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를 아는가?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에서 ‘프로’는 프로페셔널(professional, 전문가)의 준말로, 그 어원은 ‘선언하는 고백’이란 뜻의 라틴어 프로페시오(Professio)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 자신의 지식을 고백할 수 있을 정도의 경지에 오른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 ‘프로’라는 말은 19세기 후반부터 주로 사용되기 시작되었고, 고대 프랑스어로는 프로페스(profess)다. 이는 ‘공공연히 말하다’라는 뜻으로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을 의미한다.
반면 ‘아마추어’는 라틴어 아마토르(amator)에서 유래했고, '애호가', '좋아서 하는 사람'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고 했다. 영어로는 ‘러버(lover)’로 직업 또는 물질적인 보수보다는 행위 자체를 즐기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아마추어의 경우에는 전문성이 있어도 자신이 만족하는 수준에서 즐기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프로는 좋든 싫든 끝까지 일에 책임을 지지만, 아마추어는 재미나 즐거움의 요소가 없으면 안 하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이기주 작가는 프로와 아마추어를 판가름하는 기준은 기술의 차이가 아니라 태도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우리는 직업을 선택하고 그 분야에서 활동하면서 ‘프로’가 되어야 한다.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을 정도로 수준 높은 전문성을 갖추고,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해서는 끝까지 책임을 지는 태도도 갖추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 이유는 단순히 좋아서 선택한 취미가 아니라 전문성을 갖추어야 하는 직업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어떤 분야에서 일을 시작하고 3년 정도 지나면 우리는 자신의 업무에 익숙해지고, 다른 사람과 비교했을 때 보다 ‘전문가’다워질 수 있다. “서당 개 삼 년에 풍월을 읊는다.”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근데 가슴에 손을 얹고 정말 내가 전문가다운지 한 번 생각해보길 바란다. 만일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면 전문성 함양을 위해 지금부터라도 노력해보자.
교사는 3년이 지나면 1급 정교사 자격연수를 받는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정교사로 임용된 경우만 1급 정교사 자격연수를 받을 수 있었다. 지금은 기간제(계약직) 교사도 경력이 3년이 지나면 자격연수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참고로 사범대를 졸업했거나, 교직 이수를 했거나, 교육대학원을 졸업하면 정교사 2급 자격증을 받는다. 이 자격증은 교사로서 일할 수 있는 최초의 자격을 증명한다. 그리고 3년이 지나면 교사로서의 전문성을 갖춘 1급 정교사가 될 수 있다. 호봉도 연수 종료와 함께 바로 1호봉 오르고, 다양한 전문 분야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
안타깝게도 나는 3년이 지났는데도 1급 정교사 자격연수에 갈 수 없었다. 기간제(계약직) 경력을 포함해서 3년이 지났는데, 학교 측에서 이를 간과하고 해당 사항이 없다고 교육청에 보고한 것이다. 나중에 내가 알아봤을 때는 이미 보고 후라 어쩔 수 없었다. 공립학교에서는 이런 일이 발생했을 경우 실제 민사소송까지 간다. 그래서 이를 예방하고자 교육청에서 철저하게 대상자를 파악한다. 나는 사립학교에 있고 평생 함께해야 하는 사람들한테 이런 일로 소송까지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쉬움이 많이 남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런 일로 얼굴 붉히고 불편한 관계가 되는 것보단 이해하고 잘 지내는 게 옳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근데 호봉이 바로 올라가지 않아서 손해인 돈 몇백만 원은 그렇다고 쳐도 나중에 전문성 함양이라는 부분에서는 자격을 얻지 못해 속상한 일이 많았다. 영어 과목이라 관련한 전문성 심화 연수라든가, 평가와 관련된 활동을 해볼 기회가 있었지만, 1급 정교사 자격이 되지 않아서 모두 시작할 수 없었다. 막상 자격이 되었을 때는 경력 기준이 변경되어 또 참여할 수 없었다. 그때마다 제때 1급 정교사 자격을 받을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렇다고 계속 남을 탓하고, 지난 일을 후회하며 지낼 수는 없었다. 꼭 공식적인 활동이 아니더라도 혼자서 할 수 있는 활동을 찾기 시작했다. 영어교사로서 갖추어야 할 전문성이 무엇일까 고민하며 주변을 살폈다. 우선 영어교사로서는 영어와 교육과 관련된 분야에 전문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교사로서 1순위는 수업이라고 많은 선배 교사들이 강조했기 때문이다. 수업이 제대로 되어야 아이들이 신뢰하고 따르니 수업에서 인정받아야 한다. 아무래도 내가 근무했던 곳은 모두 인문계였고, 지금은 특목고에 있으니 수업에서 인정받지 못하면 학생들이 생활지도나 다른 면에서 신뢰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교직을 시작하고 3년 동안은 학생들 수준에 맞는 영어교재 개발에 힘썼다. 학생들의 니즈를 파악하며 도움이 될 만한 자료를 수집하고, 학생 수준에 맞게 바꾸려고 노력했다.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근무하다가 특목고로 오면서 수업 대상이 달라지면서 교재 개발에 대한 노력은 계속되었다. 수업 방식도 학생들 수준과 요구 사항에 맞게 바꾸려 노력했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학교를 옮겨서는 학생들 수준을 정확히 알지 못해 한 학기 동안은 수업 방식을 바꿔가며 진행해서 학생들이 만족하지 못했을 수도 있을 거 같다. 그래도 계속 나은 수업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고, 나아질 수 있었다.
수업 콘텐츠, 수업 방식에 대한 꾸준한 고민 속에 또 다른 분야에 관심이 생겼다. 평가 관련 분야였다. 수시로 대학 가는 시대라 내신 성적에 학생들이 매우 민감했다. 행여나 평가에 오류가 있으면 교사는 학생들의 불신을 감당해야 했다. 이 일이 반복되면 교사로서의 전문성에 오점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가 관련 기관에 연수를 신청해서 듣기도 하고, 실제 평가 위원으로 참여하기 위해 문을 계속 두드렸다. 경험보다 더 큰 가치는 없다고 생각했다. 나도 나름대로 어느 정도는 수업이든 평가든 전문성을 갖췄다고 생각해서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싶었다.
그렇게 계속 평가 관련한 전문성을 위해 문을 두드렸더니 운 좋게 하나둘 기회가 생겼다. 근데 아무리 전문성 함양을 위해 활동하더라도 학교의 허락이 없으면 불가했다. 특히 한 군데는 정말 경험해보고 싶은 기관이었는데, 날짜를 보니 방학 이틀 전부터 시작이었다. 일정에 학기 중 이틀이 걸쳐 있어서 학교에 혹시 누가 될까 조심스럽게 허락을 받으러 갔다. 그 전년도에도 활동하신 분들이 있어서 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과는 참담했다. 그 해부터는 학기 중에는 선생님들 외부활동을 하지 않게 할 계획이라고 했다.
다음 해에는 다행히 방학 때 일정이 나와서 평가 관련 일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 후 계속 기회가 되어 여러 번 참여하면서 평가 분야에 대한 자신감도 생기고 전문성도 더욱 향상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개인적으로도 큰 도움이 되었지만, 학교에 돌아와서 다른 교사분들의 평가 문제를 검토하며 더욱 첨예한 의견을 제시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내가 가르치는 교과목에서는 조금이나마 평가 신뢰도가 높아질 수 있었다는 말이다.
전문성을 인정받는다는 건 사실 타인의 평가를 통해 이루어진다. 내가 아무리 잘났다고 하더라도 인정받지 못하면 전문가가 아닐 수 있다. 그래서 공식적인 활동이 필요하고, 더욱 성장할 수 있는 더 큰 경험이 필요하다. 실제 평가 관련 활동하고 나서 지원했던 다른 기관에서도 요청이 들어왔다. 근데 학기 중이라서 모두 갈 수가 없었다. 그중엔 더 큰 평가 기관도 있어서 욕심부리고 싶었지만, 개인의 욕심을 위해서 학생에게 그리고 학교에 피해를 주고 싶지는 않았다.
이처럼 전문성을 기르기 위해 노력하면서 개인적인 성장도 있지만, 내 주변 집단의 전문성도 함께 올라가는 경향이 있다. 또한, 전문성 함양과 관련된 활동을 하면서 또 다른 기회가 생기고 더 크게 성장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누군가에게 전문가라는 인식이 심어지면 그 효과가 지속하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효과는 ‘후광 효과’라고 부른다. 한번 브랜드에 대한 신뢰가 쌓이면, 소비자들은 다음부터는 어떤 상품이 나오더라도 신뢰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과 같다. 전문 분야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라는 인식이 생기면 다른 곳에서도 그 전문가를 부르려고 하는 이치와 같다.
한 분야에서 여러 해 일을 하고 있다면 전문성 함양을 위한 고민을 진지하게 해 보라고 하고 싶다. 처음에는 조금 더딜 수 있지만, 조금씩 얻게 된 기회를 통해 자신의 전문성을 신장할 수 있다. 나아가 그 분야의 전문가로 인식이 잡히면서 더 큰 기회를 통해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는 확률도 높아진다. 어떤 분야에 조금 늦게 발을 들였지만, 꾸준하게 기회를 통해 성장하면서 전문가라는 인식을 얻게 된 사례도 있다.
50세라는 늦은 나이에 서양화 분야에 ‘아마추어’로 활동을 시작해서 ‘프로’로 성장한 일화도 있다. 30년 동안 가족만 뒷바라지하던 주부로 살아온 한 여성은 갱년기가 오면서 우울감을 겪었다. 예상치 못한 수술을 하면서 삶에 대한 회의를 느꼈다. 그때 자신의 삶에 변화를 주고자 동네의 평생교육 기관에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림을 그리며 감정도 다스리고, 금방 실력이 향상되면서 자신감도 되찾았다. 운명인지 몰라도 취미로 시작한 그림이 좋아졌다. 그래서 좀 더 전문 기관에서 ‘서양화’를 배우게 됐다.
서양화에서 알아주는 유명한 교수님을 만나면서 이 여성은 ‘아마추어’에서 ‘프로’의 길로 전향하게 되었다. 매일 4시간 이상 하루도 빠짐없이 10년간 그림을 그렸다. 개인적인 소질도 있었지만, 꾸준한 노력을 통해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여러 미술협회 대회에 작품을 출품하면서 여러 차례 수상했다. 그러다 한 단체에서는 심사위원으로부터 호평을 받으며 협회 이사 자리를 제안받았다. 그 후론 ‘서양화’를 가르치는 강사로 활동하며 ‘프로’의 길에 들어서게 됐다.
이 사례는 사실 내 어머니 이야기다. 30년 넘게 가족을 위해 희생과 봉사의 시간을 보내던 어머니께서는 50세쯤 건강이 악화가 되자 진지하게 자신의 인생에 대해 고민했다. 생각해보니 자신만의 삶이 없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가졌다. 다양한 분야가 있었지만, 서양화(유화) 분야가 끌렸다. 동네 교육기관에서 소소하게 그림을 배우다 재능을 발견한 강사의 추천으로 ‘서양화’의 대가 김일해 교수님한테 그림을 배울 수 있었다. 교수님도 어머니의 재능을 발견하고, 꾸준한 노력을 인정했다. 그 결과가 아마추어가 프로가 된 것이다.
전문성을 기르는 일은 이처럼 재미로 시작해서 직업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니 내가 일하고 있는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는 건 더 유리할 수 있다. 다만 관심을 가지고 실천하느냐의 문제다. 나의 어머니의 인생 2막 도전은 50세부터였다. 10년 가까이 꾸준하게 전문성 신장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셨고, 그 결과 늦게나마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뤘다. 한 가지 아쉬운 건 어머니도 조금 더 일찍 시작하셨으면 더 활발히 활동하실 수 있었을 텐데 하는 거다. 어쩌면 청출어람(靑出於藍) 했을지 누가 알까.
청출어람(靑出於藍)이란 말은 ‘푸른색은 쪽(藍)에서 나왔지만, 쪽빛보다 더 푸르다’라는 뜻이다. 제자가 스승보다 더 나음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성악설(性惡說)을 창시한 중국 전국시대의 사상가 순자(荀子)의 사상을 집록한 『권학편(勸學篇)』에 나와 있다. AMD 사례가 바로 그것이다. 90년대 중반까지 AMD는 인텔 제품을 흉내 낸 값싼 제품을 공급했다. 인텔이 새로운 칩을 선보이면 AMD는 몇 달 간격을 두고 비슷한 성능의 제품을 인텔 칩보다 싼값에 내놓았다. 그런 방식으로 점유율을 서서히 높여갔다. 하지만 인텔은 AMD가 통제 가능한 경쟁사였기에 크게 의식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컴퓨터 중앙처리장치(CPU) 성능의 선두주자로 수십 년 독재하며 기존의 방식을 고수했던 인텔은 AMD에게 자리를 내주는 일이 벌어졌다. 최근 인텔이 7나노(nm) 중앙처리장치(CPU) 생산 일정을 또다시 미뤘기 때문이다. 경쟁사 AMD는 이미 7나노 제품을 내놓고 있지만, 인텔은 초미세 공정에서 뒤처지는 모습을 보였다. 이로 인해 인텔 시장 점유율은 날로 줄어들고 있다. 이처럼 실제 청출어람(靑出於藍)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처음엔 내가 더 많이 알고 전문가라고 할지라도 변화하지 않으면 더 열심히 변화하고 성장하는 누군가에게 그 자리를 내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성에는 끝이 없다. 산에 비유해보면 알 수 있다. 산 정상에 오르면 우리는 끝이라 생각한다. 근데 사실은 더 높은 산이 많이 있다. 내가 이룬 경지가 최고가 아닐 수 있다는 말이다. 아무리 최고의 경지에 오르더라도 더 오르지 않으면 내려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금 전문가라도 할지라도 계속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 세상의 과학과 기술을 급변하고 있다. 기존에 아무리 좋은 방식도 시간이 지나면 옛것이 된다. 물론 옛것이 꾸준히 지속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나은 방향으로 진화한다. 전문성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것과 융합하여 더 나은 것을 추구한다. 그래서 완벽은 인간이 이룰 수 없는 목표인가 보다.
사실 교사로서 3년 정도면 수업, 업무, 생활지도, 상담 등 어느 정도 전문성을 갖출 수 있다. 그 이상으로는 자기 계발을 특별히 하지 않더라도 직장생활에는 큰 무리가 없을 거다. 물론 지금같이 갑자기 코로나 사태가 벌어져서 미디어를 활용한 교육을 새롭게 연구하는 일도 생길 수 있지만 대부분 몇 년 동안 쌓은 방법으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내가 어떤 분야에서 어느 정도 경지에 올랐을 때가 가장 위험한 시기라고 말이다. 오히려 그때 내가 진정한 전문성을 갖추었는지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설프게 아는 것이 오히려 전혀 모르는 것보다 독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잘못 배웠다면 더욱 그렇다.
평가 관련 활동을 하며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지식이 부족함을 느끼며 나의 자만심에 대해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관련한 공식 활동을 통해 더 높은 수준으로 실제 평가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전문성을 기를 때는 올바른 방법으로 배워야 한다. 모차르트도 음악을 배웠던 사람들에게는 더 비싼 교육비를 받았다고 했다. 처음부터 잘못 배운 방법을 뜯어고치는 일이 더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문성에 대한 도전은 필수적이면서도 올바른 방법으로 접근해야겠다는 게 나의 결론이다. 지금 자신의 위치에 만족하고 머물기를 바란다면 다시 생각해보길 바란다. 내 생각과는 달리 내가 전문가가 아닐지도 모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