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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다 Jun 04. 2023

샤넬지갑 로고가 떨어졌다

명품 로고 한끝차

오랜만에 가방과 지갑, 악세사리 정리를 했다. 안쓰는것, 조잡한 악세사리, 색깔이 변한것, 오래되어 낡은것 등을 죄다 정리하고 남은 것을 하나하나 닦아가며 보니 명품에 큰 관심이 없다 싶었는데 생각보다 꽤 많았다. (내기준) 샤넬 WOC를 시작으로 구찌 가방, 발리 핸드백, 루이비통 서류가방(시어머니께 물려받음), 프라다 동전지갑에 펜디 귀걸이까지. 더스트백에 넣고 나니 저 구석에 작고 까만 지갑이 보였다. 나한테 저런게 있었나 싶어 보곤 기절하는 줄 알았다. 샤넬 반지갑에 샤넬 로고가 똑 떨어져 있는거다! 2015년 유럽여행가서 큰마음먹고 산 나의 첫 명품이었다.

작고 앙증맞은 내 지갑의 샤넬로고... 끼우거나 접착제로 붙일 정도도 안되서 급히 샤넬 코리아에 AS문의를 넣었다.

메일을 보내고나서 다시 보니 헛웃음이 났다. 로고가 없는 샤넬지갑은 그냥 평범하디 평범한 검정색 지갑이었다. 심지어 램스킨소재라 흠집도 많아 똑떨어진 샤넬로고가 없는 부분이 더 지저분해 보였다. 다만 세월의 흔적만큼 손때가 반질반질타서 윤기가 흐르고 내부는 겉과 달리 아주 깨끗했다. 샤넬 로고 프린팅도 멀쩡했다.


친구에게 로고가 빠진 지갑을 톡으로 보내 "이거 얼마짜리 같냐?"라고 했더니 바로 답장이 왔다.



얘, 이걸 돈주고 샀니?


곧바로 샤넬로고를 함께 보내주며 이거라고 했더니 깔깔 웃는다. 어머, 야 명품 진짜 별거없다. 로고 하나 없으니 사진으론 이게 명품인지 뭔지 모르겠다. 처음 이 지갑을 보여줬을때 "어머어머 이게 바로 물건너온 샤넬이니? 어머어머 역시 명품은 때깔이 다르다! 가죽 부드러운것좀봐, 세상에 바느질 촘촘하고 꼼꼼한 마감까지 역시 다르네달라~"하고 호들갑을 떨던 친구의 모습이 생각나서 웃음이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좀 씁쓸했다.


이 지갑을 내가 왜 샀지? 곰곰히 생각해보니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10년넘게 쓴 지갑의 지퍼가 떨어져서 하나 사야했고, 이왕 살거 오랫동안 쓸 수 있는것으로 사자 싶었다. 그때가 남동생과 유럽여행 떠나기 하루 전이라, 두둑한 퇴직금을

믿고 "명품을 살테다"라고 별렀다. 지갑은 좀 부담이 덜하겠지...싶었지만 샤넬의 장벽은 높았다! 손바닥만한 지갑들은 당시 한화로 50-70만원 선이었다. 지갑을 50만원 주고 사다니....5만원짜리 대충사고 45만원을 그냥 쓸까?싶었다. 하지만 남동생이 말했다. "누나, 이왕 사는거 좋은거 사. 이거 한국가면 더 비쌀걸?" 평소에도 빼어난 안목과 센스를 갖춘 동생은 이리저리 훑어보고 재보더니 사이즈도 무난하고 활용도가 좋은 지갑을 권했고, 나야 워낙 감각이 없어서 동생이 괜찮다니 그걸로 했다. 당시 한화로 60만원을 줬다. (지금은 중고가가 이정도 가격이라고 한다) 이후 "뽕뽑으려고" 정말 열심히 들고다녔다. 체인을 따로 사서 작은 가방처럼 들고다니기도 했다. 그렇게 6년간 쓰다가 대전 동서와 도련님 부부가 프라다 동전지갑을 사줬다. 잔돈푼이 많이 생기고 샤넬지갑보다 더 작은 크기라 이걸로 갈아탔다. 그러고 잊고 있었더니 이 사태가 벌어진거다.


고가의 지갑이다보니 아이들 손에 닿지 않는 선반 깊숙하게 더스트백에 담아 보관했는데 이게 뭔일인지 아직도 의아하긴하다. 중간중간 이사하고 짐을 몇 번 옮기다가 뭔가에 걸려 떨어진거라 짐작만 할 뿐이다. 이미 사태는 벌어졌고, 뒷수습은 나의 몫이다.


메일을 보내고 두시간 뒤 샤넬코리아에서 전화가 왔다. 샤넬코리아 080-805-9628 택배는 불가하고, 직접 인보이스나 구매영수증, 신분증, 제품을 지참해서 가장 가까운 매장에 방문접수만 가능하다고 했다. 우리집에서 가장 가까운 샤넬매장은 대구와 부산. 대구는 차로  40분 거리에 ktx역에 가서 기차를 30분 동안 타면 도착하고, 부산은 차로 1시간 걸린다. 좀 더 편하긴 대구인데, 볼거리는 부산쪽이라 좀 고민해봐야겠다. 비용을 검색해보니 대략 10만원 이내란다. 하아. 로고 하나 달자고 10만원을 쓰기엔 아깝다 싶다가도, 이 지갑의 가치를 빛내기 위해선 필요한 비용이라 결국 내일 아침 일찍 "오픈런"하기로 했다.

(다행히 AS접수는 별도로 관리하고 있어서 구매하는 사람들 말고 따로 입장을 시켜준다고 한다. 그래도 1시간 정도 대기가 있을수있다는 무서운 말을 들었다...) 로고없는 샤넬지갑을 들고다닌지 일주일쯤 되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로고의 흔적이 있어서 아직까진 샤넬지갑으로 인정받고있다. 그냥 이대로 들고다닐까? 오늘도 고민을 오조오억번 하고 가방에 지갑을 넣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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