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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다 May 04. 2023

복산돈까스 예찬

내가 사랑하는 진짜 돈까스를 파는 곳 :)

나는 돈까스를 정말 좋아한다. 고기도 좋아하는데, 거기다 그걸 튀겼으니  맛은 오죽하랴.


아주 어릴적 우리집 근처엔 '한마음회관'이라는 복합문화센터가 있었다.(지금도 있는데 아까 기사를 보니 철거 예정이라고 한다 흑) 그곳 1층 "동구랑"이라는 레스토랑은 우리집 외식의 메카였는데, 가족들의 생일이나 아버지 휴가때, 대구나 영천에서 친척들이 왔을때처럼 특별한 날에만 갈 수 있는 곳이었다. 아직도 기억나는건 입구에 들어서면 보였던 대형 배 모형과 경양식집 그 자체였던 인테리어, 특유의 돈까스 소스향과 그 사이에 스며든 고소한 기름냄새가 가득했었다.

동구랑은 다 맛있었지만 특히 빠네스프와 돈까스가 인기였다. 지금이야 빠네파스타, 빠네스프 등이 흔했지만 그땐 빵 안에 스프랑 스파게티가 있다고? 라면서 구경을 가거나 그걸 먹고 난 다음에 자랑을 할 정도로 별식이었다. 그러다 한마음회관이 대대적으로 공사를 하면서 동구랑이 없어졌다. 지금은 그보다 더 세련된 곳이 많지만, 이따금 그 추억의 맛이 참 그립다.


한동안 돈까스 앓이를 하다가 얼마전 강동 개어멈님(언니 별명이다. 실명을 쓰면 언니가 부끄러워할테니..)이 우리동네에 엄청난 돈까스 맛집이 있으니 가보자고 했다. 돈까스야 뭐든 좋지 했지만, 돈까스 맛집은 처음 들어봐서 궁금했다.


우리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복산돈까스> 애들아빠가 이 집에 이사오고 얼마 안되서 "윗집 형이 <복산돈까스>라고 맛집이 있다더라"고 말한적이 있지만, 그땐 둘째가 어린이집에 가기 전이고, 보낸 후에 애들 아빠가 근무시간이 바뀌면서 흐지부지 해졌던터였다.


레트로한 간판과 분위기가 정겨운 곳이었고, 그에 반해 직원들이 너무나 젊은이들이라 놀랐다. '제3한강교'를 비롯한 우리 부모님도 가물거리는 옛 가요가 나오는 와중에 직원들의 오가는 대화는 어색하지 않았다. 위화감이 없달까. 하긴, 내가 워낙 복고를 좋아하던 터라 덮어놓고 좋아했을지도 모른다.


처음 가서 주문한 메뉴는 경양식 돈까스였다. 소스를 워낙 좋아하고, 또 근처에 변변한 경양식 돈까스집이 없어서 그 맛이 그립던 차에 반가운 메뉴였다. 주문을 하고 언니랑 도란도란 이야길 나누다가 '슬슬 배가 고픈데?'하는데 돈까스가 나왔다. 언니와 나는 굉장히 놀랐다. 우리가 아는 '경양식 돈까스'라면 자고로 아주 얇고 넓직한 돈까스에 돈까스 소스를 듬뿍 뿌린 것인데, 복산돈까스의 경양식 돈까스는 "돈까스"가 주인공이었다. 두툼하고 바삭한 돈까스 위에 살포시 돈까스 소스가 덮혀있었다. 칼로 반을 자르니 바삭 하는 소리가 식욕을 자극했고, 뒤이어 아주아주 두꺼운 스테이크 고기를 자르듯 칼날 너머로 느껴지는 두툼한 고기의 질감에 침이 고였다. 고기를 다 자르고 나니 촉촉한 고기 단면에 신선함이 느껴졌다. 언니와 나는 감탄도 잊고 우물우물 한 점 먹었다.

돈까스를 그렇게 오래 씹어본건 처음이었다. 고기가 질겨서 오래씹은것이 아니었다. 바삭한 겉면은 잠시, 씹을수록 고소한 돼지고기의 맛과 향, 달콤하고 진한 돈까스소스와 육즙이 어우러지면서 입안 가득 "무척 좋은 고기"를 먹는다는 만족감에 단번에 삼킬 수가 없었다. 한참 씹다가 꿀꺽 삼키니 언니가 그제야 입을 연다 . "뭐야뭐야, 이 돈까스 뭐야? 이게 무슨 돈까스야, 스테이크지!"

다 먹고 나서 후회가 들었다. "이렇게 좋은 고기를 소스에 찍어먹었다니!!!!" 경양식돈까스로 남기에 너무 아까운 돈까스라, 언니랑 나는 "다음엔 우리 꼭 등심과 안심을 먹자"고 약속했다.


그렇게 돈까스를 먹고 나오니 맞은편에 정육점이 보였다. 간판디자인이 같은 걸로 보아 이곳의 고기를 쓰는 것 같았다. 쉴 새 없이 고기를 썰고 담는 사장님의 모습에서 오랜 내공과 함께, 이곳의 고기는 정말 믿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기를 튀겼음에도 생고기의 신선함과 돼지고기의 고소함이 그대로 들어있었으니 저 고기를 그냥 구워먹으면 얼마나 더 맛있을까! 다음엔 꼭 저곳의 고기를 사먹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단 한번의 방문이었지만, 난 단번에 복산돈까스를 좋아하게 되었다.  돈까스에 충실한 돈까스 가게라니. 당연한 것 같지만, 사실 이런 곳이 많지는 않다. 돈까스가게지만 부수적인 사이드가 더 많다던가, 돈까스를 그냥 '고기 튀김'으로 만들어 내놓는 곳도 적지 않다.


그 다음으로 포장을 했는데, 집까지 차로 10분이 넘는 거리여서 좀 식었지만 그래도 고기는 부드러웠고, 누린내도 없이 아주 맛있게 먹었다. 이후 돈까스매니아인 언니, 개어멈님과 또 가서 등심과 안심을 먹었다. 소스 없이 트러플오일과 소금, 고추냉이에 찍어 먹는 돈까스가 생소했는데 고기에 자신있는곳 답게 특별한 소스 없이 먹어도 충분히 맛있었다. 언니들도 '와 역시'라면서 다음에 또 오자고 손가락 걸고 약속했다 :)


오늘은 애들아빠가 볼일이 있어서 휴무를 냈다. 모처럼 외식을 하자고 해서 주저없이 <복산돈까스> 가자고 했다. 테이블링으로 미리 예약을 하고 한시간 정도 뒤에 시간 맞춰 갔다. 돈까스가 나오기까지 15-20 정도 시간이 걸리는걸 알고 있기 때문에 미리  일을 가지고 가서 일을했다. 애들아빠는 '아니, 웨이팅도 엄청나게 기다렸는데 음식 나오는데도  기다려?"라면서도 은근한 기대감 때문인지  재촉하지는 않았다. 나도 '여기 저번에 왔는데 맛이 이렇고 저렇고'말하지 않았다. 서로  일을 하며 진득하게 기다렸다. 이윽고 돈까스와 냉메밀이  나왔다.  테이블은 셋이서 돈까스 두개와 냉메밀을 시켜 먹으면서 "어휴 여기 양이 많다" 했다. 하지만 우리는 매운돈까스와 안심돈까스, 냉메밀을 시켜서 둘이  먹었다.(끄윽) 애들아빠는 ""하고 짧은 감탄사를 뱉더니 가타부타  없이 돈까스와 냉메밀을 흡입했다.


배가 고파서 먹는다기보단 진짜 맛있어서 먹는 모양이었다. 뿌듯함을 느끼며 나도 먹는데에 집중을 다했다. 과연 오늘도 안심은 부드러웠고, 처음 먹는 냉메밀은 곁들임으로 부족함이 없었다. 샐러드까지 싹싹 긁어 먹고 기분좋게 나왔다. 남편에게 넌지시 "돈까스 소스 없이 그냥 먹는게  맛있었지?"라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본인은 소스를 뿌려먹으니 좋은 고기가 너무 아까웠단다. 부창부수. 생각하는게 똑같다.


사람들마다 가게를 평가하는 기준은 다 다르다. 맛은 기본이겠지만, 보통은 '직원의 친절함', '분위기', '가격'등 부수적인 것을 따지고 후기를 쓴다. <복산돈까스>는 정말 오랜만에 "돈까스의 맛"하나로 최애 가게가 되었다. (아, 물론 직원들도 친절하고 서비스도 만족스러웠다. 수시로 가게를 돌면서 빈 접시를 채워주기위해 '반찬을 더 드릴까요?', '샐러드 더 드릴까요?'라고 먼저 물어보고 이밖의 손님의 갖가지 요구도 굉장히 잘 들어줬다. 키오스크가 낯선 이들에게 옆에 서서 알려주고,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멀리서나마 손님이 원활하게 주문 할 수 있도록 도왔다.)


때마침 동네 언니가 연락이 왔다. 애들 아픈것도 다 낫고 했으니 다음주에 점심을 같이 먹잔다. "뭐먹을래?"라는 카톡에 바로 답장을 했다.


"언니, 돈까스 먹으러 갈래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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