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가득한 개인 기록용 감상문
2025.01.01.
24년 상반기에 티저 영상이 떴을 때부터 보고 싶었던 영화였다. A24 제작인데다가 미국 내전을 다루기 때문에 흥미가 안 생길 수 없었다. 왠만하면 우리나라는 동시 개봉하거나 시간 차이가 나도 3, 4 개월이면 개봉하기 때문에 빨리 개봉하길 바랐는데 24년 마지막 날 개봉이라니. 간신히 해는 넘기지 않았다. 관람은 해를 넘겼지만.
상상이라도 미국 내전에 관한 내용을 예상했다면 이 영화는 심심했을 수도 있다. 이 영화는 미국 내전, 그러니까 점점 심해지는 좌우의 싸움을 다루는 영화가 아니다. 건드리긴 하지만 그것을 본격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저널리즘에 관해 적극적으로 다룬다.
스토리는 이러하다. 미국 내전이 몇 년 간 지속되어 왔고, 서부군이 대통령을 잡기 얼마 남지 않았다. 사진 전문 기자 리와 인터뷰 전문 기자 조엘은 대통령에게 직접 인터뷰를 따기 위해 워싱턴 DC로 향한다.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그리고 누구도 해내지 못한 대통령의 인터뷰를 따기 위해서. 나이가 많은 새미는 워싱턴 근처만 가도 기자를 사살한다며 이를 말리지만 그 역시 저널리스트로서 끓어오르는 게 있었고, 합류한다. 초짜 기자 지망생 제시까지 합류하면서 주인공 파티가 완성된다. 그들이 워싱턴 DC로 향하면서 마주하는 내전—전쟁의 민낯을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이 영화의 내용이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퓰리처상 사진전시회’를 관람한 기억이 떠올랐다. 영화의 연출 때문인데, 사진 기자—리와 제시가 주된 화자이다 보니 그들이 긴박한 상황에서 찍은 사진이 중간중간 컷으로 삽입된다. 흑백 사진으로 찰나의 장면을 포착하는데, ‘퓰리처상 사진전시회’에서 보았던 큰 사건의 일부를 관객인 내가 옆에서 보는 착각이 든다. 영화가 아니라 실제로 미국 내에서 전쟁이 일어났고, 각자의 목표를 이루고 승리하기 위해 피를 흘리는 그들과 함께 뛰어다닌다.
이 영화가 미국 정치 한 진영을 옹호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영화 최후에 사살되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 영락없이 트럼프를 떠올리게 하지만—공화당을 상징하는 빨간 넥타이와 그를 흉내낸 표정 등— 앞서 말했듯 영화는 ‘저널리즘’을 강조한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사실, 미국 내전이 왜 일어났는지 모르겠다. 내가 놓친 걸지도 모르겠지만 정확한 설명이 없다. 관객은 내전이 일어난 미국에 떨어졌고, 그곳에서 취재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리 일행에 끼어들었을 뿐이다. 처음 리와 만나는 장면에서는 정부군이 나쁜 것처럼 느껴진다. 사람들에게 물을 주지 않고 사람들은 물을 달라고 소릴 지른다. 다툼 속에 자살 폭탄 테러를 일어난다. 절박한 상황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이를 시작으로 전쟁에 물든,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보여주는데 점점 혼란이 온다. 그러면서 리와 제시의 대화 속에서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걸 엿볼 수 있다.
기자는 선택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상황을 보여주고 사람들에게 선택지를 내민다.
내가 영화를 보며 느낀 선택은, 진정한 저널리즘이란 무엇인가, 다. 처음에는 사람들의 알 권리를 위해 사람들이 갈 수 없는 전쟁 한복판을 누비는 기자의 사명감에 대단하다고 느꼈다. 영화라 할지라도 종군기자의 활약을 보고 들으면 보통 사람은 할 수 없는 초인적인 힘을 느낀다. 하지만 영화가 점점 진행될수록 기자들의 행동이 점점 민폐처럼 느껴졌다. 작전권을 가진 사람들—군인이나 작전 실행자—의 통제를 잘 따르던 제시가 백악관에 돌입하는 그 작전에서는 위험을 무릅쓰고—통제 불능일 정도로 군인보다 먼저 뛰어든다. 제시가 진정한 저널리스트로 거듭났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나는 동의할 수 없다. 오히려 제시를 살리기 위해 군인이 작전에 집중하지 못하는 게 민폐 아닐까? 민폐라고 표현하면 실생활에 일어난 실수로 보이니 목숨을 위협하는 일이라고 바꾸겠다. 군인은 물론 본인의 목숨까지 잃을 수 있는 상황으로 몰 수 있다. 더군다나 그 상황은 소위 말해 사람들이 알 권리를 위해 사진을 찍는 게 아니다. 백악관을 돌입하는 순간. 토마스 제퍼슨 기념관을 폭파하는 순간. 이것이 진정 사람들의 알 권리를 위해 반드시 남겨야 하는 중요한 순간인가? 자극적이며 충격적일지는 몰라도 인류의 역사를 바꾸는 순간은 아니다. (나는 인류의 역사를 바꾸는 순간—찰나 같은 한 순간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는 리의 목숨을 앗아가는 결과를 낳는다. 이미 전쟁에 갉아먹혀 버릴 대로 먹힌 리가 무너졌지만 제시가 무리하게 사진을 찍지 않았으면 죽지 않았을 것이다. 최후에 대통령이 사살되는 장면을 연사 사진으로 표현되는 장면하며,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대통령의 시체를 두고 카메라를 보고 환히 웃는 군인들을 보면서 기분이 오묘했다. 죽은 사람 앞에서 저럴 수 있을까? 영화 속 세계라면, 저 인간 하나 때문에 수천, 수만의 사람이 죽었다면 당연히 웃을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까?
좋은 사진—다른 사람에게 정보를 보이는 기사 사진으로서 좋은 건, 기자의 사심이 들어가지 않아야 한다. 역사도 그러하지만 기사도 비슷하다. 현장을 전달 받는 독자로서는 사진과 기사로만 상황을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것에 기자의 사견이 들어가면 정보가 왜곡되고 만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보는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사진이 좋은 사진인 것이다. 퓰리처상을 받은 사진 중에서도 사람들의 오해를 받은 사진이 있다. 기억이 정확하지 않지만 사살 당한 사람이 못된 사람—독재자였던가?—인데, 무방비한 상태로 맞는 것처럼 보여서 총을 쏜 사람이 더 나쁜 사람으로 해석해서 사진을 찍은 기자가 되려 죄책감이 들었다는 인터뷰가 이를 지지한다. 이런 사진은 좋은 사진인가? 순간을 담는 게 충격적일진 몰라도 오롯이 진실을 담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이래저래 요즘 우리나라 상황과 많이 겹쳐 보였다. 늦게 개봉한 게 신의 한수일지도 모르겠다. 배급사 중에 미래 예지를 하는 분이 계신가… 너무 많은 정보가 쏟아지는데 진실을 판단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는 게 감독의 의도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너무 많은 정보 속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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