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조숙증-0816, 0826 두번째, 세번째 진료일
0816. 두번째 진료일. 영상의학과 촬영 후 다섯 번의 채혈. 15분마다 피를 뽑았다. 평소엔 보여주지 않던 영상과 게임을 마음껏 하라고 했다. 피를 다 뽑을 때까지 얌전히 있으면 스티커도 사주겠다니 군말없이 잘 따랐다.
0826. 세번째 진료일.
지난 두 번의 결과를 듣는 날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갔다. 별거없겠지.
하지만 교수님의 표정은 심각했다.
첫찌는 지금 뼈나이 10살에,
갑상선 수치도 매우 높아요.
성조숙증입니다
갑상선 수치가 높아 추가로 MRI, 골반초음파검사도 해야한다고 했다. 사뭇 진지한 교수님의 말과 놀란 내 얼굴을 본 첫찌가 눈치를 살핀다. 빨리 나가고싶다고 어리광을 부린다. 처음엔 칭얼대더니 종래엔 울먹거린다. 휴대전화를 쥐어주고 나가있으랬지만 막무가내다. 가까스로 아이를 달랬다. 상황이 정리된 후 내가 가장 먼저 한 말은-
교수님,
검사비랑 주사는
보험처리되나요?
나는 내가 좋은엄마는 아니라고 늘 생각했다. 아이랑 같이 싸우기도 하고, 떼를 쓰면 손과 엉덩이를 때린 적도 많다. 소리도 지르고, 물건을 던지면 이놈, 이 녀석 하고 고함도 쳤다. 이러면 안된다는 후회와 미안함이 바로 밀려왔지만 그게 굉장히 크게 다가오진 않았다. 지난번에 아이가 피를 다섯번 뽑았을때도 당연히 해야하는 검사니까, 나도 지겹다고 같이 징징댔었다.
하지만 방금, 내 아이가 7살인데 몸이 10살이라는 말에, 매달 주사를 맞아야할것이고 추가 검사들을 해야한다는 말에 나는 아이 걱정보다 당장 들어갈 돈과 빠듯한 생활비가 떠올랐다. 뱉어놓고 바로 후회했지만. 난생처음, 내 스스로를 경멸했다. 너는 이 상황에 애가 아니고 돈이 먼저야? 내 표정을 읽으셨는지 교수님은 보험적용되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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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을 나서자 첫찌가 스티커 사러가자고 조른다. “너는 이 상황에 스티커가 갖고싶냐”는 말을 하려다 아차 싶었다. “이 상황”이 아이 잘못이 아닌데. 미안한 값까지 더해 오늘은 갖고싶은게 두 개면 다 사도 된다고 했다. 달라진 엄마 태도를 보고 “엄마 아니야”라고 의젓하게 말했다면 더 미안했을텐데, 다행히 첫찌는 “엄마, 그럼 오늘 저녁에 라면 먹어도 돼? 나 육개장도 사고 싶은데...” 말꼬리를 흐린다. 까짓것 라면이 대수냐.
때마침 언니에게 연락이 왔다. 첫찌는 괜찮냐고.
-언니야, 안 괜찮대. 뼈나이가 10살이라네. 그리고 갑상선수치가 높대. MRI랑 골반초음파랑 검사를 더 해야하고 주사를 맞아야 한다네.
언니는 “어머어머”, “어쩌면 좋아”를 연발했다. 곧바로 “첫찌는 괜찮아?”라고 물었다.
그순간, 참았던 눈물이 왈칵 차올랐다. 그래, 당연히 언니처럼 이 말이 먼저 나와야지.
-응, 스티커랑 라면 사주니까 얌전히있었어. 진료실 같이 안들어갈랬는데 들어온대서 같이 설명듣고.
검사랑 주사까지 이야기를 해주는데 내가 제일먼저 뭐 물어봤는지 아나?
/뭐라고 했는데?
-선생님, 보험처리 되나요? 그랬어. 언니야처럼 애는 괜찮을까요? 힘들지 않을까요 아니고 돈을 먼저 물어봤어...
순간 정적.
/에구, 첫찌 같이 있었어?
-어, 그래서 더 미안하드라.
/아니야, 돈도 당연히 중요하니까... 괜찮다. 많이 안아주고, 별것없을거야.
또 다른 언니는 말했다. 당연히 돈 먼저 물어보는게 맞지! 지극히 현실적이고 당연한거야,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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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재우고 나니 밤 11시. 병원 영수증 정리하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한 달에 10만원, 15만원 쓴다고 우리집형편이 어려워지는것도 아닌데, 좀 빠듯하게 살아도 먹을 것 다 먹고 지낼 수 있는데, 내가 커피 한 잔, 차 한 번 안스면 되는걸... 방에 있는 아이아빠가 들을까싶어 애꿏은 영수증을 소리내 구기며 훌쩍거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