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계속 방황을 하는가?
(정체감 유실)

by 신영환

이제 몇 년 후면 나는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불혹이라는 나이, 곧 마흔이 된다. 그런데 아직도 가끔씩 갈대처럼 흔들리는 내 마음은 어른이 되기에는 준비가 안 될 것일까? 마음이 흔들린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을 수 있다. 내 삶을 만족하지 않는다는 뜻이 될 수도 있고, 어려운 일에 처해서 위기를 느끼고 있다는 뜻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냥 쉽게 말해서 방황이라고 해본다.


방황(彷徨)이라는 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두 가지로 나온다. 1. 이리저리 헤매어 돌아다님. 2. 분명한 방향이나 목표를 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함. 한자어 뜻을 찾아보면 두 글자 모두 “헤매다”라는 뜻을 가진 것을 알 수 있다. 즉, 방황이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헤매는 상태를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왜 방황을 할까? 몇 년 후면 불혹이라는 나이, 마흔을 바라보며 아직도 가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헤매는 나 자신을 보며, 의문이 들었다. 방황은 10대에나 하는 것이라 보통 말하는데, 왜 아직도 나는 방황을 하는 걸까?


사실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내가 그동안 공부해왔던 교육심리학에서 찾을 수 있었다. 바로 심리사회적 성격발달 단계와 관련된 이론을 통해 우리가 방황하는 이유를 찾게 된 것이다. 미리 답부터 이야기해보자면, 독일 태생의 미국 심리분석학자이자 발달심리학자인 에릭슨의 자아발달 단계에 따르면, 프로이트와 달리 인간은 청소년기에 발달이 끝나지 않고 인생주기 전체를 통해 계속 발달한다고 보았다.


에릭슨은 자아(성격) 발달의 단계를 인생 전체를 주기로 8단계로 나누었다.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난 1세 영아부터 65세 이상의 노년기까지 각 단계마다 정신사회적 발달이 일어나며 단계별로 이루어야 할 특유의 극복해야 할 위기(갈등과 과제)가 있어 한 단계를 성공적으로 마치면 다음 단계로 발달하고 성숙해 간다고 했다.


흥미로운 점은 바로 인간의 자아(성격) 발달이 전 생애에 걸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평생 살면서 계속 위기 속에 살아가며 이를 해결할 경우 성취를 맛보지만, 그 반대의 경우에는 방황을 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아직까지 방황의 시간을 경험하는 내 모습이 이상한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모습이라는 것이 결론이었다.


우리가 무인도에 혼자 살고 있다고 한번 가정을 해보자. 자연재해나 맹수로부터의 위협이 있을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과의 비교로 인해 심리적으로 괴로움을 느끼는 일은 크게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위기와 갈등을 겪으며 살아가는데, 가장 큰 원인이 바로 우리 주변에 있는 환경, 즉 함께 상호작용을 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만일 나를 누군가와 비교할 대상이 없다면, 내가 괴로울 이유는 특별히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사회에 함께 살아가고 있고, 그 환경 속에 존재하는 하나의 인간이 된다. 게다가 급변하는 4차 산업혁명의 시기에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그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더 큰 위기를 접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환경 속에 살고 있는 이 시대의 현대인들이 괴로움을 안고 방황을 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 아닐까?


나도 조금 늦게 깨달은 사실이지만, 위기를 겪고 있는 나를 먼저 이해하는 것이 이 방황을 극복하는 방법이라는 것과,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최선을 다하고 후회하지 않으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 말하길, 방황이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지 않은 상태라 했다. 완전한 해결책이 될 수는 없겠지만, 현재 나에게 있는 방황이라는 괴로움의 사슬을 끊고, 조금이라도 성장의 길로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선, 우리는 왜 언제나 방황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를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에릭센의 자아(성격) 형성 8단계에 따르면, 사람은 유아기부터 성인기까지 위기와 발달의 과제에 직면한다고 한다. 출생 후 1년간 신뢰감과 불신감, 2~3세에는 자율성과 수치심, 4~5세에는 주도성과 수치심, 6~11세에는 근면성과 열등감, 12~18세에는 자아정체감과 역할 혼미, 성인기에는 친밀감과 고립감, 중년기에는 생산성과 정체감, 노년기에는 통합성과 좌절감이 형성된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는 자아정체감이 형성되는 청소년기다. 자아정체감이란 내가 누군지 아는 것과 내가 헌신할 가치가 무엇인지 아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자신의 능력과 자신의 선택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 이러한 믿음은 10대까지 형성되는 신뢰감, 자율성, 주도성, 근면성에서 나온다.


에릭슨의 연구에 이어 마샤(Marcia)는 자아정체감의 상태를 탐색과 헌신이라는 두 가지 개념으로 분류를 했다. 청소년 정체감 유형은 정체감 성취, 정체감 유예, 정체감 혼미, 정체감 유실로 네 가지다.


1) 정체감 성취

- 탐색 후 실천과 성취.


2) 정체감 유예

- 탐색은 하지만 아직 결정을 하지 않아 헌신은 안 하는 상태.


3) 정체감 혼미

- 탐색도 안 하고 헌신도 안 하는 상태.


4) 정체감 유실

- 탐색은 안 하면서 일단 무작정 헌신하는 것. 보통 부모님의 바람대로 헌신. 마마보이.


정체감 성취와 정체감 유예의 경우에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자아정체감을 형성한다. 반면 정체감 혼미와 정체감 유실 상태의 학생들에게는 탐색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쉽게 말해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고3 시기라는 관점에서 보면 정체감 성취와 정체감 유실의 경우에는 어떻게든 결과를 만들어낸다. 정체감 성취의 경우에는 과정도 결과도 대만족이다. 대학 진학 혹은 취업 후에도 만족스러운 삶을 이어간다. 정체감 유실의 경우에는 고등학교 졸업 후에 정체감 유예 혹은 혼미가 나타나기도 한다. 정체감 유예와 정체감 혼미의 경우에는 목표가 없기 때문에 무기력 증세를 보인다.


유독 청소년기에 부모의 속을 썩이고 방황하던 학생도 스스로 정체감 탐색 과정을 거쳐 헌신할 만한 가치를 찾게 된 경우 정체감 성취로 바뀐다. 교육심리학 수업을 듣던 2학년 편입생의 경우에도 1년 유급을 하고 다시 2학년으로 편입을 한 케이스다. 실제 이 학생의 경우에는 부모의 말만 듣고 공부를 하다가 정체감 유실을 겪게 된 경우였다. 자신이 직접 진로를 탐색하지 않다 보니 정체감 유실을 겪었다.


학생과 학부모가 상의를 통해 진로와 진학(대학)을 정할 때 학생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많은 학생들이 부모의 의견에 의해 대학을 정하고 학과를 정한다. 결국 이런 학생들은 정체감을 잃는다. 이 점을 명심하고 정체감 성취를 이끌어 내기 위해 학생들에게 스스로 진로를 탐색할 기회를 줄 필요가 있다.


어릴 때 나는 부모님이 좋다고 말씀하신 법조인이 되고 싶었다. 명문고에 진학해서도 줄곧 변호사가 진로희망이었다.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이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나는 언어에 흥미가 많았다. 중국어도 좋아했고, 일본어도 좋아했다. 그때 내가 좋아하는 분야를 제대로 탐색하고 좀 더 몰입했다면 대학입시 결과도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그땐 정체감 유실을 겪었던 시기라 무기력하게 방황의 시간을 보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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