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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다 Oct 01. 2022

Y언니를 향한 고백

다양한 편견을 잊게해준 그녀에게

얼마 전 엄마집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반찬 중 취나물과 가지볶음이 있었다. 별 생각없이 맛있게 냠냠 먹는게 엄마가 "어머"하고 놀랐다. 어머 너 이제 그런것도 다 먹네? 어릴적인 가지며 나물이며 쳐다도 안보더니! 어머어머 너도 이제 나이가 들었는가보다~ 엄마의 호들갑에 그런가? 싶었는데, 집에와서 생각해보니, 불과 4,5년 전까지만해도 "가지는 음식 색깔이 아니야"라고 싫어했고, 나물은 흐물거리고 맛을 잘 모르겠다고 먹질 않았다. 그리고 내가 언제부터 나물을 먹었지? 되뇌어보니 Y언니와 채식식당에 다녀온 후부터 였던것 같다. 양이 작은 언니가 어찌나 맛있게 그릇을 비웠던지, 그 이후로 '풀때기니 채식주의자는 나와는 너무 먼 이야기'에서 '이거 꽤 먹을만한데? 심지어 맛도 있어! 채식주의자도 단계가 있으니 제일 낮은 단계부터 시작해볼까?'로 인식이 바뀌면서 그제서야 '풀때기'에서 '채소의 맛'을 느끼게 된 것 이다.


대학교때 선후배사이로 만나 아직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Y언니. 언니의 첫 인상은 "예쁜 공주인형". 뽀얗고 하얀 피부에 앙증맞은 얼굴, 자그마하고 가녀린 체구. 옷도 어쩜 본인한테 맞는 예쁘고 하늘한 옷을 입었던지. (언니는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어도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은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마냥 여린 자그마한 양 같았다고나 할까. 나와는 같은 것 하나 없던 Y언니의 외몬 보고 덮어놓고 좋아했다. 거기다 시원시원하고 호탕한 웃음에 확고한 주관, 확실한 성격은 그녀의 매력을 배가시켰다.


내가 언니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빵'이었다. 추운겨울, 동아리 합숙훈련 중 언니네 집에서 하루 잘 일이 있었다. 나와 내 동기, 언니와 그의 친구 넷이 언니네 집에 갔다. 언니네 집은 경대 근처였는데, 언니가 '여기 근처 카페서 차 한잔 하고 가자'고 했다. 음료를 시키니 식빵에 생크림을 바른(아이스크림이었는지 정확한 기억은 안난다) 디저트를 서비스로 줬다. 딱 인원수에 맞게 네 개가 나왔길래 별 생각없이 내 몫의 빵을 하나 집어서 덥석덥석 먹었다. 그런데 하나 먹고 나니 내 앞에 빵이 쑥 들어왔다. 뭐지 싶어 보니 Y언니가 생글생글 웃으며 빵을 내미는 것이다. "어머 너 되게 맛있었나 보다! 이것도 먹어 여기 더 달라면 더 주니까 또먹어또먹어~" 딱 이 한마디에 Y언니의 성격, 성품, 센스가 모두 들어있었다. 내가 먹는 것을 보고 빵을 좋아하는 것을 캐치하고, 무안하지 않게 빵이 맛있어서 잘 먹는다고 말해주는 것과 동시에 자기것을 주면서도 내가 미안해할까봐 리필 된다는 정보까지 알려줬다. (물론 후에 언니는 "엥? 그냥 말한건데?"라고 까르르 웃었다. 오히려 언니가 별 말도 아닌데 좋게 의미부여해줬다고 고맙다고 했다.)

언니의 의도야 어쨌건, 이제껏 언니를 봐온 것에 이날의 일까지 더해져서 '참 좋은 사람'에서 '오래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 되었다. 그날 어떤 대화가 더 있었는지, 이후에 무슨일이 더 있었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그 장면만 또렸하기 기억난다.


언니는 커피를 좋아했다.. 당시엔 커피전문점이 지금처럼 보편화 되지 않았고, 대학생들 중에서도 '아메리카노'를 찾는 사람은 드물었다. 아메리카노를 먹는 사람은 굉장한 인텔리이거나 커피 맛을 아는 미식가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언니에게 커피가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었다. 여북하면 '언니는 날때부터 커피만 찾았을것 같다'는 말을 했을 정도였다. 언니의 외향만 보면 커피는 "에퉤퉤 써!"하고 뱉고 달콤한 초콜릿을 호오호오 불며 먹을 것 같은데, '커피는 할리스야!'를 외치며 할리스에서 아르바이트도 했다.

솔직히 언니와 나의 공통점이라곤 같은 학과에 같은 동아리를 하고 있다가 끝이다. 언니와 나는 외형도 달랐고, 학업성적도 끝과 끝(언니는 언제나 탑이었고, 나는 바닥을 허우적거렸다), 동아리 활동할때도 언니와 나의 분야가 달라 만나는 일이 많지 않았다. 스터디 몇 개월 같이 하며 급속도로 친해졌지만, 졸업 후 이마저도 흐지부지 했었다.

고맙게도 스터디에서 마음맞는 친구와 동기언니, Y언니와 내가 자주는 아니지만 이따금 연락을 하며 지냈고, 1년에 한 번 만날까 말까 하고, 연락조차 자주 없지만 정말 이따금 연락을 주고받을때는 세상에 그런 훈훈한 단체톡방이 없다.


카카오톡을 주고 받을 때 Y언니의 진가는 빛을 발한다. 개인이건 단체건, 아무리 친하고 좋던 사이라해도 끝맺음이 지지부진한 경우가 많은데, 언니는 어느정도 선이 되면 "아 그럼 우리 다음에 연락을 하자"라거나 "그래 그럼, 오늘은 이만 인사"와 같이 맺음을 자처한다. 그런데 그 타이밍이 어찌나 기가막힌지!

우리는 안다, 의무감으로 어 그래~라던가 그렇지~라던가, 이모티콘이 주를 이루는 지지부진한 카카오톡을 주고 받을 때면 상대방이 이쯤 마무리 해주거나, 차라리 내 메시지에 답을 안해줬으면 싶을 때도 있다. 그런데 언니는 기승전결이 아주 완벽하다. 결말이 되면 '정리'와 '맺음'을 칼같이 한다. "어머 그럼 다음에 또 하자", "그럼 이만 자러갈게 우리 또 연락하자"


그러던 어느 날, 언니가 "나 채식해"라고 말했다. 내가 아는 사람 중 첫 채식주의자였다. (지금은 많다). 막연히 '채식주의자는 고기를 안먹는다'만 생각했다. 그만큼 무지했다. 난 고기를 참 좋아하는데 언니는 왜 풀때기만 먹을까? 고민도 잠시. 언니라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거창한 이유가 없더라도 난 언니의 채식은 남과 다른 뭔가가 있을 것 같았다. 그건 거의 확신에 가까웠고, 언니의 채식을 위해 나도 채식 근처라도 가봐야지 했다. 일전에 간 집근처 채식식당 떠올랐고, 며칠 뒤 언니를 데려갔다. 양이 작아 늘 새 모이 만큼 먹는 언니가 그날은 내가 본 것중 가장 푹식을 했던 것 같다. 연신 맛있다를 연발하며 사장님께 질문도 하고, 그 와중에 나에게 좋은 식당을 알려줘 고맙다고 인사까지 잊지 않았다.


사실 언니에게 그날 말하지 않은 것이 있었는데, 나는 그날 채식주의자가 생각보다 많은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채식주의자는 고기를 먹지 않지-가 내 지식의 전부였다. 채소만 먹으면 되게 심심하겠다 했지만 채식주의자도 단계에 따라 물고기나 달걀, 유제품 등으로 동물성 단백질을 충분히 섭취하고있고, 덤으로 동물성 단백질보단 식물성 단백질을 섭취하는것이 환경과 내 몸에 이로운 것도 알게되었다. 물론 이 정보는 언니에게 물어보면 술술 나왔겠지만, 채식주의자가 된 언니를 지지하고 응원하고 싶어서 내가 공부를 더 해서 언니를 알아가고 싶었다.


이후 채식과 관련한 이야기가 나오거나 집근처에 맛있는 비건식당이 생기면 놀러오라는 핑계로 메시지를 보냈다. 언니는 한결같았다. 반가운 인사와 유쾌한 태도, 언제나 나를 기분좋게 만드는 으쌰으쌰 응원, 솔직한 이야기, 그리고 용건이 끝난 후 '그럼 또!'하고 맺음까지! 얼마전 방송인 줄리안 퀸타르트님의 토크콘서트 다녀온 이야길 했더니 너무 좋아하면서 '왜 내가 사는 곳엔 이런거 안하냐'고 급발진 하다가도, 우리동네에 맛있는 비건음식점이 있다니 어서 가고 싶다고 깔깔거렸다. 정작 가면 새모이만큼 먹고는 "어휴 과식했어"할 것도 알고, 다 먹고 나서는 멋들어진 카페 말고 조용하고 아기자기한, 커피에 진심인 카페를 찾아 '아 왜 할리스는 자꾸 없어지냐'고 한탄할 것 같다.


그러고보니 빵도 커피도 따지자면 다 채식이었다. 언니와 채식은 참 잘어울린다. 44사이즈가 널널한 늘씬한 몸에 뽀얀 피부는 우리가 알고 있는 "채식의 장점"이 아닌가. 채식주의자 언니를 따라 나도 식단을 많이 바꿨다. 이후 우리가 채식을 해야하는 이유, 환경문제까지 관심을 가지면서 언니와 더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모든게 이젠 뻔-하지만, 그래서 더 사랑스럽고 예쁜 Y언니. 다음 만남이 참 기다려진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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