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춰둔 비밀이 슬퍼지는 순간
허진이 작가 북토크에 다녀왔다. 이번 행사는 여느 것과 다른 점이 많았다. 우선 소수의 ‘찐독자’들 몇 명(나를 포함해 여섯명)만 모였었고, 작가님이 직접 질문지를 주셨다. 우리는 그걸 함께 나눴다. 당초 정해진 시간보다 30분이나 더 늦게 끝났지만, 이마저도 무척 아쉬워했다.
책 제목은 <비밀에 기대어> . 작가는 “나의 비밀에 기대어 마음껏 이야기해 보았다”고 책에서 소회를 밝혔다. 질문에 대한 자신만의 답을 하는 시간이 되었다. 다들 처음엔 멋쩍어했다. 그날은 처음 본 사람, 아주 오랜 기간 봐왔던 지인도 있었다. 나를 잘 모르는 이들에게는 ‘저들이 내 삶을 궁금해하지 않을것’, 10년 넘게 본 이에겐 ‘어쩐지 낯뜨거워서’ 말을 할 수 없었다. 다들 비슷한 마음이었던지 처음엔 서로의 얼굴만 보고 누가 먼저 운을 뗄지 눈치만 봤다. 하지만 이내 말이 트이자 좋은 답변들이 봇물터지듯 쏟아졌다. 좋은 질문 덕분에 양질의 대답이 나왔고, 그 모든 것은 화자가 얼마나 많은 고민과 치열한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아래 질문에 대한 답을 준비해갔었다.
<1>107p 에서 작가는 친한 친구에게 요리를 대접하며 자신의 진심을 전합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진심을 전하고 싶었던 경험이 우리 모두에게 있을 것입니다. 내가 타인에게 진심을 전하기 위해 주로 하는 방식이 있다면 나눠주세요.
답) 저는 애정하는 것이 생기면 일단 씁니다. 정작 마주보면 아무말대잔치를 벌이거나 말을 못합니다.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애정하는지, 앞으로도 쭉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응원하겠다고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그래서 내 글을 보면 “지금 뭘 좋아하는지, 어떤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아주 투명하게 보인다.
<2>작가는 책 153p에서 ‘아는 만큼 사랑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상대를 위한 관찰과 경청이 사랑의 필수적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나를 기다려주고 경청해준 경험이 있다면 공유해주세요.
답) 최근에 본 <인간극장>에 나온 두 사람이 떠올랐다. 2025.04.14-18일 방영된 <넌 나의 햇살>에 나온 햇살이 부모님. 혜균님과 승준님 두 사람을 본 딸이 “엄마, 원래 엄마 아빠는 저렇게 재미있게 놀고 계속 웃어?”라고 했을 정도. 서로의 말에 깔깔대고 끝까지 들어주는데 서로 얼마나 애정하고 존중하는지 보였다.
내 주변에도 그런 분들이 있다. 고은언니와 감자선생님.
<3>작가는 책의 44p와 75p에서 ‘다르다는 사실’이라는 표현을 통해 자신의 환경이 사회의 대다수 또래와 구분되는 상황이 그 자체로 결핍이었음을 이야기합니다. 내가 대다수로 표현되는 사람들과 ‘다른’점은 무엇입니까? 그 상황이 자체로 결핍이라고 느낀 적이 있나요? 그 결핍은 어떠한 기회가 될 수 있을까요?
답) 학창시절, 대학교 때.
결핍이 기회가 된 적은 없었다. 굳이 ‘기회’라고 한다면 내 결핍에 이를 바득바득 갈고 악착같이 생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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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야기 말미였나, 자신이 가진 <비밀>에 대해 잠깐 나왔다. 나의 비밀은 뭘까.
곰곰히 생각하다 혼자 한 줄 적었다.
나는 슬퍼서 운 적이 없다.
잘 울지 않는다. 남들 앞에서 감정 표현을 하는것만큼 비참한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 모습은 이내 약점이 잡히기 때문에 속으로 삼킨다.
내가 우는 경우는 분하고 억울해서. 아, 악어의 눈물도 몇 번 흘렸다. 이 타이밍에 울어줘야 상황이 유리하게 돌아가겠구나 싶었던 경우. 약았다고 하겠지만 그게 내가 사는 방식이었다. 상대의 말과 행동이 어이가 없고 화가나는데 “어차피 내가 말할 지언정 저 사람은 바뀌지 않을거다”는 확신이 들면 울컥하고만다. 이런 상황에 처한 내가 안쓰러워서.
감동적인 영화를 보거나 아름다운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 이별, 상실감 등 감정을 눈물에 쏟는 사람을 보면 부럽다. 나는 슬프면 “그래선 안된다”고 마음을 다잡는데.
안쓰러워서, 짠해서, 화가나서, 분해서, 서러워서- 안쓰럽고 슬프고 서러움의 기저에 “슬픔”이 있다고는 하지만 글쎄, 난 슬프다는 감정은 없다.
슬픔은 자기 연민에 빠진 나약한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이걸 담담하게 말하는 내가 싫다.
뭐 그리 힘들고 짜치게 살았다고 슬퍼서 울지도 못했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