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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영환 Nov 09. 2020

<25> 멘토, 미래의 나를 만나다

우리는 혼자서 성장할 수 없다.

'멘토’의 기원은 그리스 시대의 유명한 시인 호머가 지은 서사시 《오디세이아》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왕 오디세이아는 트로이 전쟁에 출정하면서 절친한 친구이자 충실한 신하인 멘토르에게 자신의 집안과 아들 텔레마코스 교육을 부탁했다. 텔레마코스는 멘토르로부터 20년 가까이 교육을 받았다. 이때 멘토르는 그의 친구이자 상담자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아버지의 역할까지 도맡았다. 이처럼 멘토는 단순 지식 전달자가 아니라 삶의 지혜를 가르쳐 주는 인생의 나침반 같은 존재였다.           


멘토르는 텔레마코스가 중요한 결정을 할 때 현명한 선택을 하도록 조언했다. 한 일화로 생사를 알 수 없는 아버지를 찾아 나서기로 생각한 텔레마코스는 두렵고 많은 고민을 할 때 멘토르는 그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그대가 겁쟁이가 되지 않고, 사리분별이 흐트러지지 않는다면 그리고 오디세이아의 지혜가 그대에게 남아있다면, 이 일을 훌륭히 완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구혼자들의 얄팍한 책모는 그냥 내버려 두어라. 속히 빠른 배를 구해 나와 함께 가자.” 이렇듯 중요한 선택의 순간마다 멘토르는 그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주었다. 용기와 믿음을 얻은 텔레마코스는 결국 아버지를 찾아 고국으로 돌아와 어머니와 왕국을 구했다.     

      

이렇듯 멘토는 우리가 힘들고 어려운 결정을 내릴 때마다 우리 곁에서 도움을 주고 충고를 아끼지 않는 사람이다. 또한,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을 지도하고 조언해 주는 사람을 의미한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배를 타고 항해를 하는 것과 같다. 바다를 항해하며 우리는 거센 파도와 폭풍우를 만나 많은 시련을 겪는다. 그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에게 도움을 줄 사람은 누구일까? 그 사람은 바로 이미 많은 경험을 통해 어려움을 극복한 선장이다. 즉, 한 사람의 인생을 올바르게 이끌어 주는 현명한 사람 혹은 삶의 길잡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 인생에 멘토는 누가 될 수 있을까? 꼭 한 사람이어야 하는 걸까? 멘토 역할은 사람만 할 수 있는 것일까? 나는 여러 경험을 통해 이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멘토는 사람을 의미하지만 나에게 조언을 해주는 존재, 방향을 제시해주는 존재라면 무엇이든 멘토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프랑스의 계몽사상가인 루소도 ‘스스로 배울 생각이 있는 한, 천지 만물 중 하나도 스승이 아닌 것은 없다. 사람에게는 세 가지 스승이 있다. 하나는 대자연, 둘째는 인간, 셋째는 사물이다.’라고 했다. 인도의 승려 법구의 인생에 지침이 될 만큼 좋은 시구들을 모아 엮은 경전인 《법구경》에서도 ‘나 외에는 모두 스승이다.’라고 했다. 이처럼 우리 주변을 보면 우리가 살면서 배울 수 있는 사람 혹은 사물과 같은 존재가 있기 마련이다.       


살면서 우연히 본 책, 영화, 드라마, 하나의 문장 등 삶에 무언가를 느끼게 하고, 우리의 성장을 돕는다면 사람이 아니어도 멘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나에게도 사람이 아닌 멘토도 있었다. 실패와 좌절로 괴로웠던 20대 초반 나에게는 두 권의 책이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 책들을 읽고 인생의 방향이 크게 정해졌다고 해도 거짓이 없다. 다른 글에서 소개했던 오히라 미쓰요의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와 유수연 선생님의 《20대, 나만의 무대를 세워라》라는 책이다.           


오히라 미쓰요의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라는 책을 읽으며 고작 대학입시 실패로 인생을 마감하겠다고 생각했던 내가 너무 부끄러웠다. 학창 시절 집단 괴롭힘과 할복자살 기도, 탈선의 길에 들어서 야쿠자 아내로의 삶 등 파란만장한 그녀의 삶을 글로 접하며 내가 겪은 시련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런 슬픈 현실에서도 꿋꿋하게 이겨내고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학생들을 돕고자 인권 변호사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보며 깨닫는 게 많았다. 나보다 더 심한 상황을 극복한 그녀의 용기에 나도 해낼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생겼다. 비록 그녀를 직접 만나지 않았지만 내가 교사가 되어야겠다 다짐하게 했고, 나도 고작 대학입시로 실패라고 생각하는 수험생들에게 교훈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녀는 나에게 새로운 목표와 방향을 제시해준 나의 첫 멘토였다.

           

대학 졸업 후 ROTC과정을 마치고 학군 장교로 국방의 의무를 다할 무렵 나는 전역 후에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전역 후 바로 임용고시를 바로 볼지, 전문성 신장을 위해 어학연수를 다녀올지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 무렵 유수연 선생님은 스타 토익 강사로 종횡무진 활약했다. 기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그녀의 삶에 대해 알게 되어 《20대, 나만의 무대를 세워라》라는 책을 사서 읽었다. 그녀의 상황은 나와 너무 비슷했기 때문에 내용이 궁금했다.           


그녀는 수도권 대학 출신에 낮은 학점으로 한국에서는 삼류 인생의 길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책을 통해 이야기했다. 그래서 호주로 무작정 날아가 새로 도전하고, 영국에서 석사과정, 미국의 유명한 호텔에서 근무 등 8년간 치열하게 살면서 지독하게 영어를 공부해서 이뤄낸 성장과 성공의 길을 보여줬다. 그녀는 자신이 겪었던 시행착오를 거울삼아 20대라는 중요한 시기에 방황하지 말고, 미래를 위한 준비 기간으로 삼으라고 따끔하게 충고했다.           


사실 바로 취업 전선에 뛰어드는 방법이 더 현실적이었다. 물론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수험생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근데 이 책을 읽고 생각을 바꿨다. 재수 1년, 대학 4년, 군생활 2년 4개월 동안 그냥 앞만 보고 살아왔던 나는 이미 20대 후반이었기에 남은 20대를 도전과 성장의 시기로 보내고 싶었다. 어디서 들은 말이지만 20대에 피나는 1년간의 노력은 내 삶의 10년의 가치와 같다고 했다. 하루도 아깝지 않게 보내려고 발버둥만 치던 나는 유수연 선생님 덕분에 ‘도전’의 자세를 갖게 됐다. 후회스러운 과거와 그 결과인 현재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가치를 바꾸는 일에 도전했던 그녀의 모습이 너무 멋지고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남은 군생활 동안 어학연수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전역과 거의 동시에 어학연수를 떠났다. 비록 모아둔 돈은 많지 않았어도 누구보다 도전정신만은 강했다. 처음엔 그냥 말 그대로 어학연수였으나 욕심이 생겨 대학원에 지원했다. 운 좋게도 그동안 쉬지 않고 달려왔던 피와 땀에 보답하듯 대학원에 합격했다. 물론 그로 인해 여러 도전의 상황에 놓이게 되었지만, 움츠러들지 않고 꿋꿋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자세한 이야기는 4장 ‘도전에 관하여’의 한 소재인 ‘역경을 이겨내는 헝그리 정신’에서 하겠다.          


대학에 다닐 때는 문단열 선생님이 롤모델이고 우상이었다. 혼자만의 짝사랑이었지만 나에게 많은 영향을 주는 멘토였다. 고민이 있을 때 직접 질문하고 답을 들을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이미 내가 가야 할 길을 걷고 있고 이정표처럼 안내는 해주는 존재였다. 그래서 나에게 영향을 주는 존재를 멘토라고 부르는 것이다. 지금 내게 조언해 줄 사람이 없어도 괜찮다. 간접적이라도 나에게 해답을 제시하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 존재 자체로 나에겐 멘토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멘토는 여럿이 될 수 있다. 내가 관심 있는 분야가 다양하면 그만큼 멘토의 수도 늘어난다.           


나도 20대에 나에게 영향을 준 멘토에 대해서 여럿 언급했다. 근데 그 이후에도 계속 멘토의 수는 늘었다. 대학원 졸업 후에는 다시 진로에 대해서 고민하는 시기가 다시 왔다. 영어교육을 전공으로 했지만, 영어 원어민이 아니라 한계에 부딪히고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한국인이니까 한국어를 가르쳐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때까지는 아직 한국어 교육 분야는 블루오션이었다. 그래도 눈에 띄는 곳이 한 군데 있었다. ‘TalkToMeInKorea’이라는 회사였다. 참고로 이 회사를 설립한 회사 대표는 9개 언어를 하는 선현우 선생님이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인턴으로 그 회사에서 일하며 선현우 선생님으로부터 ‘열정과 끈기’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아직 신생 회사였지만, 분명한 비전을 갖고 있었다. 우리의 언어인 한국어를 전 세계에 알리는 일을 해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는 넓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가졌다. 내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대상을 한정시키지 말라고 했다. 언어라는 도구로 우리는 세상 모든 사람과 소통할 수 있다는 교훈을 주었다. 무엇보다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즐기는 모습이 멋졌다. 그 마음 자세를 배우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대학교 때부터 계속하고 싶었던 일을 찾아 떠나기로 했다. 비록 한국어 교육이라는 일을 함께할 수는 없었지만 내 인생을 후회하지 않도록 만들어준 또 다른 멘토였다.           


내가 찾아 떠난 길은 대학교 때부터 계속 꿈꾸던 영어연극을 하는 길이었다. 실제 영어연극을 사업으로 하는 회사를 찾았다. 어린이 영어 교구 제작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오랜만에 다시 가슴 뛰는 일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수요가 매우 적은 분야라 직업으로 이 분야에서 일하는 건 무리였다. 하릴없이 그만둬야 했다. 그렇게 돌고 돌아 대학교 입학할 때 계획했던 영어교사라는 목표를 이제는 실행하기로 했다. 그리고 교사가 되었다.

      

교사가 되어서는 나는 생각만 하는 일을 실천하는 멋진 선배 교사를 만났다. 이번에도 물론 직접 만난 사람은 아니었다. 내가 추구하는 목표를 이미 이룬 영어교사가 있었다. 그는 EBS 강사로 활약 중인 정승익 선생님이다. 사실 나는 선현우 선생님한테 배운 마인드를 바탕으로 학교 내에서만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게 아니라 더 많은 사람한테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근데 정승익 선생님은 이미 실천하고 계셨다. 학교에서는 열정 많으신 선생님, EBS에서는 실력 있는 영어 강사, 집에서는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내 가슴을 울리게 했다. 무엇보다 수험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려고 솔선수범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정승익 선생님을 롤모델로 하고 영어교사로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 때, 운명처럼 진짜 멘토를 만났다. 영어 관련 모임에 나갔다가 강연자로 나온 EBS 강사 혼공 허준석 선생님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선현우 선생님이 했던 것처럼 유튜브로 무료 강의를 찍어서 더 많은 학생이 무료로 양질의 수업을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근데 이미 이 선생님이 혼공TV라는 채널을 통해서 무료 문법 강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세상에는 내가 생각하는 일을 한 발 앞서서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았다. 생각만 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변화할 수 없는데 나는 그동안 계속 변화 없이 생각만 하는 사람이었다.          


강연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이 비슷해서 잠깐 허준석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었다. 내가 유튜브를 할지 말지 고민한다고 하니 무조건 하라고 조언했다. 그 이유는 사람마다 결이 달라서 창작물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선한 마음을 가지고 하는 일이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라 했다. 진심 어린 조언 덕분에 나는 용기를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바로 유튜브로 무료 강의 제작하는 일을 시작했다. 심지어 같은 마음을 가진 동료였기 때문에 혼공 허준석 선생님이 운영하는 비영리 영어교육 전문 단체인 혼공스쿨에서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영어교재 쓰는 일을 시작으로 현재는 다양한 무료 영어교육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는 나에게 항상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주는 멘토와 함께 같은 길을 걸으니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1분 멘토링》에서도 ‘누구도 혼자만의 힘으로 목표를 이루어낼 수 없다.’라고 말한다. 이 책의 저자인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캔 블랜차드와 트위터 이사였던 클레어 디아즈 오티즈는  멘토를 구하라고 주장한다. 멘토링은 쌍방향으로 진행될 때 진정한 힘을 발휘한다고 한다. 멘토는 멘티에게 도움을 주면서 성장하고, 멘티는 멘토로부터 배움을 통해 성장한다. 결국 멘토와 멘티 모두 상호작용 속에서 함께 성장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탈무드에서 “나는 나의 스승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리고 내가 벗 삼은 친구들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러나 내 제자들에게선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웠다.”라고 하는 것으로도 이를 증명할 수 있다.      


사실 20년 가까이 그동안 나의 멘토들은 내 짝사랑의 대상이었다. 나 혼자 좋아하며 좋은 점을 본받으려고 노력했고 스스로 성장하는 시간을 보냈다. 근데 지금은 실제 옆에서 내가 가고 싶은 길을 몸소 실천하며 보여주고, 내가 도움이 필요할 때 조언해 주고, 심지어 친구처럼 옆에서 함께 해주는 멘토가 생겨서 너무 좋다. 사실 무료 영어교육 프로젝트를 내가 교직은 시작했던 10년 전부터 구상만 했었지 막상 실천하기가 어려웠기에 지금 꿈을 실현하는 느낌이다. 만일 진정한 멘토를 만나지 못했다면 과연 나는 내 꿈을 실현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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