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느냐 계속 가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시련을 겪는다. 그때마다 포기할 것인가 다시 일어나 도전할 것인가 고민한다. 현대그룹 창시자인 (故) 정주영 회장의 자서전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에서 그는 “나는 생명이 있는 한 실패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살아 있고 건강한 한, 나한테 시련은 있을지언정 실패는 없다. 낙관하자.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라고 말했다. 그렇기에 우리는 시련을 겪었다고 포기할 필요가 없다. 실패는 포기했을 때 쓰는 말이다. 포기하지 않는 한 우리에겐 실패란 없다.
포기와 도전은 사실 한 끗 차이다. 그것은 내가 목표로 하는 일을 멈추느냐 아니면 계속 도전하느냐의 문제다. 에디슨도 2000번의 실패가 아니라 2000번의 단계를 통해 전구를 개발했다고 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죽는 날까지 도전을 멈추지 않으면 포기하지 않은 것과 다름없다. 비록 조금은 계획한 만큼 결과를 만들지 못했어도 거기서 멈추지 않으면 포기한 게 아니다. 그러니 힘든 상황에 놓이더라도 죽기 전까지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음악의 어머니’라 불리는 독일의 작곡가 헨델이 그의 대표작 《메시아》 작곡한 것은 의사로부터 죽음을 선고받은 후의 일이다. 《메시아》는 런던에서 처음 공연되었을 때 왕이 감격한 나머지 벌떡 일어났고, 다른 사람들도 왕을 따라 일어났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다. 만일 그가 그때 절망감에 빠져 음악을 포기했다면 과연 우리는 지금 헨델의 <메시아>를 들을 수 있었을까? 당연히 아니다. 포기하지 않고 남은 삶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명작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거다.
고대 그리스의 작가 호메로스는 시각장애인이었다. 그런 그가 쓴 수천 년 세월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고의 문학 작품으로 손꼽히는 영웅 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유럽 문학의 효시가 되었다. 셰익스피어에 버금가는 대시인으로 평가되는 영국 시인 존 밀턴도 완전히 시력을 잃었지만, 굴하지 않고 딸의 도움을 받아 불후의 명작으로 꼽는 《실낙원》을 내놓았다. 단테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작가로서 중세 최고의 서사시 《신곡》을 썼다. 그도 27세에 잠시 시력을 잃었지만 회복을 위해 힘써서 시력을 되찾고 추후 명작인 《신곡》을 완성했다.
이처럼 세계 3대 서사시 작가인 호메로스, 밀턴, 단테는 모두 시력을 잃고 시각장애인으로 살았지만 깊은 절망에도 포기하지 않고 남은 자신의 삶을 더 가치 있게 만들기 위해 도전했기에 그들은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메시지를 던진다. 내 삶에 위기와 절망의 순간이 왔다고 포기자로 살 것인가 아니면 다시 훌훌 털고 일어나서 도전자로 살 것인가 말이다. 우리의 삶은 유한하기에 더 가치가 있지 않을까? 내가 큰 실패를 경험했다고, 큰 역경을 겪고 있다고, 절망에 빠졌다고 절대 포기하지 말고, 다시 일어서서 도전하는 도전자가 되어보는 건 어떨까?
미국 NBA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은 포기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장애물을 만났다고 반드시 멈춰야 하는 것은 아니다. 벽에 부딪힌다면 돌아서서 포기하지 말라. 어떻게 벽에 오를지, 벽을 뚫고 나갈 수 있을지, 또는 돌아갈 방법은 없는지 생각하라.” 사실 그는 그가 그렇게 사랑하는 농구를 포기할 뻔했다. 1993년 아버지의 피살이라는 비극에 충격을 받고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자신의 커리어 정상에서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근데 그는 그렇게 농구를 포기할 뻔했다.
사실 이는 아버지가 좋아하는 야구라는 추억이 담긴 스포츠로의 도피였다. 하지만 그는 농구를 그리워했고, 1년 반에 다시 복귀하여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잠시 농구 경력에 공백이 있었지만, 그는 다시 개인의 기록과 팀 모두 정상에 올려놓고 1999년에 두 번째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2001년 39세 나이로 농구 코트에 복귀하며 재도전을 시작했다. 나이가 많아서 예전의 기량을 선보이지 못할 것이라 믿은 사람들은 오히려 지난 시절 쌓아온 명성에 먹칠하는 게 아니냐 우려했다.
물론 예전만큼의 기량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2003년 마지막 은퇴 때까지 40세 나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잘 뛰었고 대기록도 남겼다. 40세를 넘긴 마지막 시즌에서도 모든 경기 평균 37분 출전을 했고, NBA 통산 경기당 30.1점, 플레이오프 평균 득점 33.4점 1위라는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만일 그가 나이가 들었다고, 잠시 농구를 쉬었다고 그대로 농구를 포기했다면 그의 업적은 남았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는 나아가 실패와 성공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농구를 시작한 이래 9,000번 이상의 슛을 놓쳤다. 나는 거의 300번의 경기에서 졌다. 나는 26번의 경기를 결정짓는 위닝샷을 놓쳤다. 나는 실패하고, 실패하고, 또 실패했다. 그것이 내가 성공한 이유다.” 그는 비록 실패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실패를 타산지석(他山之石) 삼아 다시 도전하고 또 도전했다고 말하고 있다. 실패했다고 바로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도전하고 성장하면서 성공의 길로 나아간다는 뜻이다.
우리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유명한 예술가들도 운동선수도 모두 실패와 역경이 왔다고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고 성장하며 역작을 남기거나 대기록을 세웠다. 근데 우리 주변에서도 포기를 모르고 도전하면서 새로운 역사를 쓰는 사람이 있다. 비록 나는 이루지 못했지만 대리 성공의 기쁨을 느끼게 해주는 사람이 있다.
나는 한창 셰익스피어 영어연극을 하며 영국 영어의 매력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나중에 영국 영어와 관련된 영상을 찾아보다가 “코리안 빌리”라는 유튜브 채널을 알게 됐다. 미국 영어와 영국 영어 발음을 비교하며 영국식 강세를 매우 똑같이 흉내 내는 모습에 매료되어 내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손님으로 초대해서 인터뷰했다. 영국 영어에 관한 이야기도 질문하고, 그의 인생에 관해서 물으며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방송 관련 일을 목표로 하고 있던 “코리안 빌리” 공성재 씨는 계속 취업의 문을 두드렸으나 계속 떨어졌다고 한다. 반복되는 취업 실패로 인해 그는 처음에는 좌절했지만, 털고 일어나 개인이 직접 방송을 제작해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리곤 대학교 시절 방송부에서 닦았던 영상 기획 및 편집 실력을 바탕으로 자신이 관심 가졌던 “영국 영어”와 관련된 콘텐츠를 만들고 유튜브에 꾸준히 영상을 올렸다. 비록 취업은 포기했지만, 새로운 방법으로 자신의 진로를 개척하는 도전을 선택했던 거였다.
물론 처음부터 영상에 대한 좋은 반응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근데 자신이 교환학생으로 있었던 리버풀 지역 사투리를 다시 연구해서 올린 영상이 인기를 끌게 되면서 그동안의 노력이 빛을 발했다. 교육 콘텐츠로 유튜브에서 성공하기란 쉽지 않은데 포기하지 않고 다시 도전을 선택한 그는 영국 공영 방송인 BBC에까지 출연하는 영광을 누린다. 물론 ‘영국 영어’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가장 밑바탕이지만, 취업에 실패했다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 자신의 관심 분야와 연계하여 새로운 도전장을 내민 게 인생 역전으로 이어졌다.
내 주변 가까이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보인다. 대기만성(大器晩成) 형인 나의 여동생은 법학과를 나와서 법원직 공무원을 여러 해 준비했다. 워낙 소수를 뽑기도 하고 합격 컷도 높아서 계속 낙방하며 고배를 마셨다. 설상가상으로 아버지께서 퇴직하시면서 동생은 20대 내내 목표로 삼았던 시험을 그만두고 취업을 결심했다. 근데 시험만 준비하느라 경력도 없고, 어학 점수도 없고 스펙이라고는 그 어느 것도 없었다.
그렇게 한 달 동안 계속 지원했지만, 서류평가에서조차 연락 한번 오지 않았다. 시험도 포기했는데, 취업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경력도 없는데 20대 후반이라는 나이도 계속 걸림돌이 되는 것 같았다. 근데 그때 할 수 있는 건 포기하지 않고 계속 지원해보는 일이었다. 취업하지 않으면 지방으로 내려가시는 부모님을 따라가야 했기 때문이다. 사실 동생은 멋진 커리어 우먼을 꿈꿨다. 또한, 나이 많은 여자라서 취업 못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울며 겨자 먹기’ 심정으로 자신의 전공과 관련된 직장에 계속 입사 지원서를 넣었다. 서류평가에서조차 수없이 떨어져 보니 담담해졌다. 100개를 넣어도 1개라도 받아주는 곳이 있으면 취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달 동안 정말 100개 가까이 원서를 넣었는데, 계속 떨어지다가 운명 같은 날이 왔다. 세 군데서 면접을 보자고 연락이 왔다. 근데 모두 같은 날 면접을 보자고 했다. 그래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하루 내내 면접을 보러 다녔다.
비록 서류에서 내세울 건 ‘법학과’라는 전공, 성실함을 나타내는 ‘장학생’ 이 두 가지 장점 말고는 없었지만, 면접을 대하는 태도와 전공과 관련된 지식은 남달랐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면접 결과는 모두 좋았다.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힘든 하루였지만 세 군데 모두 합격 통지를 받았다. 처음엔 어디라도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결국은 가장 좋은 곳을 골라가게 됐다. 게다가 업무 능력이 매우 뛰어난 상사를 만나서 업무적으로 급격하게 성장했고, 인간관계에서도 신뢰를 쌓았다. 그래서 30대 초반이지만 능력을 인정받아 이른 나이에 ‘사무장’으로 법무법인에서 일하며 인정받는 커리어 여성이 되었다.
만일 동생이 자신은 나이도 많고 쌓아 놓은 경력이 없다고 그대로 포기하고 지방으로 부모님을 따라갔다면 지금의 성과를 이룰 수 있었을까? 이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는 용기가 가져온 결과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으로는 황당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동창에게는 포기가 아니라 도전이 그의 인생을 바꾸었기에 공유하고 싶다.
중학교 때 일진들과 어울리며 공부를 전혀 안 하던 친구가 있었다. 나는 그때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었다. 5년이 지나 우연히 대학교에서 그 친구를 만났다.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것 같았다. 반에서 앞에서 1등 하던 놈이, 뒤에서 1등이 하던 놈과 같은 대학교에 다니고 있었으니 말이다. 근데 더 웃긴 건 알고 보니 그 친구는 재수하지 않고 바로 대학에 입학했고, 나는 재수를 했다. 그땐 우연히 지나가다 만난 거라 많은 이야기를 못 나누었다. 10년 후 다시 우연히 그 친구를 어느 헬스장에서 만났다. 나는 그때 대학원 졸업하고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취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근데 그 친구는 졸업하자마자 좋은 직장에 정규직으로 취업했고, 심지어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계속 인연이 닿으니 친구와 식사하며 대화를 나눌 일이 있었다. 비록 중학교 때는 정신 못 차리고 방황했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이렇게 살다가는 쓸모없는 인간이 되겠다 싶었다고 했다. 그때부터 정신 차리고 공부를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적어도 세상에서 자기 자신 앞가림하는 사람으로 살자는 생각으로 할 수 있는 일에 도전하다 보니 대학교 다니고, 직장도 다니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남들처럼 평범하게 삶을 살고 있게 되었다고 했다. 처음엔 자기 자신만이라도 떳떳하게 살자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한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이 되어있었다고 했다.
주변엔 공부가 자신의 체질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근데 사실은 모든 게 다 공부다. 내 친구도 처음엔 공부가 자신의 길이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배움의 길에 도전했다. 그리고 전공과는 관련 없는 직장에 취직해서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새롭게 일을 배우며 살고 있다. 공부가 어렵다고 포기하고, 일이 어렵다고 포기하고, 인간관계가 어렵다고 포기하면 우리는 말 그대로 실패한 인생을 살게 된다. 나도 몇 년 전 책을 쓰겠다고 설치고 결국은 잠시 포기했었다. 근데 지금 이렇게 포기하지 않고 다시 책 출간을 위해 글을 쓰며 도전하고 있으니 포기자가 아닌 도전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좋은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 믿는다.
유명한 사람이든 아니든 우리는 살면서 어렵고 힘든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다. 시각 청각 장애인으로 살았던 헬렌 켈러는 이런 말을 했다.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하지만, 그것을 극복하는 사람들로도 가득하다.” 그녀가 삶을 포기하지 않고 장애를 이겨내고자 했던 모든 도전은 그녀를 나은 방향으로 이끌었다. 그녀가 말한 것처럼, 우리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한다면 분명 지금보다는 나은 미래의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도 포기를 모르고 고통을 극복한 사람이 될 수 있다. 포기란 배추를 셀 때 쓰는 용어가 아닌가. 김장철이 아니라면 우리 인생에선 포기란 단어는 없어도 되지 않을까? 아무튼 포기자가 될 것이냐, 도전자가 될 것이냐 그것은 여러분의 몫이다. 잘 생각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