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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다 May 03. 2023

8시 30분 등원과 모성애

졸지에 모성애 없는 엄마가 되었다

우리집 첫째는 18개월에 어린이집을 갔다. 9개월부터 문화센터를 주1회 다녔는데, 한달 보내고 나니 "이게뭔가"싶었다. 다양한 교구와 집에서 쉽게 접하지 못하는 여러 활동을 하는건 좋았으나, 열댓명의 아이들과 부모들에 한명의 선생님이 함께하는 수업은 솔직히 이도저도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좀 더 커서 트니트니 수업을 가니 더 많은 아이들에 선생님 한명이 이리저리 동분서주하는데 "수업"이 될리 만무했다. 그래서 24개월쯤 어린이집에 보내려고 미리 상담을 갔는데, 적응도 굉장히 잘하는데다 선생님 한명이 2-3명의 아이를 보육해주는 점, 다양한 선생님과 활동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18개월에 어린이집 상담을 갔다. 나는 원장님과 이야길 나누고, 첫째는 보조 선생님께서 데리고 가셨다. 30분쯤 상담을 하면서 24개월에 보내기로 했는데, 선생님께서 들어오시더니 "아이가 4세반 수업을 들으러 갔어요"라고 하셨다. 가서 보니 아이는 처음 보는 선생님 무릎에 앉아서 4세 아이들과 같이 이구아나와 새를 만져보면서 즐거워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아까 데리고 나오자마자 이곳저곳 반마다 들어가서 인사를 하더니, 동물이 있는걸 보고 "짹짹이!"하고 가서는 선생님무릎에 털썩 앉더란다. 10분이 넘었는데 같은 자세로 앉아서 선생님 이야기도 듣고, 옆에 앉은 4세 아이들과 조잘댔다. 그러고 집에 오는데 아이가 "가자가자"하고 떼를 썼다. 아까 간 곳 좋아? 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다음날 어린이집 입소신청을 하고 일주일 후부터 어린이집 최연소 학생이 되었다.

일주일 적응기간을 마치고 나니, 내 아이는 엄마가 있건말건 이곳저곳 살펴보고 선생님들 손을 잡고 교구를 만지고 노래를 배우기 바빴다. 처음이라 며칠 그러고 말겠다 싶었는데, 이후 단 한번도 '엄마를 찾는다'는 연락은 커녕, 아이가 아침마다 어린이집 가방을 질질끌고 가자가자 하는 바람에 애를 먹었다. 지금 6살인데 여전히 기관은 잘 다니고 있다.


둘째는 15개월에 갔다. 첫째와 달리 처음 한달간은 엄마를 찾아서 매일 같이 등원해 한 시간 함께 있었다. 그러다 점차 적응을 하고, 또 재미난 프로그램과 교구를 보자 슬슬 엄마와 멀어지더니 아주 잘 다닌다. 엄마들은 안다. 아이가 등하원할때 모습을 보면 아이가 여길 좋아하는지 어려워하는지. 우리 아이들은 신나게 등원하고 "엄마 안녕"하고 인사를 한다. 하원할때 보면 엄마~하고 반갑게 인사하지만, 그와중에 집에가야한다는 아쉬움이 가득하다.


아이들이 다니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은 오전 8시부터 연다. 처음 입소할때 회사에 다닌 터라 두 아이들은 8시 10분~30분 사이에 등원했다. 일이 많을때는 7시 50분에 간 적도 있다. 감사하게 두 곳 모두 7시 50분부터 당직 선생님이 계시니 어머니 사정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일찍 오셔도 된다면서도 '그런데 일찍 오면 아이들이 없어서 좀 힘들어 할 수도 있다"고 아이들 걱정도 함께해주셨다. 아울러 "아이들이 힘들어하지 않게 저희가 잘 보살피겠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다른 친구들이 없어서 선생님이랑 나랑 둘이서만 놀아서 너무 좋아. 선생님이랑 비밀 이야기도 한다"고 특별한 유대감을 느끼는것에 대해 좋아한다. 선생님께도 감사하고, 잘 적응해준 아들에게도 무척 고마웠다.


우리 아이들은 별고 없으면 5시 30분에서 6시 사이에 일어나고, 늦잠자도 7시 전에 깬다. 일어나서 실컷 놀고 밥도 먹고 준비를 다 마쳐도 8시가 채 안된다. 내가 일을 그만두고 난 후에도 이 패턴이 아예 정착되어서 두 아이 모두 첫코스로 기관에 간다. 먼저 둘째를 8시 15분-20분쯤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첫째와 차를 타러 간다. 첫째는 첫 코스에 가장 처음으로 탄다. "엄마, 나는 처음으로 맨날 타서 맨날 앞자리에 타서 너무 좋아"라고 한다. 한번은 둘째 병원진료 때문에 마지막 코스를 탔는데, 첫코스때와 달리 타는 아이들이 많으니 아이가 앞자리에 못탔다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 첫코스만 고집한다.


아이들을 다 보내고 나면 8시 30분쯤 된다. 그러고 집에 돌아오면 두 시간 동안 초토화로 만든 집을 정리한다. 이후 둘째 하원시간까지는 내 시간이다. 좋아하는 전시도 보러가고, 차를 타고 드라이브도 간다. 최근엔 의미있는 시간으로 쓰자 싶어서 불필요한 약속이나 일정을 줄이고 오전 9시부터 12시까진 SNS활동을 한다. 블로그 포스팅도 쓰고, 인스타그램에 좋은 이야기도 본다. 책도 읽고 도서관에 가서 신간을 보면서 좋은 책 후기를 쓸 준비도 한다.


그런데 어제 커뮤니티에 글을 하나 봤다. <아이들 몇시에 등원하나요?>라는 제목이었다. 글쓴이는  '우리 아이들은 8시-8시 30분에 등원하는데, 다른 아이들은 언제 등원하나요?'라고 질문을 올렸다. 본인 아이들이 5시에서 6시 사이에 일어나 집에서 준비하고 나면 심심해하고, 어린이집에서 일찍 보내도 괜찮다고 해서 그 시간에 보내는데, 그때 가면 애들이 별로 없어서 다른 사람들은 언제 보내는지 궁금합니다" 라는 글이었다. 나랑 비슷하구나 싶어서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댓글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거의 모든 댓글이 글쓴이를 비난하고 있었다. 보통 9시에서 9시 30분 사이에 보낸다면서, "애가 심심해하면 다른 애들 등원하는 시간까지 알아서 같이 놀아주는게 상식 아니냐", "아이들 그렇게 일찍 등원시키면 선생님들이 싫어한다", "애들이 너무 불쌍하다", "애들 일찍 일어난다는건 핑계다. 엄마가 귀찮아서 밀어넣는거 아니냐", "전업이면서 애 보는데 충실해야는거 아니냐" , "난 맞벌이라 8시에 애들 보내는데 가슴이 찢어진다", "그렇게 자기 시간 보내는게 좋으면 애는 왜 낳았냐"는 무자비하고 독한 댓글도 있었다. 나는 꼭 내가 그 글쓴이인것마냥 가슴이 화끈거렸다.


그 중 가장 후벼파는 댓글이 "글쓴이는 모성애가 없는것 같다"였다. 이게 모성애랑 뭔상관이지? 의아하면서도 그 의중이 파악되었다. 기관이 운영하는 시간에, 아이를 보낸게 모성애를 운운하면서까지 비난을 받아야 하는 건가? 그렇게 따지면 나는 모성애 없는 엄마자격도 없는 사람이자, 선생님들을 배려하지 않는 인류애 없는 사람이 된다.


아이가 기관에 '일찍'간다는것도 상대적인 것이지만, 각자의 사정과 아이의 상태에 따라 등원시간이 다른건데 그걸 '일찍간다'고 비난하고 또 엄마가 이기적인 거라는 논리는 대체 무슨 소리인지. 아이가 불쌍하다는건 또 무슨말인가. 아이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선생님들 눈치를 보며 훌쩍이고 있는게 안쓰럽다는 건가? 아이가 엄마랑 떨어져서 안쓰럽다면, 본인들또한 그런 안쓰럽고 안타까운 아이들을 기관에 보내지 말고 집에서 가정보육해야하는건 아닌지. 본인들은 아이들을 "제 시간에"보내서 놀게 오는건 맞는거고, 사정에 의해 아이를 "일찍"보내서 혼자 시간 보내는건 불쌍한거라니, 나로썬 이해가 되지 않았다. 더구나 그들의 논리대로 "아이를 일찍보내서 눈치를 준다"는 선생님은 난 듣도 보도 못했고, 본인들이 그런 사람들을 겪었는지도 의심스럽다. 내가 아는, 그리고 내가 지내온 기관의 선생님들은 7시 50분부터 당직선생님, 8시-8시 30분 사이 선생님들이 출근을 하면서 각자의 업무분장대로 움직이셨다.

그렇게 아이가 안쓰럽다면 본인들도 가정보육을 해야하는거 아닌지. 똑같이, 비슷한 이유로 기관에 보내면서 '모성애'까지 운운할 정도로 비난을 해야하나 싶었다. 졸지에 모성애 없는 나는 아이들에게 미안해야 했다.


내 친구 해지뇽이 출산 직후 <프랑스 아이처럼>이라는 책을 선물로 줬다. 이 책에 나오는 육아관을 보니 어쩐지 내가 이렇게 키울거 같다고 했다. 역시, 내친구는 달랐다. 내가 롤모델로 삼을 만한 육아서적이었다. 친구의 혜안에 감탄했다. 자립심, 주체성. 내가 육아를 하며 지침으로 삼은 두 가지가 나와있었다.


언젠가 어느 모임에서 내 아이들이 15, 18개월에 어린이집에 갔고, 등원을 8시 30분쯤 한다고 했더니 두 엄마가 전혀 다른 말을 했다. A엄마는 "어마, 아이들이 적응을 잘하는가보다. 엄마랑 애착 형성이 잘 되어있어서 그런거다. 애들 잘 키웠네"라고 했다. 그러면서 장단점은 있지만, 기관에 아이가 적응을 잘하고, 의사표현도 할 정도면 기관에 보내서 많은 친구들과 시간도 보내고 체험하는게 좋았다고 했다. B엄마는 "애들 너무 불쌍하다. 그렇게 일찍 가면 선생님들이 애 일찍와서 본인 시간 없어서 싫어하던데 애들 눈치보는거 아니냐. 너무 엄마 편하게 사는거 아니에요?"라며 나에게 이기적인 엄마라고 한소리를 했다. 그러면서 자기 아이는 3살에 어린이집 보내는데도 엄마랑 떨어지기 싫다고 울고불고해서 얼마나 안쓰러웠는지 몰랐다고 속상해했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내 아이를 싫어하는것같다면서 대소변 뒷처리도 마음에 안든다, 우리 애만 별난 취급 하는거 같더라고 온갖 흉을 봤다. 그러면서 "내 아이"가 좀 예민하고 세심해서 힘들어하는거 같다고 했다.(어린이집에 계속 보내고 있음) 둘 중 누가 맞고 틀리다는 논할 수 없지만, 적어도 나랑 맞는 사람 아닌 사람은 구분이 되었다. 이후 두 엄마랑 만날 일은 없었지만, 건너건너 들은 이야기론 B엄마는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지 않는 엄마들에게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니 사회성도 기를수있고 아이가 다양한 활동을 하니 성격도 활발해졌다. 거기다 내 시간도 생겨서 마음이 여유로워졌다."고 말하고 다닌단다. 모성애도 변하나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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