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혼밥에 2인분의 정성이 담겨있다
나는 혼자밥먹는것을 좋아한다(이하 '혼밥')
처음 혼밥을 하게 된 것은 고등학교 3학년때, 서울에 대학면접을 보러가서였다. 첫 서울 상경에 2박 3일을 지내야해서 어머니 지인의 따님 집에서 지내게 되었다. 언니는 서울의 이곳저곳도 소개해주고 옷과 가방도 사주며 촌티나는 나에게 서울의 향기를 뿌려줬다. 언니는 호텔리어였는데, 둘째날 저녁 갑작스럽게 야간근무를 가게 되어 나 혼자 혼밥을 먹어야 했다. 언니는 무척 미안해하면서 혼자 밥먹는 날 걱정해줬다. 지금 생각해보면 '혼자 밥먹는 것'보단 '서울에서 쟤 혼자 뭘 먹을수 있을까'가 더 걱정이었던거 같다.
그때는 인터넷이 활성화 되지도 않았고, 아날로그에서 막 디지털로 넘어가는 시기라 맛집을 검색할수도 없고, 집근처에 뭐가 있는지도 몰라 발품을 팔아야했다. 이리저리 다니다 고소한 냄새에 이끌려 가보니 돈까스집이었다. 슬쩍 들어가니 예닐곱 명의 사람들이 식사중이었는데, 그중 두 테이블만 두명씩 앉아있고 나머지 너덧명은 각자 다른 테이블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종업원이 날 보더니 '혼자오셨나요?'라고 물었고, 나는 눈만 꿈뻑였다. 슥 날 보더니 '이쪽으로'하며 날 안내해줬고, 물 한컵과 메뉴판, 스푼과 나이프 하나를 세팅해줬다. 누구도 혼자 온 날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 그날 뭘 먹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첫 혼밥의 기억만은 괜찮게 남아있었다. 결국 원하는 대학은 다 떨어지고 차선책으로 지원한 학교가 붙었는데 역시나 타지였다. 자취를 하게 되었고 그렇게 혼밥인생이 시작되었다.
처음 며칠간은 혼자 밥먹기 싫어서 과 친구들과 친해질겸 내 자취방에 삼삼오오 불러 같이 밥을 해먹고 놀았다. 밥과 국,찌개, 밑반찬을 꺼내먹다가 점점 요리실력이 향상되어 파스타나 샐러드, 짬뽕, 국수, 튀김 등 별식도 늘렸다. 우리집에 밥을 먹으러 오는 이들은 대부분 나처럼 타지에서 온 이들이었고, 밥을 준비하고 설거지를 하고 후식을 먹으며 향수병을 함께 달랬다. 학교 졸업 후엔 본가로 들어왔지만, 첫 직장이 출장이 잦았다. 회사에서 발행하는 격월간지 속 여행코너 취재를 위해 한달에 2-3일은 이곳저곳을 다녔고, 공연과 전시 관람을 위한 서울 출장도 거의 매주 갔다. 서울 출장때 혼밥은 괜찮았다. 웬만한 식당에선 1인 메뉴도 팔았고, 여의치 않으면 햄버거집이나 편의점에서 때우면 되니까. 문제는 여행지. 대다수 여행지의 음식점은 기본이 2인이었다. 돈도 돈이지만 양이 많아 남은 음식이 너무 아까웠다. 거진 편의점 삼각김밥에 컵라면으로 해결하거나, 숙소에 부엌이 있는 곳을 잡아 근처 마트에서 장을 봐서 밥을 해먹었다.
남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광한루 취재를 마치고 나오니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추어탕 냄새가 진하게 났다. 남원이 추어탕이 유명한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광한루 앞에까지 즐비하게 있을줄은 몰랐다. 추어탕 뿐 아니라 추어돈까스, 추어튀김 등 메뉴도 많았다. 평일 늦은시간이라 가게마다 사람들이 한두팀 밖에 없었다. 평소같았음 그냥 구경만 하고 지나갔을건데 추어탕의 유혹은 너무나 강했다. 튀김의 고소한 냄새도 좋았지만 추어탕의 진한 냄새는 내 발목을 잡고도 남았다. 저건 2인분도 혼자 먹을 수 있겠다 싶었다. 호기롭게 가게 안에 들어갔다. 늘어진 원피스를 입고 의자에 앉아있던 주인이 나왔다. 나를 한번 보고 자리를 안내해줬다. 그러면서 몇명이서 왔냐고 물었다. 주눅들지 않겠다! 당당하게 저 혼자 추어탕 먹으러 왔다고 했다.
주인은 놀란 토끼눈을 하고 '혼자요?' 매우 놀랐다. 그도 그럴것이 자기 몸뚱이만한 배낭을 맨 앳된 아가씨가(그때 24살이었음)혼자 와선 '혼자 추어탕 먹으러 왔다'고 하니 얼마나 황당했을까.
메뉴판을 보니 추어돈까스와 추어튀김, 추어탕(2인부터)라고 적혀있었다. 아쉬운대로 1인메뉴가 되는 추어돈까스를 시키기로 했다. 주인은 내가 주문을 하자 다시 날 보며 '추어탕 먹으러 왔다면서 왜 추어까스를 시켜?'라고 물었고, '메뉴판에 추어탕이 2인부터라고 해서요...'라고 말을 흘렸다. 그랬더니 주인이 꺄르르 웃으며 '아이고 학생, 괜찮아. 내 학생한테는 한그릇만 팔게 먹고 가'. 바로 주방에 '추어탕 한그릇만!'외치셨다.
밑반찬은 김치와 깍두기, 미역무침과 멸치볶음이 나왔다. 서빙하는 이모님께서 '추어탕 곧 나올거에요'하면서 '어머'깜빡했네'하시더니 부엌에서 손바닥만한 접시를 가져오셨다. 김이 모락모락나는 추어까스 반조각이었다. '이것도 맛있는데 맛봐요~ 하나 시키면 양도 많고, 뭐하러 그렇게 먹어 돈아깝게' 툭 놓고 다시 돌아가셨다. 이윽고 추어탕이 나왔다. 한눈에 봐도 1인분보다 더 담으신거 같았다. 주인과 서빙이모님은 내 맞은편에 앉아서 내가 입을 열길 기다리는 눈치였다. 감사히 잘먹겠다고 하고, '일부러 1인분 안해주셔도 되는데'하고 말을 더했더니 싱긋 웃으며 '학생이 처음에 우리 가게 앞에 기웃거릴때는 돈이 없어가지고 그런가 싶어서 그냥 한그릇 줄라고 했어. 근데 들어오자마자 메뉴판을 보더니 추어까스를 시키는거 보고 아 돈이 아니고 양때문이구나 싶었지뭐야. 얼마나 먹고싶으면 저럴까싶어서 한그릇만 판거야. 공짜로 주는것도 아니고 1인분 판건데 우리가 고마운거지뭐' 날 언제봤다고 저렇게 따뜻하게 말해주시는지. 덕분에 맛있게 한그릇 비우고, 추어까스까지 삭삭 긁어먹었다. 고마운 마음을 더 전할게 없어서 '제가 사실 격월간지 취재를 나온건데요, 괜찮으시면 여기를 소개해도 될까요?'라고 여쭤보았더니 '아유 우린 그런거 안해도 워낙에 가게가 잘되서 피곤해'라며 계산해주셨다. 나에게 '오늘은 어디서 자느냐'고 하셔서 **숙소라고 했더니 기다려보라면서 부엌에서 작은 일회용기 두개와 컵라면 하나를 가져오셨다. 일회용기 중 하나는 김치였고 다른 하나는 밥이었다. 그때 시간이 오후 5시가 넘었었다. 주인은 지금 저기 들어가면 근처에 저녁먹을곳이 변변하게 없을거고, 시간이 벌써 5시가 넘었으니 바로 저녁먹고 들어가지도 못할거라면서, 8시쯤 배가 고파지면 간단하게 한끼 때우라고 주신거다. 저 돈 많아서 사먹으면 된다니까 누가 돈 없어보여서 주는건지 아냐고 버럭하시더니, 그냥 우리 먹는거 남아서 주는거라고 하셨다. 추어탕 한그릇 먹고 덤을 얼마나 받은건지. 감사하게 잘 받고 인사를 했다.
저녁 8시쯤되자 정말 배가 고파졌다. 6인 1실 게스트하우스였는데 그날 예약손님은 나 혼자였다. 변변한 부엌도 없고 마땅히 먹을만한 곳도 없었는데 잘되었다 싶었다. 로비에서 뜨거운 물을 쓰고 공용 전자렌지에 밥을 데웠다. 혼자 방을 써도 어쨌든 공용숙소고 밤늦게라도 누가 올수 있으니 창문을 활짝 열고 라면을 먹었다. 서늘한 겨울바람이 불고 바닥은 따뜻하고, 거기다 뜨끈한 라면에 밥, 얼마전 한 것 같은 김장김치를 얹어 먹으니 천상의 맛이 따로 없었다.
그 후 광한루에 갈 일이 없어 자연히 그 일은 잊혀져갔지만, 매년 찬바람이 불때 라면을 먹고 있으면 그때 그 식당이 생각난다. 언제고 가봐야지 한게 벌써 10년이 넘었다. 그 가게도, 그 주인도 아직 거기 있을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