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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다 Feb 07. 2023

이남매유럽기(1)출발 그리고 영국도착

영국 히드로공항/런던브릿지/오이스터카드

<이남매유럽기>는 2015년 4월에 다녀온 유럽여행기입니다. 현재와 사정이 다를 수 있음을 참고바랍니다.

"4월 8일 수요일 오후 1시 15분에 출발하는 대한항공 KE907맞으세요?"


인천공항에서 멀티탭을 대여하자 직원이 묻는다. 다른 사람에게 내 행선지를 다시 확인 받으니 기분이 참 묘하다. 티켓 발권을 받고 나서도 '이게 진짜 내 것이 맞나?'했는데 점점 실감이 난다.


15박 16일 유럽여행.


4년간 다닌 회사를 과감하게 그만두고 나왔다. (사실은 계약 만료라 자동 퇴사)생각보다 큰 퇴직금이 나왔고, 당장 다음 달 만기인 적금에 투자할까 하다가 '그러기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걸 어떻게 벌었는데. 내가 하고 싶던 대학원 공부, 가고 싶던 회사 지원, 쓰고 싶었던 소설, 원했던 어학연수 다 포기하고 4년간 이 악물고 다녀서 받은 돈이잖아"


퇴직하기 6개월 전부터 고민했다. (물론 회사 일도 열심히 했다! 심지어 내 후임자가 당장 들어오지 않는다고 해서 2개월치 원고와 40페이지에 달하는 인수인계서까지 만들었다) 이 돈으로 뭘 할까? 멋진 명품 가방? 국토종단? 기부? 일단 백수니까 적금을 넣을까?


그러기를 일주일. 계시는 뜬끔없이 왔다. 집청소 한다고 옛 물건을 정리하다가 다이어리를 오랜만에 읽었다. 그 중 대학교 때 쓴 다이어리에 적힌 한 문장이 내 가슴을 뛰게 해다.


<연경 언니가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왔다. 언니가 선물로 '바티칸 박물관'입장권을 주었다. 언니가 참 부럽다>


곧바로 남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우리 유럽가자!"


"누나는 참 허술하다"


가방에 얌전히 넣어둔 공항철도 카드가 없다고 허둥지둥 하니 동현이 핀잔을 준다. (동현은 내 남동생 이름이다) 동현이 아끼는 비모캐리어를 수하물로 보내버리고, 매일 착용한 시계도 하필 안가지고 오고, 가방에 넣어둔 카드를 잃어버렸다고 하니 그아이 입장에선 얼마나 어이가 없어 보였을까. 다년간 여행 동안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행선지를 잘못 찾거나 한 적이 한번도 없었는데 이번엔 긴장을 엄청 했나보다. 벌써 실수하면 안되는데. 정신이 아득하다.

다행히 영수증이 있어서 무사히 개찰구를 빠져나왔다. (공항철도 카드는 핸드폰 케이스에 붙어있었다 이런 멍충이!)

카드 잃어버려도 세상 해맑은 나와 그걸 지켜보는 동현



"잠시 후 우리 비행기는 곧 이륙하겠습니다"


목적지는 영국 런던 히드로 공항. 소요시간 13시간 국적기 직항. 가장 오래 비행기를 타본 것이 두 시간이었던 나에겐 벌써 고역이다.

동현이는 이전에 17시간 비행기를 타본 경험자라 '비행기 장기여행 초짜'인 나에게 이것저것 알려준다고 신이났다. 비행기 모니터에는 영화와 음악, tv방송도 나온다 기내식은 뭐가 맛있다, 간식으로 컵라면과 스틱피자도 나온다 등등.

"누나 카트가 안다녀도 필요할때 손을 들면 물이나 간식을 먹을 수 있어"는 고급정보도 잊지 않고 알려준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정상궤도에 들자마자 리모컨 사용법, 의자를 젖히는 방법, 안내책자도 보여준다. 하도 신나해서 그냥 모르는척 맞춰 주기로 했다. 기내식과 간식을 먹으며 13시간 비행을 실컷 즐겼다.



"영국 입국심사가 그렇게 무섭다더라"


영국 런던으로 입국한다니 다녀온 사람도 다녀오지 않은 '이론만 빠삭한'사람도 너나할것 없이 히드로 공항 입국심사를 걱정해줬다. 까다롭다도 아니고 '무섭다'라니. 누구는 말을 못해서 진짜 돌아왔다더라, 인터뷰하는데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더라 등 섬뜩한 후기도 많았다. 동현이는 '에이 그래도 자기 나라 관광 온 사람을 그냥 내쫓겠냐. 인터넷이야 다 카더라지 뭐.'라고 의연한 태도를 보였다.


나는 영어도 못하는 주제에 고등교육까지 마쳤으니 의사소통은 어찌 되겠지라는 근거없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앞에 한국인이 10분 넘게 붙잡혀서 인터뷰 하는 것을 보니 도망치고 싶었다. 동현이는 이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수하물로 들어간 비모 캐릭터가 멀쩡하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드디어 우리차례. 앗 다행히 저 옆에 인상 좋은 아저씨다. 일단 안심했다. 우리를 힐끗 쳐다보자 나와 동현이는 아주 빵긋 웃었다. 아저씨도 같이 웃었다. 시작이 좋다.


>>심사원:영국에서 며칠 있을거야?

>>나:(자신있게) 5일!

>>심사원:5일 동안 뭐할거죠?

>>나:(급 멍해짐)....예?

>>동현: (한국말로)누나 여기서 뭐 할건지, 왜왔는지 묻는거 같은데?

>>나: 아! 여행왔어요!

첫번째 질문을 자신있게 답하고 잠깐 마음을 놓았더니 두 번째 질문을 놓쳤다. 다행히 동현이가 알아들어서 바로 답할 수 있었다. 에휴 다행이다.

인상좋은 아저씨는 싱긋 웃으며 도장을 쾅!찍어줬다. 이게 끝이라고 물으니 고개를 끄덕이며 손짓을 한다. 우리 둘다 어리둥절. 대체 그 많던 흉흉한 후기는 뭐였지?


기다리면서 보니 입국심사는 길고 장황할 필요가 없었다. '단답'으로 묻는말에 대답하면 되었다. 질문에 답을 길게 할 수록 질문도 더 길어지고, 대화 시간이 길어졌다. 우리 앞에 한국인은 우리가 통과할 때까지도 계속 이야길 하고 있었는데, 보니까 심사원이 간단하게 질문을 하면 이 사람은 아주아주 유창하고 장황하게 답을 길게 했다. 심사원이 중간에 말을 끊자 대번에 그이는 불쾌해하면서 대답을 덧붙인다. 여기서 굳이 영어 실력을 뽐낼 필요가 있을까? 입국심사를 하는 목적을 잊지 말고 다음 사람과 심사원을 위해 묻는 말에 간단히 대답만 해도 된다. 심사원들은 결코 어렵고 난해한 질문을 하지 않는다.




"비모!!!!비모가 나왔다!!!"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가뜩이나 우리는 주목받고 있었다. 동현이는 키가 185cm, 나는 170cm의 거구에 머리색이 주황색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힐끔힐끔 사람들이 보는데 동현이의 비모캐리어 덕분에 우리는 시선폭탄을 맞았다. 다른이들에게 관심이 하나도 없다는 유럽사람들의 시선을 엄청 많이 받은것이다. 나는 원래도 타인의 시선에 관심이 없어서 그러려니 했지만, 동현이는 뒤늦게 신경이 쓰였는지 어서 나가자고 한다.



"히드로 익스프레스는 반대편이에요"


히드로 공항에서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저 멀리서 한국인 가이드가(우리 가이드 아님. **투어 깃발을 들고 계셨음) 길을 알려 주셨다. 어딜가나 한국인의 정은 참 따뜻하다. 혹지는 '외국에서 한국인은 봉', '같은 한국인이 다 털어가. 더 무섭다'고 하지만실제 다녀보면 그런 사람은 극히 소수다. 나는 운이 좋은것이였는지 그런 사람보단 친절하고 더 좋은 이야길 들려주는 사람뿐이었다. 외국에서 한국의 위상도 많이 달라졌다. <KOREAN>이라고 하면 '아아 거기!'하고 반색한다. 어쨌든 참 뿌듯한 일이다.



"영국의 진짜 멋을 보여드릴게요!"


런던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하고 있는 후배 진효를 만났다. 진효는 내가 온다니 일부러 휴무를 내서 마중나와주었다. 그간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숙소에 짐을 두고 나서자 진효는 '관광이 아닌 진짜 영국 야경을 보여줄게요'하곤 우리를 안내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나-한국 시간으론 새벽 3시. 비행기에서 쪽잠 조금 자고 22시간 넘게 깨어있었지만 피곤하기는 커녕 조금이라도 더 눈에 담으려니 눈감는 시간도 아까웠다.

(이래놓고 동현이와 나는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발만 씻고 곯아떨어졌다)별 이야기 아닌데도 셋이 아주 오랜 친구처럼 깔깔댔다. 그렇게 우린 영국 런던의 첫 행선지인 <타워브릿지>에 도착했다.

타워브릿지를 건너며 한 컷. 시간은 밤 10시. 고소한 땅콩냄새와 비릿한 물 비린내, 수많은 사람들 사이로 기분 좋은 바람을 만끽하며 걸었다.

"엥? 이게 왜 <런던브릿지>가 아니고 <타워브릿지>야? 두개 이름 바꿔야하는거 아니야?"(런던브릿지는 되게 작다) 엄청난 크기와 위엄을 뽐내던 타워브릿지. 우리는 타워브릿지를 걸으며 야경에 감탄했고, 멋진 사진도 찍었다. 강변을 따라 걸으며 테이트모단, 셰익스피어극장, 런던아이도 구경하고 진효의 단골펍에서 시원한 생맥주도 마셨다.


진효 덕분에 멋진 야경과 '밤의 런던'을 만끽할 수 있던 의미 있는 첫날밤이었다. <끝>

"야경을 멋지게 만드는 건 야근"진효의 명언에 깔갈 거리며, 야경을 멋지게 만들어 준 이들의 노고에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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