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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다 Oct 19. 2022

크로와상 나눠먹기

내 동생은 다 컸다

 나에겐 세 살 차이 나는 남동생이 있다. 아주 어릴 적엔 붙어 다니며 싸우다가, 시근이 좀 크고 나선 한 집에 살면서도 있는 둥 없는 둥 살았다. 그러다 내가 4년간 대학교를 타지에 다니게 되면서 둘 사이는 더 소원해졌다. 한두 달마다 집에 오면 나는 늘 '이방인'이었다. 부모님과 언니, 남동생만의 이야기에 내 자리는 없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지만, 그때는 굳이 내가 있는데 저들만 아는 맛집 이야기, 지난주 다녀온 쇼핑 후기를 나누는 것이 참 싫었다. 덕분에 집에 와도 나 혼자 겉돌았고, 자연히 남동생과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더 적었다. 그렇게 대학교 4년을 마치고 고향에 취직해 본가에서 살았지만, 그때 남동생은 군대에 가게 되어 또 2년을 따로 지냈다. 둘이 겨우 한 집에 다시 살게 되었을 때 이미 동생과 나는 서로의 가치관이 공고한 성인이었다. 회사 출근하는 나와 강의를 들으러 가는 남동생이 겹치는 시간도 거의 없었다. 그렇게 4년을 살았다. 계약 만료 후 나는 홀로 유럽여행을 계획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혼자 유럽 보내기가 껄끄러우셨는지 부모님은 남동생에게 동행을 요구했다. 동생의 여비를 보태준다고 하셨지만, 다행히 퇴직금이 넉넉해서 두 사람이 일정을 소화하기엔 충분했다. 내가 좀 덜 쓰면 되겠다 싶어 같이 갔다. 동생은 여퉈둔 돈이 있다며 백만 원을 나에게 내밀었다. 괜찮다고 했지만 꼭 받아달라 길래 그걸 받긴 했지만 이걸 쓸 생각은 안 하고 나중에 돌아와서 다시 돌려줘야지 싶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보호자"라고 생각했다. 영어도 못하고 늘 어리바리한 철부지 동생이 뭔 도움이 되겠냐, 그냥 내가 동생 견문을 넓혀준다고 "넉넉한 인심"을 썼다 셈 쳤다.

 하지만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영국 히스로 공항에 도착해 수속하는 직원의 빠른 영어를 못 알아들어 난감해할 때 당당하게 대답한 것도, 종이 지도 한 장 가지고 후미진 골목 사이에 있는 가게를 찾아간 것도, 에펠탑 잔디밭에서 반강제로 호객행위를 하는 흑인 남성에게 너스레를 떨어 가게보다 더 저렴하게 에펠탑 기념품을 산 것도 다 동생이었다. 마냥 어린 동생이었는데 훤칠한 키와 당당한 태도, 현지에서 만난 이와 스스럼없이 짧은 영어로 소통하던 동생이 그렇게 듬직할 수가 없었다. 미더운 정도가 아니고, 왜 남동생에게 여행 일정을 짜게 맡기지 않았을까 후회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여행 첫날부터 한 가지 거슬렸던 게 있었다. 과자 한 봉지를 사더라도 꼭 하나를 사서 나눠먹자는 것이다. 음료수도 한 병 사서 반씩 먹자, 음식점 가서도 두 명이서 세트 하나 먹어도 되냐고 물어보자, 아이스크림도 각각 다른 맛 사서 반씩 나눠먹자. 동생이 워낙 입이 짧고 양이 적은 건 알았지만, 내가 워낙 대식 가고 언제 또 유럽에 오겠냐 싶어서 나는 온전히 한 개를 다 먹고, 동생 것이 남으면 내가 더 먹을 수도 있었다. 늘 나는 배가 좀 고픈 상태로 다녔다. 그러다 결국 프랑스에서 터졌다. 빵집에 들러 갓 구운 크루아상을 사 먹는데 한 개 사서 나눠먹자는 것이다. 전날도 피자 한 판 작은 것(원래는 1인용)과 감자튀김, 음료수를 나눠먹은 터라 배도 고팠고, 빵을 좋아하던 나는 "왜 자꾸 나눠먹자는 거냐!"라고 큰 소릴 냈다. "나는 배고프다, 나 혼자 다 먹고 네 것까지 먹을게!" 씩씩댔는데 동생의 표정에서 미안함이 스쳐갔다. 결국 빵 두개를 사서 나왔다. 뒤늦게 무안해진 나는 쭈뼛거렸다. 그날 다행히 가이드 투어라 둘이 큰 말은 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 세느 강변에 둘이 앉았다. 동생이 입을 뗐다. 사실 이 여행 오는데 너무 눈치가 보였단다.

 내가 퇴사한 전 직장은 일이 많고 업무 강도도 힘든 곳이었다. 특히 나는 혼자 업무를 다 해야 했는데, 일에 워낙 치여 살아서 월차를 내고 출근한 적도 많았다. 동생이 군 제대하고 내가 다니는 회사에 아르바이트를 했다. 같이 일하던 직원들이 내 이야길 했다고 했다. 누나 진짜 일도 잘하고 성실하다고. 근데 누나 일 혼자 다해서 얼마나 대단한지 모른다, 계약직이라 월급도 작은데 그런 거에 연연하지 않아서 참 멋지다. 동생은 내가 집에서 회사에 대한 내색을 하지 않아서 몰랐단다. 그렇게 힘든 곳에서 일하고 나와 받은 퇴직금으로 여행을 가는 거니, 동생은 그 돈을 허투루 쓸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자기 몫을 조금이라도 덜 쓰는 게 뭔가 생각해 보니 먹는 거였다면서, 사실은 자기도 배가 좀 고팠는데 그 덕에 더 많이 다닐 수 있는 거 같았다고 했다. 동생의 발상이 참 귀엽기도 하고 기특해서 한참을 웃었다. 그날 저녁 우리는 세느 강에 있는 고급 레스토랑에 1인 1메뉴를 시켜 먹었다. 팁도 넉넉하게 줬다. 그렇게 나와서 맥주도 두 캔사고, 같이 먹을 안주도 두 개씩 골랐다. 그날 저녁 맥주를 먹으며 말했다. 누나 생각보다 퇴직금 많이 받아서, 우리 맛있는거 실컷먹고, 너 사고싶은 장난감 막 사도 된다. 진즉 말해주지 그랬냐니까 누나가 별 말 안해서 '누나가 배가 부른가보다'했단다. 그 후 우리는 조금이라도 불편하고 싫은것이 있으면 서로 말해주기로 했다.

 동생에게 놀란 것은 이뿐 만이 아니었다. 스페인에선 한인 민박에 머물렀는데, 첫날 저녁 '다들 테이블에 모여있던데 구경가볼게'하고 나가선 들어오지 않았다. 간간이 깔깔거리는 소리와 동생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너무 피곤해서 그대로 뻗었다. 다음날 아침 식사하러 나가는데 다들 나에게 아는 척을 했다. 동생이 누나 덕에 여행한다면서, 우리 누나 같은 사람이 없다고 칭찬을 엄청 했단다. 정작 동생은 별말 안 했다고 했지만, 후에 숙소 사장님께서는 동생이 누나를 엄청 아끼고 좋아하던 게 느껴졌다고 했다. 민박의 특성상 화장실을 공동으로 써야 하는데, 우리 누나가 좀 예민하고 화장실을 가려서 걱정이었단다. 그래서 좀 더 저렴한 호텔로 갈 수도 있었는데, 누나가 동생이 한식을 꼭 먹어야 해서 일부러 본인이 불편한 것을 감수하고 한인 민박을 잡아서 너무 고맙다고 했단다. 어쩐지, 숙소에 들어오면 화장실부터 다녀오길래 왜 그런가 싶었는데, 늘 다녀와서는 '누나 지금 화장실에 사람 없다', '누나 지금 샤워하면 될거다' 하질 않나,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화장실에 다녀와선 '지금 줄 서 있으니 급하지 않으면 좀 이따 쓰자'고 나에게 화장실에 대해 말해준것이다. 오히려 내가 남동생이 탈이 자주 나서 수시로 화장실이 어디있는지 알려주고 혼자 뿌듯해했는데, 동생은 그보다 더 앞서나간 것이었다. 화장실가지고 이러는 걸 보니 우리 둘다 남매구나 싶었다. 동생 덕에 공용화장실을 편히 쓸 수 있었다.

 나와 남동생은 여행 스타일과 관심사도 같았다. 우리는 그날 봐야 할 명소 두어 가지만 다녀오고 나머지는 계속 걸어 다니며 구경했다. 하루에 4-5시간은 기본으로 걸었고, 많이 걸은 날은 8시간 넘게 걷기도 했다. 그 유명한 루브르 박물관도 '꼭 보고 싶은 작품만 보고 나오자'로 의견이 일치되었고, 그 보고 싶은 작품도 꼭 같았다. 지도를 보고 식당을 찾다가 길을 잃어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그럼 다른 곳 가자'라고 쉽게 일정을 변경했다. 음식 취향도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은 동생도 좋아했고, 동생이 고른 메뉴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맛이었다. 여행 중간에 숙소가 여의치 않아 더블침대에서 같이 지낸 적도 있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둘 다 양 끝에 등을 맞대고 누워 잘 잤다. 다 큰 남동생이랑 한 침대서 잘 수 있냐고 그러겠지만(동생의 경우 반대지만) 그건 '내 동생'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인솔자가 아니라 동등한 성인과 성인의 여행은 즐거웠다. 누가 누굴 챙길 필요 없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데 그것이 동행자가 원하는 것과 같아서 '맞춰줘야 한다'라는 스트레스가 없는 것이 가장 신났다. 초반에 '빵 사건'이 없었다면 이후 여행이 이렇게 재미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2주간 1분 1초도 허투루 쓰지 않고 잘 다녀왔다. 이후 나는 원하는 곳에 취업을 했고, 동생은 취업과 동시에 본인의 전공을 살려 작가로도 맹활약 중이다.

 여행을 다녀오고 둘 사이에 눈에 띄는 변화는 없다. 여전히 둘이 만나는 일은 별로 없고, 결혼하고 난 후 더욱 소원해졌다.  다만 말로는 못하지만 우리가 '서로에게 동등한 성인'이라는 것에 든든함을 느끼게 된 것 같다. 동생은 이제 누나가 '크고 어려운 사람'이 아니고, 나는 동생이 '마냥 어리고 철없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 여행은 우리 남매에게 충분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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