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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다 Apr 26. 2023

똥손엄마와 멋쟁이 딸들의 일일

딸아 엄마가 고데기를 못해

나는 손으로 하는  웬만큼 잘한다. 그림, (...  입으로 잘한다기에  부끄럽지만), 요리, 수예, 공예  각종 만들기, 청소, 정리 . 그런데  두가지 정말 "똥손"스러운 것이 있는데 바로 <머리 손질> <화장>이다. 머리손질이야 대충  머리 내가 묶고 다녀서  신경 안썼고, 화장은 평소에 별로 하지 않고 결혼식이나 행사 등이 있을때 해서 딱히 배워보겠다는 의지가 없었다. (회사 다닐 때도  사무실에만 있었고, 의전이나 외부행사시에도 그땐 가장 막내라 화장을 하지 않는다고 뭐라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딸 둘을 키우면서 이 두가지를 배워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보내면서 학부모상담을 비롯한 행사, 거기다 이번에 학부모위원으로 되면서 유치원 대표로 교육청 회의를 가게 되고, 그 밖에도 대외적으로 좀 갖춰입어야 할 일들이 생기며 예의상(!) 그리고 갖춰입은 옷에 맞는 옅은 화장이라도 해야했다. 색조는 최대한 줄이되 생기있는 얼굴을 위해 가벼운 볼터치나 립스틱은 필수인데 문제는 내가 정말정말 색깔을 고르는 센스가 없다! 평소엔 맥MAC 모란지를 립과 볼에 슥슥 바르고 다녔는데, 색깔이 워낙 범상치 않은 쌩코랄이라 각종 유튜브와 책을 뒤져가며 무난한 색상들을 찾았다. 눈화장도 과하지 않으면서 좀 커보이게 하는 요령이 생겼다. 그래봤자 내가 하는 <화장>이란 마스카라와 아이라이너, 립스틱이 전부다. 하지만 이마저도 안해버릇하니 남들 눈엔 별 차이 없어보여도 큰아이가 "엄마 얼굴이 다른 사람 같아. 예쁘다!"고 해주면 참 고맙다.


화장이야 내가 하는거라 뭐 상관없는데, 문제는 <머리 손질>. 나는 머리 감는 시간도 아깝다고 아이 둘 낳고는 항상 어깨 길이 언저리로 자르고 질끈 묶고 다녔다. 아이들도 길이만 이따금 잘라주고 늘 하나나 둘로 질끈 묶거나, 그마저도 귀찮다고 집에서 풀고 다녔다.


하지만 기관에 보낸 첫 날. 보호자와 동행해야한다길래 갔다가 깜짝 놀랐다. 나름대로 첫날이니 갖춰입자 싶어서 예쁜 원피스에 양말도 꽃무늬 낭낭한 것으로 입고갔는데, 다른 아이들을 보니 정장, 원피스는 기본이고 머리도 하나같이 멋지고 정성스러웠다. 그에 비해 우리 아이는 작은 고무줄 질끈 묶은것 끝. 아, 이래선 안되겠구나 싶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각종 머리핀과 고무줄, 머리띠를 잔뜩 샀다. 하지만 아이의 머리를 하는건 너무 어려웠다. 우선 아이가 협조를 안해줬고, 머리 하나 묶는데 이리저리 움직이는 통에 늘 삐뚤게 묶기 일쑤였다. 아이들은 머리카락이 가느다랗고 힘이 없어서 머리핀 하나 꽂아두면 한 시간을 못가서 흘러내렸다.


결국 난 한달만에 포기했다. 그냥 양갈래 질끈 묶여 보냈다. 다만 한 가지, "머리를 절대 풀고 보내지는 말자"만 생각했다.


지금은 두 아이가 자신만의 스타일이 생겨서 옷을 직접 고른다. 신발에 가방도 내가 고른것은 정말 가뭄에 콩 나듯이 선택한다. 때로는 머리모양도 이렇게 저렇게 해달라고 한다. 그래봤자 머리를 양갈래 묶느냐, 하나로 묶는냐의 차이라 기꺼이 원하는 대로 해준다. 뛰어난 미모로 손꼽히는 첫째는 머리를 풀거나 묶거나 뭘 해도 잘 어울리는데, 달덩이같은 둘째는 머리를 안 묶어주면 영락없는 사내아이다. 그래서 첫째는 별 말 없으면 대충(미안해...)묶어주고, 둘째는 일어나자마자 앉혀놓고 양갈래로 꼭 묶어준다. 뭘해도 빵떡같지만, 똥손인 엄마가 해주는 머리에 아무말 안해주는것만으로도 참 감사하고 예뻐보인다.


오늘 아침엔 첫째가 "엄마, 우리반 땡땡이가 나나핑 머리 했더라. 나도 해줘!" 나나핑은 아이가 좋아하는 <알쏭달쏭 티니핑>에 메인 티니핑 중 하나인데, 하나로 질끈 묶은 머리라 그렇게 해줬다. 그런데 거울을 보더니 이게 아니란다. 나나핑은 끝이 동그랗게 말려있는데 왜 그걸 안해주냐고 짜증을 부린다. 사진을 보니 끝이 동그랗게 말려있다. 이건 네 머리로 못한다고 하니 시무룩하게 등원을 했다. 솜씨 좋은 사람이었다면 고데기나 드라이기로 바로 쏙 말아줬겠지만, 그걸 해줄 엄두가 안났다. 아이를 유치원 차에 보내고 집에 들어오는데 아파트 상가 미용실에 "스타일/드라이 5천원"이 눈에 띄었다. 오늘은 아이를 위해 5천원을 써야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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