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벅참을, 알랑가 모르것어요

캡틴락, '작가' 한경록 예찬

by 리다


중학교 3학년 때 MP3를 처음 샀다. 당시 32MB용량(그전까진 16MB가 제일 컸다고 한다)이라 노래를 7-8곡밖에 넣을 수 없었다.정말정말 엄선해서 고른 노래들을 무한 반복해서 들었다. 8곡의 노래 중 크라잉넛 노래가 두 곡 이었다. <지독한 노래>와 <서커스 매직 유랑단>. (지독한 노래는 신라의 달밤에 나온 버전 말고 원래것. 중학생 소녀가 듣기엔 굉장히 아스트랄하다.) 크라잉넛 노래는 꾸준히 좋아했지만 정작 그들에 대해선 잘 몰랐다. 멤버들이 다섯이고 그들은 서로 친구였다는 것. 무대 위 그들은 참 신나보였고, 그 모습이 평소에도 다를것같지 않았다. 재기발랄한 사람들이겠구나 생각한게 전부였다.


고등학교땐 베이스를 배우고 싶었다. 기타처럼 흔하지 않은 희소성, 베이스의 묵직한 음이 유독 좋았다. 만화 <유리가면>에 마야가 '나는 춤을 추지 않고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일거야'라고 하는데, 베이스 연주자를 보면 딱 그래보였다. 하지만 지방에선 베이스는 커녕 기타를 배울수있는 곳이 없었다. (드럼도 같은 이유로 못배웠다. 뭐든 치고 싶었던 나는 그렇게 돌고돌다 대학교 풍물패에 들어가 상쇠가 되었다.)


그게 벌써 20년이 넘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크라잉넛 베이시스트 한경록을 덕질하게 되었다.


처음이다.

배우를 좋아한건 무대 위 배우의 모습이 멋져서였다. 기안84는 <패션왕>을 비롯해 이후 그의 작품이 좋았다. 김제덕 선수는 양궁시합을 보다가 늠름한 아기 호랑이 같은 모습에 좋아하게 되었다. 이렇듯 나는 "본업"을 잘하는 모습에 입덕했었는데- 크라잉넛 베이시스트 한경록님은 무대 위 그의 모습이 아니라 그가 쓴 칼럼과 글을 보고 베이시스트 한경록이 아니라 '작가' 한경록으로 정말 홀딱 반해버렸다. (아아 너무 상투적인 표현이야..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 아시는 분?) 좀 더 자세히 표현하면 <동경>의 마음이 크다. 내가 쓰고 싶은 글, 내가 좋아하는 글을 쓰는 사람을 만났다는게 너무 기뻐서 어쩔줄 몰랐다.(작가의 사전적 정의는 문학 작품, 사진, 그림, 조각 따위의 예술품을 창작하는 사람이다. 작사작곡도 하는 분이니 작가맞지!)


한달 전 쯤, 스토리에 게시물을 올리며 배경음악을 '지독한 노래'로 깔았었다. 그때문인지 이후로 며칠간 크라잉넛 관련한 게시물이 보였다. 그러다 내 눈을 사로잡은 한 사진. 한겨레 칼럼 전문이었다. 제목 <한경록의 캡틴락 항해일지> 글쓴이 크라잉넛 베이시스트 한경록. 그전까지 난 1세대 인디밴드는SNS를 안할줄알았다. 한다 한들 엄청난 셀럽이니 한낱 팬의 팔로우에 별 신경을 쓰지 않을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팔로우를 한 다음날 맞팔(서로 팔로우를 함)이 되었고, 이 놀라운 상황을 스토리에 올렸더니 몇 시간 만에 리그램(스토리를 본인의 것에 올림)까지 해줬다. 블로그도 한다는걸 알게 되어 서로이웃 신청을 했는데 역시나 다음날 수락알림이 왔다.


그는 입덕 포인트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무릇 덕후들은 최애의 아주 작은 관심에도 까무러치는법. 원래 크라잉넛 노래를 좋아했지, 베이시스트는 덮어놓고 동경했지, 칼럼을 읽고 홀딱 빠졌지, 팔로우 했는데 맞팔해줬지, 리그램해주지, 블로그 서로이웃까지 받아줬지. "이거 혹시 사칭계정아니야?" 의심도 했다. 다행히 본인 맞았다. 그의 sns에는 본인 셀카도 있고, 무대 위 모습도 보였다. 알고리즘 덕분에 유튜브엔 크라잉넛 영상이 마구마구 올라왔다. 봤던 것도 있고 처음 본 영상도 있었다. <유퀴즈>에 나온것도 클립으로 보고 풀영상을 찾았다. 세상에. 꺄르르 거리며 눈웃음을 짓는데 그걸 보고 완전 넘어갔다. 누군가에게 귀여움을 느끼면 끝이다. 심지어 귀엽기까지하잖아! 유쾌한 사람이구나, 말랑하고 뭉실할것 같은데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을 하는게 인상적이었다. 1질문 1대답, 적절한 유머, 거기에 한 분야에서 굳건한 자기자릴 지킨 그가 참 늠름해보였다. 무엇보다 그의 말은 듣는 이가 허투루 흘려들을 수 없는 굳은 심지가 박혀있었는데, 그게 불편하지 않았다. 이래저래 멋진 분이구나, 글쓰는 사람 치고 달변가가 없는데 말도 참 귀엽게 잘하는게 부러웠다. (유퀴즈 1회부터 본 '찐자기'였는데, 코로나 이후 본방을 챙겨보지않아서 몰랐다. 진즉 이 영상을 봤다면! 크와앙!)


작년 이맘때, 몇 달 간 아무 글도 쓰지 못했던 적이 있었다. 이슬아 작가님과 은유 작가님의 "그마저도 써보세요", "돈이 안되는 거라도 일단 써보세요"라는 말에 꾸역꾸역 하루에 한 문장씩 썼다. 내 글이 진짜 후지고 별로라는걸 깨달았고, 그게 나를 괴롭힐 때마다 내가 좋아하는 글, 멋진 글을 찾아다녔다.


내 기준에 좋은 글은 다음과 같다. 하나. 한 문장에 하나의 이야기만 있을것. 둘. 솔직하지만 너무 날것은 아닐것. 셋. 사유가 들어있을것. 넷. 흉내내는 글이 아닐것. 다섯. 기승전결이 말랑하고 읽은 후에 다음 글을 보고싶다는 충동이 들 것.


한경록 님의 글이 그랬다. 간결하고, 그의 역사가 담겼지만 고루하고 질리지 않았다. 당신의 이야길 더 해주길, 어떤 책과 글을 읽었는지, 사소한 것이라도 그의 글 위에 서면 빛나보였다. 무엇보다 30년 동안 한 분야에 이름을 남기기까지 있었을법한 희노애락이 진부하고 고루하지 않아서 좋았다.


항해일지엔 다양한 책과 영화가 나온다. 고우영 화백 <삼국지>가 나온 날엔 우리집 서재에 꽂혀있는 고우영 화백의 책을 밤새 읽었다. 303챌린지를 보면서 '나도 1주일에 5일은 운동하기, 주 3회 이상 10km이상 걷기'를 실천하며 혼자 뿌듯해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문장들. 내가 작년에 펜을 놨던 이유가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저런 문장을 못 쓸거야, 이런 소재는 나는 못찾는다"는걸 알고 나서였다. 내 글이 이렇게 후지고 상투적인줄 몰랐으니까. 잘쓴다고 생각한적은 없지만 적어도 나아가는 글인줄 알았는데 정 반대였다는걸 알았을때 완전히 무너졌었다. 그의 글엔 그 '죽었다 깨어나도 못 쓸' 문장들과 단어가 펼쳐져있다. 다만 그의 글을 보며 전과 같이 쓰러지지 않게된건 나를 살린 작가님들의 '뭐라도 써보라'는 격려, 차글차글 멤버들의 '어쩜 그렇게 잘하냐'는 무한 칭찬 덕분이다. 죽어라 쓰고 읽었고 그 덕에 글을 쓰고 보는 눈을 키울 수 있었다. 내가 좀 탄탄해지니 남의 글도 너그럽게 볼 수 있게 되었다. 그의 글은 30년 한 길을 걸은 연륜에 손길과 눈길 닿는 모든 것을 포용하는 너그러움이 들어있다. 그 경계가 너무 넓고 진입장벽이 높지 않아서 무장해제하고 쑥 빠진것같다.


(특히 내가 '와 진짜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못쓸거야' 했던 두 문장이 있다.)

<정말 귀하고 아름다운 것은 내 호주머니 속에 넣을 수 없고 몸에 걸치고 다닐 수도 없다. 별들은 하늘에 걸어 두는 것이 가장 예쁘고 노을은 술잔에 담가 먹을 때가 가장 맛이 있다.>


<시간은 나에게 겸손을 가르친다. 착한 척이 아니라,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빅데이터에 의하면 겸손하고 감사한 것이 합리적이다. 내 생각에 감사는 최고의 생존 비법이다. 위기의 상황에서 그래도 이만하면 '감사'하다고,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며 해답을 찾으려 했기 때문에 뒤집을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즉, 위기와 기회 사이에는 감사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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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그의 블로그 글에 맛좋은 고구마와 새로산 올리브유, 요거밀 등 건강한 음식과 금주, 홈트와 자전거 타고 온 이야기를 올렸다. 맨 아래 글을 보고 또 혼자 "어머" 감탄했다. <시간이 너무 달콤하다> 그 한 문장에 이 글이 모두 담겨있었다. 달콤한 고구마를 먹고, 건강한 일상과 사소한 일상에 감사함을 이 한 문자에 넣다니. "달콤하다"는 글자가 그렇게 달디달고 혀에 착 감기는 단어인지 그날 처음 알았다.


글을 읽다보면 물음표가 생길 때가 있었다. 고전을 읽고, 박완서 작가님의 소설을 보고 "그래서 이 인물은 다음에 어떻게 살았을까?", 톨스토이는 악마를 통해 무슨 이야길 전하고 싶었을까? 그 궁금증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런데 요즘은 영 다른 의미로 물음표가 생긴다. "이게 무슨 소리야?", "뭔 이런 뜬구름 잡는 말이래?", "쌀로 밥짓는 이야기잖아. 너무 뻔하고 당연한거 아니야?" 그러다보니 읽던 책만 읽고, 좋아하는 작가의 글만 찾아봤었다. 한경록님의 글은 느낌표다. 오 맞아! 와, 나도 그랬는데! 그의 글에서 물음표가 나오는 경우는 예시로 든 책을 보고 '오 이 책 되게 궁금한데?'정도다. 이마저도 간결한 설명덕에 그 의문이 오래가지 않는다.


그를 동경하는 마음이 커질수록 과거의 나에게 욕을해댔다. 대체 10년 전에 너는 무슨 생각으로 살았냐고. 왜 그때 노래만 들었냐 <밤이 깊었네> 가사만 봐도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깨방정을 떨었으면서, "와 이 가사는 진짜 짱이야" 라고 방방 뛰었으면서, 아니 좋은 책을 보면 그 작가를 무조건 따르면서 작사가 누군지 좀 찾아보지그랬냐!! 지난 10년을 굉장히 헛되이 보낸것같다. 진즉 알았다면 내 10년은 좀 더 나았을것 같은데. (나 분명 되게 열심히 살았는데, 덕질이 이렇게 무섭다)


배우, 작가, 운동선수 덕질을 하면서도 정작 그들의 '오프 더 레코드'는 궁금하지 않았다. 나로썬 그들의 본업을 보고 좋아한 것이니까. 이번엔 다르다. 그의 칼럼에 나온 책과 영화를 보고 "나도 이거 봤는데"라고 호들갑을 떨고 싶고, 어떤 작품을 좋아하는지 더 알고싶어서 지난 글들을 하나하나 역주행하기 시작했다. '우리집 앞에 220살 된 보호수인 회화나무'가 어느 동네에 있는건지 너무 궁금하고, 내년엔 꼭 <경록절>에 가서 항해일지에 나온 그 감동과 흥을 느껴보고 싶다. 그게 올해가 될지, 몇 년이 또 걸릴지는 모르지만 어차피 쭉 좋아할거니 그게 아주아주 먼 일이라도 괜찮다. (보호수는 검색해보니 진짜 많네... 심지어 서울 지리도 몰라서 뭐가 뭔지도 모르겠다. 꼭 보러 가고싶은데 힝구)



<항해일지>칼럼을 파일로 만들어 출력했다. 한 장 한 장 소중하게 파일철을 해서 책으로 만들었다. 파일도 넉넉히 사놨다. 집에 프린트기가 없어서 매번 도서관에 가서 출력해와야한다. "지독한 노래" 원곡과 순화된 버전, '명동콜링' 세 곡을 들으면 도서관에 도착한다. 돌아오는 길엔 '신기한 노래',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 두 곡을 듣고 랜덤으로 크라잉넛의 노랠 듣는다. 오가는 길엔 크라잉넛 베이시스트 한경록의 팬으로, 집에 와서 항해일지와 블로그 글을 읽으면 작가 한경록의 애독자가 된다.


나는 책을 책대로 읽고 인생에 바로 집어넣는 사람을 좋아한다. 내가낸대-하면서 독서를 했다는걸 과시하는 사람들이 만연하는 와중에, 진짜 "책을 통해 인생을 넘기는 사람"을 만나 너무 신이 난다.


<삶의 무게가 버겁게 느껴진다면 삶의 시소 반대편에 좋은 책과 함께 서서 균형을 맞추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나였다면 좋은 책 한 권은 인생의 선생님이자 길잡이 따위의 진부하기 짝이없는 말만 해놨을건데. 나는 아직 멀었다.


나는 이제 독자로 글을 통해 그를 만나며 마음껏 좋아하고 내 마음을 실컷 표현하기로 했다. <캡틴락 항해일지>에 새롭게 승선한 독자로 그가 이끄는대로, 하자는대로 따르다보면 긴 삶의 여정도 즐거운 노래처럼 즐겁게 보낼 수 있을것 같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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