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자는 돈을 위해 일하고, 부자는 돈이 나를 위해 일하게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큰 가치를 가진다. 그렇다면 우리 인생에서도 돈이 가장 큰 가치일까? 단연코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부자가 되고 싶었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돈 때문에 포기하는 일도 많았고, 돈 때문에 걱정과 근심으로 잠을 못 이룬 날도 있었기 때문이다. 부정하고 싶지만, 돈은 자본주의라는 체제 아래 아무리 떨쳐놓으려 해도 뗄 수 없는 그런 존재다. 돈이 있으면 더 편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지금은 로또가 되면 겨우 서울에 있는 괜찮은 집을 살 정도밖에 안 되지만, 예전엔 100억씩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로또에 당첨되면 ‘인생 역전’이란 표현을 썼다. 한 사례로 2003년 200억 넘는 로또에 당첨된 50대 남성은 잠시나마 인생 역전을 맛봤다. 노총각이었던 그는 로또 당첨 후 결혼을 했고, 서울 강남구에 40억짜리 주상복합 집을 사고, 20억은 친척들한테 나누어주고, 친척 병원 건축에 35억 투자하고, 20억은 지인한테 맡기고, 남은 돈은 전부 주식에 투자했다. 근데 얼마 후에 서류상 문제로 병원 투자금 모두 잃고, 지인이 증여를 주장하여 돈을 돌려받지 못하고, 주식도 모두 휴지 조각났다. 남은 주상복합 건물을 담보 대출로 전부 주식에 투자하였으나 전부 탕진하며 이혼하게 되었다.
“쉽게 번 돈은 쉽게 쓴다.”라는 말이 있다. 주변을 보면 땅값이 올라서, 로또에 당첨되어, 주식이 올라서 갑자기 ‘벼락부자’가 되는 경우가 있다. 근데 대부분 그렇게 갑자기 돈이 생긴 사람들은 돈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른다. 부자가 되었지만, 부자 마인드를 갖추지 못해서 진짜 부자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부자 관련 베스트셀러 책들을 읽어보면 실제 돈을 버는 방법보다는 부자들의 마인드를 설명한다. 그리고 남들과는 다른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결국, 돈은 우리가 쫓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돈이 우리를 따라오게 만들어야지 우리가 쫓지 말라는 말이다.
고대 그리스의 비극 시인 소포클레스는 “돈 세상에서 돈보다 더 사람의 사기를 꺾는 것은 없다.”라고 했다. 18세기 영국의 소설가 헨리 필링은 “돈을 신 모시듯 하면 악마처럼 그대를 괴롭힐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는 경고의 메시지와 같다. 돈 몇 푼 때문에 사람도 잃고 인생도 잃고 싶지는 않다. 혹시 돈 몇 푼이 아니라 엄청난 액수라도 돈 때문에 인간관계를 저버리거나 죄를 지었다면 남은 생을 가슴 졸이며 마음 편히 살 수 없다. 근데 안타깝게도 그리스 신화에는 그 타락의 길을 선택하는 이가 있었다.
‘마이다스’의 손이란 말을 들은 적이 있다면 미다스(Midas) 왕의 영어식 표현으로 쓰인 마이다스 왕이라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손만 대면 뭐든 황금으로 변하게 만드는 능력을 빗대어 ‘미다스의 손’이라 부른다. 이를 확장하여 어떤 일이든 하는 일마다 성공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미다스’의 손을 가졌다고 말한다. 근데 실제 그리스 신화는 탐욕을 추구했던 미다스 왕의 어리석음을 꾸짖는 이야기다.
만지면 황금으로 변하는 미다스(Midas) 왕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술의 신 디오니소스와 그의 스승인 실레노스가 미다스 왕이 다스리는 프리기아 지역으로 여행을 갔다. 이 지역은 현재 터키 앙카라 근교이다. 술에 취한 실레노스는 포도밭에서 잠이 들었고, 다음 날 포도밭 주인은 밭을 엉망으로 만든 실레노스를 벌해 달라며 미다스 왕에게 끌고 갔다. 미다스 왕은 실레노스가 디오니소스의 스승인 걸 금방 알아차렸고, 무려 열흘 동안 잔치를 베풀며 그를 정성껏 대접했다.
디오니소스는 미다스 왕의 소원을 한 가지 들어주기로 했고, 미다스 왕은 자신의 손에 닿는 것은 뭐든 황금으로 변하게 해 달라고 빌었다. 근데 손에 닿는 모든 것이 황금으로 변해서 물도 음식도 어느 것 하나 먹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 문병 온 사랑하는 딸이 반가워 만지는 순간 딸은 황금으로 변해 버렸다. 그제야 자신의 소원이 어리석었다는 것을 깨달은 미다스 왕은 디오니소스에게 찾아가 소원을 거둬 달라고 애원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디오니소스는 팍톨로스 강에 가서 씻으라고 알려 줬고, 미다스 왕은 그대로 한 덕분에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살면서 나에게도 돈에 욕심부려볼 기회가 몇 번 있었다. 한 번은 호주에서 유학할 때 일이었다. 지인 중에 사업을 하시는 분이 있었다. 나와 가까이 지내던 분인데 그 당시 내 상황에서는 거절 못 할 만큼 매력적인 조건을 제안했다. 그 지인은 내가 대학원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갈 시기가 되자 호주에 더 남아있기를 바랐다. 자신이 하는 사업 일을 도와주면 한 달에 1천만 원을 월급으로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때 정말 가난하게 유학할 때라 그 돈은 나에게 너무 큰 돈이었고, 바로 수락하고 싶을 만큼 좋은 조건이었다. 그 제안을 받는 순간에는 솔깃했지만 나는 긴 고민 끝에 거절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한국으로 돌아가서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 다시 살려고 결심한 날 이후로 계속 목표로 했던 교사가 되는 일이었다. 그게 나에게는 삶의 목표이고 자아실현이었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 두 번째는 모든 일에는 책임과 대가가 따른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많은 돈을 받으면 그만큼 일도 많이 해야 할 것 같았다. 내가 만일 호주에 남는 이유가 있다면 돈 때문에 포기한 박사과정 공부를 계속하는 것이지 다른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또 다른 기회는 한국에 돌아와서 취업 준비할 때였다. 거의 준비도 못 하고 봤던 임용고시에 붙지 못하자 조바심이 났다. 근데 나이가 서른이 다 되어서 부모님께 손을 벌리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악착같이 일하며 공부하며 호주에서도 버텼는데 한국에서 못 버틸 이유가 없었다. 생각해보니 대학원 등록금을 내려고 빌린 돈도 갚아야만 했다. 계속 손 빨고 있을 수 없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임용고시는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취업 관련 사이트를 통해 직장을 구해보려 했다. 아쉽게도 시기적으로 채용 공고가 많지 않았다. 계약직으로 학교에서 일해보려고 해도 시기적으로 맞지 않았기에 상시 채용하는 곳을 찾았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대부분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일이었다. 그리고 몇 달 동안 토익 만점을 받기 위해 공부하며 쌓은 노하우를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대형 어학원에도 집 근처 중소형 어학원에도 지원했다.
일단 내가 지원할 수 있는 데는 다 찾아서 지원했다. 그중엔 계약직으로 일하는 기간제 교사를 구하는 학교도 한 군데 있었다. 신기하게도 서류를 넣은 곳에서 모두 연락이 왔다. 경력도 하나 없는데 연락이 와서 신기했다. 아무래도 영어 강사로서 해외 유학 경험은 큰 장점으로 작용한 것 같았다. 일을 구할 수나 있을까 걱정했는데 여러 군데서 연락이 와서 행복한 선택의 고민에 빠졌다.
우선 제일 먼저 연락이 온 집 근처 지역의 대학가 근처 중소형 어학원에 면접을 보러 갔다. 간단한 질문을 하고서는 바로 계약서를 쓰자고 했다. 처음으로 연락이 온 곳이라 혹시 다른 곳은 연락이 안 오면 어쩌나 걱정하는 마음에 얼떨결에 계약서를 쓰고 나왔다. 일주일 후부터 대학생들이 방학이라 바로 출근이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강남에 있는 초대형 어학원에서 연락이 왔다. 그리고 바로 전화면접을 봤다. 솔직히 경험이 없어서 기대하지 않았는데 서류전형에 합격했다고 연락이 와서 놀랐다.
그 어학원에서는 교재 개발 연구원과 토익 강사 등 다른 분야를 채용하고 있었다. 처음에 연락이 온 곳은 교재개발팀이었다. 전화로 서류상 사실 여부만 확인하고는 바로 연봉협상에 들어갔다. 사실 연봉협상이 끝나면 채용이 되는 거였다. 갑자기 물밀 듯이 합격했다는 연락이 오니 지금 너무 서두르는 게 아닌지 겁이 났다. 아무리 상시채용이라지만 너무 서두르는 느낌이 들어서 다른 곳도 결과를 기다린다며 잠시 보류했다. 아니나 다를까 나중에는 토익 강사 채용 1차 서류에 합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점점 더 좋은 조건으로 오퍼가 들어오고 있었다. 여기서 좋은 조건이란 연봉과 복지를 의미한다.
처음엔 어디라도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당장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 때문이었다. 근데 막상 여러 군데에서 연락이 오니 간사한 마음이 들었다. 더 좋은 조건이 있는 데로 골라가고 싶었다. 일단 계약했던 중소형 어학원에는 연락해서 바로 그날 구두로 계약해지를 했다. 한시가 급하니 빨리 연락을 주는 게 도리라 생각해서였다. 초대형 어학원은 당장 결정하지 않아도 좋으니 최대한 빨리 연락을 달라고 했다.
사실 마음속으론 토익 강사가 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더 잘하면 더 돈을 벌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근데 한 가지가 마음에서 걸렸다. 10년 동안 내가 달려온 이유는 교사가 되겠다고 한 것인데 돈 때문에 갑자기 토익 강사가 되려니 혼란스러웠다. 그랬으면 호주에서도 사업하는 지인을 도와 많은 돈을 받으면 될 것이지 왜 한국에 왔는지 다시 생각했다.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 지원했던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계약 기간이 한 학기밖에 되지 않았지만, 내가 바라던 교사가 될 기회가 온 거였다. 학교에 찾아가서 면접도 보고, 수업 시연도 했다. 운명인지 모르겠지만 그날 바로 계약서를 쓰고 집에 왔다. 사실 교사는 호봉제라 연봉이 얼마인지 월급이 얼마인지 모르고 그냥 소신 있게 계약했다. 실제 한 달 일하고 받은 첫 월급은 160만 원이었다. 솔직히 돈이 너무 적었지만, 학생들과 수업하며 소통하는 시간이 너무 소중하고 즐거워서 돈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느꼈다. 내가 10년 동안 살아온 이유를 증명하는 시간이었다.
“진짜 하고 싶은 일은 직업으로 하지 말라.”라는 말이 있다. 자신이 좋아하던 일도 돈을 버는 수단과 방법으로 바뀌면 순수하게 좋아하는 마음이 사라질 수 있기에 하는 말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교사라는 직업은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은 아니다. 오히려 봉사의 마음과 자세가 없으면 하기 힘든 직업이다. 만일 내가 돈을 더 추구했다면 아마도 지금은 다른 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근데 돈보다는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게 내가 교사가 된 이유이고, 학생들을 위해 더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다. 나는 돈이 아닌 나의 학생들을 택했으니까 말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어느 정도 성장했고, 성숙해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적어도 인생을 돈 하나만 보고 결정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경제학자인 로버트 기요사키가 쓴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중산층 사람들은 돈을 위해서 일한다. 하지만 부자들은 돈이 자신을 위해서 일하게 만든다.”라고 했다. 부자는 절대 돈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영화배우 주윤발도 "내가 번 돈은 내 돈이 아니며, 내가 잠시 보관할 뿐이다."라고 하며 2010년부터 자신의 전 재산인 8,100억 원 중 99%를 사회에 환원한다고 약속했다. 그는 2018년 기준 17년간 2G 폰을 사용했다. 그는 한 달 용돈으로 12만 원을 쓰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등 근면 검소한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1조 원에 가까운 재산을 가진 사람이 보여주는 행실은 인생에 돈이 전부가 아님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