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가득한 개인 기록용 감상문
2025.05.09.
내게 영향을 가장 많이 끼친 영화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이 영화를 꼽겠다. ‘역습의 샤아’를 맨처음 봤을 때가 상당히 오래 전이었다. 그때는 구진 화질로 보았었는데 지금은 4K. 그것도 극장에서 보다니 감개가 무량하다. 부천애니메이션축제 같은 곳을 가지 않는 이상 절대 극장에서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보게 된 것만으로도 가슴이 뭉클하다.
내용은 샤아가 지구를 정화하기 위해서, 지구에 기생하는 인간들을 숙청하기 위해서 운석—액시즈를 떨어뜨리는 계획을 짜고 그것을 아무로가 속한 론도벨 부대가 막는 이야기다.
오랜만에 다시 보니 색다르게 다가왔다. 생각보다 정치적인 이야기가 많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인물들의 대사에서 핵심을 찌르는 대사가 상당히 많았다. 규네이가 툭툭 내뱉는 말이 의외로 샤아를 객관적으로 평가하지 않나 싶다.
개인적으로는 샤아가 아무로에게 라라아를 빼앗긴 것 때문에 이 전쟁이 일어났다는 규네이의 말에 동의한다. Z에서 샤아는 과거를 이겨냈고 오히려 아무로가 과거에 속박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역습의 샤아에서는 그 반대가 되었다. 물론 인도 귀신이 아무로와 샤아 앞에 어슬렁거리는 걸 보면 라라아가 문제이긴 하지만… 첫사랑은 평생 잊지 못한다는 게 이런 말일까? 사실 이건 아무로와 샤아를 이용해 건담을 팔아먹으려는 어른들의 사정 때문이지만 토미노 옹은 스폰서의 뜻을 맞추면서 예술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걸 생각하면 결국 샤아는 라라아 슨이라는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어릴 때는 샤아는 참 어리석고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안타까운 인물로 보였는데 요즘 들어서 다시 생각하면 인간은 나이를 먹는다고, 어른이 된다고 크게 변하지 않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이건 개인적인 체험 때문이기도 하다. 외모만 해도 어릴 때 모습이 그대로 이어가는 것처럼 마음도 그런 것이다. 인간은 본디 가지고 태어난 걸 벗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걸 운명이라고 불러야 할까? 숙명이 더 어울릴까?
내가 역샤를 좋아하는 이유는 쓰레기 더미에 빠졌어도 희망을 놓지 않는, 인간을 믿는 아무로의 마음 때문이다. 그것이 엑시즈 쇼크라는 기적을 일으켰고 지구를 구했다. 이후 우주세기 이야기를 보면 구하지 않는 게 더 나았을 거란 생각도 들지만 그걸 차치하고 인간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야 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현실을 보면 비관적인 생각만 든다. 인간을 믿고 싶지만 믿을 수 없는 이중적인 마음이 든다. 그래도 인간을 믿으려고 한다. 인간을 믿는다는 건 인간인 나 스스로를 믿는다는 것과 마찬가지기도 하니까. 악한 이기심 속에서 선함을 믿고 싶다.
역시 스크린에서 보니 다르다. F91도 볼까. 이런 기회가 흔치 않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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