 그리기 등 학교에서 진행하는 각종 다양한 분야의 대회에서도 좋은 성과를 많이 냈던 기억이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 앨버트 밴두러 (Albert Bandura)는 자기효능감이란 구체적인 상황에서 성공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신념이라고 정의했다. 존재의 가치를 중시하는 자아존중감과는 달리 자신의 능력에 관한 믿음과 판단을 말하기에 성공 또는 실패 경험을 통해 자기효능감은 강화되거나 약해진다고 했다. 이런 이론에 따르면 나는 그때 ‘자기효능감’이 넘치는 학생이었던 것 같다.
대학 신입생이었던 나는 그때의 ‘자기효능감’을 회복을 하는 일이 급선무였다. 자기효능감은 타인의 성공 경험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경우만으로도 강화가 될 수 있는데, 나의 경우에는 직접 경험한 기억이 있어서 조금 더 유리했다. 미국의 메릴랜드대학 심리학과 교수인 앨리스 아이센도 우리 인생에서 가장 즐거웠던 일을 생각하면 그 즐거운 감정이 지속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행복했던 중학교 3학년 때를 생각하며 앞으로의 나의 인생도 즐거운 감정으로 계속 만들어 가고 싶었다.
중학교 때 전교 부회장으로 활동하면서 학생들뿐만 아니라 선생님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주도적으로 삶을 살았던 기억이 났다. 대학에서도 수동적인 삶이 아닌 내가 주체가 되어 이끌어가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죽음을 생각했다가 다시 살아가기로 했기에 이왕 사는 거 긍정적이고 쾌활한 성격으로 살면 좋겠다 생각했다. 그 덕분에 과대로 선출되었고, 원하는 대로 능동적인 대학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미국 발달 심리학자인 코넬대학 유리 브론펜 브레너 교수에 따르면, ‘미러 이미지 효과’는 자신의 감정은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그대로 상대에게서 되돌아오기 마련이라는 뜻이라 했다. 사람들을 대할 때 긍정적인 자세로 대하니 사람들도 나를 긍정적으로 봐줬다. 인간만이 가진 ‘인정의 욕구’가 그렇게 조금씩 충족되면서 나도 조금씩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 때 무너졌던 내 모든 것을 다시 조금씩 살려내며 서서히 나는 회복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러던 중 내가 학교 다닐 때 선생님들이 하시던 말씀이 기억났다. 입학하고 첫 시험이 고등학교 내내 등수로 이어진다는 말이었다. 나도 교사로 일하면서 이 말이 사실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일부 학생은 엄청난 노력으로 처음의 안 좋은 결과를 변화시키기도 했지만, 대부분 학생은 처음에 받은 성적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더 안 좋은 결과로 잇는 경우가 많다.
나에게는 80명 중 4명 안에 들어가야 교직 이수를 할 수 있으니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성적을 잘 받아야 하는 뚜렷한 동기와 목표가 있었다. 2학년 때 성적까지 포함하여 4번의 기회가 있지만, 첫 단추를 꿰이는 일이 중요한 것을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만일 첫 성적이 좋지 못하면 간신히 회복한 자신감도 다시 무너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기회비용’에 대해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나는 대학생이지만 마치 고3 수험생이 공부하는 것처럼 생활하며 공부에 집중했다.
어떤 학생은 공부에는 소질이 없어서 다른 일을 하겠다고 말하는데, 사실 우리 인생은 ‘공부의 연속’이다. 사실 대부분 학창 시절에 하는 공부를 두고 ‘공부’라고 말하지만, 공부는 끝이 없다. 공부가 싫어서 기술을 배우겠다고 해도, 사실 그 기술도 공부다. 나중에 더 나이를 먹고 알게 된 사실이지만, 학교에 다닐 때 배우는 지식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배워야 할 지식의 극히 일부일 뿐이었다. 군대에서, 사회에서, 그리고 결혼해서 가정에서 그동안 몰랐던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는 과정 모두가 공부였다.
일단 학교 다닐 때는 내가 해야 할 공부가 있으니 그것을 잘 해내면 다른 분야의 지식을 습득할 때도 분명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으로 나는 하나만을 목표로 삼았다. 일단 첫 학기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장학금을 받기로 말이다. 일단 그 목표를 이루면 앞으로는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자신감’을 얻게 되리라 믿었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다. 근데 나는 그 칭찬을 받으면 춤추다 못해 날아갈 정도로 더 큰 힘을 받는 성향의 사람이라는 것을 다행히도 늦게나마 알게 되었다. 고등학교 진학할 때 미리 알았으면 더 좋았겠지만,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치열한 경쟁 분위기보다는 내가 잘한다는 것을 인정받을 때 더 잘할 수 있는 성향이라는 걸 깨달았다. 자기 암시였지만 나는 해낼 수 있다고 계속 생각했다.
의학적으로는 환자가 아플 때 약을 주면서 “이 약을 먹으면 병이 낫는다.”라고 하면 효과를 본다는 ‘플라시보 효과’가 있다. 교육학적으로는 학생에게 교사가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밝히면 학생이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변화한다는 ‘피그말리온 효과’가 있다. 심리학적으로는 상대방을 특성화시켜 버리면 상대도 거기에 따른 행동하게 된다는 ‘레테르 효과’가 있다. 이 세 개의 효과는 모두 같은 원리가 있다. 우리가 믿는 것이 행동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해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 즉 ‘자기효능감’ 회복에 집중했고 성공을 이뤘다. 첫 학기에서 2등을 했고, 계속 성적을 유지한 덕분에 나중에 교직 이수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졸업할 때까지 장학금을 놓치지 않고 계속 받았다. 이렇게 생긴 ‘자기효능감’을 바탕으로 ROTC 과정을 거쳐 장교로 임관할 때도 상위 4% 성적 이내에 들었다. 참고로 그 당시 3600명 정도 임관을 했다. 호주에서 유학했던 때도 대학원을 졸업하며 상위 우등생에게만 부여하는 Golden Key Member 자격을 얻기도 했다.
내가 실패한 인생으로 살지 않기 위해 한 가지 노력이 있었다면, 바로 ‘자기효능감’을 회복하고 유지하는 일이었다. 내가 변화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자신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러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하기보다는 한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했던 게 유효했던 것 같다. 심리학자들은 평균 효과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심리학적으로 ‘평균 효과’란 무언가를 평가할 때 여러 개 값이 평균이 되어 수치가 낮아지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내가 가진 장점을 여러 개 보여주려고 하다 보면 오히려 큰 장점 한 가지를 보여주는 것보다 못하다는 말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자기효능감’ 하나에만 집중했던 내 전략은 성공적인 전략이었다고 할 수 있다. 누군가 실패를 겪고 회복을 시도한다면 너무 많은 걸 하기보다는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한 가지’에 더 매진해보기를 조언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