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어머니는 굉장히 엄하고 무서운 사람이었다. 사회생활도 결혼도 또래보다 일찍 시작해 고생을 많이 한 탓인지 자식들에게 빈틈없는 행실을 요구했다. 버릇이 없다거나 말도 안 되는 걸 사달라고 조른다는 이유로 엎드려뻗치기를 1시간씩 한다거나 파리채 끝부분으로 회초리를 모질게 맞는다든가, 아버지가 팔을 들고 퇴근할 때까지 벌을 선다든가 하는 일이 예사로 벌어졌으니 그 시절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 어머니가 아니었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나는 처녀귀신이 나오는 전설의 고향보다 어머니 인상이 구겨지면서 매를 들 기세가 되는 것을 세상 그 무엇보다 두려워했다.
그러나 그렇게 엄한 어머니에겐 의외의 면모가 있었다. 혼내야 할 때는 누가 뭐라든 허벅지가 시퍼렇게 멍들 정도로 매질을 하면서도 자식이 만화를 본다든가, 게임을 한다든가 하는 데 일절 간섭하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엄마는 이를 적극 권하는 쪽에 가까웠다. 초등학교 2학년 때였나, 어느 날 저녁 무렵 엄마가 현대컴보이 오락기를 안고 골목 어귀로 들어오던 모습이 기억에 선하다. 엄마는 시간이 나면 같이 게임을 하기도 했는데, 서커스 광대가 사자를 타고 불타는 고리를 넘는 게임을 몹시 좋아하고 잘했던 기억이 난다. 캐릭터가 점프를 하면 엄마도 조종기를 잡고 같이 몸을 들썩거리곤 했는데, 그때는 엄마가 왠지 무섭지 않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뿐인가, 중·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주기적으로 신형 게임기를 사줬고, “피시방 다니면서 괜히 시간 낭비하지 마라. 집에서 오락하라”며 온라인 게임 접속 비용도 결제해주었다. 그땐 게임에 대한 인식이 전반적으로 나쁠 때라 게임한다고 집에서 심하게 혼나는 친구가 많았는데, 그에 비하면 우리 엄마는 동화 속 유니콘처럼 희귀한 존재 아니었을까 싶다.
만화도 마찬가지다. 나는 단 한 번도 만화책을 압수당한 적이 없다. 오히려 엄마와 나는 좋은 만화 친구였다. 어릴 적 『아이큐 점프』라고 주간 만화 잡지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엄마는 매주 돈을 주며 그걸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켰다. 도서 대여점이 동네에 생기고 만화책을 빌려보는 시대가 되고는 주말이면 귤을 까먹으며 『소년탐정 김전일』, 『명탐정 코난』 따위 일본 추리 만화를 봤다. 그뿐인가 판타지 소설도 엄청나게 읽었다. 엄마는 이우혁 작가의 『퇴마록』을 특히 좋아했는데 “현암이랑 승희는 결혼을 하느냐, 결말이 어떻게 됐느냐”며 꼭 물었던 기억이 있다. 대학에 갈 무렵엔 허영만의 『식객』 단행본이 나오기 시작하자 그것도 한 권 한 권 사다 날랐는데, 엄마는 신간 출시일만 목 놓아 기다렸다. 이 얼마나 대단한 모자인가.
최근 새해를 맞아 대구에 계시던 엄마가 상경했다. 여동생과 식사 자리를 마련한 김에 옛날 일들이 생각이 나 엄마한테 물었다. “어렸을 때 같이 만화책 보고 게임해줘서 정말 고마웠는데. 그래도 그렇지 걱정되지는 않았냐”고. 엄마는 “바빠서 어디 여행을 데리고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집에서 텔레비전이나 바보처럼 보고 있는 것보다는 나을 거 같아, 불쌍해서 하나둘씩 사주고 허락해 주다 보니 그렇게 됐다. 뭐 별거 아니다”라고 했다. 역시 덤덤하고 수수한, 과거에 크게 얽매이지 않는 엄마다운 대답이었다. 그러나 엄마는 알고 있을까. 그 덤덤한 마음으로 허락해 준 만화며 게임이 지금의 나를 만드는 데 큰 자양분이 됐다는 거 말이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제대로 충고해 줄 어른이 부족한 집안에서 만화와 게임은 내게 세상으로 뻗어나가는 길이었고, 세상을 바라보는 창문이었다. 유독 소심해 사색하는 걸 좋아했던 아이에게 방에 가만히 앉아서도 그렇게 깊게 파고들며 시간을 보낼 거리가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런 엄마가 있어 늘 행복했다. 어머니, 엄마에게 무한한 감사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