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나라에서
‘본능의 기차’는 우리를 단숨에 이곳까지 데려다주었다. 이곳은 8번의 세계로, 8번이 다스리는 나라이다. 이곳의 모든 것이 거칠거나 공격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이 세계만의 입국 절차이니 너그럽게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입국심사
8번이 정식으로 인사를 건넨다. 손을 내밀며 먼저 악수를 권하고 약간의 미소를 보인다. 그러나 그 미소는 부드럽다기보다 묘한 긴장감을 일으킨다. 그는 당신을 삼엄한 경비와 엄숙한 느낌의 입국심사장으로 데려간다. 당신은 그곳에서 8번과 간단히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이다. 그의 세상을 존중하고 이곳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하지 않는다면 큰 일은 없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점은 사소한 것이라도 그와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다.
이야기를 무사히 마친 당신은 8번에게 약간의 신뢰를 얻은 듯하다. 첫 여정부터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지만, 이것은 8번 세계만의 룰이다. 단언하건대 8번과의 첫 만남이 가장 긴장되었던 순간이 될 것이다. 그런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8번은 ‘자신’이라는 나라를 지키는 사람이다. 국가의 존립을 위협하는 존재를 그들은 가만두지 않는다. 내가 지켜본 그를 한 문장으로 설명해 보자면, ‘내면의 왕국을 지키기 위해 힘으로 투쟁하는 사람’이다. 그것을 이해한다면 조금 강압적으로 느껴졌던 조금 전의 입국 심사가 납득될 것이다. 당신이 적은 아닌지, 무엇을 위해 이곳에 접근했는지 확인하는 하나의 절차이다.
전쟁국가
우리는 8번 세계의 중심부로 향한다. 저기 보이는 커다란 성이 바로 8번의 내면세계이다. 저 안으로 보통 들어갈 수 없지만 8번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은 없다. 오랫동안 신뢰 관계를 쌓은 이들도 저 성문 안으로 들어가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한다. 말해두지만 이곳은 ‘전쟁 국가’이다. 8번의 세계는 항상 외부의 무언가로부터 투쟁한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자신의 약점이 드러나면 국가가 큰 위험에 빠진다고 생각한다. 8번의 역사와 진심이 잠자고 있는 저 성은 경계가 매우 삼엄할 수밖에 없다.
이 나라의 정책은 강한 ‘힘’을 기르고 행사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그 힘의 명분은 ‘정의’로부터 나온다. 사실 이 정의가 의미하는 것은 8번 본인, 그 자체이다. 본인으로부터 힘이 나오고, 그러한 본인을 다시 힘이 지킨다. 8번 나라의 영토는 8번, 자신을 대변하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그의 자존심, 가치관, 관계를 맺은 인연, 자신의 물건, 본인의 감정 등 그가 추구하는 모든 것들이다. 마치 현실 세계처럼 국가의 영토에서 국가를 운영하는 힘이 나오고, 그 힘으로 국가의 영토를 지킨다. ‘무한 동력’과 같은 이 구조는 8번이 강력하고 진취적인 사람처럼 보이는 이유이다.
성
이야기 도중 우리는 8번의 성 앞까지 도달했다. 그의 깊은 내면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정말 높고 거대하지 않는가? 8번이 전쟁 국가의 내면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항상 싸우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전쟁과 같은 ‘파워 게임’에 익숙하고 능숙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도 불필요한 전쟁은 피한다. 성을 높이 쌓아 자신의 힘과 능력을 적국에게 과시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8번을 처음 보았을 때 느꼈던 위압감은 이 거대한 성벽과 역할이 같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이제 이 성으로 들어간다. 방금까지 이 성으로 절대 들어가지 못할 거라 이야기했지만, 사실 나는 가능하다. 그것이 내가 당신을 안내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성 안으로 들어선 당신은 그 풍경에 조금 놀랐을 것이다. 강한 힘의 상징이었던 회색 벽 뒤로 신성한 종교적 공간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는가. 말하는 순간 8번은 바로 기도를 드리기 위해 제단 앞으로 가고 있다. 이곳은 자신의 ‘정의’를 신으로 모신다. 이 신념체계는 8번들에게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확신을 주고 힘을 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기도를 마치고 돌아온 8번을 보라. 스스로에 대해 더욱 확신을 가진 것 같다. 때로는 자신의 정의에 너무 심취해 독선적이고 완고해지기도 하지만 다행히 그런 상태는 아닌 듯 하다.
국가 비상사태
정리하면 그들의 내면은 '정의'라는 종교를 가지고, '자존심'이라는 영토를 지키기 위해 '힘'의 성벽을 쌓은 하나의 ’ 왕국‘으로 볼 수 있다. 왕국이 지금처럼 평화롭다면 8번은 좋은 국왕으로 인정받는다. 다른 이들을 배려하고 그들에게 책임 의식도 느낀다. 하지만 왕국이 위태로운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위기 상황의 8번은 자신의 왕국을 위해 ‘정의’에 집착한다. 그리고 항상 추구해 오던 ‘힘’을 더욱 갈망한다. 그는 다시 전쟁을 준비하고 상대를 이기기 위해 에너지를 쏟아붓는다. 강한 공격으로 상대를 누르거나, 탐색전을 통해 약점을 파악하여 공략하기도 한다. 동물적인 감각과 비상한 머리를 가지고 있는 8번은 전쟁에 타고난 사람이다. 그것은 게임과 비슷해서 이것에 희열을 느끼고 중독되기도 한다.
8번의 빛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깨트렸던 유리 조각을 꺼내어보자. 여기 8번이 가지고 있는 광원구를 이용하면 당신의 조각 중 8번에 해당하는 조각이 색을 띨 것이다. 8번의 빛을 띠는 유리 조각이 9조각 중 가장 크다면, 당신은 아마 8번 유형일 것이다.
8번의 내면세계는 직선적이고 효과적이다. 그러나 현실은 전쟁으로만 해결되지 않는다. 강한 힘은 8번의 좋은 장점이기에 이를 바탕으로 한 포용적 외교가 필요하다. 자신의 정의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힘도 중요하지만 배려, 화합과 같은 ‘미덕’도 필요하다. 강한 힘을 가진 당신이 약자를 살피고 힘의 정의에 대한 시야를 넓힌다면, 영향력을 더욱 넓힐 수 있게 된다. 정의를 위해 힘을 기른 것인지, 아니면 힘을 위해 정의를 허울로 세운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