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TV를 보면서 '뭐지?'싶었던 적이 있었다.
연예인이 "여의도에서 청량리까지 걸어갔었어요"라고 말하는데 그곳의 게스트들은 "와아 걸어서요?"라고 놀랐지만 나와 식구들은 그게 어느정도인지 가늠을 못해 공감할수 없었다. (요즘은 좀 나아져서 "선심쓰듯" 자막에 걸어서 30분이라던가 몇 키로미터라고 알려주기도 한다)
시민을 만난다고 하면 늘 서울, 경기권이고 방학이나 명절 등 특별한 이벤트로 지방특집을 했었다. 지방에 하루 오가는 품이 워낙 드니까 그러려니 싶다가도, 때론 "아니, 나도 똑같이 수신료 내는데 왜 '시민'은 서울, 경기도사람만 쳐주는거야?"라는 생각도 들었다. 말로는 서울공화국이라면서 언론에서 그걸 공고히 다져준것같아 더 싫었다.
중학교 2학년때 MBC느낌표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울산편을 한 적이 있었다. 당시 방송에 나온 책을 다 읽었고, 유일하게 챙겨본 프로그램이라 조퇴를 쓰고 버스를 세 번 갈아타서 녹화장소에 도착했다. 지금이야 울산이 심심치않게 TV며 유튜브에 나오지만, 그땐 광역시임에도 불구하고 소개되는 일이 아주 적었다. 잔칫집 같이 떠들썩했다. 동네주민 뿐 아니라 나처럼 멀리서 온 사람도 꽤 되었다. 모두 들떠있었고 카메라를 처음 본 사람들처럼 촬영팀이 세팅하는 것들을 진귀하게 보며 이야길 나눴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를 상당히 귀찮고 하찮게 여겼다. 사투리를 듣고 대놓고 '무슨 말인지 못알아듣겠다'고 지나치고, 반존대를 일삼으며 "거기 좀 비키세요"라고 잔뜩 날 선 태도가 눈에 들어왔다. 4시간 넘게 걸려 일하러 왔으니 그랬겠지, 저 사람들은 늘 이 일을 하니까 그럴수도 있겠다. 서울내기들의 무례함도 "그러려니"라고 받아줄만큼 그날 촬영은 모두에게 대단한 사건이었다. 담당pd는 어서 여길 나가고싶어했다. 빨리, 비키세요를 남발했다. 음식과 음료를 권하는데도 "아 예" 딱 두 마디. 예의를 찜쪄먹은 그들의 태도에 불쾌한건 나 하나였다. 한 아주머니가 날 보더니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그 동네에서 보지 못한 교복이고, 그 시간에 학생이 학교에 안가고 뭐하나 궁금했나보다. 이 방송을 너무 좋아해서 책을 다 읽었고, 여기 오려고 조퇴를 쓰고 버스 세 번 갈아타고 왔다고 하니 순식간에 사람들이 내 주위로 몰려들었다. "아유 대단하네", "세상에 그 책을 다 읽었어?"감탄, "집에는 어떻게 가니?", "내가 중간까지는 가는데 태워다줄게 같이가자"는 따스한 호의, 급기야 한 아저씨가 지나가는 스텝을 불러세우더니 "여기 학생이 책을 다 읽고, 힘들게 여기까지 왔대요. 말도 잘하는데 인터뷰 좀 시켜주이소"라고 말했다. 그는 우릴 보지도 않았다. "아 예" 순간 정적. 그때 한 사람이라도 '뭐 저런 것들이 다있어?'라고 말했다면 나는 바로 그들에게 달려들었을것이다. 하지만 우린 모두 방송초보였다. 촬영현장은 다 이런줄알았다. 멀리서 왔으니 참 힘들겠지라고 감싸기만했다.
그 때, 누군가 "유재석이다!"고 외쳤다. 대형스크린에 유재석님과 김용만님이 나왔다. 우린 소릴질렀다. 그 뒤에 웅성거림. "아니, 왜 스크린에 나오는거야? 저 사람들 벌써 왔다갔어?" 아까 외친 목소리가 또 들렸다. "유재석이랑 김용만이는 울산에 안온답니다!" 그 순간 모든 사람들의 목소리가 한층 올라갔다. "울산 촌이라고 무시하는거야?", "아니 그럼 여기서 뭘 찍어간다는거야!" 너그러움은 싹 사라지고 무시당했던 울분이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몇몇은 PD에게 가서 이게 다냐고 물었고, 맞다는 답변을 받았다.
"지금 다른 지역에도 일정이 겹쳐서 유재석이랑 김용만이가 거기 갔대요." 시끌벅적 즐거운 분위기가 일순 수그러들었다. 우리의 실망이 전해진걸까. 유재석님과 김용만님이 "울산 시민 여러분 안녕하세요"라고 말을 건넸다. 저희가 직접 찾아뵙고 인사드려야하는데, 부득이하게 일정이 겹쳤다. 어디가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게 아니고 정말 피치 못할 사정으로 울산에 가지 못한거니 너그러운 양해 부탁드린다. 많은 분들이 저희 방송을 위해 와주셔서 정말 고맙다. 진심으로 죄송하다. 두 분은 연신 미안하다고 사과를했다. 우리는 다들 "그럴수있지"라고 마음이 누그러졌다. 나는 기운이 쭉 빠졌다. 애당초 TV출연이 목적은 아니었다. 그냥 내가 사는 곳에 내가 가장 좋아'했던' 프로그램 촬영을하는 역사적인 순간을 직접 보고싶었다. 과시용독서를 하던때라 "제가 책을 다 읽고요, 박완서 작가님이랑 공지영 작가님 책도 다 찾아봤어요"라는 말도 하고싶었다. (방송에 나오지 않아도, 촌동네에도 이렇게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알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 어떤것도 되지 않았고, 거기다 "방송국놈들"에 대해 실망만 잔뜩했다. 나는 바로 짐을 챙겨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아까 내 인터뷰를 요청한 어르신이 나를 불러세웠다. "학생, 인터뷰 하고 가야지" 뒤이어 헤드셋을 눌러쓴 여자가 와선 대단한 선심을 쓰듯 '너 책 다 읽었니? 좀 기다려' 라고 쌩 가버렸다. 나는 어르신께 '사장님, 저 그냥 안할래요. 이 기분으로는 말을 못하겠어요. 죄송해요' 인사를 드리고 버스 타러 갔다. 선정도서만 따로 빼놨던 책꽂이를 다 털어버리고 몇 권 빼고 다 버렸다. 그 후 방송을 챙겨보지도, 선정도서를 사지도 않았다. 대단한 서울나으리들 나셨다고, 지방을 홀대하는 그들의 콧대가 빨리 꺾어지길 바랐다.
그 후 tv를 다시 보게 되었다. 상황은 더 심각했다. 나는 몇몇 프로그램만 그런줄 알았는데 뉴스특보까지 차별이 있었다. 재난피해상황을 전할때 서울과 경기권, 그 외의 지방의 편차가 이렇게 심한줄 몰랐다. 태풍피해가 아무리 심하다한들 서울과 경기권을 "다행히 비껴갔다"고 안심하는 태도, 남부지방에 수해로 수 백명이 죽고 수 천명의 피해가 터진들 그냥 아랫동네 이야기에 지나지 않았다. "제 고뿔 남의 중한 병만 못하다"는 속담이 생각났다. 전라도에 수 억의 피해가 났어도 서울 어디에 나무가 부러지고 입간판이 떨어져 사람들이 '다칠 수 있다'는 안내가 늘 먼저 나왔다. 산불로 한반도 등줄기가 타올라도 편성표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어도, 구호물자와 인력난이 심각하다고 소릴쳐도 tv는 잠잠했다.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겠다는 언론은 실시간으로 알아야 할 재난 소식, 피해상황을 전해주지 않았다. 서울지역 물난리로 재빨리 구호성금을 모금 한다는건 참 빨리도 올라오면서, 지방은 "자 여기여기 그러모읍시다"고 기다렸다가 올리는것 같다.
내 글을 읽는 '서울분들'은 "지방 사람들의 피해의식이 참 지나치구나"라고 기가 막힐지도 모른다. "우리 산불난거 다 알아, tv에 계속 나오던데?" 콕 짚어주는 사람도 있을거다. 그런데 그들 중 한 명 이라도 그 '실시간 속보'를 제대로 보셨는지. 전전긍긍하며 tv를 보는 이들에겐 턱없이 황당한 '한 발 늦은'뉴스는 차라리 아니한 만 못하다. 지역라디오에선 지금 당장 대피하라고 계속 알려주는데, tv는 정규방송을 틀며 낄낄대는걸 보니 이게 지금 뭔가 싶다. 20년이 지났지만 <서울중심>방송은 더욱 공고해질뿐, 변화는 전혀 없는게 치사하고 더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