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바쁜 일상에 생각 없이 어떤 결과만 쫓으며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내가 왜 해야 하는지 이유를 찾기보다는 보다 나은 결과를 얻기 위해 항상 노력한다. 그렇게 생각 없이 흘러가는 인생 속에서 우리는 가끔 왜 사는지 이유를 묻곤 한다. 그러다 자신이 하는 일이 잘 되어가는지 확인하기도 한다. 이처럼 중간점검을 통해 잘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것을 메타인지를 사용한다고 말한다.
과거에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이 지능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꼭 공부하는 지능만 필요한 건 아니라는 것을 느낀다. 《메타인지 학습법》의 저자인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버나드 대학 심리학 교수인 리사 손도 ‘인생은 결국 문제 풀이의 연속’이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는 매일 문제에 봉착하고 해결하는 과정에 놓인다. 그때 필요한 건 지능이 아니라 내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정확히 구분할 수 있는 메타인지가 필요하다고 그녀는 주장한다.
EBS 다큐 《학교란 무엇인가 8부 0.1%의 비밀》에서도 상위 0.1%의 학생들이 학업성취도가 높은 이유는 지능이 아닌 ‘메타인지 능력’이 더 뛰어났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일상생활을 살펴보면 평범한 학생들과 다를 바 없었지만, 스스로 생각하는 힘은 차이가 있었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 스스로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리고 결과보다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실패와 실수를 어떻게 바로 잡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시냅스 독서법》의 저자인 독서치료연구소 박민근 소장은 일반적으로 ‘공부에 문제가 있다’고 의뢰해온 아이들 대부분은 무기력 단계이거나 외적 혹은 내적 강압 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했다. 이들은 피상적인 학습자로 스스로 문제 해결을 하지 못한다. 반면, 전략적 학습자는 목적의식이 분명하고 자신의 무엇을 왜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들도 메타인지 전략을 사용한다고 볼 수 있다.
‘메타인지’는 미국의 발달 심리학자인 존 플라벨이 만든 용어다. ‘Meta’는 그리스어로 ‘사이에, 뒤에, 넘어서’라는 뜻이고 ‘상위’에 있다는 의미다. ‘인지(cognition)’라는 말이 ‘무언가를 인정하여 앎’이라는 뜻이니, 아는 것을 넘어서 내가 아는지 모르는지를 아는 것이라는 의미가 된다. 나아가 생각해보면 자신이 모르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리사 손 교수가 제시하는 메타인지 전략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모니터링 전략이다. 모니터링(Monitoring)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면밀히 관찰하고 판단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무엇이 잘 됐고, 잘못되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컨트롤 전략이다. 부족한 점이나 잘못된 점이 있으면 이를 바로 잡는 과정이다. 두 가지 전략 모두 결과가 아닌 내가 현재 처한 상황이나 과정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과정에 속한다. 그래서 메타인지 전략은 결과 위주가 아닌 과정 중심의 인지 전략이다.
과정이란 완성의 단계가 아니기에 완벽하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 완벽하지 않다는 말은 우리가 얼마든지 실패나 실수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 사실을 인정할 때 성장이 일어난다. 다시 말해 우리가 경험하는 과정에서 실패할 용기를 가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용기가 있을 때 성장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메타인지의 활용은 달리 말해보면 나의 무지함을 인정하고, 실패할 용기를 갖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리사 손 교수도 ‘메타인지의 진짜 목적은 메타인지를 키우는 과정이 바로 배움의 과정임을 깨닫는 것’이라 말했다. 그러면서 메타인지를 기르는 방법에 대해 학부모로서의 역할 3가지를 제시했다.
첫째는 아이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아이의 학습 수준이 다른 아이보다 떨어져도 능력을 의심하지 말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전적으로 아이를 믿어주고 용기를 주라는 것이다. 결론은 아이가 어떤 실수를 하든, 남들보다 배우는 속도가 느리든, 아무 상관없이 믿고 기다려 주라는 것이다. 이는 결과보다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떻게 보면 유대인들의 교육이 메타인지를 기르는 교육과 유사한 것 같다. 유대인 격언 중에는 이런 말이 있다. “물고기 한 마리를 잡아주면 하루를 살 수 있지만, 물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면 일생을 먹고살 수 있다.” 세상의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상위 0.1%의 유대인들의 하브루타 교육이 곧 메타인지를 기르는 교육과 비슷한 것 같다. 교육 전문가 서상훈과 유현심 작가의 《메타인지 공부법》에서도 메타인지가 유대인의 하브루타 교육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밝혔다.
부모와 교사는 학생이 자유롭게 질문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학생이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유도하는 조력자 역할을 한다. 질문과 답변을 통해 소통하면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몰입하는 하브루타 교육은 지식을 스스로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분별하는 시간을 갖기 때문이다.
나에게 맞는 성장 속도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말했지만, 우리는 빨리 배우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고, 천천히 가는 것을 안 좋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근데 우리의 뇌는 빨리 배운 만큼 빨리 잊는다. 우리가 새로 배우는 내용이 오래 기억되려면 뇌의 신경세포 회로가 치밀해지는 수초화 현상이 나타나야 한다. 수초화 현상은 미엘린이라는 성분이 축색돌기(시냅스)를 덮어 막이 두껍게 형성되어 정보처리 속도를 높이는 것이다. 이 과정은 우리가 같은 내용에 대해서 여러 번 반복해서 많이 고민하고 생각하는 동안 발생하는 현상이다. 즉 빠른 것보다는 천천히 오래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런 여러 근거를 살펴보며 리사 손 교수가 말한 것처럼 경쟁하는 빠른 토끼가 되기보다 자신이 거북이임을 인정하고 속도에 맞게 움직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근데 중등교육(중학교, 고등학교)까지는 대학입시에 목매다 보니 시간 효율이 가장 높은 주입식 교육이 많이 쓰인다. 실제 교사인 나도 특히 고3 담임으로서 수능 시험을 위한 수업을 진행하고 있으니 말이다. 생각하는 시간보다는 정답을 빨리 찾는 교육에서 아이들이 어떤 성장을 할지 문득 의문이 든다.
나는 대학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지만, 사실 나도 생각하는 힘을 기른 곳은 고등교육(대학교와 대학원) 기관에서 공부할 때였다. 대학에서는 단순히 획일화된 정답을 찾아서 맞추는 공부보다는 의견이나 생각을 묻는 논술 형태의 시험이 많다. 그리고 개별 학습보다는 조별로 한 팀이 되어 토론하고 발표하는 프로젝트를 완수하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이를 위해서는 책을 읽고, 자료를 조사하고, 주변 사람과 토론하며 성장할 기회가 있었다. 자신의 의견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를 찾고, 근거를 바탕으로 자신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펼치려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보통 우리는 고등학교 때까지는 정해진 시간표대로 수동적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대학생이 되면 스스로 수업 시간표를 짜고 학습 계획을 세워야 한다. 교육 선진국처럼 우리도 어릴 때부터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책임을 지려는 자세를 배우는 건 무리일까? 아무래도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메타인지는 다행히도 후천적으로 기를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한다.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나는 게 아니라 자신의 노력으로 발현시킬 수 있는 능력이라는 말이다. 근데 우리는 자녀가 스스로 생각하기도 전에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개입하고 간섭하는 일이 많지 않나 싶다. 그건 오히려 메타인지 발달에 방해가 되는 일이다.
반면 《나는 천천히 아빠가 되었다》의 저자인 이규천 작가의 교육철학이 눈에 띈다. 그는 책을 통해 성장과 자녀 교육에 대한 부모의 자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성장은 여러 종류의 에너지가 충돌하여 일으키는 변화다. 화살은 과녁에 명중시키기 위해 쏘지만, 그 결과는 날아갈 때 바람이 부는 방향에 따라 달라진다. 물론 명사수는 바람의 세기와 방향까지 감안해서 화살을 쏜다. 그러나 우리는 명사수가 아니고 바람에 따라 원치 않는 방향으로 날아가는 일을 숱하게 경험한다.”
실제 그는 이런 교육철학을 바탕으로 두 자녀를 훌륭하게 키웠다. 그 주인공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가수이자 법조인인 이소은과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이소연이다. 이규천 작가의 방목 교육철학은 한 마디로 ‘기다림의 미학’이다. 그는 방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방목은 무관심이나 무절제가 아니다. 오히려 드러나지 않게 아이들의 본성과 독특함을 최대한 보장하고 유지해주려는 세심한 배려다.” 이렇듯 그는 방목의 교육철학을 통해 자녀들이 충분히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일본 어린이재단의 후원자를 모집하는 일본 광고협의회의 공익광고를 바탕으로 삼은 『검은색만 칠하는 아이』라는 그림책이 있다. 미술 시간에 다른 아이들은 자유롭게 알록달록한 색깔로 칠하며 그림을 그린다. 하지만 미카엘은 하얀색 도화지에 가득히 검은색 크레파스로만 색을 칠하고 있다. 그것도 여러 장에 그렇게 했다. 선생님은 걱정스럽게 미카엘을 바라보았다. 나중에 검은색 종이를 모아보니 커다란 검은 고래 그림이 완성되었다. 만일 교사가 종이 한 장에 그려진 ‘결과’에만 집중했다면 과연 미카엘은 그림을 완성할 수 있었을까?
누군가 바보는 ‘모르는 걸 아는 척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천재는 역으로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라고 했다. 중국 고대 사상가 공자도 “지지위지지부지위부지(知之爲知之不知爲不知)”라고 했다. 세계 4대 성인이라 불리는 두 사람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에 대해 스스로 알아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두 성인이 강조한 것은 현대에서 말하는 ‘메타인지’와 같다. 이처럼 자신이 모르는 것을 인정할 줄 알 때 성장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알고 있었으니 그들은 진정한 성인이라 부르는 것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