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대작전” (합격자 발표 날)

by 신영환


고3 입시는 1년 농사다. 봄에 씨를 뿌리고, 가을이 되면 수확을 한다. 1년 동안 애지중지하며 키운 농작물은 가을이 되면 풍성하게 익는다. 해마다 다르지만 풍년도 있고, 흉년도 있다. 고3 입시도 마찬가지다. 어느 해는 풍작이고, 어느 해는 흉작이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수확하는 날까지 결과는 알 수 없다. 비를 내리는 하늘만이 안다. 그래서 하늘의 뜻이라 하는가 보다.


<나는 점쟁이가 아니라고요>


고3 입시를 하며 감정 기복이 최고조에 달하는 날은 합격자 발표 날이다. 긴장한 탓일까. 설레는 마음 탓일까. 아침에 눈뜨면서부터 심장이 벌렁벌렁, 두근두근 거린다. 연인에게 사랑 고백을 하고 선고를 기다리는 심정이다. 이상하게 평소 맛있게 잘 먹던 아침밥도 별로다. 눈은 뜨고 있지만 초점이 없다. 귀는 뚫려 있지만 잘 들리지가 않는다. 어느 날 한 학생이 고백한 말이다.


수시 합격자 발표 날이면 아파서 결석을 하겠다는 학생이 있다. 한두 명이면 말할 필요가 없다. 생각보다 많은 학생들이 결석한다. 평소 출결이 깨끗한 학생도 압박을 견디지 못해 연락한다. 무슨 심정일지 천 번 만 번 이해한다. 살면서 큰일이라고는 이만큼까지는 없지 않을까. 진심으로 어떤 심정일지 이해되지만, 한편으론 안타깝다.


합격자 발표를 앞두고 불안한 사람은 학생만이 아니다. 학생, 학부모, 교사 3명이 같이 고생한다고 해서 고3이다. 당사자가 가장 힘들겠지만, 못지않게 신경 쓰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학생의 결석을 알리기 위해 학부모는 담임교사한테 연락한다. 출결 관련 연락이었지만, 상담을 시작한다. 들어보면 학생만큼이나 걱정과 불안으로 가득 찬 목소리다. 아이가 합격할 수 있을지 물어본다. 죄송하게도 나는 점쟁이가 아니다. 대신 긍정적인 말로 위로한다. 다 잘 될 테니 걱정하지 마시라고. 말은 그렇게 하지만 나도 신께 묻고 싶다. 우리 아이 합격하나요?



<잊지 못할 익명의 편지>


고3 담임을 하면서 처음으로 합격을 확인한 날. 그 날을 잊지 못한다. 내 인생 첫 고3 담임. 첫 아이의 합격 소식을 확인했다. 교무실에서 춤이라도 추고 싶을 정도로 기뻤다. 한걸음에 교실에 올라가 기쁜 소식을 전했다. 큰 소리로 말했다. “합격이야!” 교실에 있던 모든 학생이 들었다. 큰 실수였다. 합격생의 표정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 날 익명의 편지를 받았다. 익명이라 누군지 알 수 없었으나 장문의 편지였다. 연애편지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현실은 정반대. 그 날 있었던 일을 회고하며 정중하게 부탁하는 글이 주를 이뤘다. 표현에 따르면, 많은 학생들이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는 속담이 있다. 첫 충격이 컸기 때문일까. 쉬는 시간에 내가 교실에 올라가면, 아이들은 깜짝 놀랐다. 합격 소식을 전하러 가지 않았는데도 그랬다. 심지어 조회, 종례 시간에도 학급 분위기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았다. 교과 수업 시간에도 조심스러워 말 한마디 하기 두려웠다. 행복하게 지내던 연인이 다투고 냉랭한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지만, 그땐 그 이상이었다.



<논란(놀란) 없는 교실 만들기 작전>


우리 반은 공포 그 자체였다. 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나는 ‘체계적 둔감화’를 이용해 보기로 했다. 나와 학생 사이에 거리를 둬야 했다. 안내사항이 말고는 일대일로 문자 하며 대화했다. 문자는 감정이 드러나지 않아 사실 전달에 용이하다. 할 말만 간단히 짧게 쓸 수 있다. 일주일이 지나고 적응했다. 마음도 편했다. 느낌이지만 합격자 발표 안내에 대한 예민함도 점점 나아졌다.


심리학 용어에는 ‘민감화’라는 용어가 있다. 처음 큰 자극으로 인해 놀랐을 때, 유사한 자극을 경험하면 반응이 배로 커지는 현상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체계적 둔감화’를 활용하는 것이 좋다. 『실험심리학 용어 사전』에 따르면 ‘체계적 둔감화’는 “행동 치료 기법의 하나로, 특정 자극이나 상황에 대하여 비정상적으로 강한 불안이나 공포를 나타내는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 사용된다.”라고 한다.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자극과 긍정적인 반응을 유발하는 자극을 함께 제시함으로써 불안이나 공포를 제거할 수 있다. 또한 약한 자극부터 강한 자극까지 단계적으로 수위를 조절하는 것이 좋다.


고3 아이와 함께 지내는 교사나 학부모나 언제 어떻게 학생과 감정이 엮일지 모른다. 고의는 아니지만 감정이 상했을 경우 ‘체계적 둔감화’를 이용해 보면 효과가 있다. 닫힌 마음의 문을 다시 열기 위해 천천히 두드려본다. 성급하게 다가가기보다는 티가 나지 않게 다가간다. 아이가 말을 안 하고 싶어 하면 내버려 두자. 먼저 말할 때까지 기다리면 말하고 싶을 때 말을 건다. 우리 반에도 그런 사례가 있었다.



<결과를 말하지 않는 아이들>


교사나 학부모는 입시 준비부터 결과 정리까지 책임지고 같이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한다. 아이들이 원서를 접수하면 합격자 조회에 필요한 정보를 모두 수집해서 정리한다. 성명, 생년월일, 지원자 접수번호는 필수다. 일부 대학에서는 조회용 비밀번호(4자리 혹은 6자리)를 설정하기도 한다. 추후 조회를 위해서는 필요한 정보에 대한 기록이 필수다.


결과를 조회하고도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는 아이들이 있다. 학교에서 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말하지 않아 부모님한테 연락이 온다. “선생님, 우리 아이 합격여부 알 수 있을까요?” 아이가 직접 원서를 접수한 경우 부모는 결과를 알 방법이 없다. 감정적으로 부딪힌 경우 더 그런 일이 발생한다. 아이들은 마음을 문을 닫고, 귀도 닫고, 입도 닫는다.


결과 발표가 나면 해당되는 학부모님께 연락을 드린다. 부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전화는 부담스러워 문자로 조용히 알려드린다.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니 오해는 금물이다. 보통 알아서 확인하는 게 맞다.) 합격 통지를 할 때는 문자를 보내는 나도 즐겁다. ‘불합격’이라는 메시지를 쓸 때는 손가락이 잘 움직이지 않는다. 전송 버튼도 고민 끝에 누른다. 답장은 보기가 꺼려진다.


이런 경우 부모님들께 나는 ‘체계적 둔감화’를 알려드린다. 조급해하지 마시라고 알려드린다. 아이가 먼저 말을 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씀드린다. 그게 다시 대화를 할 수 있는 물꼬라고 말이다. 불합격 소식에는 아이들이 입을 잘 열지 않는다. 1차 합격을 하면 면접 준비로 부모님의 도움을 요청한다. 대부분 사교육비 지출과 관련한 경우가 많다. 이때가 기회다.



<침묵은 금이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 갚는다. 그만큼 말은 조심해서 해야 한다. 고3들의 합격자 발표 소식은 침묵해야 한다. 침묵은 금이다. 침묵이야말로 진정한 배려다. 나에게는 기쁘고 좋은 소식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다.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며 불행의 길을 가기 때문이다. 그 원인을 원천 차단해야 한다. 이때 침묵이 필요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몇 주가 지난 후 대학에 최종 합격한 학생이 나왔다. 이 학생은 특기자 전형에 지원했다. 특기자 전형은 수능 성적이 반영되지 않는다. 최종 합격 결과가 가장 빠르게 나온다. 어수선한 학급 분위기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데 최종합격자가 나왔다. 원래대로면 날뛰듯 기뻐했을 텐데 걱정이 앞섰다. 다른 아이들이 알면 큰 충격이다. 수능시험도 아직 안 본 시기다.


해당 학생을 교무실로 불렀다. 당부를 했다. 역지사지의 힘을 빌렸다. 수능을 앞둔 친구들의 입장을 투영했다. 다행히 내 의도를 잘 이해했다. 최초 합격생은 그 이후로 자신의 합격을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물론 부모님은 예외다. 철저하게 침묵을 지켜준 덕분에 학급 분위기도 괜찮았다. 그러나 과유불급이라고 했던가. 졸업식 때까지 이 학생의 합격여부를 다른 아이들은 잘 몰랐다. 심지어 졸업 후에 이 학생의 합격 소식을 전하면, 다들 놀라곤 했다.


11월 중순부터 하나둘씩 특기자 합격생들이 나온다. 정말 기뻐하며 축하할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침묵을 지켜야 한다. 대의를 위해서 꼭 그래야 한다. 수능까지 일주일도 안 남았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나는 계속 이 시기만 되면 말을 아낀다. 침묵이 금이라면 매년 엄청난 금을 만들어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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