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심장이 뛰는 일을 찾아서
인간은 심장이 뛰지 않으면 죽는다. 그러니 심장이 뛰는 일이 찾아라.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이론과 실제의 괴리와 같다. 대학원에서 영어교육을 전공하면서 학생 중심 협동 수업이 대세라는 걸 알았다. 이론적으로는 능동적인 학습 방법이라서 학생들의 학습효과가 더 많다. 대학원 졸업 후 교사가 되어 야심 차게 배운 교육학 이론에 맞춰 수업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서는 대학입시를 준비하느라 학생 중심 수업보다는 강의식 수업이 더 효율적인 것처럼 보였다. 학생 중심으로 협동 및 토론 수업을 진행하기엔 학생들의 학업적 수준도 어느 정도는 있어야 했다.
이론이 아무리 좋은 거라도 실제 상황을 고려하지 않으면 좋은 이론이 될 수 없다. 아무리 이상적이라고 해도 현실에 적합하지 않으면 이상은 단지 이룰 수 없는 이상밖에 될 수 없다. 나는 교사가 되면 학생 중심의 수업을 하면서 학습 효과를 극대화하고 싶었다. 그게 내 이상이었다. 근데 현실을 반대였다. 학생들은 오히려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입시 위주의 강의식 수업을 선호했다. 나는 행정업무보다는 수업을 더 잘하고 학생과의 상담을 통해 진로 탐색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근데 담임교사가 아닌 부서에서 비담임 교사로 6년간 일하며 행정업무에 치여 살면서 내가 교사인지 행정직원인지 정체성 혼란만 왔다.
대학입시를 두 번이나 실패 후, 다시 살아갈 수 있었던 건 심장이 뛰는 일을 찾았기 때문이었다. 나처럼 힘든 시간을 보낼 수험생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다. 그래서 자살까지 생각했지만, 다시 살아보겠다고 결심했다. 학생들이 꿈과 미래를 현명하게 정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교사가 되기까지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근데 막상 교사가 되어보니 10년 동안 꿈꿨던 나의 이상은 현실과는 꽤 달랐다.
어려운 가정환경으로 인해 생활고를 면하고자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학교생활이 벅찬 아이, 심각한 우울증으로 학교에 다니는 게 두려운 아이, 성 정체성 혼란으로 남들한테 떳떳하게 밝히지 못하고 계속 혼자서 밖으로 도는 아이, 가정의 불화로 가출해서 한강 다리에 올라 자살 기도를 하는 아이. 심각한 스트레스로 발작을 일으키는 아이, 선천적으로 약한 장기를 가지고 태어나 잘못되면 목숨까지 잃을 수 있는 아이. 학생에게는 공부가 전부라고 생각했던 나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았다. 학교는 공부를 가르치고, 진로 탐색하는 곳이라 생각했던 내 생각이 너무 짧았다.
그런 일들을 겪으며 나는 생각했다. 학교는 장소만 다를 뿐 아직 성숙하지 못한 아이들을 돌봐주는 또 다른 가정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꼭 공부를 잘해서 대학을 가고, 대기업에 취직하고, 혹은 전문직을 하고 그런 식으로 진로를 탐색하는 그런 곳이 아닌 걸 깨달았다. 학교는 사회로 나가기 전에 성숙해질 수 있도록 보살펴 주는 곳이다. 그러니 교사는 가르치는 스승이기도 하지만 우선 부모의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존감 높은 아이로 키우는 애착육아》의 저자 시어스 부부는 여덟 자녀를 키운 경험과 소아과 전문의로서 임상 현장에서 겪은 다양한 경험을 공유했다. 부모와 아이의 관계에서 강한 믿음과 신뢰를 느끼게 하고, 아이가 자라면서 대인관계를 형성하고, 사회에 적응하고,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도 수험생으로서 중요한 일이지만, 더 중요한 건 사회에 나가서 스스로 자신을 돌보며 살 수 있는 능력을 혹은 자신감을 길러주는 일이라고 말하는 게 아닐까 싶다.
사실 나도 올바른 교사의 역할에 대해 깨달은 건 얼마 되지 않았다. 고3 담임교사를 4년간 하면서 대학 때문에 울고 웃는 아이들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특히 대학이 인생의 전부라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그게 아니라고 알려주고 싶어서 어른 같은 부모 역할을 했더니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사실 나도 그 나이 때는 어른들이 하는 말이 와 닿지 않았다. 근데 나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아이들을 보며 어쩔 수 없는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아직 20대와 30대를 살아보지 않아서 눈앞에 보이는 대학입시가 전부다. 근데 막상 인생을 더 살아보면 대학이 전부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노력하며 살아가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공부를 잘하는 일, 돈을 잘 버는 일 모두 인생에 중요하지만, 더 큰 가치가 있는 건 내가 괜찮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일이다. 그리고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 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무엇이 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왜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물론 그게 쉽지 않다. 나는 교사로서 아니 학교에서 부모라고 생각하며 살려고 노력하는데 그렇다 보니 정말 어렵다. 집에서 자녀 둘을 키우며 정말 내 맘대로 안된다는 걸 느낀다. 근데 학교에서도 부모가 되려니 똑같은 상황이 벌어진다. 이왕이면 아이에게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주고 싶어서 가르치다 보면 그게 잘 안되기 때문이다. 차라리 아이의 마음을 더 헤아리고, 믿고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편이 나을 텐데 그게 마음처럼 쉽지 않다.
이렇게 고군분투하며 괴로워하는 나를 아끼는 몇몇 선생님들은 너무 애쓰지 말라고 조언을 건넨다. 본인도 그렇게 다 해봤지만, 나중에 상처 받는 건 노력해도 잘 안 되는 자신이라고 말하며 위로를 전한다. 나는 아직 내 심장이 하라는 대로 따르고 있지만, 그런 조언을 들을 때마다 조금씩 흔들리기도 한다. 과연 내가 지금 심장이 뛰는 일을 하는 게 맞나 하는 의구심이 든다. 20대에 10년 동안 꿈꿔온 일이고, 30대에는 10년간 그 꿈을 실현하고자 노력하면서도 가끔 자괴감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한 명의 아이라도 살릴 수 있다면 말이다.
지인 중에 남들이 부러워하는 외국계 대기업을 그만두고, 심장이 뛰는 일을 찾아 진로를 전향한 사람이 있다. 영어를 가르치고 싶어서 회사에 다니면서도 동호회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꿈을 키웠다. 실제 몇 년간 철저하게 준비해서 영어 강사의 길로 뛰어들었다. 누가 들으면 그 좋은 직장을 두고 왜 그런 선택을 했냐고 물을 수 있다. 하지만 그는 다만 ‘심장이 뛰는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라 대답할 뿐이다. 과연 그는 성공했을까?
지금 말한 사람은 ‘케쌤닷컴’ 대표다. 온라인 기반 1인 기업을 설립해서 영어 강사로 활동하다가 대형 어학원에서 대표 강사로 17년간 자리를 유지했다. 이 정도면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 비결이 궁금해서 인터뷰한 적이 있다. 사실 그는 영어 강사지만 인생을 조금 더 살아본 선배로서 혹은 친구로서 학생들에게 인생 경험을 공유하며 소통을 강조했다. 영어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에 적응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을 알려주려고 했다.
그는 수업만 하는 ‘강사’가 아니라 ‘스승’이 되려고 했다. 사전을 보면 스승은 ‘가르쳐 올바르게 이끄는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나와 있다. 그러니 학생들은 영어도 배우고 인생도 배우는 케쌤의 수업이 즐겁고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이런 훌륭한 스승이 있는 사교육 현장을 보며 다시 공교육 현장인 학교로 돌아와 교사의 역할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다.
교사(敎師)라는 어휘에서 ‘사(師)’자는 ‘스승 사’ 자다. 그래서 처음에 나는 가르치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스승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근데 지금은 조금 더 발전해서 ‘부모’라는 역할을 더하여 도전하고자 한다. 개인 사정이든, 가정 사정이든 아무런 문제가 없는 아이들에게는 스승의 역할로도 충분히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핍이 있는 아이들에게는 내가 진짜 부모는 아니지만 충분한 이해와 관용과 사랑을 나누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부끄럽지만 내 말을 너무 안 듣는 아이들을 미워하기도 하고, 조금 거리를 두기도 하고, 적당히 내가 책임질 일에만 최선을 다하며 합리화했었다. 근데 내가 교사로서 심장이 뛰는 일은 수업을 잘해서 박수를 받을 때가 아니다. 가출해서 한강 대교에 올라가 뛰어내리려다가 친구들과 선생님이 떠올라서 돌아왔다는 말을 들을 때, 건강이 좋지 않아서 쓰려졌지만 내가 심폐소생술로 살렸을 때, 성 정체성 혼란이 있지만, 나한테만 비밀을 말한다며 털어놓을 때 그럴 때마다 내 심장은 뛰었다. 사소하지만 진심으로 한 아이의 미래를 걱정하며 졸업을 권유하고 설득했을 때, 그 진심을 알아주고 끝까지 함께 노력해줄 때 그럴 때 나는 내가 교사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학벌, 출신, 스펙이 중요한 사회지만, 서류에 적힌 내용보다 실제 사람의 업무 능력, 대인관계, 인성 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가 왔으면 하는 마음이다. 가끔 내가 이렇게 이상이라고 생각하는 걸 실천하는 기업을 볼 때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한 예로 ‘사다리 필름’이라는 영상 기획, 제작, 판매하는 기업은 실제 학벌, 스펙보다는 자기소개서를 통해 실무경험, 올바른 가치관, 기업에 맞는 사람의 성향 등을 고려하여 채용한다.
이 기업은 사실 우리에겐 국민 EBS 영어 강사로 알려진 ‘문단열’ 선생님이 대표로 운영하는 곳이다. 수십 년간 영어 교육계에 한 획을 그은 전문가가 ‘미디어와 마케팅’이라는 분야로 종목을 바꾼 일도 큰 이슈였다. 사실 말만 들어도 큰 도전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근데 인생 2막을 새로운 도전과 함께 심장이 뛰는 일을 찾았다고 했다. 항상 ‘롤모델’이었기에 그의 행보를 지켜보던 나로서는 비전공, 비석사, 비유학파 출신이지만 이미 성공한 그가 이번 분야에서도 잘 해낼 것이라 믿었다.
무엇보다 기업의 규모를 키우고자 직원을 채용하는 방법에서 나는 큰 씨앗을 보았다. 비록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일할 기회가 있다는 건 희망적인 일이다. 꼭 대학에서 전공하지 않더라도,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새로 배우고 실제 업무 능력을 키워서 도전할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이 사례가 좋은 본보기가 되고, 점차 사회도 열린 마음으로 이런 사례를 더 많이 만들어 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 책을 쓰는 이유도 나도 그런 분위기를 만드는 한 사람으로서 동참하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인생은 대학이 전부가 아니야.”, “꼭 명문대가 아니어도 괜찮아.”, “한두 번 실패했다고 포기하지 마.”, “실패는 성공으로 가는 과정일 뿐이야.”, “너 혼자가 아니야.”, “너는 해낼 수 있어.”, “너무 걱정하지 마.”, “너는 충분히 가치 있는 사람이야.”, “아직 늦지 않았어.”, “지금부터 다시 시작해보자.” 등과 같은 말들을 하고 싶다. 이 말들을 듣고 한 명이라도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고 한다면 내 심장은 계속 뛸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심장이 뛰지 않으면 죽는다. 그래서 우리는 살면서 심장이 뛸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