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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판 위의 소녀들

Photopoem

by 박기종

낡은 천 위에
삶을 펼쳐놓는다.
바람에 흔들리는 우산 아래,
주름진 손이 나물 한 줌을 쓸어 담는다.

한때는 소녀였을 그들,
꽃을 따던 손길은
지금은 땅을 일구고,
찬바람에 닳아가도
놓을 수 없는 자판을 지킨다.

햇볕에 바랜 채소,
거친 손바닥 위의 무게,
지나는 발자국마다
그들의 하루가 깎여나가는데,
아무도 묻지 않는다.
“언제부터 여기 계셨나요?”

웃음 대신 침묵을 삼키며
눈앞을 지나가는 세상을 바라본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은 소녀다.
주름진 미소 뒤엔
바람처럼 날아가고픈 꿈이 숨어 있다.

자판 위에는
희망의 조각들이 있다.
시든 나물 한 줌,
부서진 그릇 한 개,
그리고 우리 모두 잊고 사는
작고 소중한 것들이 놓여 있다.


소녀들이여,
삶의 자리에서
여전히 빛나고 있다.
누구도 돌아보지 않는 그곳에서,
당신들의 이야기는
길 위의 별이 되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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