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번 : 내면의 호수 위에 표류하는 사람들

내면의 숲에서

by 몽연

우리는 8번의 왕국을 나와 지금 플랫폼에 다시 서 있다. 우리가 다음으로 갈 곳은 9번의 세계이다. 지금과는 사뭇 다른 느낌일 것이다. 느긋하고 여유로운 곳이니 이전처럼 긴장할 필요는 없다.


숲 길

자연으로 가득 찬 이곳이 바로 9번의 내면세계이다. 바람 소리와 새소리가 평화로운 이곳이 저기 서 있는 9번의 세계이다. 우리가 눈이 마주치기 전까지 저 멀리서 눈치만 보다, 그와 약간의 어색한 눈인사를 하고 나서야 이쪽으로 다가온다. 9번은 우리가 만났던 8번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지 않는가. 이곳에서는 입국 심사도 필요 없다. 누구나 그의 영역에 편하게 다가갈 수 있으며, 9번 역시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친절하다. 그것이 이곳의 매력이다.


이 울창한 숲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우리는 9번이 지내고 있는 호수가 나온다. 그곳의 풍경은 당신이 분명 좋아할 것이다. 그곳은 고요하고 편안하다. 주의할 점이 있다면 호수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좋다. 본능역에서 이야기해 주었 듯 그들의 영역에 함부로 발을 들이는 것은 위험하다. 그 ‘호수’는 9번의 평온한 마음이며, 자신의 공간을 뜻한다. 우리는 그 호수의 편안함이 제공하는 주변의 환경으로 만족해야 한다. 그와 더 가까워진다면 그 호수 위에서 함께 떠다닐 수는 있겠지만, 8번의 성에 들어서는 것 만큼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는 ‘자신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호수 위에 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룻배

9번은 호수가의 나루터로 향한다. 우리에게는 잠시 기다리라며 손짓하고는 배를 이리저리 옮기더니 노를 들어 저을 준비를 했다. 그리고 잠시 고민하다, 우리에게 배에 탈 것을 손짓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것이 내가 당신과 동행하는 이유이다. 그의 배에 타는 것은 어쩌면 8번보다 더 어려울지도 모른다.


마치 호수를 잠에서 깨우지 않으려는 듯 9번은 조심스럽고 섬세하게 노를 젓는다. 배는 호수의 중앙으로 이동한다. 그는 잔잔하게 깔린 이 물결 위에서 배를 띄워 살랑이는 바람의 살결을 즐긴다. 우리도 괜히 뒤척이다 그의 안식을 깨뜨리지 말자. 이 나룻배 위에서 나누는 9번과의 대화는 생각보다 즐겁다. 그는 혼자 이 배에 누워 많은 것을 생각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열성적이다. 그의 열정과 행동은 모두 안정된 나룻배 위에서 나오는 것이다.


파도

저기 손님이 온 듯하다. 멀리 보이는 호숫가에서 물장구를 치기 시작한다. 9번의 세계는 누구에게나 편하고 열려있지만 호수만큼은 아니다. 큰일이다. 나룻배는 그 물결에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고 9번의 얼굴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9번은 나룻배의 양 옆을 잡고 균형을 잡으려 애쓴다. 그럴수록 물결은 힘을 받아 더욱 세게 흔들린다. 맙소사. 선을 넘은 그들은 호수에 완전히 들어와 헤엄을 치기 시작한다.


그는 결국 눈을 질끈 감아버렸고 나룻배를 그들이 있는 곳에서 더 멀리 옮겼다. 그의 속마음은 분명 그들이 얼른 호수를 나가줬으면 하지만, 그는 눈만 감아버릴 뿐 그들에게 어떠한 대응도 하지 않는다. 이것은 결코 좋은 흐름이 아니다. 호수는 곧 9번의 마음이기에 변수의 파도에 흔들리기 시작한 호수는 걷잡을 수 없는 큰 파도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나룻배가 더욱더 넘실거리기 시작한다. 그들의 물장구는 그칠지 모르고 9번은 화가 가득 찬 얼굴로 더 세게 눈을 감고 있다.


마그마

풍덩! 아아, 결국 우리는 파도에 휩쓸려 호수에 빠지고 말았다. 갈등을 피하려는 그의 회피가 결국 내면에 가라앉아 있던 분노를 일깨웠다. 그것은 호수 밑의 마그마와 같다. 마그마의 지열은 점차 호수를 데우기 시작한다. 당장은 그 사실이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그 뜨거움은 호수의 물을 통해 천천히 전달된다. 저기서 아직도 헤엄치고 있는 사람들이 운이 나쁘게도 둔한 사람들이라면, 호수가 온천처럼 뜨거워져야 이상한 점을 알아차릴 것이다.


여전히 9번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호수 위에 누워 둥둥 떠 있을 뿐이다. 다만 눈을 감고 내면의 깊은 곳에서부터 화를 끌어올리고 있다. 그것이 폭발하기 전에 얼른 저들을 말려야 할 듯하다. 마그마가 호수로 터져 나오면 걷잡을 수 없게 된다. 9번도 그것을 절대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9번은 평소 본인의 감정에 무덤덤하고 타인과의 갈등을 최대한 피하려고 한다. 그 마그마가 터져 나오는 순간 더 이상 자신의 고요하고 아름다운 호수는 사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헤엄을 치던 사람들이 눈치를 채서 다행이다. 그들이 9번의 화를 눈치채고 그에게 사과한다. 9번은 그 사과를 받아줬지만 여전히 불편해 보인다. 그것은 아마 화를 낸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 혹은 후회 같아 보인다. 호수 위의 파도는 아직까지 크게 넘실거렸다. 약간의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


9번의 빛

배를 다시 타고 우리는 호수가로 돌아왔다. 따뜻하게 불을 쬐며, 다시 평화로워진 호수를 바라본다. 9번은 머쓱해하며 우리에게 광원구를 건넨다. 당신의 조각에 비춰보자. 혹시 당신의 가장 큰 조각이 그것에 반응한다면, 당신은 9번 유형일 것이다.


9번의 내면세계는 고요하고 편안하다. 그래서 좋은 아이디어들을 떠올리기 유리하고, 주변의 사람들이 숲에 감춰진 호수의 매력을 느끼고 먼저 다가온다. 하지만 9번은 갈등이라는 ‘파도’에 예민하다. 그래서 그들은 호수 위의 나룻배에서 행동하지 않는다. 큰 변수 없이 흘러가는 대로 나룻배를 젓는다. 9번에게는 파도치는 호수를 감수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언제나 평화로운 호수는 본인의 ‘이상’ 일뿐이다. 현실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강한 폭풍과 함께 찾아온다. 폭풍이 치는 호수도 자신의 호수임을 알고, 그 속에서 경험해야 한다. 그 역동성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내면에 작은 파도가 일렁여도 서핑을 타듯 부드럽게 넘길 수 있는 행동력이 필요하다.

이전 06화8번 : 내면의 왕국을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