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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난 괜찮아.

by 은주리

나의 온 세상 두리(15년생 몰티즈 남아 반려견)가 많이 아팠다.

이틀 전 퇴근하고 집에 왔는데 두리가 반기기는커녕 계속 누워서 잠만 잤다. 보통은 아침이면 다시 쌩쌩해졌는데 여전히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오히려 숨을 헐떡이는 것 같았다.

좀 더 자라고 이불을 덮어주고 수영 수업을 갔다가 동네 동물 병원에 갔다. X-ray 촬영을 해보니 폐가 하얗게 찍혔다. 물인지 염증인지 아니면 피인지 모를 무엇인가가 가득 찼다고 한다. 무엇이건 치료 방법은 똑같으니 주사 맞고 약 먹고 그러고도 상태가 좋지 않으면 다시 오라고 했다.

괜찮을 거라 믿으며 운동을 갔다.

점심 먹고 산책은 넘기고 집에서 쉬었다. 출근 시간은 다가오는데 두리 상태가 좀처럼 좋아지지를 않았다.

같이 출근을 할까 하다 안 되겠다 싶어 다시 동물 병원에 갔다.(이때 큰 병원을 갔으면 더 빨리 나아졌을까?)

호흡이 더 안 좋으니 산소방을 만들어 넣어두고 피검사를 하기로 했다. 의사 선생님이 밤에 상주하지 않으니 24시 병원으로 가는 것을 은근하게 권한다. 넌지시 귀찮은 티를 낸다.

퇴근길에 데려갈 테니 그때까지만 봐주싶사 부탁을 하고 출근을 했다.

어떻게 수업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빠르게 마감하고 병원에 갔다. 조금 더 나아진 두리를 볼 거라 기대하면서.

“생각보다 심각해요. 염증수치 보이죠? ‘급성호흡곤란 증후군’ 같은데 이게 예후가 좋지를 않아요.”

하늘이 무너졌고 땅이 꺼졌다.

제주에는 반려견 응급실이 없다. 이미 밤 11시가 넘어가는 시각이라 야간진료도 끝났다. 당장 산소방은 필수라서 두리를 데리고 집으로 갈 수도 없다.

“제가 6시에 다시 올 건데 그 사이 무슨 일이 일어날 수도 있어요. 동의하시면 여기 사인하시고 가시면 돼요. 아침에 와서 무슨 일이 있거나 검사 수치가 안 좋으면 연락드릴게요.”

작디작은 내 소중한 두리를 이곳에 혼자 두고 가야 한다니,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밤을 지새워야 한다니,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니.

밤새 울고 또 울고 빌고 또 빌었다.

‘아픈 건 내가 다 할 테니 우리 두리만 살려주세요. 두리만 살려주면 다 괜찮아요.’

아침이 되고 두리를 병원에서 데리고 나와 제주시로 향했다.

한라산을 넘는 동안 숨쉬기 어려울 수 있어 산소마스크를 입 주변에 두고 내달렸다.

“폐수종인데 심장소리도 굉장히 안 좋아요. 일단 고비는 넘긴 것 같으니까 내일까지 폐에서 물을 빼고 심장 초음파를 볼게요.”

금방 나을 것이고 심장 상태를 보면 왜 폐에 물이 찼는지 알 수 있을 거라 했다.

‘살았다!!’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작은 산소방에 앉아 여전히 헐떡이는 두리를 5분도 채 못 보고 발걸음을 돌렸다. 다시 서귀포로 넘어가 잠시 한숨 돌렸다. 두리가 살았으니 됐다. 다 괜찮았다. 오후에 다시 한라산을 넘어 병원에 가야 했지만 피곤하지 않았다. 다 좋았다.

“좋기를 바랐는데 암이네요. 전이 여부나 암의 성질을 검사해서 수술을 먼저 할지 약물 치료를 먼저 할지 정해야 합니다.”

대부분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대목이지만 괜찮았다. 두리가 살았으니 내 병 따위 아무렇지 않았다. 정신없이 수납과 여러 검사가 이어졌지만 별거 아니었다. 나 알아서 치료하면 그만이다.

내 우주 나의 두리가 살았으니 나도 살아있을 수 있다.

다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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