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생연분은 비록 못찾았지만
고등학교 때 일이다. 수업 중에 주목받은 적이 있었다. 그날은 원래 과목 선생님이 사정상 수업을 하지 못하셔서 대리로 다른 분이 들어오셨다. 학기 말이라 어수선했고, 선생님도 딱히 수업할 생각이 없으셨는지 이런저런 재미난 이야길 들려주셨다.
그러다 손금과 관상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아직 성인이 되지 않아서 완전할 수는 없지만, 손금은 정말 큰 사고가 없는 한 태어날 때 모습 그대로 간다고. 몇몇 아이들이 자신들의 손금을 봐달라고 했다. “너는 원하는 대학 가겠다.”, “넌 몸 관리 잘해라”, “이야, 너는 결혼 운이 정말 좋다” 몇몇은 신이 났고, 어쨌든 좋은 일이 생길 거라며 들떴다. 그러다 내 차례가 왔다. 선생님은 응? 하시더니 내 손을 덥석 잡고 일으켜 세웠다.
“여러분, 이 친구랑 앞으로 잘 지내세요. 이 친구 손금이 돈이 마를 새 없는 황금손금 입니다.” 무슨 근거로 그러세요? “너는 나랏밥 먹겠다.”라는 말을 들은 아이가 삐죽하게 물었다.
“이 친구 손금 볼래요? 나도 듣기만 했지 처음 보는데, 양손 막쥔금, 원숭이 손금이라고 해요. 여기 보면 가로줄이 길게 그어져 있죠? 거기다 여기 가만히 보면 삼각형이 있는데 이게 돈이 들어가는 주머니에요. 이 손금이 모 아니면 도입니다. 상위 1% 부자랑 서울역 노숙자들에게서 보인다고도 해요.” 그전까지 나는 내 손금이 특이하다는 걸 몰랐다. 다들 이렇게 생긴 줄 알았다. 여하튼 희귀하고 특이한 손금 덕에 며칠간 손바닥을 내놓고 다녀야했다.
대학교 들어가서 이 특이한 손금 덕을 톡톡히 봤다. 아이스브레이킹의 소재로 “저, 신기한거 보여드릴까요?”라고 슬며시 손을 내밀면 절반은 신기하다고 하고, 나머지는 “에이 그게 뭐가 신기해요?” 하다가 자기 손금을 보며 “어? 내 손금이랑 다르네?”라고 그제야 눈여겨보기도 했다. 좋아하는 오빠에게 “오빠야도 돈 창고 있는지 봐줄까?”라고 하면 십중팔구 “그런 게 있나?”라며 손을 내밀었다.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손을 꼭 잡고 요기 있는 거 같다고 손바닥을 슬쩍 만지며 플러팅을 하기도 했다. (성공률 100%) 회사 다닐땐 “왕회장님 손금도 막쥔금이었다”고 한동안 예비 회장님 소리도 들었다.
그러고 보니 돈이 아쉬운 적은 있었으나, 없어서 곤란하거나 불운한 일은 없었다. 돈이 좀 궁한데 싶으면 생각지 못한 곳에서 돈이 들어왔고, 예상치 못한 지출에 빠듯했을 땐 여퉈뒀던 금값이 세 배 이상 올라서 구멍 난 생활비를 메울 수 있었다. 선생님의 말씀을 좀 곡해해서 “돈이 늘 넘쳐나게 많다”라고 하셨는데 왜 나는 돈이 없냐고 푸념했다. 지금 복기하니 돈이 ‘많다’라고는 하지 않으셨다. 그저 ‘돈이 마르지 않는다’라고 하셨을 뿐. <전혀 없다>와 <조금 있다>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어쨌든 근근이 돈이 생길 때마다 ‘이게 진짜 손금 때문인가? 이왕 돈 들어오는 손금이면 좀 많이 들어오면 좋겠다’는 불손한 기도를 드린 적도 있다.
일자손금은 감정선과 두뇌선이 하나로 합쳐져 있는 모양이 한 일(一) 형태라 그리 부른다. 전체 인구의 약 1~3% 정도로 흔치 않고 그중 양쪽 다 가진 경우는 더욱 드물단다. (※이 퍼센티지가 100% 정확하지는 않다고 한다. 희귀하긴 하단다.)
나는 부자가 된다는 말보다 <같은 결을 가진 일자손금끼리 만나면 천생연분이다>라는 말을 더 믿었다. 그래서 “일자손금에 나랑 비슷한 성향인 사람”을 찾아 헤맸는데 결국 찾지 못했다. (슬픈 결말) 살면서 일자손금을 딱 세 명 만났는데, 셋째 큰아버지(건물주시다, 내가 아는 제일 부자로 남들에게 많이 베푸시는 멋진 분이다), 도련님(우리 시동생님, 정 많고 잘 대해주신다), 박찌아(우리집 둘째). 셋 다 무척 좋아하는 사람들이지만 결이 같거나 아까 말한 ‘천생연분의 인연’은 될 수 없는지라 그저 좋은 관계를 맺기로 했다.
여전히 일자손금인 사람을 찾고 있다. 성별, 나이, 직업, 연고를 불문하고 “희귀한 손금”이라는 공통점 하나로 확 친해질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에 나와 성향이 같다면 덮어놓고 좋아하게 될지도 모른다. 일자손금 덕분에 사람들과 말을 트고 세상에 나섰듯, 일자손금을 가진 특이한 “우리들”을 불러 모아 재미난 이야길 나누고 싶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