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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다 Feb 21. 2023

방역도우미 면접 후기

내가 진짜 화가 난 이유

아이 둘이 기관에 가고 난 후 오전8시 30분부터 오후 4시까지 시간이 생겼다.

이왕이면 좀 생산적인 활동을 하자 싶어 이 시간에 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았다.

그러다 커뮤니티에서 학교 방역도우미 공고를 봤다. 학기마다 뽑는데 급식실, 보건실 등지의 선생님을 도와 학교 방역 전반 업무 보조를 하는 일이라고 적혀있었다. 봉사활동이구나 싶었는데 보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일주일에 15시간 이내로, 하루 2-3시간 정도 일하며 빨간날은 다 쉰단다. 그중 집 바로 앞 초등학교도 있었고 시간도 오전 9시부터 12시라 지원을 했다. 지원서엔 봉사활동 시간도 써야했고, 자기소개서도 작성해야해서 이력서를 내는데까지 2-3일 걸렸다.

어떤 일을 하고 또 해본 이들의 후기가 어떤가 봤는데 가장 많은 글이 <내정자>였다. 이전 학기에 했던 사람들을 주로 뽑는다고 했다. 어떤 이는 자기가 이전 학기에 했는데 이번에도 할건지 따로 연락이 왔었다고 글을 올려 뭇매를 맞았다. (그 사람은 '제가 일하는 학교가 어딘지는 비밀입니다~'고 써서 더 열받았음)


학교 입장에서야, 했던 사람이 또 하면 손이 덜가니 편할테지. 하지만 이 업무는 많은 사람들에게 고루 기회를 제공하는 것인만큼 형평성에 어긋나는 행동이라 기분이 유쾌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나는 지원서와 면접을 아주 잘 봐서 뽑혀야지 하는 치기어린 생각도 있었다.

다양한 후기를 보고 면접 복장도 좀 손봤다. 원래라면 검정 정장자켓에 흰 블라우스, 짙은색의 치마와 구두를 신는 것이 정석인데, 업무가 방역도우미로 봉사활동인만큼 너무 갖춰입는건 오히려 보는이들에게 부담을 줄 수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화장도 옅게하고, 머리도 단정하게 묶고, 검정 터틀넥에 자켓, 검정 바지를 입었다. 악세사리도 다 뺐다.


오후 3시 면접이라 2시 40분에 도착했다. 집에서 도보 2분거리라 면접을 보러 간다기보단 마실을 나온 것 같았다. 내가 제일 먼저 도착했고, 뒤이에 다른 지원자들도 왔다.

내가 지원한 학교는 3개의 파트가 있었고, 2명/2명/1명을 뽑는다고 했다. 면접자는 총 7명이었다.


제일 먼저 앉아서 오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내가 오고 뒤이어 나의 비슷한 또래로 추정되는 사람이 왔다. 그 후 우리 엄마 연배의 분들이 연이어 도착했다. 두명씩 짝지어 온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세번째 사람이 들어오는데 학교 담당자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선생님 안녕하세요'하고 먼저 인사를 했고, 그 사람도 익숙한듯이 인사를 했다. 누가 봐도 구면인 사이었다. 그 사람은 익숙한듯 면접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뒤이어 온 사람들도 몇번 온 사람들인지 담당자의 안내도 전에 명단을 찾아 기입하고 수다를 떨었다.

심지어 명단을 체크할때 담당자가 '000선생님? 아 저기 계시네'라면서 대신 확인을 했다. 이게 뭐라고 떨리네 호호호~ 이 일은 이래이래 하는거야~ 소리는 작았지만 다 들렸다. 누가봐도 했던 사람들이구나. 맥이 빠졌다. 7명 중 4명은 확실히 했던 사람, 나를 포함한 세명은 잘 모르겠음. 경솔한 그들의 태도에 맥이 풀렸다. 내가 왜 시간을 들여 이 사람들 들러리를 서러 왔나... 서류 합격 연락을 받고 기뻐한게 창피했다.


무엇보다 내가 불쾌했던건 면접에 대한 기본 자세가 되어있지 않은 이들과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정식은 아니지만 구색은 맞춰 입고오고, 면접 대기실에서 얌전히 앉아있었다. 하지만 나를 뺀 나머지 사람들은 솔직하게 표현하자면 '면접 보러 온 사람 맞나?'싶었다. 동네 마실 나온 것 같이 편한옷, 청바지에 점퍼 등... 대단한 일은 아닐지라도 명색이 학교에서 보는 면접인데 이래도 되나 싶었다. 심지어 면접자들이 날 힐끔대고 쳐다봤다. 갖춰입고온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된 것이다.


면접이 시작되었다. 첫번째 면접자가 2분도 채 안되어 나왔다. 누군가는 5분 정도 걸렸고, 누군가는 2,3분도 되지 않아 문을 나섰다. 나는 마지막 일곱번째 순서였다. 들쑥날쑥한 면접시간이 지나고 내 차례가 되었다.

면접관은 총 세명이었다. 들어가서 앉자마자 눈치챘다. 아 이미 다 뽑았구나.

나에게 오래 기다렸다면서 인사를 하고 면접이 시작되었다.

1. 방역도우미 일을 해본적이 있는가?

2. 다른 봉사활동은 어떤 것을 했는가?

3. 이 학교에 지원한 이유가 무엇인가?

4. 이 업무가 뭘 하는 것인지 아는가?


나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1. 아니요 이번이 처음입니다.

2. ***봉사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고, 봉사활동을 10년 넘게 하고 계신 어머니를 따라 어르신 점심대접 봉사활동에서 허드렛일을 거든 적이 있습니다.

3. 우선 집에서 가장 가깝습니다. 일전에 학교 행정실 업무를 보러 갔는데 직원분들의 응대가 친절했고 업무도 바로 처리해주셨습니다. 이후 아이들 등하원을 하면서 아이들의 표정이 밝고 건널목 봉사활동을 하는 분들의 책임감있는 모습에 이 학교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방역도우미 공고를 보게 되었고 이 일이라면 내가 이 학교에서 잘 할수 있겠다고 생각해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4. 학생들의 질병예방과 깨끗한 위생을 위하는 것입니다. 입구에 보니 발열체크기가 있는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으로 아이들 등원때 발열체크하고 학교 곳곳의 방역과 청소, 소독을 하는 업무로 알고있습니다.


좀 어버버 하긴 했지만 요지는 잘 전한것 같았다. 면접관들은 이미 내 말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 듯 했다. 면접실 들어가기 전과 후 시간을 봤는데 2분컷.

면접 합격자들은 금일 중으로 문자를 따로 보내준다고 했다. 교사들이 퇴근한 6시가 지나도 연락은 오지 않았다.


내정자가 있는 면접은 숱하게 봤다. 언제나 씁쓸했고, 그때마다 '내가 더 잘했으면 내가 뽑혔을거야"하고 위로했다. 실제로 그렇게 뽑힌적이 있었지만, 내정자를 넣지 못한 윗선에게 결국 내가 지고 제발로 나갔다.

하지만 이번 면접은 유독 분하다. 너무나 티가 났던 이전 근무자, 그리고 그걸 감추지 못한 담당자, 기본적인 <면접>의 에튀튜드를 갖추지 못했던 면접자 면접관의 태도.

애들을 재우고 나서 시계를 보니 밤 11시. 혹시나 하는 마음에 폰을 들여다봤지만 스팸문자 한통뿐이었다.

헛헛하고 분하고, 짜증도 나고..... 냉장고를 열어보니 반쯤 남은 소주와 맥주 두 캔이 보인다. 주저앉고 그들을 꺼냈다.

소주를 한잔 밀어넣으니 유독 독하고 씁쓸하다. 울컥하는 마음을 소주한잔에 털어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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