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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다 Sep 13. 2023

열 넷. 스페인 / 바르셀로나에 풍덩 빠져들다

까사바트요/까사밀라/바르셀로나 해변/꿀국화차



“이제 이번주에 한국으로 가는구나”

아침에 고소한 돈까스 냄새가 나서 일어났다. 어느 나라를 가도 ‘음식냄새 기상’은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 것 같다. “오늘은 뭐하지”라고 다이어리를 넘기다 보니, 어느덧 곧 한국으로 가는 날이라는 생각에 조금 우울해졌다.  ‘한국’에 간다는 것이 곧 ‘현실’로 돌아간다는 말 같아서 아주 갑갑해졌고, 그런 생각을 하니 바르셀로나에서 느긋한 일정이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동현이는 이곳에 와서 아침을 정말 잘 챙겨먹는다.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아침을 거르기 일쑤였던 녀석이 먼저 식당에 가서 나를 기다린다. 동현이는 어쩔 수 없는 100% 한국사람인가보다.  


▶오늘의 아침은 "돈까스" 우리나라에서 먹던 우스터&돈까스 소스에, 내가 좋아하는 발사믹 드레싱까지!  


동현이는 이 곳에서 만난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 스타다. 워낙 사교성이 좋고, 누나들, 여자 친구들 사이에서 잘 지내서인지 낯을 가리지도 않는다. 먹기도 잘 먹고, 이야기도 재미나게 해서인지 인기를 독차지했다. 덕분에 “이런 동생을 둬서 좋겠어요”, “동생이 누나 칭찬이 자자해요”등 나까지 어깨가 으쓱해지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특히 ‘동현이가 그러던데, 퇴직금을 다 털어서 동생이랑 왔다면서?’라며 맛있는 간식과 꿀국화차, 아침으로 나온 돈까스 같은 것도 많이 주신다. 어딜가나 한국사람의 정은 참 따뜻하다.  


“누나, 오늘은 뭐하지?”

원래는 ‘캄프 누’에 가서 경기를 보거나 투어를 할 참이었는데, 비용도 비싸고, 그 정도 가격을 주고 갈 만큼 애착이 없어서 ‘그 돈으로 다른 거 하자’고 둘이 정했다. 대신 FC바르셀로나 기념품을 하나씩 사기로 하고, 시내를 둘러보기로 했다.  



▶우리가 지냈던 '올레 바르셀로나'가 있는 건물. 조오기 위 검정 테라스 있는 곳 중 하나가 우리 방이다^^


 

우리의 마지막 ‘공식일정’은 ‘까사 바트요’(카사 바트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다음으로 보고 싶던 곳이었다. 월요일 아침 일찍 나섰음에도 30여분 동안 긴 줄을 섰다. 외관부터 신기하고 예뻤고, 3D로 선보이는 독특한 오디오 가이드 덕분에 동현이도 나도 신이 났다. 오디오 가이드를 이리저리 둘러보면서 ‘저기에서는 거북이가 나온다’, ‘오 누나 벽이 막 무너져!’ 정말 열심히 떠들어댔다. (카사 바트요는 진짜 추천! ‘볼거리’가 아주 많다)  

▶까사 바트요의 외관. 진짜 '해골' 과 '뼈'같은 모습이다.  


▶카사 바트요 입장권. 무려 21 유로ㄷㄷㄷ 좀 비싸긴...합니다....




▶대기를 하면서 본 바닥. '예쁘네'라고 생각했는데, 이것 또한 가우디의 작품이라고 한다.  


▶무료로 대여해주는 가이드. 특정 장소에 오면 특이한 CG가 펼쳐진다! 가령 거북이가 날아다닌다던가, 난로에 불이 지펴지는 것 같은-  


▶카사 바트요의 안과 밖. 정교하고 아름다운 색감이 정말 멋지다.





▶영상미의 절정을 볼 수 있는 곳. 아무것도 아닌 흰 건물이 영상을 통해 엄청나게 멋진 영상이 펼쳐졌다. (저작권 부분 때문에 동영상은 찍지 않았다.)





▶까사 바트요의 옥상. 굴뚝들도 하나하나 멋진 조각품이었다.





▶카사 바트요 옥상. 날씨가 좋아서 타일 하나하나의 색이 더 멋있었다. 



▶까사 바트요를 나서며. 아쉬운 마음에 바깥 경치를 열심히 찍었다.



“해변에 왔으니, 바다를 보며 식사를 하자!”

까사 바트요를 보고, 까사 밀라를 가려 했으나-사람도 너무 많고, 까사 바트요 만으로도 아름다운 가우디의 건축물을 충분히 느꼈다고 생각해서, 까사 밀라는 과감히 건너뛰고, 외관을 열심히 둘러보았다. (까사 밀라는 까사 바트요의 대기시간보다 훨씬 길다. 바트요-30분 남짓이라면, 밀라-기본 1시간 이상/시즌, 날씨 등에 따라 차이가 있음)  


▶'까사 바트요'와 '까사 밀라'. 참고로 '까사/카사'는 스페인어로 '집' 이라는 뜻.


 

우리는 바르셀로나 해변(바르셀로네타)을 슬렁슬렁 둘러보고, 토요일에 봐둔 해변의 음식점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굉장히 비쌀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가격도 나쁘지 않고, 분위기도 좋아서 마음에 들었다. 


▶저 세 음식과 음료 두 잔 다 합쳐서 우리돈 1만원 남짓! (메뉴 하나가 3천원 대였다.) 피자는 그냥 피자빵 같고, 바게트 샌드위치는 고소했다. 감자튀김은 아주 포실포실한 감자로 튀겼는지, 쿠션을 머금은 듯 폭신했다.




▶음식을 먹고 있는데 우리에게 슬슬 걸어오던 갈매기. 사람들이 쳐다보는데도 아랑곳 하지 않고 도도하게 걸어왔다.



▶"뭘봐?"라는 것 처럼 우리를 오랫동안 보던 갈매기. 갈매기를 이렇게 가까이서 본 건 처음이라 신기했다. 오른쪽에 떨어진 토마토는 내 뒷좌석에 있던 무리들이 먹으라고 던진 것인데, 갈매기는 신경도 쓰지 않더라는.  


바다를 실컷 구경하고 다시 시내로 나서려는데, 동현이가 "잠깐만"하더니 갑자기 드러눕는다. '쉬었다 가려나?'했는데, '누나 사진 좀...' 이곳을 떠나기 싫어하는게 나 뿐만이 아니었구나 싶었다.  


"엥? 가게 불은 켜져있는데, 문이 닫혀 있어!"

골목투어를 하던 중, 귀여운 피규어를 파는 가게가 있어서 냉큼 뛰어가던 동현이가 실망을 한다. 시계를 보니 오후 2시 30분. 아! 사에스터구나!


스페인의 낮잠제도(?)인 '시에스터'. 오후 2시부터 4시(몇몇 가게는 5시까지)까지 웬만한 가게들은 모두 문을 닫는다. 불은 켜져있다. 하지만 장사는 하지 않는다. 그나마 바르셀로나 람블라스 거리 등지는 관광객들이 많아서인지 절반 정도는 시에스터에도 문을 열어둔다. 저녁에라도 다시 와보자고 하니까 그 사이에 다 '스캔'을 끝냈단다.  


▶▶거북이 목을 하고 약 30초 만에 가게의 물건 스캔을 끝내던 동현이. 동현이가 입고 있던 바지는 '스프링필드' 제품인데, 몹시 편하고 시원.  


“무조건 조금 깎아야겠구나”

영국, 프랑스에 이어서 나의 ‘깎아주세요’멘트가 또 나왔다. 한국에서도 자타공인 ‘가격 깎기’로 이름을 날린(?)나. 외국이라도 예외는 없었다.

서로 기분 좋은 가격 흥정은 별 것 없다. ‘역지사지’. 그리고 ‘애교’. 무턱대고 터무니 없는 가격으로 달라고 조른다던가, 덤으로 이것저것 달라고 윽박지르면 둘 다 기분이 상하고, 판매자가 더 비싸게 판매하는 일이 많다. 나는 정가를 물어본 후에, ‘조금만 저렴하게 해달라’고 슬쩍 말을 던진다. 밝게 웃으면서 ‘Very very nice! But.. Um.. Discount please~' 라고 하면 판매자도 싱긋 웃으면서 가격을 조금씩 할인해준다. 때로는 ’No'라고 단호히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럴 때는 ‘내가 이것과 저것 두 가지를 살테니 조금만 깎아 달라’고 하면 웃으면서 아주 저럼한 가격을 제시한다. 


혹자는 ‘원래 가격이 얼마인지 알고 저렴한지 아닌지, 적정가격인지 아닌지 아냐?’고 묻는다. (이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다.) 나도 처음에는 ‘이게 가격이 적당한가?’라고 늘 헷갈렸다. 그런데, 해결책은 의외로 쉬웠다. ‘우리나라에서 파는 가격을 생각하라’. 통상적으로 우리나라에서 파는 열쇠고리나 마그넷 가격, 기념품 가격을 생각해보고, 그 가격에서 약 10% 정도 할인한 금액을 제시하면 거진 그 정도 가격-혹은 그 보다 더 많이-은 할인해준다. 


하지만 무턱대고 할인해달라고 하지는 않는다. 특히 마그넷이나 작은 열쇠고리는 가격을 깎지 않고 대 여섯 개 이상을 사고 ‘서비스로 하나 더 주실 수 있느냐?’고 물어본다. (마그넷이나 작은 열쇠고리는 판매가가 우리나라 가격대와 비슷하고, 깎아 달라기도 참 모호한 가격대라...)보통은 5개 이상 사니 한 개 정도는 ‘그냥 골라가라’고 쥐어주기도 한다.  


바르셀로나 람블라스 거리에 있는 상점들은 가격 할인을 참 잘해준다. (원래 가격이 얼마인지는 모르나...) 나는 여기서 초급 영어와 스페인어로 23유로의 기념품 타올을 10유로에 샀다. ‘거참 재주도 좋다’고 하지만, 실상은 별 거 없었다. 


FC바르셀로나 기념 수건이 참 예뻐서, 동현이와 나는 하나씩 사기로 했다. 이곳저곳을 둘러봐도 가격도 다 같고, 디자인도 같은지라, 슬슬 걸어가다가 아무 가게에나 들어갔다. 타올이 얼마냐고 물어보니 23유로라도 딱 잘라서 말한다.  


점원: 23유로!

동현: 음...(고민한다. 타올 하나가 2만 5천원이라니...)

점원: 좋다, 18유로로 해줄게!

동현: 오, 살까? (눈치를 본다)

나: 참 마음에 들고, 할인해줘서 고마워. 음.. 우린 2장을 살 건데, 조금 더 할인해 줄래요? (웃으며)핸섬가이 때문에 여기서 사려는데.. 조금만 더 할인해줘요!

점원: (껄껄 웃는다)그래, 그럼 15유로에 해줄게!

동현: (나에게 귓속말로)누나, 인진이(동현이 절친. 내가 참 좋아하는 동생)선물로도 하나 해주고 싶은데.. 할인 더 안해주려나?

나: (조용하게)오케이. (점원에게)핸섬가이, 너무 고마워요. 굉장히 예쁜데다가 할인도 해준다니! 스페인 기념품으로 하나 더 사려는데.. 3개 살건데 10유로로는 안될까요?

(나와 동현이가 애초에 생각한 이 타올의 가격은 10유로였다. 기념 타올 가격을 찾아보니 통상 그 가격대여서였다. 15유로에서 더 저렴하게 안 된다고 하면 그냥 살 생각이었다.)

점원: (카운터를 보고 있는 점원에게)어이, 3개 10유로 해달라는데? (쏼라쏼라 스페인어로 둘이 뭐라뭐라 하는데, 분위기가 나쁘지는 않아 보였다.)

나: 부탁해요~ 돈이 많이 없어서요...핸섬가이~

점원: (웃으며)알겠어요. 3개 30유로 주세요! 

얏호! 다행히 내가 별로 밉게 말하지는 않았나보다. ‘핸섬가이’ 점원은 봉투에 고이 접어주고, 엄지 척! 까지 해주고, 잘 가라며 인사도 밝게 해주었다. 우리는 ‘와 할인 진짜 많이 받았어!’라고 즐겁게 웃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데 그 점원이 진짜 ‘핸섬가이’였냐고? 물론! (정확히는 ‘핸섬한... 아저씨’스타일이었다^^)  



“편지를 쓰자!”

나에게는 늘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큰 도움을 준 선배가 있다. 일명 '밍교햄', 거의 '전우'수준으로 지낸다. 코드도 잘 맞고, 관심사도 비슷해서 여러모로 정보 공유를 많이 하고, 언제나 도움을 준 고마운 선배다. 선배는 외국 여행을 가면 ‘현지에서 보내는 엽서’를 늘 써주었다.  스페인을 가장 먼저 추천해 준 것도 밍교햄이었다. 길을 가다가 엽서들이 진열되어있는걸 보니 밍교햄 생각이 났다. 동현이와 나는 엽서를 몇 장 사서, 카페에 앉아 엽서를 썼다. 나는 밍교햄 것을 하나 쓰고,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 꼭 같이 오고 싶었던 숙진언니에게 한 장씩 썼다. 동현이는 대담하게도 자기 자신에게 썼는데, 동현이가 잠시 화장실 간 사이에 앞을 조금 읽어봤는데 손과 발이 쪼그라들어서 더 읽지 못했다.  


▶시에스터 시간이라 다른 카페들이 문을 닫아서 오게 된 '스타벅스'. 스페인 스타벅스에 '카라멜 프라프치노' 강추! 우리나라보다 더 달착지근하면서, 얼음 입자도 무척 곱다. 길거리에서 산 엽서들을 펼쳐놓고, 서로 고르는 중. 스타벅스에서 한시간 무료 와이파이도 되어서 영문주소를 찾아서 썼다. 


▶거의 '출사표' 급의 비장함을 가지고 편지를 쓰던 동현. 우리는 겁도 없이(!) 휴대전화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다녔다. 나중에 '올레 바르셀로나' 이모님이 아주 기겁을 하셨다. 위험천만. 안 훔쳐간 것이 신기한 일이라면서. 


스페인에는 우표와 엽서를 파는 곳이 많고, 우체통도 곳곳에 있다. 우표와 엽서 다 합쳐도 2유로 남짓. 2주 정도면 받을 수 있다. 어설픈 기념품 보다 더 특별하고 의미 있는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다행히 우리가 부친 편지들은 2주 후 잘 도착했다.) 


“아우 국물이 끌리네!”

밤이 되니 날이 조금 추워졌다. 저녁으로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컵라면을 먹기로 했다.  


가지고 온 컵라면은 이미 다 먹어버렸기 때문에, 근처 중국인 잡화상에 가서 신라면을 두 개 샀다. 가격은 1.5유로로, 우리나라에서 사는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 중국 잡화상에는 일본 인스턴트 음식과 중국 향신료 등도 팔고 있었다. 우리는 숙소로 와서 한 그릇씩 얼큰하게 비우고 각자의 짐을 정리했다. 그러다가 동현이의 푸념-  

“누나, 장난감이 너무 많아!”

“그거 다 네거잖아!”

“아 그렇네...”  

내일이면 마지막 나라, "이탈리아 로마"로 간다. 동현이는 벌써부터 '가장먼저 콜로세움에 갈거야'라고 벼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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