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히 사랑했으니 미련은 없다
30년 넘은 단골 칼국수집이 없어졌다. 2,5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친정집에서 가까워 자주 들렀던 곳이었다. 주인아주머니가 연로하셔서 접으셨다고 했다. 어머니에게 그 이야길 듣고 앞으론 그 심심한 칼국수를 못 먹게 되어 슬프다고 했다.
그러다 어머니가 "너 근데 혼자 칼국수 잘 만들어 먹지 않았냐?"라는 말에 불현듯 한 사람이 떠올랐다.
10년 넘게 알고 지낸 사람이 있었다. 원래는 '친구'였지만 지금은 손절했기 때문에 그냥 '지인A'라고 하겠다.그녀는 고등학교때 같은반이 된 후 대학교, 성인이 될 때까지 '절친'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것 같지만.
A는 집에 있는걸 좋아하고 사람들과 두루 어울리기 보단 좋은 이들과 깊이 사귀는 타입이었는데, 나와는 반대된 성향인 그녀가 나와 함께 다니며 동아리 활동도 하고, 친구와 선배도 많이 사귀었다. 공통된 이야기가 많아졌고, 거진 붙어다녔다. 나는 무척 신이 났다. 무엇보다 '공통된 이야길' 함께 나누고, 같이 아는 지인이 있다는게 좋았다.
그래서 함께 놀러도 가고싶었고, 좋은 곳, 좋은 것이 있으면 가장 먼저 A에게 연락했다. 하지만 그녀는 '피곤하다', '그냥 집에 있을게', '좀 불편해' 등으로 거절했다. 거절당할 때마다 싫기는 커녕, 아 친구가 이러한 건 좋아하고, 이런건 불편해하는구나 하고 이후 친구의 성향과 기준에 맞춤한 것들을 권하게 되었다.
언젠가 같은과 동기가 나에게 'A는 체력이 안좋더라'고 했다. 무슨 이야기냐 했더니 둘이 시내 나들이를 다녀왔는데 A가 너무 피곤해했다는것이다. 나와는 시내가는것이 귀찮고 집에서 쉬고싶다더니. 그래도 그때는 서운함보단 둘이 갈 일이 있었나보네, 동기랑 좋은 시간 보냈구나 했다. 이후 그 동기와 A는 같이 시내 나들이나 산책을 자주 다녔다. 뭐 그럴만하니 가겠지 싶었다. A에게 동기와 어디 다녀왔다는 이야길 한 적이 있다. 손사례를 치더니 '동기가 가자고 자꾸 졸라서 할 수 없이 다녀왔어~'라고 했다. 아, 나는 몇번 안 졸라서 안갔니? 라고 했더니 '아니, 동기랑 갔는데 너무 피곤하고 힘들었어'하면서 본인이 얼마나 힘들었음을 토로했다.
A는 매운음식과 국수 종류를 좋아해서 우리는 떡볶이나 칼국수, 라면 등을 자주 먹었다. 특히나 얼큰한 국물을 좋아했다. 나는 자취를 했는데 집에서 음식을 자주 만들어 주변 동기와 선배들과 함께 먹었다. 그 중 A가 좋아하는 것을 만들 때면 일찌감치 연락해서(전화는 거의 안받았음)오늘 뭐뭐 만드니까 놀러오라고 했다. 물론 한번도 온적은 없었다. 기숙사와 자취방까지 거리는 도보로 20여분. 내가 기숙사로 열 번 가면, A가 우리집에 한두번 오는 정도(그마저도 수업 마치고 들리는 것)였기에 그러려니 했다.
그러다 언젠가 그 친구가 심한 감기에 걸렸다. 타지에서 아프면 얼마나 서러운지 알기에, 죽을 사다주겠다니 칼국수가 너무 먹고 싶은데 일요일이라 문연곳이 없을거같다고 했다. 그렇게 먹고싶냐고 물어보니 인스턴트라도 먹고 싶은데 기숙사 매점이 쉬고, 시켜먹으려고 하니 칼국수 한그릇은 배달을 하지 않는대서 그냥 누워있다고 했다. 안쓰러운 마음에 뭐라도 갖다주고 싶었다.
나는 홍두깨와 밀가루를 꺼냈다. 칼국수면을 직접 만들고 육수를 냈다. 매운 것을 좋아하니 고추를 다져 양념장도 만들었다.
퍼지기 전에 갖다줘야지 싶어서 부랴부랴 준비하고 칼국수를 구했으니(만들었다하면 부담이 될 것 같아서)갖다주러 갈게 라고 했다.
그런데 싫단다.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나서 문자가 왔다 '내가 가야지~ 근데 나 못가겠어 미안해.' . 내가 몸이 너무 아파서 나갈 힘도 없어'라거나 '아유 일부러 그럴거 없어'가 아니고 '잠옷 갈아입기가 귀찮아. 이 꼴로 나가기가 좀 그래서...'란다.
그때 하나 알게 되었다. "그녀는 내가 하는게 부담이구나" 앞서 말한 동기처럼 나의 행동을 누군가에게 "아 (필자)가 하자고 해서 어쩔수없이"라고 하겠다 싶었다.
그녀에게 애인이 생겼다. 상대는 본인과 너무나 잘 맞는 성실하고 순한 남자라 했다. 나는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원래도 연락이 자주 안되었지만, 애인이 생긴 후엔 더 심했다. 번번히 '남자친구랑 같이 있어서' '남자친구랑 약속이 있어'라길래 '남자친구가 참 잘해주는가보다. 잘 되었다.'고 했다. 이따금 만나면 남자친구 자랑에 여념이 없었다. 듣는 사람도 흐뭇해지는 귀여운 커플이었다. 다만 한 가지, "남자친구랑 농구관람도 가고, 꽃놀이 다녀왔는데 너무 좋더라~"하는데 좀 씁슬했다. 내가 그렇게 가자고 할 땐 '귀찮다', '그냥 쉬겠다', '난 그냥 집에 있는게 좋다'고 했는데-좀 어이가 없었지만 엄청 좋아하니 그렇겠구나 싶었다. 오히려 친구를 바깥으로 끌어준 남자친구가 참 고마웠다.
그들은 결혼을 했다. 결혼한 후 그녀의 얼굴은 더 좋아졌고, 남편과 시어른께 듬뿍 사랑받는다고 늘 말했다. 후배 두 명도 비슷한 시기에 결혼을 해서 넷이 모여 만나기로 했다. 후배들은 일부러 우리가 사는 지역으로 온다고 했다. 한달 전에 잡은 약속이었고, 모두 동의했다. 그런데 당일아침, A가 자기는 나갈 수 없단다. 이유를 물어보니 남편이 출근을 했는데, 돌아오면 밥을 차려주고 같이 먹어야 한단다. 차려놓고 나오면 되잖아 했더니 '주말에 일하고 왔는데 혼자 밥 먹으면 좀 그렇잖아'라고 함께 있어야 한단다. 후배들에게 차마 이렇게 말은 못하고 '갑자기 일이 생겨서'라고 하면서 동선을 친구집 근처로 잡아 만났다. 후배보기 민망했지만 워낙 부부사이가 좋아서 그렇구나 했다.
그녀가 출산을했다. 시댁에서 산후조리를 한다고 했는데 유축기가 필요하대서 내것을 주겠다고 했다. 몇 차례 거절하더니(보건소에서 대여한다고)대여가 어려워져서 내것을 쓰기로 했다. 1주일전에 약속을 잡고, 하루 전에도 연락을 했다. 마침 그 다음날이 친구 생일이라 생일과 출산선물 겸 좋은 소고기도 미리 주문해두고 미역도 샀다.
그렇게 준비를 하고 고기를 받으러 가기 전 이제 출발한다고 했더니 못나온단다. 집에 어른들 안계시냐니까 계신단다. 근데 왜 못나오냐? 남편이 나오기로 하지 않았냐 했더니
남편이 방금 잠들었단다. 그래서 나갈 수 없다고 했다. 내가 그럼 집앞에 두고 갈테니 나중에 챙겨가라했다. 그녀는 "시부모님 댁이라 친구오는게 눈치보여서 좀 그렇다"는 답을 했다. 내가 집에 들어간다는것도 아니고, 두고 돌아간다는데도 싫단다.
아, 난 그제서야 아차했다.
출산 전, 내가 몇 차례 "그래도 친정이나 집이 여러모로 조리하기 편할 것이다."고 말했다. 그녀는 시댁이 친정보다 더 편하고 좋다, 눈치 전혀 보지않고 너무 좋아서 시부모님댁에서 산후조리를 한다고 했다. 나에게 '너는 시부모님이 불편하니?'라고 은근한 핀잔을 받고 나서 그 말을 그만뒀다. 잠든 남편을 깨워 물건을 가져오라하기 힘든것 정도는 안다. 나였어도 그랬을 지 모른다. 하지만 나였다면 미리 남편에게 '이러한 일이 있어서 몇 시에 온다 했으니 좀 부탁한다'고 했을것이다. 아니면 내가 직접 나갔다 올테니 아이를 봐달라고 했을거다. 그녀가 잠깐 나올수도 있었다. 집앞에 두고간다니 답이 없어서 경비실에 맡겨두겠으니 찾아가라고 동호수 알려달라니 "시부모님 댁이라 오라하기가 좀 그래"라는 어처구니없는 답변을 받았다. 동호수를 알면 내가 쳐들어갈것처럼 말하니 불쾌했다.
그날 밤. 그녀에게 답지 않게 긴 문자가 왔다.(여기서 답지 않다는건- 평소 그녀는 먼저 연락하는 일이 없었을 뿐더러, 대부분 단답으로 응했기 때문이다)
시부모님댁에서 산후조리 해서 모든게 조심스럽다. 남편이 전날 늦게 까지 아이를 돌보고 회사 출근을 했는데 잠이 들어서 차마 깨울 수 없었다고 한다. 나는 그 문자에 답장하지 않았다. 그 후 그녀에게서 연락은 오지 않았다.
한달 뒤 내 생일에도 그녀는 연락이 없었다. (사실 이전에도 내 생일을 잊어버려 2주 뒤에 연락이 온 적이 있었다.) 그렇게 1년, 2년이 지났다. 그 동안 다른 친구와 단톡방에 내가 둘째를 가졌고, 둘째 출산을 했다는 소식을 올렸다. 하지만 그들은 답이 없었다. 내가 먼저 연락하지 않으니 그쪽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는구나. 씁쓸했지만 이 또한 내 복이려니 했다.
나의 언니와 남편은 내 이야기를 듣고 본인 일처럼 화를 냈다. 언니는 평소에도 네가 너무 유별날 정도로 잘해준게 보여서 속상할 정도였다고 했다. 그래도 서로 친구인줄 알았는데 솔직히 그럴줄 알았다면서 날 위로해줬다. 남편은 묵묵히 듣더니 "걔한테 말해야 되는거 아니야?"고 했다. "나는 그랬으면 바로 만나서 섭섭한거 다 이야기하고 그쪽 이야기를 들어줬을거다"는 말에 "난 그러기 싫어"라고 답했다. "그 동안 세월이 너무 아깝잖아, 미련이 남지 않냐" 남편이 걱정스럽게 물었고 난 답했다.
"난 누구를 만나건
매 순간 진심이고 100%로 대하기 때문에, 일말의 미련도 아쉬움도 없다.
반대로 그쪽에 섭섭하고 미운것도 없다."
남편은 몇 십년 친구였던 사람을 단칼에 손절하는 내가 무섭다고 했다. 사람 관계를 어떻게 그렇게 자르냐면서 너무 정이 없단다. 적어도 난 사람을 대할때 진심을 다해 온 마음을 쏟아부어서인지 괜찮다.
아까 동네언니와 점심을 먹었다. 메뉴는 닭칼국수. 칼국수를 보니 A의 생각이 잠깐 났다. 그녀가 '친구'였다면 '아 그 친구가 이거 좋아하는데, 하나 포장해줄까? 아 다음에 같이 와야겠다'했겠지만, 지금은 '아 칼국수를 좋아하는 지인이 있었지'로 끝났다. 그렇게 나는 친구를 잃고 지인을 얻었다. <끝>
손칼국수 만들기(2인 기준)
1. 육수내기
-물 1.5리터에 파 흰부분, 버섯, 멸치(내장과 대가리 제거), 무 등을 넣고 팔팔 끓인다. (분량은 물에 절반 정도)
-물이 끓으면 손바닥 만한 다시마를 넣고 10분정도 우려내고 바로 뺀다.
2. 칼국수면 만들기
-밀가루1:물1/4:식용유 약간을 넣고 치댄다.
-밀가루 반죽 표면이 반질반질해지면 둥글게 만 후 냉장고에 20분 정도 휴지시킨다.
-도마에 약간의 밀가루를 뿌리고 밀대로 밀가루반죽을 민 후 길게 자른다.
3. 손칼국수 만들기
1의 육수에서 건더기들을 건져내고, 육수가 팔팔끓으면 2의 면을(밀가루를 털고)넣고 한소끔 끓인다.
부추와 애호박, 감자 등이 있으면 기호에 맞게 넣어 함께 끓인다.
4. 양념장
간장, 고춧가루, 다진파, 다진마늘(모두 1:1:1)고추기름 약간+물을 간장의 절반 정도 넣는다.(물을 넣는 것이 포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