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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다 May 24. 2023

작가 이다현 되기

언젠가 내 직업이 '작가'가 되기를

 나는 어릴 적부터 말보다 글이 편했다. 학창시절 ‘뚱뚱하고 못생겼다’, ‘목소리가 이상해서 말 걸기 싫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하면서 혼자 지냈는데, 내 이야긴 누구도 들어주지 않았기에 하고 싶은 말과 속상한 이야길 글로 쓰기 시작했다. 그땐 변변한 컴퓨터나 저장프로그램이 없어 2천 원짜리 두꺼운 노트에 매일 썼다. 그때 씹어뱉듯 쓴 글들은 나의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유일한 친구였다. 글을 쓰고 나면 후련했고, 내 하루가 이렇게 정리되어 흔적이 남았구나 싶어 씁쓸하기도 했다. 그때부터 막연히 ‘나는 글 쓰는 사람이 될 거야’고 결심했던 것 같다. 하지만 사회에 발을 내딛고 일에 치이다 보니 점차 희미해져갔다. 이따금 개인 홈페이지에 글을 써서 올리긴 했지만 조회수는 나뿐이었다. 그래도 그냥 글쓰는 행위가 좋았다.


그러다 결혼을 하고 연달아 아이 둘을 낳았다. 매일이 고난의 연속이었고, 결혼도 육아도 처음이라 하루하루 가시밭길이었다. 이리저리 치이다 보니 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삼켜댔다. 터놓고 말할 사람도, 공감해주는 이 없이 엄마의 역할, 아내의 역할을 해내야 했다. 나라는 사람이 없어졌다는 상실감까지 더해지니 매사에 의욕도 없고 그냥 축 처져서 매일을 버텼다. 그래, 그때의 난 “하루하루 외줄 타기”를 하는 위태로운 사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처박아둔 낡은 노트북을 꺼냈다. 오늘의 기분을 어디에건 뱉어내고 싶었다. 자판 몇 개는 부러져서 입력도 안되고, 몇 번이나 꺼졌지만 한 장의 일기를 쓰고 나니 속이 후련했다. 그래, 난 글 쓰는 사람이었어. 참 오랜만에 가슴이 뻥 뚫리는 쾌감을 느꼈다.

그다음 날부터 아이들을 모두 재우고 집안일을 한 다음 매일 글을 썼다. 처음엔 일기를 쓰다가 욕심이 생겨 각종 백일장, 공모전에 응시했다. 오랜 꿈이던 신춘문예도 준비했다. 한 편은 당선이 되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아이에게 ‘엄마는 글 쓰는 사람이란다’하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동안 너무 쉬었나 보다. 신춘문예는 올해로 열한 번째 떨어졌다. 예선에도 오르지 못했다. 밤잠을 줄이고 퇴고를 거듭한 자식 같은 글들은 수상작 명단에 없었다. 수상작들을 몇 번이고 읽고 자괴감에 들었다. 내 글이 더 잘 썼다는 확신은 점점 우물 안 개구리의 착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보다 더 우울해졌다.


 그래, 이건 내 길이 아닌 거야. 딱 한 번만 더 응모해보자 싶어 찾다가 한 문화재단에서 개최하는 백일장에 나갔다. 주제는 00군에 대한 것이었는데, 그곳에서 오래 살며 다양한 추억이 있던 나에게 제격인 주제였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싶어서인지, 글로 담을 추억이 많아서인지 별 고민 없이 쉽게 써 내려갔다. 말미엔 원래 분량보다 두 배가 많아 반쯤 덜어내기까지 했다. 남편은 “꼭 타자기 소리가 피아노 연주하는 것 같이 무척 경쾌하네”라면서 오랜만에 의욕적인 내 모습에 신기해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3등에 당선되었다. 몇 번이고 내가 맞는지 확인하고 그곳에서 ‘당선을 축하한다’는 연락이 와서야 실감이 났다. 너무 기쁠줄 알았는데 뜻밖에 눈물이 쏟아졌다. 그간 고생한 세월과 포기하지 않은 나 자신이 기특했다. 이후 자신감을 얻어 더 많은 글을 썼다. 당선이 안된 적이 더 많았지만 당선의 유무보단 다양한 이야길 내가 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지난달부터는 운동도 하고 새로운 자극도 줄 겸 도보 10분 거리의 학생교육문화회관 1층 북카페에서 커피 한 잔 시키고 한 시간씩 글을 쓰고 돌아온다. 며칠 전엔 커피를 주문하는데 직원분이 “혹시 뭐 하는 분이세요?”라고 나에게 물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와서 커피를 마시며 한 시간씩 노트북에 뭔가 써 내려가는 내가 무척 궁금하셨단다. 아직은 글 쓰는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뭣해서 “아, 그냥 이것저것 해요” 얼버무렸다. 그날 저녁 곰곰이 생각했다. 나는 뭐 하는 사람이지? 어렵지 않게 결론이 났다. 나는 “작가가 되고 싶다”라고. 이젠 누가 뭐라고 해도 꺾이지 않고 늦었지만 차근차근 작가의 꿈을 위해 나아가려 한다.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 “저는 작가 이다현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 그날을 위해 오늘도 난 낡은 노트북을 챙겨 길을 나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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