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사해서 안할래

3월주제: 두쫀쿠(두바이 쫀득 쿠키)

by 리다

스레드를 시작했다. 공모전 정보가 가장 빠르고 많이 올라온대서 가입했는데, 정작 원하는 정보보다 어쩌다 한 번 누른 주제가 더 많이 보인다. 가장 많이 본 주제는 두바이 쫀득 쿠키. 영화 <콘크리트 마켓>에서 통조림이 화폐가 되었듯이, 요 몇 달 두바이 쫀득 쿠키 1개는 SNS에서 1인기로 통하는 듯했다. 인플루언서들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앞다투어 ‘오늘은 몇 개를 샀다’, ‘유명한 카페에서 협찬해 주셨다’라는 게시물을 올렸고, ‘좋아요’와 댓글이 많아지면서 긴 줄을 서서 제값을 주고 산 일반인들은 부러움과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고, 품질까지 다르다는 문제가 나오자, 인플루언서 특혜 논란으로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한차례 폭풍이 지나고, 이제 먹을 사람은 다 먹은 건지 스레드에 두바이 쫀득 쿠키 이야기가 보이지 않았다.

한동안 잠잠하다가 지난 주말, 여수영아학대살인사건 청원 글이 연이어 올라왔다. 친부모가 4개월 된 아이를 지속적으로 학대해 결국 사망에 이르렀는데, 본인들의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반성문을 매일 쓰고 첫째 아이가 있다는 걸 내세워 형량을 줄이려 한다는 게 알려지면서 죽은 다온이의 억울함을 풀고 범죄자가 제대로 된 죗값을 치르기 위해 탄원서를 보내자는 것이었다. 두바이쫀득쿠키의 재고를 찾고, 비싼 돈을 주고도 못 사 먹는다고 속상해하던 이들이 어느새 다온이의 랜선이모, 삼촌들이 힘을 모으고 있었다. 팔로워가 하나도 없는 이가 하루에 열댓 번의 글을 올리고, 게시글에 ‘좋아요’ 한두 개만 있어도 기뻐하는 사람들이 다온이의 글을 공유하고 타인의 글을 옮기고 있었다. 나도 적극 동참했다. 사실을 알리고, 한 사람이라도 알아주길 바랐다. 그 덕에 친한 동생이 탄원서를 보내려는데 이렇게 하는 거 맞냐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내가 좀 더 영향력 있는 사람이었다면 더 많은사람이 보고 힘을 실어줬을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그 많던 인플루언서들이 잠잠하다. <육아는 템빨>이라며 아이를 편하게 키우자(이 표현부터 마음에 안 든다. 누가 편한 거지?)고 각종 용품을 올리던 사람, 아이들은 그저 건강하게 키우는 게 최고라면서 비싼 스포츠센터에 보내는 걸 자랑으로 삼던 사람, 남편이 유명한 대학을 나왔음을 내세우면서 본인만의 육아방법, 용품을 올리고 아이의 학원 피드백을 연신 올리면서 정작 본인은 맞춤법을 연신 틀리던 사람. (‘굳이’를 ‘구지’라고 씀) 누구 하나 다온이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 두바이 쫀득 쿠키는 올리면서 아이를 내세우며 관련 기사에는 입을 닫다니.

몇 해 전 ‘정인이 사건’때가 생각났다. 누군가 이 사건이 더 알려졌으면 하는 마음에 따르는 사람들이 많고, 게시글 노출이 잘되는 영향력있는 인플루언서에게 정인이 사건을 알려주십사 도움을 청하자 “사실 관계를 따져보고 ‘억울한 사람이 없게 하겠다’”는 답이 돌아왔단다.(이후 그 게시물에는 아이와 놀기 좋은 장소 등의 글만 올라왔다.) 그때 이미 정인이의 부모들이 한 악행이 기사 등에 다 나온 상태였다. 한 인플루언서는 ‘정인이를 돕자’며 용품을 만들고 모금운동을 한다고 했다가 뒤늦게 ‘운영료는 최소로 떼고 일부만 기부’를 한다는게 알려지면서 빈축을 샀다. 진짜 치사하다. 명명백백하게 죄명이 밝혀졌음에도 이해득실을 따지는 그들의 행태에 실소가 나왔다.

영향력은 없지만 의식 있는 ‘일반인들’이 아등바등 움직인 덕분에 다온이 사건은 TV도 나오고 기사가 더러 나오기 시작했다. 사람이라면 응당 마음이 동하고 움직여야 할 일에도 몸을 사리는 인플루언서가 되느니, 그냥 내 소신을 가감 없이 올릴 수 있는 마음 편한 일반인이 되어야겠다. 에라, 줘도 안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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