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모스를 지켜라

by 하늘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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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만 해도 대구 고향 동네에는 파리바게뜨나 뚜레쥬르 같은 대형 프랜차이즈 빵집이 없었다. 대신 ‘이경환 베이커리’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자체 디자인 간판에, 서울에서 배워왔다는 제빵 기술로 세련되게 구워, 투명 비닐에 곱게 포장해 주는 빵은 곧 한적한 시골 동네 사람들의 입맛을 장악했다. 그 시절 동네에서 ‘이경환이 곧 빵이며, 빵은 곧 이경환’이었다. “이경환 간다”는 “빵집 간다”와 같았으니 말해 뭐할까. 그때 만약 ‘동네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 투표를 했다면 1등은 사거리 현대의원 원장님이고 2등이 이경환 아저씨쯤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 이경환 베이커리의 최고 히트 상품은 ‘맘모스 빵’과 ‘사라다 빵’이었다. 베개만 하게 구워져 나오는 거대한 맘모스 빵의 위용은 실제 동물 맘모스를 떠오르게 할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또 ‘사라다 빵’은 마요네즈와 케찹에 양배추를 비벼 햄버거 빵 사이에 끼운 것이었는데, 롯데리아 햄버거조차 먹을 일이 잘 없던 때 동네 어린이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 시절 어린이들은 “치과 잘 참고 다녀오면 사라다 빵을 사주겠다” “오락실에 안 가면 맘모스 빵을 사주겠다” 등 엄마들의 거짓말에 수없이 속고도 사라다 빵을 갈망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맘모스 빵과 사라다 빵은 기억에서 흐릿해졌다. 다들 학업이나 직장 문제로 고향을 떠났고, 이경환 베이커리는 추억이 됐다. 그 사이 빵집도 이경환 아저씨가 그만 도박에 빠져 망해버렸다는 소문도 들었다. 그러다 최근 이경환 베이커리를 떠올릴 계기가 생겼다. 교열기자로 일하며 외래어 표기법을 자주 고민하게 됐기 때문이다. 상사가 외래어 표기법상 맘모스는 매머드로, 사라다는 샐러드로 자꾸만 고치라고 하니 반발심이 일었다.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처지에서 할 수 없이 고쳐서 내보내곤 했지만, 늘 마음 한구석이 찝찝했다. 어릴 적 엄마를 졸라 이경환 베이커리에서 사먹은 것은 맘모스 빵이고 사라다 빵이지, 매머드 빵, 샐러드 빵이 아닌데 왜 맘모스로 고쳐야 하나.


생각해보니 맘모스뿐만이 아니다. 짜장면/자장면도 마찬가지다. 사실 나는 아직도 이 ‘자장면’이라는 표기가 아주 싫다. 이사하고 나서는 응당 짜장면을 먹어야 하고, 당구를 치고 나서도 짜장면을 먹어야 하는데 된소리가 빠지면 그 들큼한 분위기가 도무지 살지 않기 때문이다. ‘주꾸미’는 어떠한가, 아무리 주꾸미, 주꾸미 해봐도 쭈꾸미라고 말할 때 그 칼칼한 맛이 살아나지는 않는다. 파전/찌짐도 마찬가지다. 대구 사람인 내게 찌짐은 어머니의 누릇한 손맛과 과자 같은 고소한 끄트머리가 기억나는 음식이다. 이걸 표준어로 ‘파전’이라고 고쳐놓으면 그 찌짐의 추억은 사라져 버린다. 그러니 맘모스 빵도 매머드 빵으로 함부로 고쳐서는 안 될 것이다. 매머드는 맘모스의 그 푸짐한 이미지를 도무지 담아낼 수가 없다. 맘모스를 지켜야 한다. 말에 담긴 정서를 쉽게 간과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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