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율이와 떡볶이

by 리다

해마다 조카가 늘어간다. 새로 태어난 아이는 마냥 귀엽다. 산모는 기특하다. 첫째 낳고 언니들이 "애가 애를 낳았구나!"라고 그저 감탄만 했는데 그걸 이제 알 것 같다. 내가 미혼일때 태어난 조카들은 벌써 초등 고학년이다.


사실 그땐 아이들보다 언니들만 눈에 보였다. 같이 울고 웃고 놀던 언니들이 출산을 하고 나서도 여전한 모습인게 신기했다. 지금은 안다. 그들이 "달라지지 않은"모습을 보이려고 얼마나 뒤에서 울었는지. 모처럼 찾아온 나에게 바뀌지 않았음을, 함께 있는 순간 만큼은 산모가 아니라 그냥 그이고 싶었던걸.

누구 하나 눈에 밟히지 않는 조카가 없다. 어쩜 하나같이 똑부러지고 해사한지.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던데 조카들은 예외다. 언니들에게 아이들 소식을 들을때마다, 몇 달 만에 한 번 봐도 늘 반갑고 정겹다.

하율이는 1년에 두 번 꼭 만나는 조카다. 재작년 겨울방학때 보고 '우리 방학때마다 꼭 만나자'고 했는데 고맙게도 그 약속을 늘 지키고 있다. 지난 방학엔 양쪽 아이들 모두 아파서 만나지 못했다. 이대로 우리 만남이 끝나려나 했는데, 겨울방학이 되자 "당연히"만나야지 라고 약속을 잡았다.

엄마를 쏙 빼닮은 그녀. 찡그렸을때도 눈은 늘 웃고 있다. 얼굴도 예쁜데 옷도 잘 입는다. 청바지에 티셔츠만 입어도 맵시가 난다. 보기만해도 눈부시게 예쁜데, 얼마전 떡볶이 사건 이후 하율이가 더 좋아졌다.

<산책로>(우리집 서재)에 신간 만화책을 몇 권 들였다. 그 중 고은언니(a.k.a.하율이 엄마, 웃는 모습이 김고은이라 가명으로 고은언니라 부르겠다.)가 보고싶다던 것도 있어 보러오라고 초대했다. 때마침 하율이 방학이라 모녀가 함께 우리집을 찾았다. 그날 점심은 떡볶이와 김밥. 아이 입맛에 맞춰 맵지 않은 떡볶이를 만들었다. 안 매운 고춧가루, 고추장을 넣고 케첩도 섞어서 달콤하고 순하게 양념을 완성했다. 그런데 마지막에 대형사고를 치고 말았다. 실컷 순한맛으로 해놓곤 감칠맛을 더할 카레가루를 중간매운맛으로 넣어버린것이다. 끓일수록 카레맛이 더 진해져 아주아주 맛있게 매운 떡볶이가 되었다. 다행히 떡볶이 말고 김밥과 튀김이 있어 하율이가 식사를 하는데 문제는 없었지만, “오늘 점심 메인은 떡볶이”라고 말한게 민망해지고말았다.

하율이는 떡볶이를 흘깃보고 김밥 한 입, 튀김 한 개를 먹었다. 굴비 한 번 보고 굴비를 먹었다치고 밥을 먹던 자린고비가 생각났다. 그럴수록 더 미안해졌다. (망할, 내가 저 카레 다시는 사나봐라.)

고은언니와 나는 떡볶이를 잘 먹었다. 매운데 자꾸 당기는 맛이라 후후 입에서 바람소리를 내며 입에 떡볶이를 집어 넣었다. 우리 모습을 본 하율이가 콕콕 고은언니를 찔렀다. 언니가 떡볶이 한 개 먹어보라고 권했다. 일단 한 번 먹어보고 결정하라고 나도 부추겼다. 그에 못이겨 한 입 먹더니 이내 물 한 컵을 들이켰다. 너무 매워. 한 마디 하곤 이내 다른 음식을 먹었다. 언제고 먹고 싶음 말하라 하면서도 힘들어한 모습에 더 먹겠다고 말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하율이가 뜻밖에도 떡볶이 국물에 튀김을 찍어먹어보겠다고 했다. 떡볶이국물 한 방울 콕 찍어서 한 입 먹더니 이건 괜찮다고 했다. 한 방울이 두 입, 세 입이 되었다. 처음엔 물 한 컵을 다 먹더니 점차 물의 양도 줄어들었다.

떡볶이접시가 바닥을 비울 무렵이되자 튀김옷에 제법 많은 빨간 국물이 보였다. 여전히 물을 마구 들이키면서도 자신의 그릇에 있는 떡볶이 국물과 튀김을 모두 먹었다. 혹시 탈이 나지 않을까, 밥보다 물을 더 많이 먹은것 같은데 배가 고프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잘 먹었습니다” 씩씩하게 인사를 하며 “맛있었어요“ 마무리멘트까지 완벽했다. 그녀의 떡볶이 도전은 성공적이었다. 낯설고 못 먹을것에 편견을 갖지 않고, 먹기 싫다는 표현도 확실했다. 이후 무리하지 않고 정도를 지켜 마무리를 하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인생 길게 산건 아니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무슨 일을 하기 전에 더하는게 늘어간다. 이건 이래서, 저건 저래서 결국은 “된다”보다 “안된다”, “못하겠다“며 그에 대한 합리화를 시킨다. 할 수 없다고 한 마디 던지고 말면 되지, 왜 내가 할 수 없었는가 이유도 구구절절하다. 내가 가진것이 작으면 작을 수록 말과 글은 길어진다. (우리는 그걸 허세라고 부른다) 애당초 가진게 그것뿐인데도 이게 답니다“, ”이정도만 됩니다‘고 하면 “고작 그게 전부야?“라고 할까봐 적당히 자르고 매듭지을수가 없다. ”다 그렇게 사는 거야“라고 구질구질 꼬리를 달고 살았다.

하율이가 떡볶이 국물의 양을 늘려갈때마다 “이것만 할 수 있음 하면 되는거죠. 되겠다, 해보고싶다면 하면 되죠. 딱 요정도만 할 수 있겠다 싶음 고만큼만 하면 되죠” 목소리가 점점 크게 울렸다. 도전과 정도를 알려주어 고마워. 하율이에게 또 다른 과제를 던져주고싶다. 다음엔 또 어떤 철학을 보여줄지 벌써 기대 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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