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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다 Jun 03. 2023

키치한 키친 이야기

우리집의 내 공간을 만들게 된 이야기

우리집 부엌을  사람들은 열이면 , "이게뭐냐?"라는 말을 한다. "이게 뭐냐?" 문장 안엔 진짜 이것이 뭔지,  쓰임새가 뭔지 궁금해하거나, 아니면 이런게  집에있냐, 이런걸 돈주고 샀냐 등등의 뜻이 들어있다. " 답다" 사람도, "아유 너저분해(보통 어머니들)", "정신사나워(이건 우리 어머니)" 별별 이야기를  듣는다. 그래도 다들 재미있어해서 기분이 나쁘진 않다. 오히려 '다음엔  무슨 재미난 녀석을 데려다 놓을까?"고민을 한다.


결혼전 본가에 내 집도 이랬다. 작디작은 두 평 남짓한 방에 온갖 포스터, 인형, 굿즈, 화장대, 침대, 옷장이 빡빡하게 들어가 있어서 문을 열면 "헉"하고 숨이 찰 정도였다. 심지어 방이 작은데 수납공간이 너무 없어서 벙커침대를 들여 천장까지 짐이 가득 들이찬것 같았다. 그래도 난 좋았다. 문만 닫으면 내가 좋아하는것들에 둘러싸여 내 마음대로 물건을 놓고 마구잡이로 둬도 누구도 뭐라하지 않았으니까. <혼돈 속의 질서>라고, 그 안에도 나름의 질서가 있었다. 나는 보통 구역으로 나눠서 그 구역엔 딱 그 물건만 두는데, 가령 침대 밑 3단 수납장엔 <굿즈>만 넣거나, 책상 위 선반에는 <인형>, 화장대 오른쪽 통 안에는 <색조화장품(거진 립스틱만 있었음)> 이런 식이다. 찾기 쉽고 정리도 편했다. 그렇게 내 공간 안에서 나는 참 즐거웠다. 딱히 어디 정붙일곳이 없어 방황한 시기에도 내 방 안에서는 안정을 찾았다. 화장실까지 있었다면 며칠 동안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기 전까진 <서재>에서 내 공부를 했다. 애들아빠랑 책상을 같이 붙여 그는 컴퓨터를 하고, 나는SNS를 하거나 책을 읽었다. 방 하나를 나눠쓰는 형편이었지만, 애들아빠는 자기 컴퓨터 책상 빼곤 알아서 하래서 구석에 잡지꽂이도 두고, 내가 좋아하는 포스터와 배우 사진도 붙여뒀다.


이후 아이를 낳고 육아에 뛰어들면서 <내 방>은 자연히 없어졌다. 앉아서 여유로이 책을 보는건 사치였다. 그저 아이가 조용히 잠들면 쇼파에 쪼그려 앉아 책을 읽다 아이가 깨면 달려가야했다. 어느새 내 책상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아이옷장을 넣었고, 이사를 가고 난 후엔 방이 더 좁아져서 말이 서재지, 책장과 아이아빠의 컴퓨터책상, 물건을 넣은 아빠방, 드레스룸, 안방으로 방 세개를 나눴다. 내가 모은 굿즈, 좋아하는 포스터는 떼어서 창고행. 그마저도 아이물건, 아이아빠옷가지로 비좁아서 내 물건을 다 처분해야했다. 옷장이 비좁으면 내 옷을 버리고, 책장이 가득차면 내 책과 물건을 정리했다.


드디어 내 집으로 다시 이사를 했다. 서재는 아이아빠방, 작은방은 아이들방, 안방은 옷장과 침대로 꽉찼다. 역시 이곳에도 내 공간은 없었다. 옷장에 가방을 쳐박아두고, 책과 다이어리, 패드와 키보드는 큰 가방에 넣어서 식탁 구석에 두고 꺼내썼다. 이마저도 식탁에 네 명이 앉아야 할 땐 거실 구석에나 부엌한켠에 옮겨놔야했다.


집이 좁다한들 책상 하나 둘 곳 없을까. 거실 창가, 방과 방 사이 작은 공간, 팬트리 후미진곳... 아주 작은 책상하나, 서랍장 하나 두고 싶어서 내 물건과 내 공간을 만들고 싶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창가쪽은 애들이 올라갈 위험때문에, 방과 방 사이 공간은 통행이 불편해서, 팬트리 후미진곳은 기존에 있는 칸막이 분리가 불가해서... 어찌저찌 된다는 이유만큼, 불가한 사유도 같이 생겼다.


큰아이가 "엄마만 방이 없네? 엄마는 부엌이 엄마 방인가?" 라고 말했다. 그래, 나는 부엌데기지. 엄마는 청소하고 설거지하고 밥하는 사람이라고 여기는 딸들과, 그런 딸들의 이야기에 맞장구치는 아이아빠 "덕분에" 나는 부엌에서 사는 신세가 되었다. 그래서 그들의 말에 "오냐 너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내 공간으로 만들어주지"라는 오기가 생겼다. 꽁꽁 넣어둔 내 물건과 선물받은 독특한 용품을 하나둘 꺼냈다.


사실, 원래 내 인테리어 스타일은 <튜닝의 끝은 순정,  인테리어의 끝은 아무것도 없는것>이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것은 다 집어넣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를 선호하는데, 이젠 좀 달라졌다. 정작 부엌용품은 거진 다 집어넣고, 내가 좋아해서 계속보고싶은건 다 꺼내놨다. 6세와 3세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귀여운 아이템들이라 꺼내는 족족 아이들이 만져보고 가지고 놀다가 없어지거나 깨진것도 많다. 둘이 서로 갖고논다고 싸우다 부러지거나 찢어진 장난감과 엽서도 수두룩하다. "엄마, 이거..."하고 미안함과 울음을 머금고 날 찾아온다. 속으론 울면서도 "또 사면 되니까 괜찮아, 더 재미난걸로 또 올려둘게" 괜찮다고 아이에게, 또 나에게 말한다.


오늘도 단골 소품샵에 신상품이 들어왔다고 알람이 울린다. 아, 놓칠 수 없는 시나모롤 피규어세트다! 심지어 인터넷에서 족족 품절이라 못샀던 레어템이다. 가격을 물으니 2만원이란다. 지갑을 여니 딱 2만원이 있다. "이건 꼭 사라는 운명이야"라면서 자기합리화를 하며 장바구니를 들고 집을 나서는데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통화말미에 "너 근데 어디 나가냐?"라고 하길래 나는 당당히 말했다. "응 내 공간 꾸미러 가". 뒤이어 들리는 소리 "에휴 또 쓸데없는데 돈쓴다."

쓸데없는 소비라도 좋다. 나만 즐거우면 된거지 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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