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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다 Oct 11. 2022

요쿠르트 전쟁

둘찌만의 루틴을 존중해주기까지

우리집 둘찌는 대단한 먹보다. 뭐든 일단 입에  넣고 본다. 움직이는것도 예사롭지 않다. 엉덩이 붙이는걸 거의  적이 없을 정도로 하루종일 뽈뽈뽈 다닌다. 호기심도 왕성해서  언니를 따라 여기 올라갔다, 저기 올라갔다 몹시 바쁘다. 그러다 바닥에 떨어진 것은 죄다 입에 넣는데, 먹을거면 차라리 다행이지만 작은 장난감이나 스티커, 비닐도  먹고 삼켜서 문제다. 덕분에 강제로 부지런한 사람이 되어서 하루에도  번씩 걸레질과 청소기를 돌린다.


몇달전엔 응가에서 곰돌이 푸 스티커가 나왔고, 얼마전엔 엄지손톱만한 고무조각이 나왔다. 한참을 보고나서야 큰아이 청진기 장난감에 달린 고무(귀에 꽂는 부분에 달린 것)인걸 알고 얼마나 경악했는지 모른다. 심지어 이걸 삼켰던것도 몰랐다. 다음날 청진기 판매업체에 이러이러한 사정으로 고무가 없어서그런데 부품만 따로 구매가 가능하냐고 문의글을 남겼고, 사장님이 바로 전화가 와선 아이의 건강 염려와 함께 '10년 넘게 판매를 했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라며 택배비만 받고 부품을 보내주셨다.

언니 따라 미끄럼틀에 올라갔다가 떨어져 팔도 부러졌다. 전치 6 진단을 받고 3 가까이 병실생활을 했다.(1년간  지켜봐야함) 거기다 열도 어쩜 이리 자주 나는지.  놀다가도 어느날 갑자기 열이 40도까지 올랐다가 다음날 아침 떨어지곤한다. 덕분에 한달에 2,3일은 어린이집도 못가고 집콕신세다. 하루 두 시간이지만 오전에 일을 나가는지라 아이가 잔기침만 있어도 신경을 곤두세우게 된다. 이번달부터 일이 늘어나서 목요일 하루 쉬는데, 아파도 딱 요날 맞춰 아프다. 이럴땐 효녀 같다가도, 전체적으로보면(?) 첫찌에비해 이래저래 키우기가 참 힘들다. 남들은 둘째는 거저 키운다는데, 첫찌가 너무 의젓하게 잘 있던 아이라 더 비교가 되는건지, 아니면 우리 둘찌가 엄청난 아이(!)라 그런건지. 그래도 그런대로 건강하고 씩씩한 편이라 다행이다.


둘찌가 이유식에서 일반식으로 넘어가고, 다양한 간식을 접하게 되면서 먹성이 배로 늘었다. 그 중 언니가 먹는 간식을 탐하는데, 아이스크림, 젤리, 사탕 등은 이미 15개월부터 먹기 시작했고 요즘엔 물에 씻은 김치로 끓은 김치찌개, 어른이 먹는 된장찌개를 10배 정도 희석해서(그래도 맵고 짠맛이 좀 남아있어서 첫찌는 못먹음)밥에 비벼주면 두 손으로 허겁지겁 먹는다. 첫찌가 워낙 안먹던 아이라 둘찌가 이렇게 먹는게 신기하고, 언제 안먹는 시기가 올지몰라서 부지런히 먹이는 중이다.

20개월이 지나고부턴 누가 뭘 먹는다고 하면 우다다다 달려와서 달라고 손을 내민다. 어떨땐 냉장고 문여는 소리를 듣고 오기도 한다. 내가 반찬을 꺼내면 실망하다가도 작은 눈을 뱁새같이 뜨며 와중에 자기 간식이 있다 싶음 달라고 '쩌쩌!'하고 손가락질한다.

그런 둘찌가 요즘 요쿠르트에 꽂혔다. 일이 있어 엄마집에 잠깐 맡겼는데, 변변한 간식이 없던(정확히 말하면 '있던 것을 다 먹어서')엄마가 슈퍼에 가려다 때마침 요쿠르트 아주머니를 봤고, 급한대로 요쿠르트 10개를 샀다고 했다. 둘찌에게 줬더니 숨 한번 쉬지않고 그걸 한번에 쪼옵 빨아먹더니(둘찌의 엄청난 폐활량!) 하나 더 달라고 '쪼쪼'했단다. 엄마는 둘찌가 거기 서서 세 개의 요쿠르트를 연달아 먹고는 배를 두드리며 배실배실 웃는걸보니 웃기기도 하고 한편으론 너무 단것을 많이 줬나 싶어 걱정이 되었다고 했다.

다음날부터 둘찌의 요쿠르트 사랑이 시작되었다. 엄마가 남은 7개를 싸줘서 냉장고에 넣어놨는데, 둘찌가 찾길래 하나 꺼내줬더니 그 다음부턴 정확하게 요쿠르트가 있는 위치에 딱 서서 달라고 손가락질을 해댔다. 하루 한개면 충분하겠지 했다가, 아이 먹는걸 보니 한개론 안되겠구나 싶어 동네 야쿠르트 아주머니를 급히 수배해서 아침에 20개 주문을 넣었다. 일주일에 20개에서 30개 정도는 먹는데, 거진 둘찌가 다 먹는다. 이젠 빨대만 봐도 요쿠르트를 달라고 난리다.

한가지 이상했던건, 똑같이 요쿠르트를 안주는데 아침엔 유독 울고 보채면서 오후엔 '그만먹자'고 하면 '응'하고 쉬이 돌아가는 것이다. 특히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요쿠르트를 주지 않으면 굉장히 떼를 쓰는데, 다른것을 줘도 싫다고 집어던진다. (보통은 '이거말고 저거줄게'하면 울음을 그친다)좋아하는 비타민, 팝콘, 얼음 등 다른것을 준다해도 싫다고 드러눕는다. 새벽 5시, 6시에 억지로 날 깨워서 요쿠르트 달라고 울고불고하니 어떤날은 짜증도 났다. 아침에 요쿠르트를 안 먹으면 뭐 잘못되나, 얘가 뭐 다른게 있나...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었다. 결국은 늘 내가 진다. 이게 뭐라고 애를 울리나 싶어서 '이거 한개만 먹는거야, 더 먹으면 배가 아야한단다'고 타이르고 요쿠르트를 쥐어주면 엉덩이춤을 추면서 그자리에서 단번에 쪼옵 빨아먹는다. 그러고 빨대만 쏙 빼서 하나 더 달라고 손을 흔든다. 그렇게 두개를 먹어야 본인의 쪽쪽이를 다시 물고 혼자 논다.

그러길 사흘째. 밀린 업무를 처리한다고 새벽 두시에 잤는데, 둘찌가 다섯시 반에 날 깨웠다. 순간 너무 짜증이나서 '니가 먹어!'하고 아이에게 화를냈다. 그러고 정적. 잠이 덜깨서 이게 지금 무슨상황인지 파악도 잘 안되었던지라 내가 아이에게 무슨 행동을 했는지도 뒤늦게 깨달았다. 뒤늦게 아이를 살폈다. 차라리 울거나 화를냈다면 내 마음이 좀 덜했을건데, 둘찌는 잔뜩 시무룩한 얼굴로 날 빤히 쳐다보더니 쪽쪽이를 물고 장난감이 있는 방에 들어가 혼자 놀았다. 어린이집 가는 동안에도 축 쳐져 있더니, 하원때 어린이집 선생님께서 '둘찌가 오늘 힘이 없는게 좀 피곤한거 같더라고요'라고 하셨다. 괜시리 짠해서 좋아하는 반찬도 해주고, 과자도 더 많이 쥐어줬는데 아이는 답지않게 하루종일 축 늘어져있었다. 어디 아픈가 싶어 이곳저곳 살폈는데 그런것 같지는 않았다.

아이를 재우고 나와서 둘찌가 왜 그럴까 심각하게 고민했다. 내가 아무리 큰소리 치고 화를 내도 이렇게 아무말없이 쳐진적은 없었기 때문에 나의 걱정도 무척 컸다.

평소와 오늘 뭐가 달랐지? 한참을 생각하다 '요쿠르트'! 가 생각났다. 혹시 아이가 아침에 화를낸것보다 요쿠르트를 먹지 못해서 슬펐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제서야 아차 싶었다. , 이건  아이의 '루틴'이구나! 고작 21개월 아이에게도 나름의 습관이 생긴거다.


그러고 나서 일주일간 둘찌를  지켜보니 과연 매일 아침 똑같은 행동을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오잉'하고 기지개를 편 뒤, 쪽쪽이를 물고 애착이불을 반쯤 걸친채 문을 열고 냉장고 앞으로 간다.

냉동실을 열었다가 뒤적인  다시 닫고 '꾸꾸우'라고 말하면서 냉장고쪽에 손을 뻗는다. 그러다 나에게 와서 툭툭 친다. 내가 '요쿠르트?'라고 하면 '응'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요쿠르트를 하나 들고 그 자리에서 쪽 빨아먹는다. 요쿠르트 두개를 먹고나서야 배를 통통 만진 후 장난감을 가지고 놀거나 좋아하는 만화를 틀어달라고 패드를 가져온다.


둘찌가 시무룩했던건 자기만의 루틴이 이뤄지지 않아서였구나. 기특하기도 했지만 이게 뭐라고 맞춰주지 못한 내가 너무 싫었다. 뒤늦게 둘찌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지만, 정작 둘찌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다른 간식을 내놓으라고 손을 내밀었다. 평소 잘 안주던 곰돌이 젤리를 잘게 잘라줬더니 고개를 꾸벅 숙이고 인사를 했다.

그 후 둘찌의 모닝루틴은 꾸준히 이어지고있다. 루틴을 망치지 않으려고 요쿠르트를 늘 풍성하게 채워두면 어느새 둘찌가 와서 툭툭 친다. '잘했어 짜식'하고 나에게 말하는것같다. 그래, 네 루틴을 쭉 지켜나가렴. 요쿠르트 그게 뭐라고!  <끝>


<요쿠르트 더 맛있게 먹기>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을 워낙에 찾아서 요즘 요쿠르트 몇 개는 얼려뒀다가 아이들에게 준다.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요쿠르트 빨대 꽂는 부분에 나무젓가락을 꽂아 그대로 얼린 후, 꽁꽁 얼면 겉을 잘라 '아이스크림바'로 준다.

또 다른 한가지는 예쁜 컵에 얼린 요쿠르트를 으깨서 샤베트처럼 떠먹게 내어준다. 맛은 똑같지만 아이들이 특별한 것이라 굉장히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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