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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우보이 비밥 : 천국의 문

스포 가득한 개인 기록용 감상문

by 송건자

2025.05.01.


근래 들어 예전 영화가 재개봉하는 추세다. ‘카우보이 비밥 : 천국의 문’은 2001년에 나왔으니 무려 24년 전에 개봉했다. 예전 OCN에서 보았었는데 스크린이 아니었음에도 재밌게 보았다. TV 본편을 더 좋아하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이 극장판으로 나오는 건 반길 일이다. 짜집기 총집편이 아니면 더욱.


TV 본편처럼 어느 사건에 휘말리는 스파이크 일행. 처음에는 현상금, 3억 우롱을 얻기 위해 테러 사건에 발을 깊이 담그면서 사건에 휘말린다. 테러에 사용된 생물학 병기 ‘나노머신’은 체내에 들어가면 순식간에 뇌까지 도달해 목숨을 앗아간다. 뇌가 녹는 순간 희생자는 나비가 보이는 특이한 현상이 있다. 테러를 일으킨 범인, 빈센트는 화성 군인으로 ‘나노머신’의 백신인 ‘카운터 나노머신’ 성능 실험의 희생자로 사망 처리되었지만 실은 살아 있었다. 모든 기억을 잃고서. 스파이크는 빈센트를 막기 위해 ‘나노머신’에 대해 조사하면서 엘렉트라라는 츄리어스 메디컬 소속 화성 군인을 알게 된다. 스파이크와 엘렉트라는 처음에는 싸우지만 함께 빈센트를 막기로 하고 엘렉트라 몸에 있는 ‘카운터 나노머신’을 배양, 빈센트가 테러를 예고한 할로윈에 ‘카운터 나노머신’을 비와 함께 뿌려 테러를 막는다. 빈센트는 엘렉트라가 쏜 총에 맞아 죽는다. 빈센트는 나비로 뒤덮인 세상에서 나갈 수 있는 문을 찾기 위해 테러를 일으켰다고 고백한다. 그렇게 스파이크가 대량 살상을 막고 현실로 돌아가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영화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이 현실인지, 아니면 나비가 보여주는 환상인지 묻는다. 나비와 꿈. 호접지몽이 떠오른다. 호접지몽은 장자의 이야기에서 유래된 고사성어다. 현실은 내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나비가 꾸는 꿈인지 현실과 꿈의 경계, 존재에 대해 묻는다. 모든 기억을 잃은 빈센트는 자신의 삶이 현실인지 나노머신이 뇌를 태우면서 보여주는 나비가 만든 허상인지 헷갈려 한다. 그래서 테러를 일으키려고 했다. 이 세상이 무너져야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지옥에서 나갈 수 있는 문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지막에 엘렉트라—빈센트가 사랑한 여자를 떠올리고 처음부터 그런 문은 없었다고 깨닫고 죽음을 맞이한다. 죽음이 빈센트를 해방시켜주었을까?


매체에서 죽음은 고통으로 가득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출구처럼 그려지곤 한다. 나 역시 때때로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죽음은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출구가 아니다. 죽음은 그냥 죽음일 뿐이다. 해방이라고 하면 어깨에 짊어진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일신(一新)해서 다시 삶을 이어갈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죽음은 끝이다. 사후 세계, 내세의 존재는 알 수 없으나 내가 인지할 수 없기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죽음은 또 다른 시작이 아니다. 그냥 끝이다. 무거운 짐을 그대로 얹고서 무(無)에 잠길 뿐이다. 빈센트는 아마 해방되지 못했을 것이다. 잔인하지만 기억을 잃은 남자는 그냥 기억을 잃은 채 죽은 것이다. 위안이라면 사랑하는 여자를 마지막으로 보았다는 것. 그가 고통에서 해방되었다면 그건 엘렉트라를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카우보이 비밥’은 애니메이션계에 길이 남을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스파이크, 제트, 페이, 애드, 아인 등 매력적인 인물과 그들이 펼치는 소동극. 인물들의 과거와 그 과거로부터 벗어나지 못해 고민하고 아파하는 현재. 그렇지만 묵묵히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은 시간이 얼마나 지나도 마음에 와닿을 것 같다. 그들의 고민이 현실과 동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영상도 미려하다. 특히 액션이 대단하다. TV판도 좋지만 극장판은 자본을 더 많이 들였는지 주먹이 맞부딪치는 액션도 좋고 후반부에 펼쳐지는 공중전은 25년이 지난 지금 봐도 전혀 낡아 보이지 않는다. 하고 싶은 거 다하라고 전부 쏟아부었나 보다. 또한 상영 내내 흐르는 재즈까지. 눈과 귀가 즐겁다.


재미와 철학적 물음까지 던지는 이야기가 참 좋다. 호접지몽은 인공지능이 발달한 현재도 인공지능이 인간의 난제를 말끔하게 푼 미래도 인간을 괴롭힐 것이다. 현실이 고통스럽기 때문일까? 현실이 고통스러운 건 어쩔 수 없다. 삶은 고통이고,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그 고통을 견뎌야 한다. 그게 삶이다. 다 놓아버리고 싶을 때가 있지만 죽음은 해결책이 아니다. 남은 사람들에게 또 다른 짐이 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야 한다. 비록 나비가 꾼 꿈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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