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이 있으면 꼴찌도 있는 법

by 신영환

밤하늘에 별이 빛나는 이유는 어두운 밤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항상 밝은 낮에는 별은 보이지 않는 법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경쟁사회에서도 1등이 빛나는 이유는 밑에서 받쳐주고 있는 아래 등수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1등이 있으려면 꼴찌도 있어야 하는 법. 그게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내가 몸 담고 있는 학교에서도 이런 현상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내신 성적을 객관적으로 나열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지필평가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갖고 학생들의 등급을 매긴다. 좋은 등급을 받은 학생들은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 좋지 못한 등급을 받은 학생들은 좋은 대학에 갈 기회를 잃는다.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생긴다. 학교 성적이 우수하다고 해서 그 학생이 무조건적으로 뛰어나다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서 꾸준히 노력했고, 어느 정도 학업적인 능력이 우수하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성급한 일반화를 하듯이 등급이 좋지 못한 학생들은 우수하지 못하다고 평가하는 것은 과연 옳을까?


학생들 중에 가장 안타까운 경우는 수업태도가 매우 우수한데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아서 좋은 등급을 받지 못하는 경우다. 수업 때 발표하고 교사의 질문에 대답을 하는 모습을 보면 성실하고 똑똑한 학생인데 왜 성적은 그만큼 결과로 나타나지 않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다. 교사로서 너무 안타깝고 아쉽다. 그런데 이 학생들은 왜 시험 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 것일까 곰곰이 생각을 하다 보니 필자의 과거 경험을 통해서 비슷한 상황이었음을 확인해 볼 수 있었다.


필자는 중학교 때 꾸준히 성적이 향상하여 중3 때는 반에서 1등을 했었다. 그 결과 비평준화지역에서 최고로 우수했던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고등학교에 가서도 바른 수업태도와 꼼꼼한 필기를 하는 모범생이었다. 하지만 이미 각 중학교 전교 상위권에서 맴돌던 다른 학생들과 경쟁하기에는 큰 무리가 있었다. 이미 이과에서 배우는 수학 II 과목을 여러 번 공부하고 온 학생도 있었고, 토익과 같은 공인인증시험에서도 거의 만점을 받을 정도로 주요 과목에 대한 선행학습이 많이 되어 있었다.


중학교 때 반에서 1등을 하다가 고등학교에 와서는 뒤에서부터 등수를 세어야 하는 현실은 비참했고, 우울했다. 아무리 수업태도가 좋아도 미리 학습을 하고 와서 우위에 있는 경쟁자들을 이길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는 내가 직접 처한 상황이라 정확히 사태를 파악하지 못했지만, 한 참 지나고 나서 교육학도 배우고 학교 현장에서 똑같은 현상을 바라보며 느끼는 점이 많이 있다.


그렇게 점점 공부에 대한 자신감을 하락을 하고 있었는데,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가 고3이 되어서야 이런 식으로 하다가는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할 것이라 위기를 느끼고 사교육에 지나칠 정도로 투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난 세월을 회복하기엔 이미 너무 늦었었고, 그 해 수능을 본 결과는 참담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유는 간단했다. 결국 혼자서 공부하는 시간 없이 그냥 학원에서 계속 수업만 들었기 때문이다.


교육학 이론 중 피아제의 이론에 따르면 인지과정(모르는 것을 알게 되는 과정)은 우리가 아는 것에 정보의 불균형이 나타났을 때 인지가 이루어지고, 다시 평형의 상태가 되면 몰랐던 것을 알게 되는 것이라 말한다. 이때 인지는 내가 직접 생각하면서 고민하는 시간을 통해 몰랐던 것을 알아가며 평형을 맞추는 과정이다. 하지만 고3 때는 사교육에 의존에서 수업만 많이 들었던 경우라 정보 입력은 많았지만, 결국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에 비싼 돈만 아깝게 날려버린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지금 말하고 있는 필자의 경험은 사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매우 평범한 현상이다. 학부모는 아이가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우선 학원에 보내거나 과외 선생님을 구하기 급급하다. 그리고 아이는 수업을 듣고, 많은 정보를 접하게 되지만 결국 자신이 혼자 공부하는 시간이 부족해서 필자의 경험과 비슷한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라면 누구나 내 자식이 꼴찌가 되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1등을 하면, 누군가는 그 아래에서 다른 등수를 받아야 한다. 그건 불변의 진리다. 그렇다고 한 번 1등이면 평생 1등, 한 번 꼴등이면 평생 꼴등일까? 그것은 아니다. 우리의 상황은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인생은 새옹지마(塞翁之馬)다.

중국 국경 지방에 한 노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노인이 기르던 말이 국경을 넘어 오랑캐 땅으로 도망쳤습니다. 이에 이웃 주민들이 위로의 말을 전하자 노인은 “이 일이 복이 될지 누가 압니까?” 하며 태연자약(泰然自若)했습니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도망쳤던 말이 암말 한 필과 함께 돌아왔습니다. 주민들은 “노인께서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하며 축하하였습니다. 그러나 노인은 “이게 화가 될지 누가 압니까?” 하며 기쁜 내색을 하지 않았습니다. 며칠 후 노인의 아들이 그 말을 타다가 낙마하여 그만 다리가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이에 마을 사람들이 다시 위로를 하자 노인은 역시 “이게 복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오.” 하며 표정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북방 오랑캐가 침략해 왔습니다. 나라에서는 징집령을 내려 젊은이들이 모두 전장에 나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노인의 아들은 다리가 부러진 까닭에 전장에 나가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인생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을 많이 들어서 알 것이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가 사는 인생은 어찌 될지 모른다는 말이다. 필자는 정말 재미있는 경험을 했다. 미리 결과를 말해서 흥미가 떨어질지 모르겠지만, 중학교 때 반에서 1등이 고등학교에 가서는 거의 뒤에서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성적을 받고 있었으니 1등이 꼴찌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대학에 가게 되었는데, 재수할 때 이과로 전향해서 하다가 더 망해서 생각지도 못한 대학에 가게 되었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나중에 알고 보니 중학교 때 거의 반에서 꼴찌를 하던 친구가 나보다 선배가 되어 1년 먼저 졸업하는 모습을 지켜본 것이다.


인생사 새옹지마란 말을 제대로 경험할 수 있었다. 게다가 나중에 졸업 후에 다시 우연히 그 친구를 헬스장에서 만난 적이 있었는데 필자는 그때 대학원 졸업 후 취업준비생이었고, 그 친구는 정규직으로 취업도 했고, 결혼도 빨리해서 자리를 잡았었다.


사회적 잣대를 갖고 비교해보면 중학교 3학년 때 반에서 1등은 아직 취업도 결혼도 못한 패배자고, 중학교 3학년 때 반에서 거의 꼴등을 했던 친구는 오히려 순탄대로 잘 풀려서 승자가 된 모습이었다. 그 친구를 우연히 계속 만나게 되었는데 만날 때마다 기분이 묘했다. 인생은 진짜 아무도 알 수 없는 수수께끼와 같았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듣고 무슨 생각이 드는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저자가 안타깝다는 생각이 혹시 든다면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말을 끝까지 계속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고등학교 친구 중에 한 친구는 SKY 중 한 군데 학교에 그것도 경영학과에 진학을 했다. 말 그대로 엘리트 코스에 들어갔다. 하지만 졸업 후 대기업에 취직한 것이 아니라 행정고시를 준비했다. 1차 시험은 계속 합격을 했는데 아쉽게도 2차 시험에서 계속 떨어지기를 반복하다가 30대 후반이 될 때까지 자리 잡지 못하고 아직도 계속 공부만 하고 있다. 취업? 결혼? 그건 다 다른 사람한테나 해당되는 말일뿐이다. 늦은 나이까지 부모와 함께 살고 있는 캥거루족의 표본이라고도 볼 수 있다.


반면에 다른 한 친구는 고등학교 때 방황했고, 결국 수능 시험을 망쳐서 비록 대학은 수도권에 있는 대학에 가게 되었다. 하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교사자격증을 받을 수 있는 교직 이수도 하고, 자신처럼 진로와 진학으로 힘들어할 학생들을 돕겠다는 마음을 갖고 교사를 꿈꿨다. 또한 전문성을 더욱 기르고자 해외 대학원에 진학하여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했다. 부모님 도움 없이도 타지에서 혼자서 학비와 생활비를 벌어가며 열심히 노력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현재는 교사로 재직 중이고,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 딸과 아들 한 명씩 낳아 기르며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혹시 후자의 이야기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눈치챘는가? 그렇다. 바로 중학교 3학년 때 반에서 1등을 했지만, 고등학교 때는 좋은 성적을 받지 못했던 필자의 이야기다.


새옹지마를 주제로 두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는 여기서 어디에 주안점을 두고 교훈을 얻어야 할까? 당연히 과거에는 부족했지만 현재는 노력을 통해 발전하고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는 이야기에 집중을 해야 할 것이다.


아직도 고시 공부를 놓지 못하고 고생하고 있는 30대 후반의 친구가 더 좋은 상황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그렇게 우리 인생은 좋을 때도 있고, 힘들 때도 있는 법이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최선일까?


누군가한테는 40년 가까이 살아온 필자의 인생이 얼마 안 되었을 수도 있고, 또는 엄청 많은 시간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필자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결과는 받아들일 수 있다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정말 가슴 시린 실패의 경험을 통해 성장했고, 더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더욱 발전할 것이라는 희망도 있다.


여기서 잠깐 교육심리학적으로 접근해보자면 많은 사람들이 계속 실패를 하면서 생긴 학습된 무기력 때문에 더욱 부정적인 상황으로 몰고 가려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를 극복하려면 우리는 자기 효능감이라는 것을 길러야 한다. 자기 효능감이란 과제를 끝마치고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를 말한다. 긍정 심리학자인 엔젤라 더크워스의 「GRIT」이라는 책에서도 ‘그릿’이란 열정과 끈기를 통해 끝까지 목표를 이루어내는 신념이라고 말한다.


사실 필자는 입시에 대한 두 번의 큰 실패 이후 죽음에 대한 생각까지 했었지만, 자기 효능감을 꾸준히 길러서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지금도 다양하게 도전하고 많은 실패를 경험한다. 하지만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서 재도전하는 용기를 갖고 있다. 지금도 힘든 일들이 가끔 있는데, 인생사 새옹지마 또 다른 희망찬 인생이 올 거라 기대해본다.


내 자녀가 지금 1등이라고 항상 1등을 하란 법은 없다. 그리고 내 자녀가 지금 꼴등이라고 해서 평생 꼴등이 되라는 법 또한 없다. 이 책을 읽고 느낀 점이 있다면 꼭 노력하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 인생사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항상 대비를 하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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